전출처 : 물만두 > 암살 주식회사 - 잭 런던

존 F. 케네디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총에 맞아 암살된 1963년, 같은 해에 출간된 한 권의 소설이 널리 회자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을 대표한 소설가 잭 런던의 유작 『암살주식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당국의 미심쩍은 수사 태도 등 대통령의 암살이 권력 집단의 사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당시의 ‘음모 이론’에 불을 붙인 이 책은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 베일에 가려진 정치 암살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엘리트들의 비밀결사 등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여 주목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작품인가?

“만약 당신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겠습니까?”
“내가 유죄임을 설득해보시오. 그러면 나 자신을 암살할 테니.”

강인하고 이성적인 러시아계 이민자 이반 드라고밀로프는 한때 과격한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다가 세르기우스 콘스탄틴이라는 이름의 사업가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 그 방편으로 그는 최고의 두뇌와 완력을 소유한 엘리트들의 비밀결사인 암살국을 만들어 암살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즉 ‘공공의 적’들을 암살하는 청부회사인 셈이다.
암살국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은 계약이 이루어지려면 표적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단 의뢰가 확정되고 나면 절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인 ‘백만장자 사회주의자’ 윈터 홀은 암살국의 존재를 눈치 채고 보스인 드라고밀로프를 찾아간다. 그는 그 자리에서 드라고밀로프 본인의 암살을 의뢰한다. 두 사람은 이 놀라운 의뢰의 사회적 정당성을 두고 며칠 동안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고, 결국 드라고밀로프는 자신의 암살 의뢰를 수락한다.
한편으로 홀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사회사업가 그루니아가 드라고밀로프의 숨겨진 딸임이 밝혀진다. 자책하던 홀은 의뢰를 취소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드라고밀로프는 전 조직원에게 자신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유유히 도주한다. 이상주의자인 암살국의 조직원들은 총력을 다해 그를 뒤쫓으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피를 나눈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이지만, 정의와 윤리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들에게는 공동의 약속과 조직의 원칙을 수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결국 드라고밀로프는 암살국의 모든 조직원과 무시무시한 접전을 벌인 끝에 전 조직원들을 살해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암살국의 일원으로서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홀의 암살 의뢰를 수행한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데카당한 범죄의 결합이 낳은 기이하고 우아한 스릴러
레닌으로부터 ‘최고의 사회주의 작가’라는 찬사를 들었던 잭 런던은 또한 생전에 미국 최고의 인기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인생 역정을 통해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남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야성의 부름』이나 『흰 엄니』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앞서 소개되어 청소년 독자층의 고전이 된 바 있고, 1980년대 말 계급투쟁에 관한 미래소설 『강철군화』, 계급 간의 사랑을 그린 『마틴 이든』 등이 소개되면서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면모가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그는 선원으로서의 경험을 살린 『바다 이리』와 남태평양 항해를 바탕으로 한 이국적인 작품집 『남쪽 바다 이야기』, 런던 빈민가에 잠입하여 일 년여를 살아가면서 그곳의 비참한 환경을 묘사한 르포 『심연 속의 사람들』등 미국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들을 남겼다.
『암살주식회사』는 이런 다양한 작품 세계 속에서도 가장 독특한 위치를 점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1910년대는 대공황이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기 직전, 자본주의가 찬란한 꽃을 피워낸 시대였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갱스터와 자본가들이 공존하던 뉴욕이나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묘사된 바 있는 화려한 물질주의의 ‘재즈 에이지’가 시작되었고, 한편으로 어두운 슬럼 가와 쪽방에는 빈민과 이민자들이 넘쳐났다. 마치 한 편의 갱스터 영화 같은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은 사회주의와 청부 암살이라는 두 독특한 소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숨은 걸작, 작가 사후 50년 만에 부활하다
이 작품의 탄생과 결말에는 두 뛰어난 소설가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 1900년에서 1916년 사이에만 소설, 평론, 기고문 등을 아울러 무려 5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냈던 런던은 쓰고 또 써내려가는 방식으로 자신을 학대하다시피 집필해나갔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다작(多作)하는 작가들에게 숙명처럼 찾아오는 소재 고갈에 시달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는 1910년, 훗날 자신의 뒤를 이어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불리게 될 무명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로부터 칠십 달러에 열네 편의 시놉시스를 사들인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바로 펜을 들었으나 결말을 고민하다가 집필을 중단했고, 플롯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메모만을 남겨둔 채 아쉽게도 사망하고 말았다. 50여년 후, 미스터리 소설가 로버트 L. 피시가 런던의 메모를 참조하여 결말을 완성했고, 소설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에드거 상을 수상한 장르소설가이자 TV 시리즈 <도망자>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L. 피시가 택한 결말과 사실주의 문학가인 런던이 택한 결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작품의 탄생에 얽힌 이런 맥락을 밝히기 위해 함께 수록한 잭 런던의 ‘소설의 완성을 위한 메모’와 런던의 미망인이자 편집자였던 ‘차미언 런던이 구상한 결말’을 통해 ‘얼터너티브 엔딩’의 차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도 흔치 않은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니체적 초인주의, 다윈적 사회주의라는 서로 모순되는 신념들을 동시에 지니고 이를 작품과 인생 양쪽을 통해 치열하게 실천하려 했던 작가 잭 런던의 이 독특한 유작은 ‘장르소설’의 틀을 통해 이러한 모순적 신념과 작가적 실험을 그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복합적이고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잭 런던 특유의 ‘예언적’ 정치소설, 그리고 철학적 사고(思考) 실험이 강하게 반영된 사회소설 어느 쪽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사실주의 소설가, 혹은 청소년 작가로서의 일면만 소개되어 온 잭 런던의 숨겨진 작가적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기념비적인 플롯의 반전을 구축한 작품
-도널드 E. 피즈(문학평론가)

책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보기 드물게 빼어난 스릴러.
-뉴욕 타임스

일면 단순한 게임 같으면서도,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미국 아마존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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