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7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박하고 겉멋이 없다고 해야 할까? 노란색의 따뜻한 표지만큼이나 잔잔하고 질박한 감상이 마음에 든다 서양 명화들을 감각적으로, 시대사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 유려하게 설명한 책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숨어 있는 듯한 이런 서술 형식도 새롭게 다가온다

정치범으로 20여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감옥에 갇힌 두 형들에 얽힌 슬픈 가족사가 간간히 여행기 안에 녹아 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감옥에 갇혀서 책으로만 명화를 접하는 형을 대신해 직접 눈으로 보고 감상문을 쓰는 저자의 안타까운, 그렇지만 지나친 감상주의로 흐르지 않고 일견 산뜻한 면도 있는, 읽기 편한 문체다 서양 명화의 소개라기 보다는 그림을 통한 사색이 주를 이룬다 최영미나 한젬마의 그림 읽기 보다는 훨씬 수준있다

문득 저자처럼 두어 달 씩 미술관 순례를 해도 괜찮은 직업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망이 생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구를 줄인다 할지라도 몇 달씩의 휴가를 낼 처지가 못 돼는 나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은 남의 기행기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안타깝지만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4-12-3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두요. 전 요즘 회사 때려치고 빠리에서 어케 먹고 살 방법 없나 궁리중이에요.

-_-a 이 책 딸기님이 추천해주셔서 샀는데, 찾아봐야겠어요.

marine 2005-01-0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불어는 절대 못 하니까 아쉬운 대로 런던 같은데 살면 좋겠어요 책은 200페이지 밖에 안 되서 읽기 편할 거예요 덜 유명한 그림도 가끔 나와서 새로워요 하이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상과 전혀 다른 소설이었다
영화를 먼저 본 탓일까?
난 이 소설이 "슈퍼스타 감사용" 의 원작인 줄 알았고, 영화를 먼저 본 나는 당연히 이 소설의 주인공도 감사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감사용은 무지하게 못 던지 패전 전문 투수로 딱 한 번 등장한다
이름 특이한 선수로 그저 한 번 언급될 뿐이다
오히려 영화에서 이혁재가 열연한 포수 금광옥이 주인공 친구에게 편지도 보내면서 두 세번 등장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영화와 소설을 한 가지로 생각했을까?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프로야구 원년 꼴찌 팀 때문이었을까?

