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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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걸까?? 

나는 이 책의 제목처럼 사람들 마음에 형성된 증오의 뿌리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기대했었다. 하긴 그렇게 쉬운 해결책이 있었다면 그 오랜 역사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그대로 방치된채 있진 않았겠지... 

저자의 말처럼 일단은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내재된 분노와 증오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버는 세상의 모든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들의 관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모든 분노와 증오의 실체라고 한다. 나와 너의 관계가 나와 그것의 관계로 바뀌면서, 모든 것들이 대상화 되어 버리고 생산이라는 찬란한 위명 앞에서 자연도 인간도 한낯 대체 가능한 물건처럼 취급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그런 문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분노와 증오가 태어난다.  

흑인에 대한 린치, 유색인종에 대한 린치,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 지향적인 삶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과거의 린치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저자는 통렬히 고발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KKK나 몇몇 극우 단체 내지는 경찰의 과격한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그런 행동등을 용인하는 태도에 있고, 그 바탕은 나와 그것들로 둘러싼 세상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잘못 때문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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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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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가 [환상의 책]을 읽은 후 두번째로 읽는 폴 오스터의 책이다..  

일단 제목은 멋지다.. 글의 전반적인 내용과 달의 궁전이 뭐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서도, 책 속에 등장하는 세 남자의 인생 이야기가 달의 주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잘 지어진 것도 같다.  

책에 등장하는 화자는 사생아로 태어나 소년기에 어머니를 여의지만, 자신을 극진히 아껴주는 삼촌과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삼촌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자면 실패한(?) 오케스트라 단원일지도 모르지만, 주인공 포그에게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혈육이자, 보호자였다. 그랬기에 삼촌의 뜻밖의 죽음은 주인공에게는 삶 전체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더이상 삶에 미련과 의미를 두지 못한다. 그저 하루 하루 소멸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자기 삶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쪼개 쓰면서 가재도구들을 내다 팔면서 또 삼촌이 남겨준 책들을 헐 값으로 팔아 그걸 식료품으로 바꾸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 소유의 흔적들을 지우면서 자기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그에게는 다른 기회, 예를 들자면 자기의 형편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거나,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건설적인 대안들은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와 세상을 연결하던 끈은 끊어졌다. 그저 아름답게, '서서히 몰락하고 소멸하리라' 이 생각에 빠져 있는 포그는 그의 바람처럼 서서히 몰락했다. 굶주리게 되고 살 던 곳에서 쫓겨나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는 신세가 되어 버렸어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자신이 원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시켰다. (노숙 생활에 대한 묘사는 [파리와 런던의 영락 생활]이라는 책을 연상시켰다. 그 책은 조지 오웰의 실제 파리와 런던에서의 노숙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폴 오스터도 공원에서 노숙을 해 보았을까??  노숙에 대한 묘사 부분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기적처럼 내밀어진 손길, 키티 우!!  

그녀는 단 한번의 그와의 인상적인 만남 이후에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를 찾아 다녔고, 절망의 수렁에 빠져있던 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리고 포그는 키티 우의 격려 속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서기 위해 직업을 갖게 된다. 그 직업이 에핑이라는 돈 많은 장님 노인의 말벗 겸 서기가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숙식 제공이기에 특별히 갈 곳이 없던 주인공에게는 딱 맞는 일자리였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에핑이라는 노인이 까다롭다는 점 정도.. 눈이 보이지 않는 에핑은 끊임없이 사물을 세세히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말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을 말로 표현하는 일,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말이란 형식 속에 붙잡아 표현하되, 너무 늘어지거나 겉돌지 않게 적절한 타이밍안에 다 끝마지는 일, 그게 포그에게 노인이 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모든 소설가에게 독자들이 요구하는 일도 같은 것일 것이다.  

포그는 첨엔 많이 힘들어하지만, 서서히 에핑을 통해 사물을 깊이 바라보는 법, 그걸 표현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그게 익숙해질 무렵부터 에핑은 포그에게 자신의 삶을 구술하기 시작한다. 수십년전에 이미 죽어 버린 화가..  황무지에서의 사고로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그 자신도 죽음 가까이에 다가갔던 그는 더이상 과거의 그로 돌아갈 수가 없었기에, 본래의 성 바버를 버리고 에핑이라는 타인으로 위장해 평생을 살았다.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에핑은 자신의 친 아들에게만은 자신의 삶의 진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에핑의 죽음 이후 포그는 줄이안 바버라는 에핑의 아들에게 에핑의 자서전과 유산을 전한다. 줄리안 바버는 거대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외모 때문에 거리감을 갖게 되지만, 바버는 알면 알수록 빛나는 지성과 배려심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었고 사랑했던 여자 키티 우와의 이별 이후 힘들어하던 그를 지극 정성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줄리안 바버의 제안으로 시작된 에핑의 과거 흔적 찾기.. 에핑이 조난당했던, 그래서 은거했던 동굴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작가가 마지막으로 감추어 놓았던 퍼즐이 완성된다. 

