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공선옥의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와 공지영의 <공지영의 수도원기행> 2권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두 사람 모두 중견 작가로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소설 쓰기를 주된 업으로 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읽은 책들은 소설이 아니고 두 사람 모두 인생의 무언가를 찾기 위하여 길을 떠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외에는 아래와 같은 다름이 있는 듯하다.
공선옥은 길을 떠나며 그녀의 자녀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밥을 해놓고 길을 떠났다. 공지영은 그녀의 자녀를 돌보아줄 사람을 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공선옥은 아마 남편없이 혼자살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길을 떠나며 아이들만 남는다는 것을 그녀는 무지하게 두려워 했는데,남편이 있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그리고 이 책에서 남편의 존재를 느낄만한 문구가 전혀 없었다.),
공지영은 남편과 전 일정은 아니지만 출발부터 상당 일정을 동행했다.
공선옥은 줄창 시외 버스만 타고 이동을 하고(간혹가다 기차도 타기는 함..새마을호나 KTX는 아닌 것 같음), 심지어 막차를 놓치고 3만원 하는 택시비 마저 아까워 다른 사람(후배)한테 도움을 청한다.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후배)는 찜질방 가서 자라고 하고..
공지영은 ICE기차 1등칸을 남편과 타거나 아니면 혼자 타고 이동했다....
각 객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딸려있다.그녀는 그러한 호사(공지영 자신의 표현임)에 감사해 한다.
공선옥이 만난 이들은 주로 시골의 촌로들이다. 연세가 기본적으로 60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분들이고,
농사를 짓거나 시골장터에서 별로 값나지 않는 물건을 팔거나,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약같은 물건을 파는 이들이다. 공선옥이 만난 이들은 거의 사는 것이 넉넉하지 않다.공선옥이 만나는 이들에 대하여 굳이 구분을 하자고 들면 이른 바 소외 계층,서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선옥이 만난 이들은 살면서 겪었던 풍상으로 행복에 겨운 얼굴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미 달관한 듯한 분도 있지만 여전히 사회에 대하여 분노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고, 자신들이 갖는 힘의 한계를 알고 절망하는 이들도 있다.
공지영이 만난 이들은 목적이 수도원 기행이어서인지 주로 수사님들과 수녀님들이다.그리고 공지영을 안내해주기 위하여 평소 공지영이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등장하는데 유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그녀가 만난 수사님들이나 수녀님들은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행복함을 마음속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가득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일부 수도원에서는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한다든지(이것은 그들이 방문객에게 요구하는 수도생활을 위한 협조사항일 수 있을 것이다),성물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대체로 수도원관계자들은 공지영 일행에게 호의적이다.
공선옥은 길을 떠나며 짐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 공지영은 그녀의 짐 때문에 다른 이들의 선물마저 번거로워했다.공선옥은 조금은 궁박해 보이고,공지영은 조금 럭셔리해 보인다.

이 두사람은 각자 떠났던 여정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찾았을까?
공지영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유령(또는 악령???)의 손아귀를 벗어나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쌓여있던 갈등과 고민을 모두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공선옥은 강원도 산골,여수 항구,서울 가리봉동 등에서 오늘도 삶을 힘겨워하는 이들을 통하여 무엇을 얻었을까?
이 두사람의 여정에 건성으로 오로지 눈으로 동행한 나는 아직도 하느님에게 항복하겠다고 기도도 못했고, 미군 부대앞의 시위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나는 어디로 발걸음을 향해야 하는가? 아니 이들처럼 떠나기나 할 수 잇을까? 
나는 누구의 글과 여행이 더 탁월한지 따지고 싶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주변여건이든 본인의 용기이건,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중년 이후의 삶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워 몇 글자 두서없이 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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