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하반기에는 어찌저찌 하다보니 강의를 한 학기동안 하게 되었다.
이제 그 한학기가 끝나가고 있지만, 끝없는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주말이면
동네 스터디카페에 틀어박혀 책과 논문과 아무리해도 늘지 않는 파워포인트와
씨름질을 하고 있다.
종종 용량이 초과된다 싶으면 페이스북이나 빙글을 뒤적뒤적하곤 했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한편의 페북글을 보게되었다.
아마도 <청년의사> 편집장이신 분이 올리신 글인거 같은데, 정훈이 작가가
백혈병으로 투병끝에 향년 50세로 돌아가셨다는 글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거 아닌가 싶어서 다시 두어번 읽어보았지만
듬직하고 장닌끼 많은 눈빛의 사진과 함께 그의 부고 소식이 실려있었다.
한번도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씨네박과 다양한 매체에서 등장하는 남기남으로부터
포복절도를 선물받은 추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현재도 질기게 서로의 연을 이어가는 회사의 탁상용 갤린더의 삽화를
정훈이 작가가 그렸던 적도 있었다. 그게 너무도 자랑스러워 주변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선물했고, 그때도 일면식이 없었고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확률이 대단히
높지만 웃고울고 수달떤던 알라딘 서재마을의 제법 많은 분들께 보내드렸었다.
먼지의 더께가 많이도 쌓였을 알라딘의 내 서재에 그의 출간된 거의 모든 작품을
갖고 있는 충성 독자로써 마지막으로 <청년의사 남기남의 슬기로운 병원생활1,2>를
구입했고, 남기남과 남우군,스테파네트 덕분에 방안을 뒹굴었다.
(눈물나고 슬퍼야할 현실이지만, 남기남과 스테파네트가 제주도 여행 끝자락에서
마주친 상황에서는 정말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백혈병으로 입원한 중에도 "병원에서 제일 밥 잘먹는 환자"로 자리매김하며,
다 나으면 <슬기로운 환자생활>을 써보겠다던 그의 꿈은 스러졌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많은 작품을 복습하며 저승의 영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즐거울 거 하나 없고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요즈음 삶에서
그의 상실은 나에게는 너무도 아쉬운 것이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다른 세상에서
그가 그려논 많은 남기남들을 볼 기대를 갖고 이승의 삶을 꾸려볼까 싶다.
정훈이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너무너무 찐팬인 50대 아저씨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승에서도 제일 밥 잘 드시는 만화가가 되시길....
<내가 갖고 있는 정훈이 작가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