 줄리안 바버는 포그의 엄마 에밀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에밀리와 빅터 삼촌이 잠들어 있던 무덤에서 포그보다 더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서 포그는 모든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포그, 바버, 에핑 이 삼대는 서로 닮은 꼴이다.  

사람과 벽을 쌓고 스스로 단절과 소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했던 사람들이다. 포그는 공원의 굶주린 노숙자가 되었고, 에핑은 죽음을 위장했고, 바버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명성을 포기하고 먹어댐으로써 경멸받을 외모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절망에서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세상과 화해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고나 할까... 

 너무도 똑 닮은 삼대가 서로의 존재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삶이 조금은 덜 팍팍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질어진 달이 다시 차오르듯, 그들의 삶도 계속되긴 하겠지만, 조금은 더 따뜻해도 될텐데 하는 생각...  그럼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눈빛으로 달을 바라볼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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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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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내가 읽고 싶어하던 책이다. 책 내용도 잘 알지 못한 채, 제목에서 주는 어떤 환상적인 느낌에 끌려서 언젠가는 한번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알라딘에서 이 책을 50% 할인해 주는 걸 보고 확 질렀다.. ㅋㅋㅋ 

그러구서 근무 시간 틈틈히 읽기 시작했다..

얼마만인가?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킥킥 거려 본 것이... 

이책은 거침없는 상상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주인공?? 공간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우주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특별히 어느 누구가 핵심 인물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그래도 출연 빈도로 볼때 주인공에 가까운 아서 덴트는 자기 집에 철거될 예정이란 이야기에 항의하고자 목욕 가운 차림으로 불도저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초공간 우회로라는 은하계의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철거 직전의 지구에서 친구 포드 프리텍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다.  

포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은하계 초유의 베스트셀러 안내서 집필을 위한 자료조사 요원으로 대체로 무해한 별 지구에 파견 나왔다가 불운하게도 15년을 지구인인 척 하면서 지구에 갇혀 살았다. 그러다가 지구가 은하계에서 철거되기 직전에 친구 아서와 함께 우주선을 히치하이킹 하는데 성공해서 지구를 탈출한다.   

졸지에 아서 덴트는 포드와 함께 우주 최고의 괴짜 대통령 자포드, 트릴리언, 우울증에 걸린 천재 로봇 마빈등과 만나고 헤어지고 때로는 외계인에게 납치되기도 하고 이상한 행성에 버려지기도 하고 우주 끝의 레스토랑에서 우주의 마지막 소멸을 보기도 하는 등 기이한 여행을 하게 된다.   

황당함?? 기발함?? 자유 분방함??  유머??   

이 책은 인간의 상상력이 줄 수 있는 온갖 산해진미를 다 선물한다.   

 특히 웃겼던 대목은 우주의 수명만큼이나 긴 수명을 갖게 된 몇 안되는 불멸의 존재 가운데 하나인  와우배거였다. 그는 어쩌다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위험천만하게 살고 온갖 모험을 감수하고 기차게 신나는 시간들을 살다가 서서히 권태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권태를 달래고자 우주에 사는 모든 존재를 모욕하기로,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그리고 꼭 알파벳 순서대로 모욕하기로 작정했다.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그는 원시 지구에 불시착해서 동굴 속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아서 덴트에게 뜬금없이 나타나 "네놈은 머저리, 병신이야. 구제불능성 쪼다라고" 모욕하고 나서는 미처 그가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구 다시 다음 번 대상자를 찾아 은하계를 여행하는 식이다.. 

암튼, 간만에 유쾌하게 읽은 SF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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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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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당금의 시대를 한 마디로 [탐욕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책의 화두는 기아와 부채의 문제다.  

20세기 비약적 경제 발전으로 지금 서구와 일부 아시아, 호주 등은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래서 기아라고 하면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쾡한 눈을 떠올리면서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인해 어쩔수 없는 불행한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오늘 점심 때 난 도시락을 먹었고 가게에서 찐빵도 한 개 사 먹었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다이어트 때문에 굶는 사람은 몰라도 정말 굶어죽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세계의 절반 이상은 굶주린다

저자는 말한다. 기아란 자연 재해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추악한 부채로 인해 발생하는 인재라고 한다.  

유엔 특별 식량 조사관이라는 지위를 가진 저자는 세계 방방 곡곡을 누비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뜻있는 사람들과 만나왔고 그 반대편에서 자본의 이윤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끝없이 착취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과도 불가피하게 접촉해왔다. 
  

그런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이다.  

