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페이퍼에 쓰다가 버그가 발생했는지 다 날라가 버렸는데,

새로 쓰기도 귀찮았다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떠올리고는 기어이 다시 쓴다.

 

2018.12.월말 무렵이다.

예년에 비해 빨리 조직개편하고 인사이동도 났고,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술 마실 일이 더 늘어났다.

그날도 평소 분기에 한번 정도는 만나서 저녁을 먹는 과거 직장 선배, 현재 동료들

여러명과 와인에 고급진 안주를 배불리 먹고 10시 좀 넘어 일찌감치 귀가했다.

과음을 한 거도 아니고 해서 집에서 신문도 보고 스마트폰도 둘러보다가

12시정도에 자려고 누웠으나, 슬슬 배가 아파 오기 시작하는 거다.

과식을 해서 그런가? 이래저래 나 혼자만의 추정으로 물도 한잔 마시고,

배도 눌러 보고 했으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누웠다가 일어나 앉았다가를 반복하고, 침실 침대에 누웠다가 거실 소파에 누웠다가를

반복해도 잠은 오지 않고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러다가 구역질이 나더니 구토를 했고, 보통 음주 후 구토를 하고나면 힘들지만

나름 개운해 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지를 않았다.

그렇게 구토를 서너번 더 했는데 처음에는 쓴물만 좀 올라오더니 나중에니

전날 저녁에 먹은 게 다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날 호스트를 한 친구가 좋은 와인이라고 따라준게 몇 잔인데, 아까운 마음도 잠깐 들었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오전 6시 정도되니 짱구방에서 자던 짱구엄마가 계속되는

어수선함에 깨어서는 상태를 보더니 병원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원래는 하루 휴가쓰고 오전 9시 단골로 가는 가정의학과를 가려했으나, 나의 증상을

보더니 응급실로 직행..

 

응급실에 도착해서 진통제 맞고 나니 조금은 살거 같은데, 의사가 명치 부분을 누르니

끔찍하게 아팠다. CT를 찍어보자 해서 찍었고, 잠시 후에 "췌장염"이라는 병명을

얻어 듣게 되었다.

의사가 설명하는 바로는 과도한 음주, 고지혈증, 담석/결석 등이 췌장염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전날 음주를 그렇게 과도하게 하지는 않았는데, 고지혈증 약은

먹고 있으니 양자의 결합으로 인해 췌장염이 발병한 것으로 정리했다.

치료법은 다른게 없단다..

무조건 굶는 거.. 췌장을 쉬게 해줘야 해서..

그렇게 그날, 그 다음날 점심까지 수액 주사 맞고, 진통제/항생제 좀 처방받고는

내리 굶었다. 그리고 미음-죽- 밥으로 조금씩 나아갔고..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입원을 하고 나니, 여러모로 힘든 게 많았다.

하루에 두번은 사우나를 하는데, 잘 씻지를 못하니 온몸이 끕끕했고..

왼손에 링겔 주사를 꽂아놓고, 침대가 불편하니 누워도 앉아도 서있어도 계속 불편한

느낌이 들고..

책을 봐도 10분이상 못 읽겠고.. 스마트폰으로 보는 넷플릭스 영화도 한편을 마무리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좀비처럼 병원 복도를 왔다리 갔다리

하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디는 개중 가장 편한 방법이 넷플릭스 영화를 시청하는 거였다.

볼만한 영화를 검색하는 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영화를 발견했다.

슬래셔 무비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기도 하고, 혹시 췌장염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보았으나, 그런 기대와 희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영화임을

영화 시청 10분도 안되어 알았다.

여주인공이 앓은 병이 췌장암인지 췌장낭종인지 췌장염인지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녀의 사망원인이 본인의 기왕 질환이 아니어서 더더욱 췌장 관련 질환에 대한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흘간의 입원이 지긋지긋해져서

열이 38도를 넘나 들므로 퇴원이 안된다는 의사의 권고를 뿌리치고 짱구엄마의 만류도 마다한채

서약서까지 쓴후에 병원을 탈출했다.

더 많은 왕당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나, 그건 다음 기회에..

 

여튼 나흘간의 고통을 겪게 한 췌장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음주라고 하니 이 기회에 술을 끊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거의 두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는 기특하게도 그 결심을

준수하고 있다.

몇 번의 회식과 저녁 자리가 있었으나, 위의 사정을 얘기하면 다들 수긍하고

술을 주지 않아서 음주를 회피하는게 용이했다.

두달 간 술을 끊어보니 살도 좀 빠지는 듯하고..(그러나 체중계는 이게 기분 탓임을

정확한 수치로 반박하고 있다) 나름 좀더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췌장염을 통해 얻은 것은 금주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였다.

영화를 보았으니, 이제 애니메이션과 도서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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