요즘은 이런 식의 가벼운 글쓰기가 유행인가 보다
은희경의 "마이너리그" 나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을 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은희경식 성장 소설 같기도 하다
무겁지 않아 빠르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아주 재밌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농구선수 이원우를 생각했다
혹시 이원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그는 내 중학교 시절 우상이었는데, 내가 그를 좋아할 때는 이미 은퇴를 앞둔 노장 선수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90년대 초반은 "농구대잔치" 라는 실업 농구가 한창 인기있을 무렵이었는데 기아의 독무대였다
사람들이 허재에 미치고 이충희에게 열광할 그 때, 나는 유독 현대의 노장 선수 이원우를 응원했다
당시 현대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단 한 차례도 못 이기고 기아에게 굴복했다
이충희도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를 앞둘 무렵이었고 기아는 일명 "허동택" 트리오와 한기범 등을 앞세워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했다
잘 나가는 팀보다 좀 떨어지는 팀을 응원하고 더구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농구 경기를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맨날 우승하는 OB 대신 꼴지를 도맡는 삼미를 응원해서 기가 죽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 는 꼴지만 전전하다가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면서 성장한다
1류 팀에 소속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에 전념한 결과 야구에 빠져든 전적에도 불구하고 일류대에 무사히 진학한다
(죽어라 입시 경쟁에 시달려야 할 중고 시절, 야구나 음악 등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면 여지없이 입시 경쟁에서 탈락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나" 만큼 삼미를 아끼던 조상훈과 주인공이 나란히 일류대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잘난 놈들의 잘난 이야기인가, 이런 생각을 했다
잘나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삼미 대신 OB 같은 우승팀 좋아해야 전체적인 분위기가 맞는 거 아닐까?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잘 나가는 놈들이 맨날 꼴지만 차지하는 인생의 패배자들 심정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하는 거 보면 나도 좀 뒤틀린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소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잘난 놈들 이야기는 주위에 하도 널려 있어 사람들이 읽으려고 안 할 것이다
일류대 나와서 예쁜 여자와 연애도 하고 과외 알바로 아버지 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대기업에 취직한 "나" 는 쭉 그렇게 평탄한 인생을 살 것 같지만, 곧 IMF로 정리해고 된다
신문이나 TV에서 정리해고 어쩌고 할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소설에서 한 개인이 겪는 불행으로 등장하자,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심각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그 외의 모든 정신적 문제들은, 신념이나 정의, 가치 등등을 다 포함해 다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해 버린다
일단 내 입으로 밥이 들어가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매달 나와야 삶의 의미나 보람 같은 것도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같이 일류대에 진학했던 조상훈은 아버지가 비명횡사 한 후 급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일본에 건너가 홈리스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다
그 사이 "나"는 IMF 한파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이혼한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달릴 것 같던 이들은 어느새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프로 세계에 사라남지 못한, 아마추어 실력에 불과한 야구팀을 좋아하는 두 사람의 인생 역경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제와 정신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 끔찍한 무한경쟁 체제를 비판하면서 부와 성공 대신 삶의 여유를 즐기며 사는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것 같은데,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보다 더 잘 살겠다는 이기심과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원리가 아닌가?
개인들이 치열하게 투쟁하고 사회는 냉정하게 이들을 평가하는 덕분에 결국 우리 모두는 조금씩 더 편한 삶을 누려오고 있다
복지 국가란 경쟁에서 탈락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웬만한 삶은 누릴 수 있게끔 도와 주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능력 위주의 평가가 불가피 하다면,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사회가 도와 주는 시스템이 잘 작동할 때 비로소 안정되고 바람직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무조건 경영 악화를 피하기 위해 직원들을 쫓아내는 현재의 기업 분위기는 문제가 많다
거리로 쫓아낸 사람들을 받아 줄 완충 지대가 전무한 가운데, 즉 모든 것은 개인의 능력에 맡겨 버리는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에서,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이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직원을 마음대로 자를 수 있어야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일부 경제 평론가들의 말은, 그야말로 유럽 같은 복지 국가에서나 해당되는 얘기다

성공과 부를 획득하는 것, 즉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낙오되지 않고 이기는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겠지만, 세상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고 무엇이 낫다고 규정지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일류대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면서 워커 홀릭처럼 일하는 것도 좋고, 우유 배달 하면서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지만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미쳐 사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삶의 형태가 다양성이라는 원칙 아래 누구도 비난이나 간섭도 받지 않고 잘 유지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주인공 "나" 는 IMF 때 정리해고 된 후 삼미 슈퍼스타즈를 좋아하던 지극히 평범하고 어찌보면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과 모여 팬클럽 창단식을 갖는다
그들의 야구 모토는 치기 어려운 공 치지 않고, 받기 어려운 공 안 받는다는 식이다
하도 프로 의식 어쩌고 하면서 자신의 전 삶을 바쳐 최고가 되라고 압박을 가하니까 역설적으로 편할대로 사는 아마추어리즘을 추종하는 것이다
(사실 대충 하는 것과 아마추어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란 돈을 받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즉 경제적인 부를 추구하지 않을 뿐이지 뭔가에 미쳐서 하는 건 프로나 아마추어나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마지막에 이혼한 아내와 다시 합치는 과정은 좀 작위스럽다
워커 홀릭이던 "나"는 가정을 거의 돌보지 못했고 결국 아내는 외로움에 지쳐 이혼하고 만다
그런데 "나" 가 대기업에서 쫓겨난 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활동을 통해 성공과 부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게 되자 다시 그 아내와 재결합 한 것이다
이건 좀 교훈적이고 억지스런 결말이다
어차피 아내라는 캐릭터 자체가 별 의미없이 그려지긴 하지만 말이다

