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Seasons
블렉스볼렉스 지음, 명혜권 옮김 / 파라텍스트(paratext)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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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종이에 인쇄된 산뜻한 색감의 실크스크린 작업. 간결하고 때론 섬세한 표현이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어 있는 방식도 흥미롭네요. 번역 그림책의 한글 폰트는 마음에 안드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 차라리 원서를 사곤 합니다. 이 번역본의 한글폰트는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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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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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사람의 일,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

-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



 

나는 자기계발서를 가능한 한 멀리 하는 편이다. 다만 자기계발이라는 역할을 좀 더 너그럽게바라보았을 때, 모든 책읽기의 행위는 어느 정도 자기계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처음 보았을 때, 잠시 주저했던 것도 책 제목에서 감지되는 자기계발서의 아우라(?)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흥미를 끌었던 나름의 이유는 저자의 서문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성공한 과학자들이 재능이나 운에 공로를 돌리는 결과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현실적인 역경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통과했는지를 이야기해주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고 다시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의 원제인 불가능 속으로(Into the Impossible)’를 그대로 사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 표현은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말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의 제목이 우리 문화의 맥락 속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출판사의 고민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은 전도유망한 과학자이기도 한 브라이언 키팅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9명과 만나 나눈 대화가 모티브가 되었다. 과학적 발견과 성공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과학자들(무엇보다 저자가 존경하고 스승으로 삼을만한 선별된 인물들)의 삶 이면의 분투와 삶의 태도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학창 시절에 이 책을 읽어보았다면, 막연하지만 좀 더 용기를 얻고 새로운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마 저자가 여러 과학자들과 나눈 대화 중에서 독자가 가장 많이 만나게 될 조언은 호기심을 따르라는 말일 테다. 호기심은 누구나 마주하게 될 역경을 견디고 나아가 이를 돌파할 힘을 줄 수 있다. 이들의 조언에 따르면 이런 삶과 커리어의 역경과 마주하여 돌파하는 사람은 더 높은 성취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과학자들은 우리를 붙들어주고 이끌어주는 동앗줄로 호기심을 들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호기심을 따르라라는 조언은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실천적인 가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수도 있는 학계에서 이 가치는 여전히, 그리고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큰 주제를 40년 넘게 붙들고 노력을 경주해온 과학자는 어느 순간 회의에 빠져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가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본 궤도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재미와 호기심이라는 기준이 아닐까. , 이 호기심을 따르려는 마음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 상황이 충돌하거나 대립할 때, 이 둘을 어떻게 균형 잡아야 할지, 혹은 이 호기심을 추구할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의 문제가 결코 호락호락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실패와 회의, 그리고 성공 그 사이에 어딘가에서 과학자들은 숱하게 길을잃고 방황하며 분투해왔을 것이다. 게다가 모든 과학자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반 독자인 우리들에게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딜레마를 안겨준다.

 


이 책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이라는 가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다만 나는 과학자들의 마음가짐으로 저자가 주목한 또 다른 가치에 눈길이 갔다. 바로 협력하는 마음가짐이다. 일전에 한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쳤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수업 가운데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결과물을 산출하는 공동 프로젝트 과학 수업을 할 때가 있었다. 이 때만 되면 아이들도, 선생도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아이들은 협력하여 하나의 산출물을 내는 과정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혼자 원하는 것을 아쉬움 없이 받아온 아이들은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를 수용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며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매번 서툰 모습을 보였다. 이건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내심 어린 시절부터 경험을 하도록 했으면 하는 조바심에,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과 교사 모두 공동 프로젝트 수업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실한 나의 교수법을 탓하고, 나의 교수법을 향상시키는 연구를 더 하겠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만 했던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이야 한 반에 50명이 넘었으니 교사가 학생들을 일일이 다 챙겨줄 수도 없었던 시절이기에 그렇다 치자. 공부 잘하는 학생만 대접받던 시절이었으니, 나머지 아이들에게 무언가 함께하는 경험을 기대하기는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 반의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은 데다, 수행평가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지금, 무언가를 함께 하며,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꽤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을 떠올리니 노벨상 수상자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술은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정서 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006년에 우주배경복사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던 존 메더의 지혜를 살펴보자.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을 보면 이기려 애쓰기보다 함께 연구하려고 힘쓰는 게 좋아요.”(219)

