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물질 - 물질이 만든 문명, 문명이 발견한 물질
스티븐 L. 사스 지음, 배상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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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물질

: 물질이 만든 문명, 문명이 발견한 물질

스티븐 사스(Stephen L. Sass) 지음 | 배상규 옮김 | [위즈덤하우스]

 



역사 및 문학과 함께 아들에게 들려주는 물질의 문화사


 

이 책은 재료공학을 공부한 저자가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대상인 각종 재료에 관해 아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책이다. 아쉽게도 이 한 권이 그의 첫 책이자 유일한 결과물로 남게 되었지만, 독자는 이 책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세심한 공부의 결과물임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 구할 수 있었던 최초의 자연물인 돌과 흙에서 시작하여, 여러 금속 및 복합 소재의 발견과 활용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 왔는지 꼼꼼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재료의 구조와 같은 과학적 설명을 자세히 일러주는 부분에서는 다소 건조할 수도 있지만, 곧이어 재료와 관련한 역사와 종교, 호메로스와 같은 고전 문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는 동안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인 실리콘의 시대에 이른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의 성격이 인간과 환경, 특히 물질적 환경과 상호작용한 문명사, 인간이 물질과 관계를 맺으며 공진화해온 문명의 역사로 읽힌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같은 책들에는 금속 무기와 제기 등에 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청동기와 철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데, 저자는 금속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잊지 않고 들려주어 다소 지루할 것 같은 부분에서 줄곧 흥미로운 지점을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했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만 해도, 언제나 창과 칼, 화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투가 끝나면 전사들은 언제나 적국의 전리품 수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사망한 장수들의 금속갑옷과 투구를 잊지 않는데, 이러한 전통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당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에 비해 상당히 조잡했던 제련기술과 부족했던 채굴기술로 금속자원이 매우 귀했던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시대와 문명에 따른 인류의 행동양식을 보다 더 현실감 있게 바라보고 깊은 이해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재료의 종류에 따라 나누어 책을 구성했다. 따라서 각 소재의 특성에 따라 이것이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조망한다. 인간 사회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정복의 역사는 금속의 출현(특히 구리와 청동)으로 가능해졌다는 설명도 가능하겠다. 나아가 금과 은을 발견한 사건은 철의 제련 및 무기 제조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제국주의시대를 견인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해볼 수 있겠다. 역사 분야에서 흔히 어떤 현상의 궁극적 원인근접 요인을 제시할 때, 인류 역사에서 분명히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활용은 강력한 근접 요인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재료들이 지구인들에게 더 빈번하고 강도가 높은 충돌혹은 작용과 반작용의 역사를 일구어 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듯싶다. 중국에서 먼저 발달했던 화약 기술, 종이, 인쇄술을 보면 중세 이전까지는 서양보다는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지역이 더 앞서 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문명을 규정하다시피 하는 콘크리트나 폴리머 등의 인공합성소재, 기존의 원소들로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극한 조건에서 유용한 복합재료 등은 사실 재료에 대한 성질을 잘 모르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반면 유리나 다이아몬드는 재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유리는 비결정 상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놓아두면 탈유리화가 진행되어 내부에 결정이 생긴다’(130)는 설명은 상상하기도 힘든 특성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모든 유리창은 결국 뿌옇게 변하고 산산조각이 나게 되어 있다’(130)는 언급은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부식이나 풍화작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이러한 운명을 맞게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물론 상온에서 결정이 생기는 데 수천 년이 걸린다고 하니, 지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유리와 달리 분명한 결정 구조를 갖지만 다이아몬드에 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이 물질은 숯이나 우리가 학창시절에 쓰던 연필심(흑연),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모두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임을 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식이지만,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 각각 다른 결정 상태를 갖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다이아몬드)이 되거나, 연료가 되어 에너지를 방출하기도하고(), 혹은 그림 또는 글씨는 쓸 수 있는 연필 재료(흑연)가 된다는 사실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만 놀랍고 흥미로웠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100여 년 전 어느 철학자도 자신의 책에 이렇게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단단한가?” 언젠가 숯이 다이아몬드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가?”