제 3세계, 남미나 아프리카, 남아시아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부채라는 사슬을 끊어내기만 하면 그들도조금 덜 가난해 지고 조금 더 먹을 수 있고 조금 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 수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국민 총 생산의 대부분이 부채로 인한 이자와 원금 상환에 쓰이기에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국민 복지 (?? 이런 경우에도 복지란 말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식량이나 의료, 교육 지원 등)를 위한 재원은 항상 부족하다. 게다가 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다.  

세계 무역 기구를 위시한 세계화 지상주의자 (예를 들자면 제이피 모건등의 금융 그룹, 네슬레, 노바티스, 몬산토 .. 등의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다국적 대기업의 대리인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은  현재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 더욱더 문호를 개방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방과 집중의 실제 결과는 참담하다.  

커피 하나만 예를 들어도 분명하다. 남미의 중소형 커피 생산 농가들은 갈수록 더 가난해지고 있다. 커피의 가공과 판매를 독점하다시피하는 몇몇 거대 기업에 의해 커피 수매 가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한 반면에 실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커피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그 커져가는 차액은 모두 그들 몇몇 대기업의 몫이다. 커피 생산에만 집중한 농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생산원가보다도 저렴하게 커피를 팔 수 밖에 없고(그들 이외에는 커피를 사줄 세력이 없다) 주 수입원인 커피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그들의 삶의 질도 급격히 하락해 버린다. 결국에는 땅을 팔고 대도시 주변에 날품팔이로 전락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유랑민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약자인 여자와 아이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한 대개의 제 3세계 국가들은 들의 최소한의 삶을 위한 완충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런곳에 쓸 예산이 없다. 그들 나라의 대부분의 부는 몇몇 특권층이 독점하고 있거나, 이미 다른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기에, 굶주리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산을 마련하자면 구제금융이라도 끌어와야 되는데, 그걸 들여오게 되면 간섭도 함께 온다. 구구절절 돈의 사용처를 허락을 구해야 하는데, 돈을 빌려준 쪽은 밀린 이자를 받거나 그 나라의 국유 자산을 사유화 하거나 도로나 항만 같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제반 시설을 확충하는데 쓰고 싶어하지 아무 보람도 없는 빈민 구제에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부채야 말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 봉건제도의 치하하에서 농노들이 토지에 묶어 있었다면 지금의 탐욕적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토지 대신 부채가 수십억명의 노예를 만들어 낸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수백개 정도의 거대 기업들은 자기들끼리도 무한 이윤 창출의 경쟁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십억의 인간을 빚이라는 굴레로 노예화시켜 버렸다.  저들은 힘과 권력과 재력 등 모든 것을 갖추었다.  

그에 비해 빈민들은 개별화 되어 있다. 당장 자신과 자녀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에도 너무 벅찬 상태인지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위해 그들과 맞서기에는 너무도 약하다. 그러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연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외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인간으로서 정당한 삶을 누릴 권리를 위해 서로 연대해서 저항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거기에는 굶주리는 빈민은 아니지만, 그들과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서 함께 연대해 줄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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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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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이란 사진 작가가 있다는 것을 어느 글에선가 읽었다..  뭐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예뻐서 읽었다.  

왠지 모르게 아름다우면서도 아련한 그리움, 기다림, 외로움 같은 게 느껴지는 사진들.. 멋지다.. 나도 한번 저런 풍경을 보고 싶다란 경탄이 나오기는 하지만, 마음 한편에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사진들... 

사진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는 사진 잘 모른다.  사진가라고 하면 왠지 날로 먹는 사람 같이 생각해왔다.. 글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 소위 예술가들은 다 자기 영혼을 담아 작품을 만든다.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많은 열정과 노력을 통해 작품을 낳는다. 그에 비해 사진작가는 말만 작가지 좋은 카메라에 멋진 풍광을 보고 셔터만 눌러대면 되는데, 테크닉이 필요할 뿐 무슨 작가정신이니 하는 게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사진들과 그의 잔잔한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여지없이 내 편견이 녹아 내렸다..  

단 한 순간, 그의 감정과 진정으로 동화되어 있는 단 한순간의 장면을 잡기 위해 수없이 보낸 기다림의 시간들.. 

 배를 곪아가면서 산 필름이 비가 새는 허름한 단칸방에서 곰팡이를 피워내면서 망가져가고 있을 때, 그래도 돈을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켜가는 사람.. 타인에게 평가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서 사진을 찍는 사람..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에 뼈를 묻는 사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사람.. 제주도 구석 구석 촌로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던 사람. 사진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렇게 김영갑이라는 사람에게, 그의 사진에게 빠져들어 버렸다.. 

나 제주도에 가고 싶다. 바람 많은 섬 제주도에서 김영갑이 보여준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 나도 온 종일 서성이고도 싶고 두모악 갤러리에서 그의 무덤에 소주 한 잔이라도 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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