 


이 태도를 달리 말하면, 협력과 연대의 마음가짐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누구든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테지만, 이들이야말로 우린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존 메더의 말에 크게 수긍하게 된다. 내가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누누이 말했던 가치가 바로 이 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1979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셸던 글래쇼 역시 협력이 물리학 연구의 핵심이란 사실을 깨달았죠.”(95)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과학자들에게 이 협력의 가치는 각자가 기여하여 더 큰 일,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을 가능으로 바꾸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도 생각해본다.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일까? 역시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제고하는 수업 목표에 더하여, 함께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지가 관건이 아닐까. 당연히 교사들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다만 교육 현장에서 이런 본질적인 문제가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실천적인 고민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실력 있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보면, 대한민국 사회가 노벨상이라는 권위에 미쳐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대단한 상이기에 저자가 이야기하듯 가면증후군증세를 보인 수상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호기심하면 노벨상 수상자들 못지않다. 하지만 재미와 호기심이란 기준 만으로 연구비를 타고 이를 수십 년 넘게 지켜보고 격려해줄 사회적 장치와 안목은 아직 부족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좁은 시선일까 싶다. 특히 권위 있는 학자들에 도전적으로 질문하기도 하고, 큰 질문에 답하려고 과감히 뛰어들어 인내심 있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 먼저 이루어져야할 일이라고 본다.


 

저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남긴 이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은, 과학도 결국은 인간의 일이라는 점이다. 다만 다른 인간의 활동 분야와 다르게 과학은 동료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지식인 사회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더 있을 뿐이다. 성공한 과학자들의 성공 비결은, 가장 기본이 되는 재능(호기심과 노력)이외에 우리의 능력 너머의 운과 더불어 사회적 기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이 동료, 타인에 대한 공감력, 정서적 지능과 이들의 말을 경청하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한 과학자의 성취가 공동체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물리학자에게 재능과 운은 커리어의 주 궤도에 오르게 해주는 요소들이지만, ‘사회적 기술은 물리학자를 완성하게 해주는 요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조언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들이 전하는 지혜이지만, 과학 분야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의 성숙도를 높이는 데에도 경청할만한 지혜들이기 때문이다.






[덧]

(117) 물리학자 '칼 위먼(Carl Wieman)' => '칼 와이먼'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안다. 


독일의 물리학자 '볼프강 케테를레(Wolfgang Ketterle)' =>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표기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으나, 과거에 읽은 글에서 '볼프강 케털리'라고 했던 것 같다. 확인을 요한다.


(149) '에스허르 M. C. Escher' =>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면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그래픽 예술가 에셔의 이름을 이렇게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국내에서는 '에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나?







[1]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다."(39)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

[2] "모든 실험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학습이다."(61)
"우린 어차피 실패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절박한 질문은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다룰 것인가, 혹은 실패 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63)

[3] "과학계에서도 어떤 연구가 실험실 너머의 성과로 이어지려면 일반상대성 이론 방정식을 계산하고 초고감도 검출기를 만드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을 설득하고 이끄는 법을 알아야 한다."(66)

[4] "가능성의 한계를 발견할 방법은 그 한계를 좀 더 지나서 불가능 속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다."(76)
-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말

[5]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않는 것. 나를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셸던의 태도를 따라 할 수 있다면 어떤 길을 걷든 좀처럼 헤매지 않을 것 같다."(91)

[6] "협력이 물리학 연구의 핵심이란 사실을 깨달았죠."
"재미는 과학에서 대단히 중요해요. 난 늘 재미와 즐거움을 좇았습니다."(95)
- 물리학자 셸던 글래쇼의 말