재치있는 글솜씨가 돋보이는 괜찮은 책이다
심사위원의 지적대로 다소 경박해 보이기도 하고 깊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가벼운 글쓰기가 바로 주제라고 하면 문제될 것도 없다
문득 이원우라는 잊혀진 농구 선수를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은퇴 후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드라마틱한 죽음도 생각할 꺼리를 많이 남긴다
꼴찌를 전전하던 야구팀도 몇 십 년 후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되살아 나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나처럼 어린 시절을 이원우와 함께 보낸 팬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 2004-12-3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마지막 코멘트가 될 것 같군요. 만나뵙게 되서 영광이었구요. 내년 한해도 독서계획 뜻대로 되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송년보내시구. 복 많이 받으셔요.

marine 2004-12-3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울마당님. 감사합니다 저도 만나뵙게 되서 정말 기쁘답니다 내년에는 취직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올해처럼 맘 편하게 책을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 2005년도에는 늘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랍니다^^

마태우스 2005-01-0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원우 알아요. 성깔 있게 생겼고, 3점슛도 잘했죠. 이충희랑 쌍포가 터지는 날에는 어느 팀도 쉽게 이기지 못했어요. 근데 그 허재 때문에...흑흑.

marine 2005-01-0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태우스님도 농구 좋아하셨군요^^ 맞아요 성질이 좀 있어서 스포츠 신문에 코트의 악동, 코트의 여우 이런 수식어가 붙었어요 그 놈의 허재 때문에 워낙 고전을 면치 못해서 이원우 은퇴할 때까지 허재를 무지하게 싫어했답니다 ^^ 그런데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허재가 이원우를 존경한다는 말을 했어요 자기도 이원우처럼 나이 많이 들어도 코트에서 뛰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그 기사 본 후 허재에 대한 미움을 버렸답니다 ^^ 그런데 뇌종양으로 죽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너무 충격이었죠...아들도 농구한다는데 훌륭한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 [dts]
유위강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아무래도 이번 주는 "무간도"의 감동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듯 하다

홍콩 영화의 진수를 보는 느낌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어쩜 그렇게 뽀대나게 연기를 잘 하는지...

유덕화와 양조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진관희와 여문락은 우리나라로 치면 원빈 정도 위치의 스타라고 하는데, 역시나 유덕화와는 또다른 신선한 매력을 준다

1편 볼 때 유덕화, 하나도 안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진관희를 보니까 역시 그도 중년에 접어들었음을 느낄 정도로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느낌의 두 젊은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역시 2편의 주인공은 황추생과 증지위라 할 수 있겠다

1편에서는 나쁜 놈으로 나온 증지위는 2편에서 조직의 보스를 배신하지 않는 의리있는 놈으로 나온다

또 황추생과도 친구 사이로 나온다

둘이 왜 등을 돌리고 서로를 죽이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내가 이해를 못한건가?)

큰 형님의 아내를 사랑하는 유건명, 불쌍하기도 하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조직의 최고 보스인 니쿤을 겁도 없이 암살하고 경찰 학교에 위장 잠입하면서 그의 불행이 시작된다

결국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 그녀를 유건명은 니쿤의 아들인 샤오에게 알리고, 그녀는 샤오 일파에 의해 건명이 보는 앞에서 죽는다

그런 걸 보면 3편에서 유건명이 한침을 죽이고, 경찰 내 위장 잠입한 모든 스파이들을 처단하며, 결국 사건의 전모를 밝힌 여명마저 죽이는 게 이해가 간다

유건명이 정말로 착한 심성을 가진 남자라면 비록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진 않았지만 끝까지 매리를 보호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매리는 남편 한침을 위해 조직의 보스인 니쿤을 유건명을 시켜 암살한다

그런데 의리 밖에 모르는 남편은 보스 자리를 니쿤의 아들인 샤오에게 양보하고 그 밑에서 충성을 다짐한다

샤오는 결국 한침을 버리고, 그녀가 범인임을 안 후 매리를 암살한다

이런 걸 보면 의리라는 게 별 소용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힘 있을 때, 기회 있을 때 권력을 잡는 게 최고가 아닐까?

