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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평점 :
자신과 세계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번역가다
-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
2022년 클래식 음악계를 뜨겁게 했던 기사가 기억난다.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일이었다. 그는 결승에서 난해하기로 잘 알려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는 평을 받았던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엄청난 노력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놀람과 동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가 쓴 에세이 《하지 마라고는 안 했잖아요?》를 읽다가 두 가지 무관해 보이는 상황이 뚜렷하게 대비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를 보고 라흐마니노프의 곡에 대해 알게 되고 작곡자의 재능과 음악적 유산을 확인하지만, 피아니스트가 작곡한 곡이 아니라고 연주자를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주자가 갖고 있는 연주에 대한 견해와 접근법, 곡에 대한 이해의 깊이, 연주자 개인의 삶이 반영된 공연 자체를 칭송하고 열광한다. 하지만 번역가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다. 그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유려하게 번역한 번역물들에 대해 번역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아마 현장에 종사하는 많은 번역가들은 이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부커상 수상 ‘최종 리스트’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원작자인 소설가와 더불어 외국인에게 유려한 문장으로 소개한 번역가 안톤 허의 이야기는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 번역·출판계의 관행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어느 작가분이 글쓰기에 비해 번역 작업을 하찮게 여기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가로서 안톤 허가 부커상 수상 리스트에 원작자와 함께 오른 사례는, 여태껏 순수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던 ‘장르 문학’ 작품으로 이룬 성과였기에, 그 놀라움과 기쁨이 더욱 남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주목하는 작품을, 한국문학 번역가가 장르 문학을 가지고 기획하여 내놓았다는 것. 이는 원작의 작품성과 더불어 그의 번역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견해들뿐 아니라, 책에 쓰이지 않았지만 그동안 번역가로서 겪었을 지난한 시간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스스로 실력을 갈고 닦은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커다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내가 믿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점이지만, 어떤 일에 대해 재주와 기량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여기에 우선해야할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인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저자에 대해 존중하게 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술자가 되지 않으려면 누구든 이 부분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 일거라 믿는다.
책에 소개된 번역가로서의 경험담도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무엇보다 책에 수록된 세 편의 ‘강연록’이 좋았다. 이 글들은 해외 명문 대학에서 개최된 번역 관련 행사에 저자가 초청받아 진행한 강연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언어라는 것은 지식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는 도구이지만, 권력과 권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한국의 한 유명 정치인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 정치인은 고학력에 총명했으며, 수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었지만, 영어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작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며 게으름 피우는 별 볼 일 없는 번역가 아저씨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저토록 대단한 분을 가르치다뇨? 하지만 우리 둘 중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쪽이 제가 아니라 그분이라니... 이제 바로 미제국이 저에게 준 특권입니다. 시민권도 아니고, ‘squirrel'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능력.”(214)
제국의 언어가 대한민국과 같은 ‘종속국’에 대해 갖는 위상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싶다. 오히려 해외의 저명인사들과 학자들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감탄하고, 해외 K-팝 팬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배우려는 모습과 얼마나 대비가 되는가. 또, 오직 제국의 언어 ‘영어’를 어린 자녀에게 배우게 하려고, ‘필리핀 이모’를 ‘저렴하게’ 국내에 제도적으로 도입하자고 공공연하게 논의하는 공무원 및 정치인들의 ‘저렴한’ 의식수준도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는 언어, 번역이라는 관심사를 중심으로 국가번역기관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면면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강연을 듣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일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포한다. 이는 젊은 번역가의 단순한 치기가 아니다. 묵묵히 어려운 여건을 감내하며 지금껏 현장에서 일해온 번역가들의 생각을 함께 전해준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과 번역가의 활동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두 가지 경력에서 어쩌면 틀림없이 ‘죽음의 계곡’(38)이 있다는 점이다. 번역가로 치면, ‘죽음의 계곡’은 본격적인 경력을 지속하기 전에 겪게 되는 공백 기간을 말한다. 유명한 작가, 유명한 번역가가 아닌 이상, 생존을 위해 ‘N잡러’가 되기도 하는 기간이다. 이 ‘죽음의 계곡’에서 번역가는 세상 물정을 배우고,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험대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창작자로서 이 시기는 누구나 정말 ‘배고픈’ 시기일 것인데, 경제적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로서는 경험과 소재를 모으는 식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번역가로서 지속성을 얻어 경력으로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죽음의 계곡’을 어떻게 겪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시기를 ‘영혼의 어두운 밤’(49)이라고도 불렀다. 이 시기를 거쳐 살아남은 번역가에게는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진리를 발견하고,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죽음의 계곡’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실제로 많은 번역가 지망생들이 이 시기를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꺾여버린다.