[7] "난 오랫동안 ‘(노벨상)이후의 삶’을 생각했어요. 노벨상을 받은 많은 이를 존경하며, 그들이 상을 받은 뒤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봤어요. 남보다 더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게는 수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서 논문을 계속 쓴 리처드 파인먼, 양전닝, 리정다오 같은 이가 성공 사례로 보였죠."(186)
-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의 말

[8] "과학은 전문가가 무지하다고 믿는 것이다."(213)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

[9]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을 보면 이기려 애쓰기보다 함께 연구하려고 힘쓰는 게 좋아요."(219)
- 물리학자 존 메더의 말
"그(존 메더)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위축되거나 이기려 들지 않고 그들과 협력하고 도움을 받길 선택한다."(219)

[10] "내가 보기에 우린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경쟁자이긴 해도요. 당신이 어떤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잇고, 나도 같은 걸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각자 다른 답을 얻는다면 아주 주요한 과제가 생긴 거죠. 우리 일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증거를 구하는 겁니다."(225)
- 물리학자 존 메더의 말

[11] "호기심은 어떤 주제든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입장권이나 다름없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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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최혜진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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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 존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능력

-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3)

 




오늘 열어본 책은 회사에서 구입해준 에디토리얼 씽킹이다.


 

저자는 20년차 편집자라고 한다. 특히 개성과 색이 천지 차이인 여러 저자들의 글뿐만 아니라 각종 그림 혹은 사진 등의 이미지를 제한된 지면에, 최대한의 전달력으로 꾸며내야 하는 잡지 편집자라는 사실이, 그가 얼마나 편집자로서 혹독한(?) 훈련을 거쳤을지 짐작하게 해준다. 특히나 잡지 편집자는 일반 단행본처럼 호흡이 보다 긴 것도 아니기에 더 빠르고 명료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자리일 테다.


 

비록 저자는 출판계의 편집자를 거쳤다고 하지만, ‘편집하는 일은 사실 인간이라면 매 순간 수행하는 모든 행위에 걸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떤 종류든 취사선택이라는 과정이 들어간다면 말이다. 심지어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하는 문제에서도 개개인의 특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 어떤 분야든 기획 혹은 창작이라는 행위에 발을 조금이라도 담그고 있는 이들이라면 생각해봐야하는 지점들을 또박또박 짚어준다. 일전에 에디톨로지라는 주제로 나온 도서들도 있을 텐데, 읽어보진 않아서 비교는 힘들다. 다만 이 책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저자의 오랜 경험과 명료한 주제의식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일러주는 야무진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은 직업인뿐만 아니라 책을 만들든, 혹은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심지어 예술 분야에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공무원에게도 참고할만한 책이 아닐까. 기계적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안목을 갖추라고 말해준다. 특히 창작’, 독창성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재배치를 통해 차이를 만들어 내는 능력”(115)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면 이 책을 더 읽어볼 일이다.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좋은 문학 작품이 그러하듯, 좋은 에디터, 창작자, 기획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좋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투표하고 돌아와서 무심코 펼친 에디토리얼 씽킹의 한 페이지에서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이 있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좋은 문장들이 많이 보이지만 말이다. 이 문장을 오늘 하루의 화두로 삼아본다.


 

나는 핵심을 알아보고 구조를 조직하는 능력이 결국 타인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143)


 

문장과의 첫 만남은 퍽이나 이질적이다. 요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다시 곱씹어보니 이 말은 곧 공감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것이 좋은 기획자의 출발점이라고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문학적 상상력혹은 메타 인지와도 연결될 것이다. 나아가 내가 기획하는 일의 방향과 포지셔닝을 정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기획하는 일 혹은 제품, 혹은 창작물의 이용자, 수혜자들의 눈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비춰질까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아니 정말 중요한 과정이라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나 혼자를 위한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예비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 덧붙이자면, 내가 주목하는 정치인의 기본 자질도 바로 이 문장에 답이 있었다!

