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최근 자주 접하게 된다. <등 뒤의 기억><기억 깨물기><우는 어른>에 이어 이번에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제목의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다.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좀처럼 책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목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면 책 제목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기존의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굉장히 섬세하고 잔잔하며 담담하다. 이 작품 역시 기존 작품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조금은 독특한 구성인데다, 흔히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보곤 했던 막장 드라마의 스토리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 모습을 가진 이 가족을 만난 독자들이라면 그들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속사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 가족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은 총 23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의 화자가 다 틀리다. 더군다나 시간적 배열도 순차적인 아니기 때문에 누가 화자인지는 일단 매 장의 도입부를 읽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구성 탓에 초반에는 뒤죽박죽 혼란스러워 책 읽기가 쉽지 않았다. 허나 읽다보면 퍼즐 조각 하나하나가 맞춰지면서 하나의 멋진 완성품과 마주하게 된다. 이 거대한 완성품을 마주하고 나면 정말 괜찮은 책이구나, 라는 탄성을 내뱉게 된다. 이 3세대, 100년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는 독특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야나기시마 일가에는 무역 회사를 경영하는 할아버지 다케지로, 러시아인인 할머니 기누, 아빠 도요히코, 엄마 기쿠노, 유리 이모, 기리노스케 외삼촌 그리고 아빠가 다른 언니 노조미, 가족 관계의 중심이 되는 차녀 리쿠코, 오빠인 고이치, 그리고 엄마가 다른 우즈키가 함께 살아간다. 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대신 가정 교사를 통해 집에서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우즈키의 마마(친엄마인 아사미)로 인해 2주동안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그동안 다른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던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대게는 '낳아준 엄마'와 '현재 같이 사는 엄마'가 같다는 것과 다른 집 아이들은 거의가 외삼촌이나 이모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허구헌 날 TV를 보며 자란다는 것 따위들 말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고이치가 자신의 가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본인 입으로 '이상한 집'이라 했고, 아버지가 다른 누나에 어머니가 다른 남동생에, 아무튼 복잡한 가정인 듯 싶다. 외삼촌과 이모도 한집에 같이 살고 있다. 나도 딱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양관? 서양건축? 여하튼 대저택인 데다 난로가 있는 응접실로 가정부가 차를 내왔을 때에는 무슨 서스펜스 극장인가 싶었다. (본문 307p)

 

1982년 가을, 리쿠코가 화자가 되어 보여준 이들 가족의 모습, 관계 등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엄마가 다르고, 아빠가 다른 형제,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 헌데 책을 읽다보면 더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도 많다. 리쿠코의 친아빠인 기시베의 딸 치하루와 친구로 지내는 리쿠코, 아이들이 사는 집을 방문하는 기시베와 아사미. 어떻게 이런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일까? 엄마인 기쿠노는 권위적인 집안의 분위기에 반항하여 가출을 감행하였고 기시베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유리는 선 본 남자와 결혼한 후 6개월 만에 이혼을 하고 돌아오고, 집안끼리 결혼을 약속했던 기쿠노와 결혼을 하게 된 도요히코는 다케지로의 비서인 아사미와 아들을 낳게 된다. 그렇다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 네 명의 아이들의 삶은 불행하기만 했을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은 성장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서 조금은 삐끄덕거리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적응하고 성장한다. 여느 평범한 가족과는 너무도 다른 생활 환경이지만 이들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으로 자신들의 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을 추구해가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 이해 관계가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뜻 보면 행복해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기막힌 비밀이 숨겨져 있어 불행해져야 마땅한 가족이거늘, 그들은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리가 결혼했던 가족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가족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해 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만 불행이 닥치고 우리에게만 어려운 고비가 찾아온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가족이든 나름대로의 비밀이 숨겨져 있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속사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결국은 불행의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행복해보이는 가정에도, 평범해보이는 가정에도 나름대로의 사정과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이들 가족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얽혀있는 사연들은 정말 독특하지만 이들 가족이 만들어가는 사랑이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미지출처: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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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먹밥을 맨으로 만드는것보단 약간의 깨소금을 섞는게 목넘김이 훨씬 쉽듯..그런 얘기아닌지..

동화세상 2015-09-17 11:14   좋아요 1 | URL
적절한 표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