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기분좋은 사유는 아니지만,
원인이야 뭐든 간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광주로 하루짜리 출장을 가게되었다.
서울은 후텁지근한 무더운 날씨였지만, 전남 남해안 지방에는 제법 많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고속버스 터미널에 와서야 듣고 우산을 갖고
오지 아니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돈주고 우산 사긴 왠지 아까워
그냥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행하는 직원도 우산을 안 갖고 오긴 마찬가지..
광주에 내릴 때쯤이면 비가 그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로
버텨보기로 했다.
다행히 광주에 머문 하룻동안 비가 아주 조금 왔다..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버스안에서 골치아프고 어려운 책을 보기는 속이 울렁 거릴듯하여
황석영의 <강남몽>을 펼쳤다.
이 소설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화두로 부동산 투기, 조직폭력, 화류계, 서민을
대표하는 군상들이 등장한다.
나 또한 15년 전임에도 그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아직 남아있다.
지금 회사의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지 한달 남짓 되어 말단 쫄따구로
정신없이 야근을 하고 있는데, 낯선 얼굴의 선배 직원이 우리 부서에
와서 가볍게 한마디 던진 말이..삼풍백화점이 무너졌대 였다..
다들 그 얘기를 듣고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표정으로
황당한 한마디를 하던 그 선배를 바라보았는데,
삼풍백화점이 정말로 무너졌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안 것은 불과 10여분 후...
삼풍 아파트가 집이던 여직원의 어머니가 그 시간에
백화점으로 저녁 찬거리를 사러가셨다는 소식에 부서에는
긴장과 걱정이 흘렀고, 붕괴 10여분전에 나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이 천여명이나 된다는 것을
<강남몽>을 읽고 새삼 재인식하게 되었다. 

초고속 성장의 후유증으로 속전속결 정신의 사생아로
흔히 회자되는 삼풍과 성수대교...
 
당시 20대였던 나도 40대에 진입했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던 자리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고,
성수대교는 다시 개통되었으며,
부동산 투기는 요새 들어 시들해 진듯하고,
조폭들도 어딘가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을텐데...
개발 초기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이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급격한 신분상승을 했듯이,
돌이켜 보면 참으로 짧은 시간 안에 급변해 왔다.
소설 속에서도 "다른 나라 10년이 한국의 1년"이라는 
표현 그대로...

<강남몽>을 읽을 시간을 허한 짧은 여행을 통하여
20여년만에 방문한 광주 특히 금남로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많이 바뀌어 있었다.
2년동안 살았던 도시임에도 그 낯섬의 정도가 어찌나 심한지
마치 처음 온 도시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제와 비교한 오늘은 별로 바뀐게 없이 지루하고 동어반복적인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듯하나, 삼풍이 무너졌던 15년전을
돌이켜 보니 그대로 있는게 하나도 없다..도대체 언제 이렇게 많이 바뀐거야??? 

<강남몽>에서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살짝살짝 개명하여 등장한다..
내 나름대로 찍어본 개명과 본명..
이희철 -> 이철희, 장영숙 -> 장영자,
홍양태,강은촌 -> 조양은과 김태촌이지 싶다.
김창수 -> 김창룡
소설 속의 중요 인물 중 한명인 박선녀는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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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7-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안에서도 책을 읽다니~ ^^

저는 울렁거려서 버스에서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거든요.

삼풍백화점 무너졌을때 생각나네요. 그런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쩝





짱구아빠 2010-07-2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버릭꾸랑님> 답글이 늦었네요.. 지난 주 휴가를 얻어 대전,구례,하동,남해를 한바퀴 둘러보고 오느라 장시간 집과 서재를 비웠네요.. 20여년 전에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많이 탔는데 그때부터 책을 보고 다녔던 듯합니다. 그래도 독서환경에는 버스가 지하철보단 좀 못하져..
가끔 급정거도 하고, 교차로에서 좌우회전을 해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