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봄날 삼청동을 찾았다. 전통과 현대, 강남과 강북, 예술과 상업이 매혹적으로 뒤섞인 이곳. 이곳은 느릿느릿 골목길을 걸으며 눈과 입이 즐거워지고 맘 먹고 돈을 써도 전혀 아깝지 않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경복궁 맞은편 담을 타고 유려하게 트인 삼청동 길. 산과 물이 맑고,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삼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 동네에 대한 첫 기억은 삼청동 수제비, 눈나무집, 청수정,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 등 입소문난 맛집 순례에서 시작된다. 누구나처럼 처음엔 먹고 마시러 이 동네를 찾곤 했다. 하지만 점점 거리의 정취와 골목길 구석구석에 눈을 돌리게 되었던 것. 이 길을 걷자면 나도 모르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곤 했다. 계단처럼 이어진 나즈막한 한옥집들, 70년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발관과 세탁소, 시골 동네에서 만난 듯한 쌀집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또 그 사이사이엔 초현대식 감각의 갤러리와 카페, 개성 있는 패션숍이 오밀조밀 숨어 있는 까닭이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 개성 있고 독특하면서도 여유롭고 조용한 모습. 이런 면들이 바로 이미 너무 화려하고 복잡해진 인사동이나 청담동, 홍대 앞이나 대학로와는 또 다른 삼청동만의 특별함을 만들어왔다. 마음도 여유가 없는 요즘, 한가롭게 삼청동 골목길을 걸으며 조용하게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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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청동은 걸어야 제 맛, 차를 이용할 거라면 마을버스를. 2 주차금지 표지판 뒤의 예쁜 그림. 과연 누구의 손길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3 마을버스 정류장 앞 시계. 비 맞지 않게 플라스틱 지붕을 만들어놓은 모습이 삼청동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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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표정은 다양하다. 어디에서건 셔터를 누르면 멋진 그림이 만들어진다. 카메라를 들고 이 길에선 잠시 포토그래퍼가 되어보길.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이나 칸노 요코의 OST쯤이 귓가에 울린다면 더 운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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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꾸는 가게’ 삼청파출소 지나 약 20m 길 맞은편 2,7 쿡앤하임 삼청동 방면으로 직진 중 우리은행 맞은편 3 ‘BG Muhn’의 벽화와 벤치 삼청동 끝길 무렵에서 감사원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약 10m 직진 4 ‘링가롱가’ 의 파란색 창문 ‘BG Muhn’에서 감사원 방향으로 약 20m 정도 올라가다 오른편. 6 Duru art space 삼청파출소 지나 유료주차장 쪽 8 아원공방 앞 벤치 삼청동 올라가는 길에 민속박물관 건너편.
삼청동을 거니는 사람들(젊은이라면 더더욱)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공통의 키워드는 손에 들린 카메라다.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는 이들에게는 이미 ‘출사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있고, 그저 맛집을 찾아온 이들이라도 자연스레 가방 속을 뒤져서 디카를 꺼내게 만드는 곳. 좀더 포토제닉한 삼청동을 담고 싶다면 다음의 포토 스팟을 따라가봐도 좋을 것이다. ‘길거리에 철로 만든 나무 벤치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아원공방(02-735-3482)은 풍경 사진만을 편애하는 출사족들마저도 그 벤치에 앉아 꼭 기념사진 한 컷을 찍게 만드는 곳이다. 삼청 파출소를 지나면 모자이크를 보는 듯 컬러풀한 외관이 불쑥 솟아오른 Duru art space(02-720-0345)가 보인다. 