매리의 인생을 생각하면 더 불쌍하다

남편을 위해 보스를 죽일만큼 대단한 베짱을 지닌 그녀가, 남편을 위해 경찰인 황추생과 비밀리에 연합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유건명의 사랑도 뿌리치고 남편이 있는 태국으로 떠날 때 허망하게 샤오의 총에 맞아 죽고 마는데, 정작 그 남편 한침은 태국에서 가정부와 눈이 맞아 아기까지 낳는다

영화에서는 한침이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걸로 나오지만, 앞뒤 맥락으로 볼 때 한침은 이국 땅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었던 셈이다

아내가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가는데 어떻게 감히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아기까지 낳다니...

이런 놈을 사랑한다고 자기 인생을 바친 매리가 불쌍하다

차라리 유건명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제 2의 인생을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랑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그녀의 성격상 남편의 부하인 유건명과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샤오 역을 맡은 오진우

쉽게 말하면 조폭인데도 인텔리 같은 냄새가 풍기고 점잖고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또 가족을 끔찍하게 위한다

결국 가족을 안전하게 도피시킨다고 하와이로 보내지만 한침의 부하들에 의해 가족이 인질로 잡히자 그 가족 때문에 한침을 쏘지도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진영인은 샤오의 이복 형제다

조직의 보스를 아버지로 둔 탓에 진영인은 명예로운 경찰의 길을 포기하고 비밀 수사관이 되어 조직 속에서 험난한 길을 걸어 간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완전한 알리바이를 위해 감옥도 두 번이나 들어 가고 (아버지 장례식 때 교도소에 수감되어 가 보지도 못하고) 경찰에게 쫒기는 처지에 그나마 수시로 황국장을 만나 정보를 빼 내어 줘야 하는 불쌍한 남자, 진영인

1편에서 보면 진영인이 길가다 옛 여자와 그녀의 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2편에서 젊은 시절 그 여자가 진영인의 아기를 네 번째 유산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 십 번 보석으로 그를 꺼내 주고 네 번씩이나 아기를 유산하는 과정에서 범죄 조직에서 나오지 못하는 남자를 결국 여자는 떠난다

그 장면을 보니 진영인의 삶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스파이 노릇 때문에 경찰이라는 보장된 삶을 버리고 폭력 조직 속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그는 결국 사랑하는 여자도 떠나 보낸다

진영인이 죽지 않고 살아서 자신의 정신 치료를 하던 이박사(진혜림)와 맺어졌으면 조금이라도 보상이 될텐데...

샤오를 잡기 직전, 이복 형제인 그의 범죄 기록을 황국장에게 넘겨 준 진영인은 이제 이 생활을 청산하고 경찰로 복귀하고 싶다고 말한다

누가 감옥에 가고 싶겠냐며 바다가 보이는 넓은 사무실을 달라고 한다

불쌍한 진영인, 그는 언젠가는 경찰로 복귀해 경찰 조직의 보스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배다른 형이긴 하나 가족이나 다름없는 그를 죽이는 것은 심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 되어 조직 보스의 사생아라는 과거를 털어 버리겠다는 일념 하에 가족을 배신하는 진영인은 결국 경찰에게 이용만 당한 채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만다

2편을 보면서 황국장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다

폭력 조직을 소탕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이 이해가 가긴 한데, (아마 동료의 죽음에 한이 맺힌 것 같다) 샤오가 죽으면서 이제 그만 진영인을 경찰로 복귀시켜도 됐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계속 진영인을 스파이로 이용하는 그의 잔인한 태도가 자신도 폭력 조직에게 살해당하고 진영인 역시 허망한 죽음을 맞게 했다

사실은 경찰인데도 (말하자면 떳떳한 신분인데도) 폭력 조직에서 험한 인생을 사는 진영인, 거기다 툭하면 경찰의 감시를 받고 (3편에서 보안부 대장인 여명에게 경찰서에서 비참하게 맞는다) 감옥살이를 하고 조직에서도 끊임없이 의심을 받는다

그의 불안증은 유건명 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1편에서 보여 주는 진영인의 슬픈 미소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자조였는지도 모르겠다

