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전작 <회색영혼>을 사실 아주 재미없고 힘들게 읽었다. 작품 문제가 아니라 읽는 나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대충 읽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책읽기였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읽기 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른 자세로 책을 들었고, 지난번보다 더 세심하게 음미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왜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게 되었다. 깊은 관찰과 사색을 통해 만들어낸 문장과 그 결과물이 읽는 내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9쪽)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으로 작가는 두 가지 효과를 누린다. 하나는 화자가 누군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 일에 어느 정도 그가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런 멋진 문장으로 문을 열고, 브로덱이 기록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시간 순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기록의 대상도 바뀐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아마도 이런 구성과 깊이 있고 사색적인 문장이 이전에 재미를 못 누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 일’이다. 뭐 길래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의문이 계속 생긴다. ‘그 일’이 안더러 즉 타인과 관련된 일임을 금방 말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가 무관하다고 외쳤는지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 속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참혹한 것은 아마 인간이 아닌 똥개 브로덱으로 살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개처럼 행동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 순간 말이다. 왜 그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일’을 연관시키는 것일까? 의문이 살짝 생긴다.

똥개 브로덱으로 수용소에서 살면서 생존한 그를 보고 놀란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를 죽은 자로 기록한 그들이기에 놀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뒤에 드러나는 사실을 읽으면 꼭 그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도 또한 안더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두 안더러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다. 똥개처럼 행동하면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브로덱과 이름조차 말하지 않은 안더러의 삶은 그들을 보고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브로덱이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삶과 행동을 덮어주는 목적으로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브로덱의 양심은 사실과 거짓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려고 한다. 똥개 브로덱이 인간으로 위치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안더러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그림으로 보여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하고 더러운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때문에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브로덱의 보고서와 관계있다. 브로덱이 보고서를 두 개 작성한 것이다. 하나는 보고용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찾는 기록이다. 

전쟁은 사람을 엄청나게 변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거침없이 변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브로덱이 사는 마을이라면 수용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이다. 그런 고결한 인격이 삶의 현장에선 쉽게 뒤집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모자일 경우는 침묵으로 그 사실을 덮어두려한다. 이것을 파헤치려고 하니 그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브로덱의 보고서와 안더러의 그림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 참혹한 현실의 일부를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파괴와 약탈로 연결시킨 것은 인간의 어두운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약탈과 파괴와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을 견디지 못해 떠난 브로덱이 수용소에서 삶을 위해 똥개가 된 것도 어쩌면 가해자로 변신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것은 또 안더러의 ‘그 일’을 자신이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도 이어진다. 이렇게 그는 최소한의 자신을 지킨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변절자와 가해자들에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행동이다. 시장 오어슈비어가 그 보고서를 읽고 두 눈이 먼 여자 아이의 예를 든 것도 바로 하나의 경고인 것이다. 파헤치지 말고 그냥 덮어두라고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쓰다 보니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 에멜리아, 딸 푸셰트, 그를 거둔 페도린 등과의 관계도 그렇다. ‘정화의 밤’과 인간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 외 이야기들도 많지만 모두 쓸 수 없다. 다만 첫 문장의 ‘그 일’만 간단히 적는다. 다시 읽으면 더 많은 것이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그 가치를 몰랐던 <회색영혼>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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