 



 

#에디토리얼씽킹 #최혜진작가 #터틀넥프레스 #EditorialThinking #Turtleneck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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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아코디언 클럽 위픽
김목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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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복에 이르는 비결 한 가지

-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

 

김목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가 마음에 들어, 어느 독립서점에서 새로 구입한 책이다. 저자 김목인을 이야기할 때 따라 나오는 표현들은 대략 싱어송라이터, 작가, 번역가 등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활동과 관심사를 음악으로, 책으로 꾸준히 작업해온 저자를 이 몇 가지 단어로 한정하기에는 참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을 지닌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80페이지가 되지 않는 이 짧은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이렇다. 이제는 빠르게 사라져가는 아코디언들, 한때 이 악기를 사용했던 인물, 그리고 이 악기와 새롭게 만나는 인연이 얽히는 과정, 작은 역사에 저자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나의 주목을 끌었던 지점은, 이 이야기에 삶이라는 여정에서 각자가 지복에 이르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발길이 향하는 곳을 조심스레, 때론 과감하게 따르는 일.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이 아니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내게 삶의 지복에 이르는 비결 한 가지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기도 한다. 이는 실패 확률이 너무나 큰 도박이기도 하다. 이 목표에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할 텐데, 삶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인생은 실패했다는 말일까? 나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설은 내게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매일 한 발 한 발 내딛기를 시도 하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면 어떤가. 누구든, 언제든 그럴 수 있다.


 

한편, 나의 직업은 나의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는 결론도 얻는다. 현재 나의 직업이야말로 나의 행복에 이르는 길에 함께하며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고마운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작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나 나의 직업에 괴로워하더라도, 이를테면 직장에서 불가피한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단지 타인의 규칙에 따라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의 지옥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나의 지옥이 되는 상황일 수 있다. 사회의 규범,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인간의 조건이건만, 우리의 삶이 이런 조건들에 묶여 주저하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느낀다.


 

아코디언에 얽힌 짧은 이야기를 읽다 옆길로 새었다. 하지만 방황하는 인간을 이야기하느라 60년 간 파우스트를 고쳐 썼던 괴테도 있지 않았던가. 기왕 길을 잃은 김에 조금 더 나아가보자. 역사상 모든 위인들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들은 모두 죽었다가 아닐까.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죽은 위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의 어느 아코디언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 당신 자신의 삶을 잘 가꾸라는 메시지로도 다가온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방황하는 일을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라는 점이다. 도전받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지향하는 바를 잃지 않고 지켜내는 일은 내 삶의 의무이자 의미가 될 것이다. 특정한 삶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삶이란 애초에 이런 게 아닐까?


 

이야기 속에서 어느 아코디언이 이베이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가 닿는 과정을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내가 오래된 클래식 카메라를 손에 얻게 된 지난 날의 추억이 떠올라서다. 누군가의 가족을 평생 찍어주었던 카메라는 이제 고장난 채 창고에서 잠을 자다 내 손에 들어왔다. 카메라는 다시 수리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나와 가족을 찍어주는, 100년이 되어가는 카메라는 훗날 또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 새 생명을 얻고 이야기며 추억을 만들어낼 것이다.라 생각해본다.


 

머나먼 곳으로부터 아코디언을 손에 넣기까지, 아코디언 덕후들은 조바심과 함께 기대감과 일말의 행복을 느낀다. 이 아코디언을 카메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일 테다. 누군가는 물성을 탐하며 행복에 이를 수도, 또 누군가는 이 도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감히 타인의 행복감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 기쁨과 행복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니까. 여기에는 타인의 시선이 틈입할 겨를이 없다. 나는 이 아코디언을 손에 넣는 또 다른 덕후들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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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06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야, 저는 저 큰 글씨가 제목인 줄 알았더니 작은 글씨가 제목이었네요. 뭐 이런 비대칭이...
그래도 쓰신 리뷰가 좋아서 읽어보고 싶긴한데 80쪽에 저런 고급 장정이면 가성비가 좀 그렇찮나 싶기도 하네요. 그냥 디자인만 좋아도 샀을지도 모를텐데 고민하게 만드네요.ㅠ

