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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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최근에 퓰리처상 수상작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예전에 이 상을 받은 책을 아주 지겹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루함이 가신 것을 보면 나의 내공이 조금 쌓인 모양이다. 이 소설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열세 편의 단편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 속내를 잘 드러내거나 숨기면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보다 보면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리고 한국 문학에서 자주 만나곤 했던 삶들이 다른 지역과 사람들에게서 다시 드러난다. 물론 그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도 긴 삶을 힘겹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의 중심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그녀는 키와 덩치가 크고, 사과를 할 줄 모르고, 고집이 세다. 모든 단편 속에 등장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올리브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맺고 있다. 몇몇 단편에선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때 드러나는 행동과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아이 같다. 하지만 그 솔직한 감정과 행동은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한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공간적으로 동일한 곳을 공유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덕분에 앞에 나온 사람들의 미래가 궁금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 사람들은 나아가고 성장한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60대도 70대도 모두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순간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어떤 순간은 격렬하다. 다른 사람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현실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가기도 한다. 

첫 단편인 <약국>에선 올리브의 남편 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굉장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감정의 절제가 돋보인다. 여직원 데니즈와의 감정교류가 어느 정도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대 그 마을에서 이런 일탈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용기가 없었는지 모른다. 너무 예의바르고 선량하고 보수적이라 불륜을 저지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올리브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인지도 모른다.

<밀물>에서 올리브가 나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살을 준비하는 그의 제자와 함께 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고 삶의 의지로 가득하다. <피아노 연주자>에 남편과 잠시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온 것은 <작은 기쁨>이다.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질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앞에서 어느 정도 그녀의 성격 중 일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지만 그녀의 작은 기쁨이 되는 행동은 낯설다. 이 낯설음은 뒤로 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그것은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그녀의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올리브와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는 일반 부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 모두에게 위기는 있었지만 일탈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한 사건을 통해 갈등이 고조된다. <다른 길>에서 마주한 소년 범죄자들과의 만남은 긴 결혼생활 속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헨리가 쓰러지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고 움츠려들게 된다. 이 불행은 아들의 첫 이혼과 맞물려 있고, 아들의 재혼과 초대로 이어질 듯한 모자 관계가 다시 그녀의 고집과 아들의 무관심으로 충돌하면서 고착되어버린다. 

올리브의 삶이 노년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회상하고 일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과부인 상태가 외로움과 허전함을 전해준다. 이 때문에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남자 잭과 만나게 되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도 젊은이들처럼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은 하루하루를 낭비하기엔 너무 짧다. 이 순간 그녀는 죽음을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에서 삶에 대한 의욕으로 변한다. 이것은 그녀의 성장이자 삶과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리브가 강한 개성으로 중심을 잡아준다면 다른 주인공들은 삶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준다. 가끔 긴 호흡의 잘 다듬어진 문장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올리브, 그녀는 놀랍도록 개성적이고 생동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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