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방
에이먼 돌런 지음, 김은지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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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때문에 고통받은 경험은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렵다.

가족은 당연한 존재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나는 당연하게 가족의 일원이고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가족의 일은 가족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가족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고 지켜주고 책임을 져야 한다.

원시시대부터 공동생활을 해온 가족의 역사는 길다.

안전을 위해,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기 위해 가족은 중요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의 사랑으로 풀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곳도 가족안에서다. 가족은 대처될 수 없고 영원하며 언제나 소중한 목록의 가장 앞에 자리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훈육하고 성인으로 길러내고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며 나중에 늙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

가족단위로 사회가 굴러간다.

가족은 세상이 변해도 쪼개지지 않은 단위이다.

남의 가족을 들여다 보지 않은 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다.

개인적인 부분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다.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 함께 살아가는 규칙 등 가족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 가족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얻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박과 통제를 느낄 수도 있다.,

더 쪼개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버릴 수 없는 존재

나와 영원히 함께 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은 안정감과 함께 공포감을 줄 수도 있다.

 

단란한 가족

가족의 행복, 가족의 날,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끈적이고 들러붙고 어찌할 수 없음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냥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참 불편할 때가 있다.

버릴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손절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내가 버려도 내가 떼어낼 수 없다.

나는 죽어서도 그 사람의 자식이거나 그 사람의 부모이고 그와 형제이고 그와 부부이다.

(부부는 그래도 남남이 될 수 있다.)

 

A는 부모와 관계를 끊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모욕적인 말들을 들어왔다.

너가 태어나서 내 인생을 망쳤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말을 엄마에게 들었고 아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는 내 아내 내 자식보다 본인의 가문 본인의 조상 본인의 친척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고 본인의 직업도 한 가문의 장손이었다.

어린 시절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스란히 엄마의 폭언을 받아냈고 아빠의 무관심을 견뎌냈다. 동생과 차별을 할 때도 몇 번 화를 내고 소리쳤지만 그때 뿐이었다.

A의 선택은 조용히 집을 나오고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도와주었고 친구 부모도 도움을 주었다.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하고 가족을 단절했다. 나를 찾지 않도록 행정처리를 했다.

그리고 혼자 산다.

언젠가 다시 가족을 만날 수도 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만나지 않고 내가 노력해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A가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돈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다.

엄마에게 그동안 키워준 돈을 돌려주고 싶다.

돌려주고 나면 서로 부채감 없이 산뜻하게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지금 단단하고 야무지게 부모와 단절하고 혼자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 저 아래에는 어떤 부채감 또는 죄책감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래도 되나 라는 마음보다 그동안 힘들었다. 견딜만큼 견뎠고 내가 받은 상처도 컸다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A는 잘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 자립하는 법을 알고 도움을 받을 줄 안다.

그가 가질 죄책감이나 용서에 대한 딜레마가 있겠지만 그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지금 안 보는 것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

언니와는 유일하게 연락을 하지만 그냥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가족의 소식을 듣는 통로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그는 부모가 자신에게 나쁜 기억만 준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고 인정받았던 부분이 있고 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마음도 안다.

그건 그거지만 내가 상처받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던 것도 치유가 쉽게 되지 않는다.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상처받지 않고 죄책감느끼지 않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많이 풀어져서 엄마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엄마가 딸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깊이 들어주면 좋겠다.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B는 오랫동안 부친의 폭력아래서 자랐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빨리 한 것도 어쩌면 부친의 폭력때문일 수도 있다.

모친은 자식 때문에 참아왔다. 이혼을 하면 딸들이 결혼하는데 흠이 될까봐 참아왔다

그리고 늘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괜찮을 때도 있으니까 견딜만했다.

그러는 동안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고 딸들이 부친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도 봐야 했다.

딸들이 결혼하고도 부친은 기세가 등등했다.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고 욕을 하고 수시로 찾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협박을 했다.

딸들도 모친처럼 부친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이어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고 가족이어서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술을 마신 부친이 모친을 폭력하고 결국 칼을 든 일이 발생했다. 어찌어찌하여 부친은 강제입원을 했고 당분간 한숨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부친은 입원중에도 계속 딸에게 연락을 하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

돈이 필요하다. 퇴원을 하고 싶다. 병원이 너무 덥고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 아버지가 거기서 나오지만 않는다면 B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그렇게 아버지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지금 아버지를 거부하면 이후에 아버지가 나올 경우 엄마는 어쩌면 우리 자매들도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부친은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잘 달래서 살살 꼬드겨서 계속 병원에 있도록 해야한다.

부친이 죽을 때까지

은근히 B가 기다리는 것은 부친의 죽음이다.

그 마음 때문에 죄책감이 들고 무섭지만 그게 다른 모든 사람이 사는 길이다.


나는 A를  받아들이고 B를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이 필요했다. 

괜찮겠지? 와 괜찮아 사이에 내가 있었다.

가족을 버려도 괜찮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잖아 라는 말이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 설득력있게 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내 부모의 치부를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부모에게 맞았다는 말은 장난처럼 혹은 겉멋부리듯이 하는 말이 아닌 이상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 자식에게 맞았다는 말은 더욱 그렇다.