번역은 혼자 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원작자나 여러 에이전트, 출판사, 독자 등과 상호작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배려가 부족하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번역 과정이 그 자체로 재난일 수 있겠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번역가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외국어·모국어 실력 외에 열린 마음가짐이다. 단순히 출판 업에서 번역가가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를 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톤 허가 옥스퍼드대학 강연에서 “번역가는 영원한 학생입니다. (...) 박식한 대가가 되는 순간, 당신은 죽습니다.”(172)라고 말했을 테다. 번역가야 말로 ‘궁극의 학습자, 궁극의 독자’(175)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넘치고, 통통 튀는 말과 행동에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또 때로는 ‘발칙한’ 표현으로 기성의 관행을 비판하는 사람. ‘번역가로서 구석에 처박혀 닥치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191)라고 강연에서 당당히 말하며, 오늘도 한국문학 도서를 뒤적이는 번역가의 모습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자부심에 더하여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심을 지닌 저자의 모습을 보며, 타존재(다른 사람과 비인간 모두를 포함하여)에 대해 주목하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저자와 같이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지닌 번역가들이 자부심을 갖고 종사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안톤 허(오른쪽) 작가의 북토크 사진. 왼쪽은 <저주토끼>의 저자 정보라 작가.
[책속으로]
[1] "문학번역은 두 언어의 피상적 이해를 뛰어넘어 출발어의 문학 전통과 도착어의 문학 전통을 잘 파악한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37)
[2] "한번은 국내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데 한 대학교수가 번역 지원금이라는 인센티브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번역 지원금 체제가 불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전문 문학번역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K팝이 잘나간다고 해서 한국문학도 잘나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블랙핑크에 열광하는 팬들이 갑작스레 황석영 소설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까?"(43)
[3] "죽음의 계곡은 번역가가 세상 물정을 배우는 곳이며 자신이 정말로 문학번역이라는 일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기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죽음의 게곡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경험과 소재를 모으기도 한다. 나는 이 시기에 온몸으로 언어를 익히고 언어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고 생각한다. 번역가들은 육체가 어디에 거주하든 항상 자신의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48)
[4] "번역가에게 언어란 항상 돌아갈 수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느 고장과도 같다. 죽음의 계곡에서 우리는 이 고장의 지리를 익히며 과연 내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고 싶은지,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즉 달리 은유하면 죽음의 계곡은 일종의 ‘영혼의 어두운 밤’이기도 하다. 이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언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발견한다. 그 진리는 자신이 문학번역이 아닌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49)
[5]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63)
[6] "실패란 없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 다시 말해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실패는 뭔가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 과정이다."(137)
[7] "미국의 작가이자 번역가 로렌스 시멜은 (...) (번역) 제안서를 제출하는 작업을 정보 수집과 네트워킹의 일부로 보라고 했다. 첫타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일종의 대화의 과정이라고도 했다."(137)
[8] "어떤 텍스트는 번역을 할 때는 그 텍스트를 풀어헤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때 생성되는 초고는 매우 무겁고, 장황하고, 난해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정확하지만 매우 읽기가 거북한, 대한민국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번역이죠. 모든 전문 문학번역가는 풀어헤친 번역을 다시 함축적 언어로 촘촘하게 짜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원서의 내용만이 아닌, 페이스까지 번역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169)
[9] "배움은 스스로의 무지를 ‘애도’하게 해줍니다. 가장 멀리 여행해야만 에덴이라는 곳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 번역가는 영원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항상 대가 master가 될 위험에 처해 있죠. (...) 박식한 대가가 되는 순간, 당신은 죽습니다. 차라리 민망함과 창피함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을 때의 난감함을 선택하세요. 그런 느낌들은 좋은 징조입니다."(172)
[10]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도 자신의 언어가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계인의 교신처럼 자신의 바깥에서 노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버니지아 울프의 《여성의 전문직》이라는 에세이도, 시애틀 서브루너리 출판사에서 출판될 예정으로 제가 지금 번역 중인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라는 시론집도 이 방법을 묘사합니다."(198)
[11] "한국에서 영어는 지식의 접근 이상인 의미를 가지며, 권력의 접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211)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작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며 게으름 피우는 별 볼 일 없는 번역가 아저씨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저토록 대단한 분을 가르치다뇨? 하지만 우리 둘 중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쪽이 제가 아니라 그분이라니... 이게 바로 미 제국이 저에게 준 특권입니다. 시민권도 아니고, ‘squirrel‘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능력."(214)
[12] "식민주의자들은 절대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배척은 주한 미국인들한테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지 언어를 배울 바엔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자신을 도와줄 한국인 영어 사용자를 찾으려 들죠. 번역은 결국 식민주의자들이 현지에서 지시를 내리기 위한 혹은 그들이 착취하는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셈입니다."(215)
[13] "한 언어 안에서의 특정한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100퍼센트 같은 뜻과 정서적 울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번역은 단어에서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미는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그 방향으로 손짓할 수밖에 없는 무엇입니다. 이런 절박한 손짓이 바로 번역입니다."(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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