초란공 2024-04-06 10:4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고점이 고민되긴 했어요. 근데 요책은 특별히, 언젠가 사인받으려고 산 책이지요 ....ㅋㅋㅋ 특별한 목적이 있는 책입니다요! ㅋㅋ 언젠간 만나면 사인받으려고요...주제가 마음에 들기도하고, 들고다니기 좋은 친구를 모셨습니다! ㅋㅋ

stella.K 2024-04-06 11:28   좋아요 1 | URL
헉, 어디서 사인회하는가 봅니다. 사인 받으시면 인증컷 부탁드립니다. ㅎㅎ 근데 초란공님은 김목인을 너무 좋아 하시는가 봅니다. 전 첨 듣는 이름인데 언제고 함 들어봐야겠습니다.

초란공 2024-04-06 18:47   좋아요 0 | URL
앗 어제? 오늘 어디선가 식목일 콘서트 하나 했는데 제가 놓쳤네요^;;

stella.K 2024-04-06 19:57   좋아요 0 | URL
헉, 차마 좋아요는 누를 수 없고 날아간 기회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ㅎㅎㅎ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24)




퇴근 후, 저의 네 번째 <모비 딕> 번역 판본이 ‘전면 개역판’이라는 글자가 찍힌 띠지를 두른 채 도착해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소장하고 있는 각 출판사 판본을 모두 꺼내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칭 ’모비덕‘(모비 딕 덕후)라서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네요. 


















오랜만에 팝업북 <모비 딕>을 들쳐보았구요, 
<그래픽노블 모비 딕>과 <그래픽 모비 딕> 3권을 더 찾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작가정신 출판사의 아셰트 클래식 버전을 펼치고 비교해보았습니다. 아직 텍스트를 비교해보진 못했고 주석을 중심으로 비교해봤습니다. 
흔히 주석도 다시 검토하고 새로 추가 했다는 광고만 요란한 경우가 많아서 이번엔 제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엉터리로 작업하고 요란하기만 했다면 불매운동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작가정신의 ‘전면개역판’은 주석을 꼼꼼하게 ’제대로‘ 검토하고 ‘연구’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각 출판사의 모든 <모비 딕> 번역본을 다 읽어보았는데요(열린책들 빼고), 이번 작가정신의 주석정리 작업은 ‘출간 13주년 기념, 새롭게 만나는 전면 개역판’이라는 문구에 걸맞게 정성이 들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역자와 편집자의 수고가 드러나는 판본이라는 말입니다.

또 이번 개역판의 마음에 드는 점 두 가지!!!

한 가지는 주석이 책의 뒤로 모여 정리되어 있던 기존 형식을 해당 페이지에 각주로 다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이건 출판사의 편집자의 편집 철학이나 취향의 영향을 받기도 할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아주 큰 변화입니다. 


700-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주석을 보려고 매번 두꺼운 종이를 엎치락 뒤치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까요!! 물론 주석이 각주로 처리되어 있으면 거슬린다는 독자도 있지요. 압니다. 그런데 이번 변화는 딱 제 취향이란 말입니다!!! 책의 특성과 읽는 독자의 상황을 한 번 더 고려해준 편집자의 배려가 느껴지는 변화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편집자분들 수고많으셨을듯!! 

저는 당연이 주석이 뒤로 가있는 후주가 아니라, 각주로 처리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래왔는데, 소원 한 가지가 이루어졌네요.

다만 양장본이면 좋으련만.... ㅋㅋㅋ
(네.. 저.. 사실 양장본 페티시가 있는 듯합니다. 

기... 책이 두꺼우니 보다보면 책등이 접히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지 않나요?)


