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8
로베르트 반 홀릭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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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디 공 시리즈를 읽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의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서양인이 본 중국 고대 판공 이야기라 약간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아마 다른 문화권이라서 사물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란 범주에서 본다면 나름 재미가 있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현대 추리물처럼 치밀한 구성보다 인물과 시대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지 않은 번역도 한몫 거든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열심히 읽은 것은 나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 공 시리즈 중 읽지 않은 것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황금살인자>도 끼워있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쉽게 빠져들었다. 이번 소설은 디 공이 처음으로 수령으로 부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친구들과 작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왜 그가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벗어나 힘든 수령으로 나가는지만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장면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을 단숨에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디 공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부임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두 도적과의 관계다. 그를 털려는 도적과 무술대결을 펼치고, 도적을 잡으려는 관병들에게 자신의 부하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의 용기와 관대함과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후 두 도적은 그의 수하가 되고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디 공은 좋은 수하를 얻고, 부임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많이 다른 현실이다. 전임 수령은 귀신이 되어 나타나고, 수령의 죽음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고을의 수령이 하나의 일만 볼 수 없다. 다양한 민원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토지 경계 같은 민사사건도 있고, 신부실종사건이나 농가의 살인사건 같은 형사사건도 있다. 민사는 당사자 두 사람이 합의하면 쉽게 해결되지만 형사는 다르다. 처음 선박업자 쿠가 자신의 신부 실종 사건을 의뢰했을 때만 하여도 그냥 단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농가의 살인사건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보여주면서 단순함을 넘어 새로운 모습을 띤다. 개별 사건이 하나의 큰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큰 그림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성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무난하고 매끄럽게 연결했다.

이번 소설에서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작가가 중국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게 되는데 그래도 가슴 한 쪽에서 감상적으로 움직인다. 좀더 깊이 있게 다루거나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나왔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왜곡된 기록으로 다루어지기보다 그냥 이 상태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처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표지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전임 수령의 살해와 관계가 있다. 예전에 읽은 시리즈의 앞 권에 대해 기억은 거의 없지만 잘 만든 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귀신을 등장시키고, 장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를 공들여 배치한 것이 뒤로 가면서 그 힘을 발휘한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전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디 공의 모습은 현실적이면서 아주 탁월하다. 또 유서우쳰의 <수령지침서>에 나온 말씀은 현대 명탐정들이 여러 차례 말한 것이지만 명심하고 또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독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용어의 선택이나 번역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다. 원작과 비교하지 못해 어떨지 모르지만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는 개인적으로 이제껏 읽은 디 공 시리즈 중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 추리작가들의 시대물이나 추리소설에 비해 조금 낯선 전개와 분위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빠지면 색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물론 이것은 그 매력을 깨달을 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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