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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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의존성이나 확증편향은 사람의 습관이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이를

바꾸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걸 나타내는 단어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요새 세상은 이른바 '스트롱맨'들의 시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거짓과 막말이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고 득세하는 듯하다.

이런 세상에 죽비와 같은 책을 최근에 읽었다.

세상에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이번 달 선정 도서가

바로 웨이드 데이비스의 <사물의 표면 아래>- 너머를 보는 인류학-였다.

내가 서평의 제목으로 정한 "산들바람 부는 남부에서 미루나무에 걸린 이상한 열매"는 

미국의 인종 차별과 흑인에 대한 억압을 가장 강력하게 상징하는 문구라고 생각해 

제목으로 잡아 보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그동안 세상에서 벌어진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증거와 사실을 

기반으로 조근조근하게 알려준다.

첫번째 챕터인 "이것이 미국이다"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고결한 이상을 지향하고

선포하면서도 특정 인종에게만은 이를 허용하지 않은 미국 독립운동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여준다.과거에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남북전쟁 이후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있을지언정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이 많이 사그라들었을 거라고 어림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추정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지 이 책은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미국 연방 대법원조차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에서 "아프리카 인종인 니그로가 시민의 권리와 특전을 요구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설시했다. 판결문은 추악할지 언정 솔직했고,

그러한 기록이 남아 미국의 역사는 곧 인종 차별의 역사임을 드러낸다.

심지어 노예 해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링컨 대통령 조차 흑인 노예의 해방이 1순위 해결과제가 

아니고 연방을 수호하는 것이 1순위 과제였으며, 그러한 입장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 남부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사람도 없었고,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할 때에도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경의

일부 주도 빼 놓았다고 한다.

남북전쟁으로 노예해방이 선언되었음에도 짐크로법을 제정하여 흑백 인종 분리를 성문화하기도 했고, 이법은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에서 더욱 강화되어 남부의 흑인들에게 서슴없이 린치를 가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1921년 털사 인종학살이 발생했을 때 나흘에 한명 꼴로 흑인들이 불태워지거나 목이 매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분리정책은 1950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제지를 받을 때까지 상당히 긴 기간동안 유지되었다.그럼 그이후에는 인종 차별이 없어졌을까? 책에서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통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알려준다. 

첫번째 챕터에서 받은 충격과 분노,공포는 다른 사건을 통해서도 계속 이어진다.

유대인들에게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 코로나 위기를 맞닥뜨린 미국의

어이없는 민낯,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의 끔찍함 등등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이나 시대의 이야기도 많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 처럼 지금 현재 나를 포함한 인류 전체의 생존과 유지에 직결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주제도 사물의 표면 아래나 사물의 너머를 보도록 한 쪽의 주장에 편향되지 않고

사실과 증거에 의해 판단하라고 채근한다.

목소리 크고 권력을 쥐고 있으면 승자가 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가는 

세상에 냉정하게 사실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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