또 하나!!
기존 판본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새로 추가된 주석에서 상당히 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정말 텍스트를 처음부터 마음잡고 다시 꼼꼼이/샅샅이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궁금해하기 힘든 지점들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추가된 주석들은 여러 번 읽어보고서야 보이는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이런 부분들에 주목하고 고민을 많이 하여 독자에게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46면에서 멜빌이 ‘테네시주의 어느 가난한 시인’을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요, 이 시인이 도대체 누굴까 오랫동안 궁금했더랬습니다. 사실 소설 읽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일테니, 몰라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역자분이 각주로 답을 주셨네요. ‘나도 이 시인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모르겠어요’라고요! ㅋㅋ 

이건 마치 역자분하고 원격으로 책을 함께 읽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전면개역판’ 작업은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말만 번지르르한지 검증해보려는 마음으로 훑어보았는데요, 첫 인상은 대만족입니다.

본문에는 제가 갖고 있는 다른 3종류의 번역판본처럼 그림이 있지는 않지만, ‘모비덕’에게는 각주만 보아도 아주 만족스러운 판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다른 판본에 비해 주석이 독보적이라는 느낌입니다! 단, <모비 딕>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상세한 각주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각주 압박 주의!)

하지만 이번 개역판에서 각주 작업이 꼼꼼하게 이루어진 점 만큼은 대만족입니다.


추가로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피쿼드호의 항해지도와 포경선/포경보트 구조/등장인물 소개가 제공되어 있다는 점도 반가운 변화입니다.


아, 그리고 이번 <모비 딕> 개역판 구매로, 작가정신 아셰트 클래식 판본의 표지 글림이 들어간 책갈피가 함께 와서 완전체가 되었네요!
























#모비딕 #작가정신 #허먼멜빌 #모비딕전면개역판 #김석희번역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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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7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초란공 님 진정한 고래사냥꾼~! 이렇게 모아두니까 참 예쁩니다! . 설마…. 판본마다 저 두꺼운 걸 다 읽으셨니요?!

초란공 2024-03-27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개는 사놓고 읽을리가 없을텐데요... ㅋㅋ <모비 딕>만 예외입니다^^ 요새는 긋즈 사냥에 더 열심이긴 하지요~ 그래도 잠자냥님처럼 어려운 벽돌 인문서들을 거뜬헤 읽어내진 아직 못하지요^^

그레이스 2024-03-27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족사진!
멋져요~♡

stella.K 2024-03-27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가족사진이라고 해서 진짜 초란공님 가족인 줄 알있더니...
가족은 가족이네요. ㅋ
모비딕 마니아시군요! 저도 이번에 세로나온 책이 어떤가 궁금했는데
그런 장점이 있군요.

초란공 2024-03-27 20:39   좋아요 1 | URL
^^네 식구가 늘어나면 기념으로 가족사진 하나씩 남겨야할 것 같아서 다 불러냈습니다^^

크런키 2024-03-28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비 딕>은 아니지만, <사악한 책, 모비 딕>은 아름다운 해설서 정도 될 텐데 그 책도 참 좋아요. 아실 텐데 오지랖^^

그레이스 2024-03-28 17:24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책 있죠!ㅋㅋ
언젠가는 필요할듯해서...^^
앞부분 읽어봤는데 좋더라구요

초란공 2024-03-28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저도 <사악한 책, 모비딕> 좋았습니다~! <모비 딕> 가족이 또 있었네요^^

나무그늘 2024-03-31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주 말고 작품의 문장에도 손을 상당히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전 이전판을 가지고 있어서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번역가가 확실히 손을 되어서 가독성도 좋아졌고, 번역이 명료하고 깔끔해졌더라고요.

초란공 2024-03-31 15:45   좋아요 0 | URL
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궁금하긴 했는데 꼼꼼하게 검토가 되었나보네요. <모비 딕> 본문은 아직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 판본이 나온지 시간이 되어서 그동안 검토가 많이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고칠 것이 좀 있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많이 수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대조하며 확인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각주의 변화가 먼저 눈에 띄어 확인해보았고요~ 읽으면서 차차 확인해볼 기회가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