모던한 슬레이트 벽면을 반쯤 걸치고 낡은 듯한 한옥 지붕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함께 담으면 그 한 컷만으로 삼청동스러운 ‘퓨전’이 된다. 유명한 파스타집 수와래. 길 건너편엔 출사족들에겐 숨은 보물찾기와 같은 장소, ‘꿈꾸는 가게’가 있다. 대부분 문은 자물쇠로 꼭 잠겨 있고 핸드메이드 모자, 가방 몇 점이 창문에 쪼로록 걸려 있지만 번듯한 간판은 찾을 수 없는. 때묻은 듯 벗겨진 듯한 화이트 벽, 창문 주변을 타고 오르는 녹색 식물, 바랜 듯한 파란색 페인트가 흔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셔터를 누르게 하는 곳이다. 다시 길을 건너 좀더 올라가면 붉은 벽면 위로 Cook’n Heim(02-733-1109)이 보인다. 대로 쪽으로는 통유리로 된 S+라는 숍이, 좁다란 계단길엔 매 계단마다 알록달록 예쁜 화분들이 놓여 있다. 삼청동 수제비, 눈나무집이 줄서서 먹는 곳이라면 쿡앤하임은 출사족들이 기다렸다 찍어야 하는 스팟. 한국교육과정평가원(또는 감사원) 쪽으로 우회전해서 BG Muhn을 지나 좀더 올라가면 길쭉한 하늘색 창틀과 파란 대문이 인상적인 와인 카페 링가 롱가(02-730-3323)도 있다. 햇살 좋을 때 찍으면 지중해빛을 머금은 듯한 느낌이 난다. 삼청동의 밤은 낮과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거기엔 서로 잘났소 하며 눈을 괴롭히는 네온사인이 없다. 어둠이 내린 골목길을 밝히는 건 쇼윈도 밖으로 새어나오는 가게들의 불빛. 삼청동을 더욱 아늑하고 정겹게 만드는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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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패션 숍이 운치 있는 이유는 삼청동의 예술적 향취 때문만은 아니다. 유행을 좇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표현하는‘오리지널리티’기 숨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 옷가게 같지만 실은 한지 공예 문구 가게, 앤 소여. 2 목가의 지하에 마련된 갤러리. 4월엔 오카리나 연주회를 열 예정. 3 꽃 장식이 돋보이는 신시안의 외관. 4 동양적인 디테일이 돋보이는 지아衣 갤러리 옷들.
메인 스트림에 위치한 지아衣갤러리(02-738-1241 셔츠 15만~18만원, 재킷 28만~42만원)는 한복 디자이너 출신의 디자이너 자매가 운영하는 숍. 날염 프린트의 셔츠, 무정형의 재킷 등 트렌드를 좇지 않으면서도 트렌디한 옷들이 눈길을 끈다. 맞은편에 위치한 신시안(02-735-4456 정장 50만~1백만원대)은 통유리 속에 하얀 꽃을 디스플레이한 외관 때문에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 예복 스타일의 여성스러운 정장을 맞춰주는 곳인데 미국 소호 거리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옷이 돋보인다. 티베트 박물관으로 가는 길엔 좀더 이색적인 숍을 만날 수 있다. 골목 초입에 위치한 앤소여(02-720-5302 블라우스 4만~5만원, 한지 수첩 1만원대)는 스물여덟 살 젊은 한지 디자이너가 수입해온 옷과 직접 만든 한지 문구, 액세서리 등을 파는 가게로 그녀의 작업실과 공유하는 공간. 쇼윈도에 걸려 있는 옷을 보고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색감이 예쁜 수첩 하나를 들고 나올 것 같은 기분 좋은 가게이다. 오픈 8개월을 맞는 목가(02-723-3570 블라우스 8만원대, 액세서리 10만~20만원대)는 공예를 즐기던 주부가 52년 된 낡은 철물점을 개조해 만든 이색적인 가게. 몽당연필을 잘라 만든 귀고리를 팔고 벽면에는 탄광촌에서 직접 가져온 목재 의자가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이런 특별함 때문에 길을 지나던 홍대 교수가 크로키 한 점을 그려주고 갔을 정도. 디자이너들의 자유로운 창의성이 살아 숨쉬기에, 딱 하나밖에 없기에 삼청동에서의 쇼핑은 충분히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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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청동에서 새롭게 등장한 카페의 코드는‘미술관 속 카페’. 미술의 거리인 ‘전통’의 삼청동과 먹고 마시는‘도심’의 삼청동이 만났다.
1 금속 공예가 이두선 씨의 작품을 보는 재미가 있는 제노. 2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기에 좋은 바 형태의 제노 내부. 3 삼청동의 멋을 대변하는 비움의 전경. 4 볕 좋은 정원에서 먹는 자연주의 햄버거 맛은 쿡앤하임만의 자랑.