"무간도"의 전편을 통해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죽음을 맞는다

이토록 많은 인물들이, 더구나 핵심 인물들이 전부 죽음을 당하는 영화는 일찌기 없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끝없는 지옥을 뜻하는 영화 제목에 어울리게 모든 인물들은 자기 나름의 불행한 과거를 안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결국 끔찍한 죽음으로써 삶을 마감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불행한 두 스파이, 유건명과 진영인도 죽고 두 젊은이를 각각의 사지로 보내 상대편을 전복시키려고 했던 한침과 황국장도 죽고, 잔인하게 반대파를 숙청하던 조직의 보스 샤오도 죽고,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던 양반장마저 다 죽는다

어쩜 이렇게도 완벽한 비극이 있을 수 있는지...

혼돈의 시대라는 부제가 잘 어울리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간도 Ⅲ 종극무간 [dts]
유위강 외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어제 무간도 3를 봤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다 스토리 라인도 다소 엉성한 것 같고...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경찰에 잠입한 조직원인 유덕화는 자신의 비밀을 묻어 버리기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스파이들을 하나 둘 씩 죽인다 그는 보안부의 여명이 자기 같은 스파이라 확신하고 그의 뒤를 캔 후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며 그를 공개적으로 체포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여명은 경찰 내 스파이를 색출해 내는 비밀 수사관이었다 한마디로 유덕화가 여명이 처 놓은 덫에 걸린 셈이다 유덕화가 여명을 체포하려는 순간, 이미 그의 정체를 알고 있던 여명이 씩 웃으면서 던지는 말. "미안하지만 난 경찰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덕화, 이성을 잃고 여명에게 권총을 발사한다 곧 다른 수사관에 의해 유덕화도 총을 맞고, 자살하기 위해 턱에 총을 쏘지만 미수에 그친다 여명의 마지막 그 말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애를 쓰던 유덕화, 자신의 과거를 다 지우고 경찰로써 거듭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그는 족쇄 같은 과거를 절대 지워버릴 수 없다 어쩌면 세상 일이 다 그런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착한 사람이 되보려지만, 어두운 과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하나 둘 씩 죽이지만 오히려 그 살인으로 인해 자신은 계속해서 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뿐이다 결국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는 법,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불쌍한 유덕화는 범죄 조직원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경찰(여명)을 죽인 후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휠체어에 앉아 벙어리가 된 채 평생을 보내야 하는 유덕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낼까? 한 때 사랑했던 조직 큰 형님의 여자가 자신의 아기를 낳고 아빠라는 말을 한다고 이야기 할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생 불구인 채 휠체어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말도 할 수 없는 유덕화, 병원에서 나오면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형당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자살이 성공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 게 그의 고통과 좌절을 조금 더 줄여 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 자신을 경찰 학교로 보낸 조직의 큰 형님을 죽인 후 유덕화는 모든 게 다 덮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밀 수사관이던 양조위가 그만 그의 정체를 알고 만다 양조위는 조직원이지만 언제라도 경찰로 복귀할 수 있는, 말하자면 태생이 착한 놈이다 그러나 현재 경찰인 유덕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는, 태생이 나쁜 놈이다 그가 양조위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을 때, 양조위가 그 부탁을 받아 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보통 홍콩 영화에서는 범인과 경찰 사이에 우정이 형성되어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데, 무간도는 전형적인 홍콩 영화 공식을 거부한다 양조위는 범죄자인 유덕화를 믿지 않는다 개과천선 하고자 하는 유덕화의 의지를 신뢰하지 않는다 결국 그 때문에 양조위마저 다른 경찰 내 스파이 손에 죽게 되는 걸 보면, 역시 진심은 믿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불쌍한 양조위...

