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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참 재미있는 제목과 표지삽화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먼저 이는 책이었다. 궁금증에 서둘러 읽어보게 된 이야기는 처음 가졌던 호기심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일게 했다. 또한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만 했다. 이유인 즉, 무수한 우연과 필연이 스치고 지나가는 인타라망의 이야기가 사실일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의구심의 시작은 이 작품에 수록된 9편의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부터였다. 이 단편은 헤라트 카펫, 일명 페르시아 양탄자라 불리는 한때 한국의 가정집 마룻바닥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이란 친선 외교의 상징으로 서울 시청 시장 집무실에 깔려있던 붉고 아름다웠던 카펫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식이라는 25세 청년의 의뢰로 취재를 하게 된 이들은 이란의 메샤드라는 도시에 있는 한 카펫 가게 주인인 아부 알리 하산을 찾게 되었고, 테헤란로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했던 헤라트 카펫의 흥망성쇠에 대해 듣게 된다. 서울 시청에 깔려 있던 헤라트 카펫은 어떻게 된걸까? 1979년 12월 13일, 카펫은 당시 시청 세탁실 담당자였던 김선호옹에 의해 철거되었고, 시청 지하의 음습한 창고에 둘둘 말린 채 세워지게 된 카펫은 역사의 시간에 따라 김선호옹에게 다시 오게 되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이 사건 취재를 의뢰한 김영식이었던 게다. 문제는 읽다보면 이것이 실화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김희선의 첫 소설집에 실린 아홉 편의 허구들은 의문, 자료, 상상, 익살, 베짱 등을 자유롭게 믹스하여 서글서글하게 밎은 항아리같다. 각 편이 개성은 항아리에서 울려 나오는 재미난 소리에 달려 있을 것이다. 각 요소들을 설득력 있게 조합하는 것이 멋진 항아리를 빚는 재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중략) 이들은 숨겨졌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의 실상을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의문을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도 않고 진실을 눈앞에 펼쳐놓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예 잊힌 줄도, 은폐된 줄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새삼 환기한다. 의문을 들추고 추문을 들이댄다. 우회적으로 무지를 빈정대고 무관심을 추궁한다. (본문 332,333p)
'미확인된 문법의 SF가 나타났다'는 작품소개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확인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작가의 기이함이거나 혹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 [교육의 탄생] 역시 굉장히 기이하면서도 신선하면서도 궁금증을 마구마구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1961년 4월 12일, 인간이 인류 역사상 처음 지구 바깥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를 내려다보게 된 날에 온통 시선을 집중할 때, 한국은 겨우 만 일곱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최두식이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세상에서 아이큐가 가장 높은 아이로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두식의 어깨에는 국위 선양과 민족의 자존심 같은 게 걸려있었고 이 방송으로 아이큐 215라는 판정을 받으며 정말 천재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 후 12년간 기네스북에 가장 아이큐가 높은 사람으로 등재되었던 그가 미항공우주국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한국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을 떠나 나사에서 지낸 6년간의 기록을 담은 『조국의 하늘 아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최두식의 이야기가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된 이유와 연결지어놓았다는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너무도 필연적인 것처럼 빚어놓은 이야기로 인해 이 내용들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허구임을, 이 책이 소설임을 계속 곱씹어야할 만큼.
표제작 [라면의 황제] 외에도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지상 최대의 쇼][어느 멋진 날][경이로운 도시][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역시 굉장히 신선한 소재였고,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앞서 소개된 두 편의 단편들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에 이 단편들에 대해 크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이 흔히 즐겨먹는 라면이 유해한 식품으로 규정되어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던가, 역복제에 성공해 돌아가신 엄마를 탄생시켰다는 소재들은 정말 참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인지 여부를 궁금해하게 되는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만큼 나를 잡아끌지는 못했다. 그 중 [개들의 사생활]은 앞에 소개된 두 편의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김범식은 약국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그는 광우병이나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을 일으키는 원인인 프리온이라는 기이한 단백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프리온에 대한 지식이 스탠리 프루시너가 프리온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탄 이후로 어떤 진전도 없는 이유가 소나 양 주쥐에 있던 개를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개로 실험을 한다. 그가 알아낸 개들의 비밀, 숨겨진 사생활은 바로 '개들은 자신들의 대뇌 전두엽에서 나오는 텔레파시 신호를 통해 인간을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에서 개들로부터 인류를 구한 외로운 선지자가 될 것이기에 완전 미친놈이라 불려도 상처받지 않았으며 개들의 비밀을 모두 밝혀낼 때까지 오해 속에 살 수 밖에 없고, 원래 이런 길을 고독하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독특하면서도 기이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나 양 곁에 있던 개들이 무사한 이유에 대해 저절로 궁금해지고 마는.
김희선의 소설들은 미스터리한 사태에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기보다, 먼저 다양한 관심과 상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탐사한 끝에 마침내 어떤 의문에 도착하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확실하진 않지만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은가'하고 되묻는 이야기다. 이제 보면 알겠지만, 세상에 미스터리는 무진하고 작가의 관심에는 경계가 없으면 그의 상상은 전공 불문이다. (본문 318p)
<<라면의 황제>>에 수록된 각각의 9편은 알고보면 미스터리한 일들이 허다한 세상만사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어느 하나 분명한 사실이나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사실일까? 라는 의구심, 어떻게 이렇게 독창적일 수 있을까? 라는 감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때 줄줄 읊어야만 했던 국민교육헌장, 한때 유행했지만 잊혀졌던 페르시아 양탄자, 결과적으로는 늘 천재의 몰락을 보여주었던 천재들, 인간의 최초 달 착륙 등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다시 환기시키고 있었다. 진실을 눈앞에 갖다 놓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들(본문 330p)을 채워진 <<라면의 황제>>은 한때 위세를 떨쳤으나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의 역사, 모두가 휩쓸리는 일이지만 아무도 그 원인에 주목하지 않은 일들의 비화, 세간의 주의를 끌어야 마땅하지만 시나브로 소리소문 없이 잊히고 마는 사연들, 정확한 진상을 알고 싶어도 끝내 소문으로만 남은 의문 사건(본문 329p)등으로 치밀한 구성과 기이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신선한 소재의 향연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기이하지만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의 필력에 그녀의 이름 석자를 기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