왜 그렇게 연약한가나의 형제들이여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대들은 나의 형제가 아니던가?

 

 

이 대목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사상을 집약한 철학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 홍성광 옮김)에서 써놓은 부분으로, 숯과 다이아몬드와 나누는 상상의 대화일 뿐이다. 내가 이 대목을 떠올렸던 이유는 니체 역시 당시에 이미 숯과 다이아몬드가 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다는 지식과 다이아몬드의 경도에 관한 지식을 잘 알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물질과 문명의 저자 스티븐 사스는 여기에 같은 성분의 물질이 이렇게 다르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숯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흑연과 달리, 유리처럼 뚜렷한 결정구조가 없는 상태의 물질이다. 반면 흑연은 뚜렷한 결정구조를 갖지만, ‘육각결정구조’(290)가 평면처럼 형태를 이루어 쌓여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입방결정구조를 통해 3차원 망구조(290)를 이룬다고 한다. 이 미묘한 차이가 강도 및 탄성계수 특성을 비롯하여 물질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하다. 또 다이아몬드에 대해 몰랐던 사실 중 흥미로운 점은 금속이 열전도성과 전기전도성이 모두 좋은 반면, 다이아몬드는 열전도성이 매우 높지만 전기전도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열전도성과 전기전도성은 그 경향을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내게는 이 점도 눈여겨보게 되는 지점이었다.

 

저자가 15장에서 실리콘의 시대를 언급할 때, 이 흑연이 갖는 구조의 탄소체가 최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등에 큰 관심을 모으는 소재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을 함께 언급해주었으면 더 흥미로웠을 듯하다. 다만 마지막 장이 재료의 높은 활용도와 현대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반도체 산업의 초기 역사에 집중된 느낌이라 다소 아쉬운 점이다. 이처럼 저자는 재료 고유의 특성 및 제약과 관련하여 재료가 인간 사회와 상호작용 해온 장면을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에 대한 새로운사실을 역사와 문학을 곁들여 재료 변천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강의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강의 중에 그는 재료에 대한 건조한 지식을 전달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교과서를 덮는다. 그리고 당시에 설명하던 재료가 우리의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아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졸린 눈을 하던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학생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점차 생생한지식이 되었다. 재료에 관한 사실들이 학생 각자의 관심사 그리고 나아가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는 물질에 관한 지식을 학생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 책은 저자가 무미건조해 보이는 물질의 문명사를 담은 그릇이지만, 현재 우리가 있기까지 인류의 조상이 세상과 상호작용 속에 형성해온 수많은 연결고리들의 역사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본인이 평생 만들어온 이 지식의 연결고리를 두 아들에게도 들려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부가 훨씬 흥미롭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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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21-06-13 0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이게 재료과학의 매력이죠...뭔가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기술 같고ㅋㅋ

초딩 2021-06-14 01:25   좋아요 2 | URL
숲과 나무, 건축 이야기의 책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의류도 그랬고요. 심지어 단어도.
어찌보면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위대한 사상과 역사 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술과 음악도 물론이고요 :-)

scott 2021-07-07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이책 7월의 땡튜 ^0^

초란공 2021-07-07 21: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뽑아주시니 감사한 일인데 지르고 싶은 책은 끝이 없네요^^

초딩 2021-07-07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와전 축하드립니다!

우리 ‘초‘씨 집안의 자랑입니다!

초란공 2021-07-09 15:16   좋아요 0 | URL
와우~ 그렇군요 ‘초‘가 일원이었어요.
며칠간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생각났습니다. ^^;;

당분간은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아주 힘들듯해서.... 우울 모드입니다. ㅜㅜ

이하라 2021-07-08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07-09 15:13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