1편만 보면 유덕화의 완벽한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속편이 나오면서 결국 유덕화는 명예마저 잃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양조위는 신분이 회복되어 경찰 묘지에 안장되지만 유덕화는 경찰 내 스파이라는 게 발각되어 아마도 사형을 당하지 않을까 싶다) 여명도 불쌍하다 모든 게 밝혀지고 경찰 내 마지막 스파이(유덕화)를 체포하려는 직전, 어이없이 허망한 죽음을 맞고 마는 여명... 유덕화가 그를 쏘지 않았더라면 그의 죄가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여명마저 쏜 유덕화를 더 이상 누구도 착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착한 사람은 고사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는 것 마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삶이란 이렇게 허망하고 덧없는 것일까?

유덕화의 극중 이름이 유건명으로 나오는데 무척 마음에 든다 양조위는 슬픈 눈빛이 처연하고, 여명은 날카로운 눈빛이 샤프해 보이고, 유덕화는 씩 웃는 모습이 멋지다 홍콩 최고의 배우들답게 연기도 잘 하고 스타일도 뽀대난다 특히 유덕화는 일명 몸짱인데 근면, 성실, 노력이 그를 여전히 최고의 스타로 받들어지는 비결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머리보다는 1편에서의 긴 머리가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특히 양복이 아주 잘 어울린다 뭐, 몸짱인데 뭐가 안 어울리겠냐만서도... 여명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이다 인터뷰에서 늘 다정다감한 역만 맡다가 차가운 역을 맡아 힘들지 않았냐고 하자, 배우는 모든 역을 다 소화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는데, 정말 따뜻한 이미지보다 샤프하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더 멋지다

죽음이란 모든 걸 허망하게 만든다 주인공을 끝까지 살려 두는 이유는, 주인공이 죽고 나면 영화의 모든 지지부진한 이야기들이 다 쓸데없는 게 되버리기 때문이다 무간도가 비극이 아닌, 좋은 결말을 냈더라면 훨씬 보기 편했을 것 같다 세 주인공이 모두 허망하게 죽어 버린 결말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비극적이라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dts]
멜 깁슨 감독, 제임스 카비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무서운 광기, 특히 집단의 신들린 광기...

 도대체 멜 깁슨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게 흥행이 되리라 생각했을까?

 너무 잔인해 볼 수가 없다

 영화는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미쳤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언젠가 스팽킹이라는 포르노를 접한 적이 있다

 그 때도 견딜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가냘픈 여자를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 둘이서 채찍으로 때리는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필름이 과연 성적인 흥분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파괴적인 본성, 잔인함을 생생하게 화면으로 보는 일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 신앙심이 오히려 돈독해진다길래, 신이 아닌 인간 예수의 고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호기심에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잔인해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비단 이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문의 끔찍함을 수많은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알고 있다

 내가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건 채찍질을 하면서 미친듯이 웃어 대는 로마 병사들과 관중들이었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게 형틀에 묶어 놓은 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채찍질을 하면서,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그 광기가 무서워 공포감마저 들었다

 정말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역사적인 고증 여부를 떠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병사들은 도저히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때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 일명 새디스트인데 이것도 정신병의 일종이다

그런데 웃긴 건 때리는 장면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스팽킹 필름들이 인터넷의 바다를 점령하고 있겠는가

우리 내부에 숨어 있는 파괴적이고 잔인한 본성이 무섭다

특히 집단 안에서 뿜어 나오는 광기가 너무나 두렵다

영화에서 유태인들이 예수라는 가냘픈 인간을 두고 끔찍한 형벌을 가하는데, 유태인만 그런 게 아니다

유태인들이 이 영화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잔인한 광기는 널려 있다

힘없는 자를 가운데 두고 집단이 가하는 잔인한 폭력

무리 중에 섞여서 한 일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일종의 소속감마저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잔인한 속성이라니...

왕따라는 것도 결국 집단의 폭력 아닌가

신앙심은 고사하고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끔찍한 광기를 보는 것 같아 공포스러웠다

정말 비추천 영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leinsusun 2004-12-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제가 04년에 본 "최악의 영화"예요.

4월,그 좋은 봄날,이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왔는데 그 날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극장에 교회에서 단체관람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든데, 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희생의 숭고함"을 느꼈을까요? 올해 최악의 영화!


marine 2004-12-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도 다 그렇게 느꼈군요 전 집에서 DVD로 혼자 봤는데 온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7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