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법의관 김혜진

"유괴로 숨진 아이 부검할때 가장 많이 울어요"
[노컷뉴스 2005-08-23 08:55]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탓인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망자(亡者)'를 대면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시신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죽었을까'라는 생각만 하는 여자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법의관 중 유일한 여성인 박혜진(35세)씨가 주인공.

평범한 주부지만 한달에 40건 부검..."냄새날까 구내식당에서만 밥 먹어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그녀의 하루는 여느 직장 여성과 똑같이 시작한다. 그러나 국과수로 출근해 그녀가 하는 일은 시신을 부검하고 사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한 달에 40건 정도 하는 부검은 대부분 오전에 이뤄진다. 법의관 한 명당 한달에 9번 부검하는 것이 원칙이나 임시조로 편성돼 특별근무하는 일도 다반사다.

부검하는 날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야하며, 보통 한번에 4건에서 5건의 시신을 부검하는데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녀가 점심시간에 주로 이용하는 식당은 구내식당. “밖에서 먹고 싶어도 부검이 있는 날은 몸에 시신 부패 냄새가 배여서 못 나가요”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간혹 간이 샤워시설에서 씻기도 하지만 국과수 내에 법의관 중 홍일점인 그녀를 위해 마련된 시설은 없었다. “유영철 사건 때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걸레 빠는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기도 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오후에는 혈액, 위 내용물 등 부검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 다른 부서에 검사를 의뢰하고 온라인으로 통보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부검감정서를 작성한다.

보통 한 건당 보름 정도 걸리지만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 복잡한 사건일 경우 한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일때문에 집으로 서류가져갔다 아이들 볼까 두려워 도로 갖고 나온적도 있어요"

밤 9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그녀는 집에서 일을 마저 끝내려는 욕심으로 서류를 들고 가지만 아이들 앞에서 차마 펼칠 수 없는 자료가 많아 고스란히 도로 갖고 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일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경찰 기관, 사법연수원, 대학 등에서 법의학 강의를 하고, 때로는 증언을 위해 재판에 참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정 시스템 상 범인과 함께 법원에 서야하는 그녀는 “칼로 피해자를 찔렀을 범인과 눈을 마주치며 진술을 할 때 무척 괴롭다”고 말한다.

구속기한이나 보험처리 때문에 재촉하는 검찰, 경찰, 유족들 전화를 받는 것도 그녀의 몫.

주 5일제 근무는 그녀와 먼 얘기다. 법의관 인원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국과수 분소는 많아지고 매년 부검해야하는 사건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토요일 근무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3일장을 주로 하잖아요. 토요일에 쉬면 3일장을 넘기게 되니 할 수 없죠” 라고 유족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최근 ‘친절한 금자씨’를 본 후 유괴당한 아이를 부검했던 경험이 떠올라 많이 울었다는 그녀는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애쓰면서도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유괴당한 뒤 숨진 아이 부검때 많이 울어"


그녀의 사무실은 칸막이로 반이 나눠져 6개월 마다 그녀와 교대로 동부부검출장소(서울아산병원)에 나가는 다른 법의관과 같이 사용한다. 심지어 작년 여름에는 비가 새서 이틀간 업무를 중단해야 했다. 현재 국과수 건물은 증축이 필요하지만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해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국과수라고 하면 최신식 건물을 떠올리지만 직접 보니 그렇지 않죠? 건물만 좀 좋아져도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라고 웃어넘기지만 단순한 농담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녀는 “업무량은 갈수록 폭주하지만 법의관 처우 개선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법의관 지위를 인정하고 신분보장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바라는 점은 국내 법의학 발전을 위해 국과수가 연구기관의 성격을 갖춰나가는 것. “부검을 하다보면 좀 더 연구하고 싶은 부분도 많은데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국과수에서 하는 일이 한낱 감정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환원되는 순환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녀는 ‘세상에 아름다운 시신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가 외면하는 망자의 침묵을 묵묵히 대변하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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