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보물 보림한국미술관 5
김경미 외 지음 / 보림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왕실이라고 말하면 뭔가 매우 신비스럽고, 우아하고, 범접하지 못할 포스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본 후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문에 써 있듯이 우리는 수많은 왕실 중에 조선에 대해서만은 다소간 폄하해온 것이 사실이고, 조선의 왕실을 다 아는 것처럼 느낀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것이 일제에 의한 이데올로기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으로, 적어도 나는, 조선 왕실에 대해 다소간 신비하고 귀한 느낌을 되살리게 되었다. 여기 실린 보물들을 찬찬히 훑어 보면서 그처럼 공들여 만들고 쓰고 보관한 행위가 왕실 일족의 잘난 척이 아니라 왕실로 대변되는 나라의 존귀함에 대한 경건한 태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왕실의 존엄이야말로 그 백성의 자긍심의 뿌리였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보물 하나 하나가 내게는 다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일월오봉도'는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라 한다. 이 그림이 선비들의 그림과 달리 매우 강렬한 초록과 빨강과 파랑과 금색 등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주목했다. 마치 포스터처럼 강렬하고 다소 도식적이기까지 한데, 그게 모두 임금의 권위와 왈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수원 화성 행차도'는 참으로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기록화이면서도 예술적으로 보이고, 도식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리고 배를 잇대어놓고 그 위로 임금의 행렬을 지나가게 한 배다리 부분은 발상이나 기술, 규모 등 어느 모로나 놀라웠다.  

조선의 스물일곱 분 임금님 중 초상화인 어진이 남아 있는 분이 여섯 분이고 실제 당대에 그려진 어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좀 충격이었다. 그러나 뒷면에서 채색하여 앞으로 색이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에 대한 설명은 와~ 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어보는 임금의 도장이다. 책에는 태조 임금과 고종 황제의 어보가 실려 있는데, 재료와 모양은 물론 조그만 장식 하나에도 일일이 깊은 의미가 실려 왕의 결정이 얼마 만큼의 무게를 지니는지 표현하고 있다.  

용상이나 가마도 마찬가지다. 임금에게만 쓰는 상서로운 빛깔인 붉은 색, 임금을 상징하는 용의 그림, 그 용의 발가락 수 등등 어느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또 접이식 의자인 용교의는 그럼에도 실용성을 버리지 않은 조상의 지혜를 엿보게 했다. 

임금의 평상복인 곤룡포는 세종 26년에 중국에서 처음 들여온 이후 조선의 국왕들은 황제보다 한 단계 낮은 홍룡포를 입었단다. 영친왕의 홍룡포 사진이 실려 있는데, 스러져가는 나라의 왕이었던 영친왕의 옷은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비녀와 떨잠, 노리개, 보자기 등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벼루와 필통 책가도를 통해서는 군왕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해야 했던 선조들의 반듯한 생활을 구경하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과연 여기 실린 유물들은 그야말로 보물이라 이름붙일 만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면 한낱 오래된 물건일 수 있으나 이렇게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참 귀하고 고맙다. 다음에 박물관이나 고궁을 갈 때는 이 책을 들고 한 번 나서 보리라 싶다. 아마 감동이 두 배가 될 것 같다.  

늘 느끼는 건 보림의 한국미술관 시리즈는 책날개를 벗겨 내고 양장표지의 디자인을 보아도 헉, 숨을 몰아쉴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용상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실린 표지 그림을 보며 어느새 용의 발가락을 세어 본다. 오조룡이다. 그럼 그렇지. 중국보다 덜할 게 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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