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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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얼핏 보면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서 탐정 역을 맡아 살인사건 등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소설로 보인다. 그런데 소개 글을 보니 역사소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탐정은 남의 뜻을 넌지시 살핀다는 探情이지 수사하고 조사하는 探偵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살짝 기대에 빗나가는 듯했지만 어릴 때 본 영화나 만화에서 만난 사명대사의 이적을 생각하면서 한 편의 환상소설을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다. 작가는 사명대사를 현실과 역사 속에서 충실히 재현하고,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

살인사건도 없고, 멋진 도술로 일본을 놀라게 만들지도 않지만 사명대사는 사명대사다. 작가는 사명대사의 일본탐정기를 3부로 구성했다. 1부는 일본으로 오기 전 사명대사를 수행할 사람들이나 그와 교우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2부는 가장 먼저 도착한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함께 과거와 현실과 미래를 논의한다. 이 부분에서 사명대사가 보여주는 굳은 의지와 목적은 3부에까지 이어진다. 3부는 교토에 도착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만남과 두 역사적 인물의 대화를 통해 시대의 한계와 의지를 잘 보여준다. 

전체적인 흐름만 보면 출발 준비와 출발, 도착, 이동, 회담, 귀국이란 일정을 따른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사명대사와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일본에 잡혀온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이것은 그 시대의 모습과 현실을 보여주면서 역사적 비극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사람들의 다양한 감성은 역사의 민초들이 정사에 묻혀 있던 것을 앞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왜장의 아내가 된 옹주나 환관이었던 이나 승려가 된 소년의 이야기 등은 잡혀온 사람들의 일면을 잘 드러내준다.

제목처럼 일본을 살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본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에겐 익숙한 개념인 천황제가 군왕제 시대를 산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이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사명대사의 활약은 전설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한 의지와 촌철살인 같은 말로 상대를 압박한다. 이런 활약이 두 나라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사명대사 유정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라곤 임진왜란 때 뛰어난 승장이었다는 것과 뒤에 각색된 신비롭게 경이로운 도술로 일본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일반화된 모습을 뛰어넘거나 뒤에 부풀러진 환상을 걷어낸다. 사실에 입각하여 뛰어난 승장이었다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그 활약을 확장시키고, 불제자였지만 동시에 유학자였던 그를 조명하면서 평면적이었던 그를 입체적으로 살려내었다. 그리고 사명대사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일본에서의 이적을 삭제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깊이를 더했다. 이 때문에 그의 방문이 지닌 의미와 역사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일본의 다이묘나 쇼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그것은 조선을 침략한 주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죽음으로서 그 죄를 물을 사람이 없음으로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만 말하고자 하는 이들을 통해 현재 한일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친일 정치인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런 동일한 역사 인식과 행동을 통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를 알 수 있고, 이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명대사의 탐정 속에 드러나는 일본의 역사는 한동안 잊고 있거나 잘 몰랐던 전국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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