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서 감정(슬픔, 환희, 분노 등등)에 휩싸여 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감정 무지하게 무디다..
(대신 겁은 많아서 공포영화는 잘 못본다)
특히 십수년을 같이 지낸 마눌님의 감정 상태 마저도 잘 파악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 자주 타박을 듣는다..
그렇게 무디기 이를데 없는 내가 양조위와 탕웨이의 <색계>를 보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몇 날 며칠을 우울하게 멍하니 지내며 시간을 죽여댔었다.
탕웨이(왕치아즈/막부인)가 어찌 그리도 불쌍턴지..
자기 목숨을 내던져가며 사랑한 남자(이선생/양조위)는
목숨을 건진 후 가차없이 그녀와 그녀의 조직을 일망타진..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모두 즉결처분 시켜버렸다.
그녀가 죽어가면서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살려줄 거라고 그 인간을 믿은 내가 바보지"
"나는 죽더라도 그이를 살려서 다행이야"
"연극반에만 가입만 안 했어도 이런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을텐데"
"그때 임무에서 빼달라니깐 위에 것들이 말을 안들어 이렇게 되었잖아"
등등 별의별 잡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여하간 방정맞다 싶을 정도로 왜 그렇게 깊은 슬픔에 빠졌는지
내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야하다고 아우성치는 그런 장면조차 애절하게 느껴졌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슬픔의 근원을 이책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그 대략적인 이유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색계>를 찍고나서 탕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고초를 겪었다던지
하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는 일체 배제하고 양조위(이선생)와 탕웨이(왕치아즈.막부인)의
색과 계에 대하여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에 기초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롤랑 바르트라는 철학자도, 풍크툼도 생소한데 저자가 설명하는 풍크툼의 특징은
'소통 불가능성'이라고 한다. 쉽게 소통될 수 있는 아픔은 스투디움(관습화된 상징)이라고
하고.. 바르트는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알듯 모를 듯 ????

"<색계>는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암살대상)을 사랑해버린 여자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녀의 참혹한 죽음 직전에 비로소 아주 잠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 보인 세계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
  이다"라고 저자는 설파한다. 

롤랑 바르트와 같은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 대한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는 이가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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