‘삼청동 수제비’에서 길 따라 50m 직진하면 보이는 조그마한 카페 Xeno(02-723-5751 카푸치노 5천원, 메독 4만5천원)는 금속 공예가 이두선 씨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을 개조한 곳. 소박한 10평 남짓의 공간은 전시품부터 판매용 액세서리까지 눈요깃거리가 다양하다. 유리창 천장에 팔을 뻗고 있는 금속 토르소는 푸른 하늘을 보는 것 이상의 감격을 선사하기도. 아트 숍으로 유명한 비움(02-730-7258 첫물차 7천원, 글래스 와인 5천원)은 작년 8월 순수 아트 숍으로 삼청동에 오픈했다가 ‘차를 마시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손님들의 성화 덕에 2주 전 갤러리 카페로 리뉴얼했다. 탁트인 통유리 공간 안에 들어선 한옥에서 먹는 ‘해남 손덕음 첫물차’는 첫 잎을 따기까지 7년이 걸린다는 그 정성만큼 맛이 깊다. 밤 풍경도 아름다워 연인과 와인 한 잔을 즐기기에도 그만. 오픈 4개월 만에 삼성동의 명소로 자리 잡은 쿡앤하임(02-733-1106 칠리치즈버거 8천5백원, 봉골레 스파게티 1만3천원)은 갤러리에서 일하던 이려은 씨가 ‘도심 속의 작은 쉼터’로 만든 곳. 자연주의 식단을 즐길 수 있는 볕 좋은 정원이 있는 카페이면서 동시에 카페 한편의 Fifteen Gallery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볼 수도 있다. 이탈리아 빵 포카차를 직접 구워 만든다는 싱싱한 자연주의 햄버거 맛도 놓치지 말아야 할 즐거움. 기분 좋은 리듬을 타는 재즈의 선율이 흐르고 쉼표 같은 휴식을 주는 갤러리, 웰빙을 거스르지 않는 메뉴가 있는 삼청동의 아트 카페는 지금 삼청동에서 들러야 할 핫 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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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이 강북의 ‘청담동’ 노릇을 하기 시작한 지난 2년간, 삼청동의 음식 냄새는 달콤쌉싸름한 와인과 고소한 파스타의 향기로 변했다.
1 테이블 한편의 와인조차 그림이 되는 멋진 공간, 콰이민스 테이블. 2 대한민국 최고의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는 이것, 하루의 해산물 스파게티. 3 자연주의 식재료만 사용하는 콰이민스 테이블의 스파게티. 4 미술가가 쓰다 남은 페인트 붓. 미완의 멋이 살아 있는 콰이민스 테이블. 5 모던한 분위기의 하루 내부 전경.
20대 후반 이상의,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동네이기에 시끄러운 맥주보다는 와인이 ‘삼청동 사람들’의 취향이기도 했다. 삼청동의 명소가 된 수와래를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우후죽순으로 와인&파스타를 간 유리 레스토랑인데 가격과 메뉴, 인테리어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미술관에 왔다가 들르기에 부담이 없다. 삼청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칠레산 와인 ‘까베르네 쇼비뇽’을 5만원에 즐길 수 있는 저렴한 가격도 매력. 호텔 주방장들도 제일로 꼽는다는 ‘뽀모도르’의 토마토소스 맛은 그대로 살렸고 삼청동의 한국적인 맛을 더해 김치 스파게티 같은 퓨전 메뉴 개발을 추가했다. 금융연수원 길을 오르다 보이는 콰이민스 테이블(02-736-7320 해산물 스파게티 1만5천원, 와인 5만~20만원대)은 서양화가 겸 인테리어 전문가 김쾌민 씨가 오픈한 전원풍의 파스타 레스토랑. ‘가게 전체를 하나의 설치 미술로 보고 두 달간 직접 밤낮으로 작업해 만들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카메라에 담기만 해도 그림이 된다. 가게 안쪽 벽에 손수 수정을 달아 만들었다는 ‘눈물의 벽’은 주인도 가장 애착하는 공간. 5만원대의 행사 와인을 주문하면 젤리 하트 초를 켜준다고 하니, 남자친구와 들러 와인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 느리게 마셔야 맛을 음미하는 와인과 느리게 걸어야 멋있는 삼청동은 영락없는 닮은꼴이다.
Editor·박공주 이선정 | Photographer·김도형 \ Thanks to·싸이월드 ‘삼청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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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SURE | patzz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