부모는 때릴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때릴 수는 없다. 세상의 윤리가 그렇고 상식이 그렇다.

그럼에도 가족이어서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때리는 부모를 쉬쉬하며 살아야 하고 때리는 남편을 때리는 자식을 그저 내탓이려니 하고 끌어안고 버텨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서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이 책은 가족을 끊어내도 된다고 말한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되도 된다고 한다.

 

 

가족은 우리가 정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친구이거나 반려동물이나 식물이거나 나의 동료이거나 누구든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가족과의 관계는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짜 관계를 말하기 어렵다.

 

가족과 멀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우리에게 사랑, 애정, 헌신, 감사. 존중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절연을 통해 마침 나는 나 자신이 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버륵. 나를 나답게 하는 열정, 부모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가치 있게 여긴 나의 개성을 사랑하게 된다.

 

미성숙한 부모가 허용하지 않는 여섯가지 감정과 행동

분노, 열정, 자발성, 상처와 상실과 변화에 따르는 슬픔과 비탄, 거리낌없는 애정, 진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 말하기

 

때로 가족은 어떻게 보이느냐가 실제 어떠냐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이 변할지 아닐지는 알 수가 없다. 학대자에게 입힐 수 있는 주된 타격은 접촉 횟수를 줄이는 일이다.

 

자기 돌봄과 자기 경계는 공생관계여서 하나에만 집중해도 다른 하나는 강화된다.

자기돌봄은 매순간의 실천이지만 우리가 언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가는지 미리 생각해보면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나는 언제 라고 하고 언제 아니요라고 하는가?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많이 미국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적극적인 행동과 자신감 행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틀린 건 아니다.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내가 나를 바꾸는 건 내가 이제부터 바뀔 거야 라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내가 뱉는 한마디 내가 하는 거절의 몸짓이나 말들 내가 스스로의 욕구를 말로 하는 것 등 어쩌면 사소하지만 사소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서 참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거절하기 힘들면 침묵하면 되고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가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의 죽음앞에서 웃더라고 그것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참 어려운 일이 내 욕구를 말하고 내 의견을 드러내고

거절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몸에 붙은 익숙함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

그냥 나만 참거나 내가 해서 편한 일이 어디 한두가지였겠는가

다 좋자고하는 일인데

괜히 분위기 망칠 것도 없고

늘 하던 걸 안하는 것도 껄끄럽고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 그냥 내가 조금 조심하면 되는 거고

어쩌면 저 사람도 저러는 것이 미안하기도 할 것 같고

뭐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자꾸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당연함으로 굳히고 있다.

 

내가 저 사람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꿀 능력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

그냥 내가 안전하고 내가 편안하고 내가 좋은 걸 하는 수 밖에

그게 싫다면 저 사람이 뭔가 액션을 할 테고 그 방식이 폭력적이라면 나는 도망칠 것이다.

저 사람에게 도망쳐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넓고도 많다.

 

가끔 늙은 부모를 걱정한다. 내가 버리면 늙어서 어디서 손가락질이나 받다가 죽을 것이고

그를 아는 주변 친구들이 우리를 욕할텐데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한국이라는 곳은 가족을 버리고 싶어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며 미적거린다.

가족을 버린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나는 저렇게까지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가족은 버리거나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함께 하는 관계이다.

누군가 이 관계로 힘들다면 떨어져도 된다.

끈끈한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면서

멀리 떨어져도 평생 안봐도 가족이라면서

그런 대책없이 국건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떨어지고 해체되는 걸 겁내는 건 모순 아닌가?

쪼개져도 가족이고 떨어져도 가족이고 다시 보지 않아도 가족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독립되어야 한다. 물론 돕고 돌보고 의존하는 존재이지만

누군가 당연히 나를 돌보는 사람, 당연히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이제 없다.

가족은 그 당연함을 그 동안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일 뿐이다.

 

미국스타일의 매끈한 전개가 좀 걸리긴 해도

가족을 몰래 말고 그냥 떼어내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나 말고 누군가가 이야기 해주고 내가 그것봐 그렇다고 하잖아 라고 맞장구를 치고 싶었다.

 

가족이란

참 어려운 관계다.

가족을 조금 더 유연하고 다양하고 주관적으로 정의하고 싶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

돌보고 싶고 돌봄을 받고 싶은 사람

나답게 살 수 있고 그 답게 사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관계

그렇다면 혈연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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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만나고 바라보고 듣고 이야기를 하고 다시 듣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웃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과정들을 함께 보내면 그 사람을 잘 알게 될까

그렇다면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작가를 좋아하는 것

서로가 대면하지 못하고 그저 일방이 바라보는 것만 있는 시간에서 그 사람을 잘 알게 될까


소코의 미소에서 처음 작가를 알았고 단편집에 수록된 글들을 꼭꼭 씹어 읽어가면서. 또 가까운 이에게 책을 권하면서  이 사람은 참 반듯하겠구나,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늘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조금은 피곤한 사람이겠구나 생각을 처음 했다.

작품집에 씌여진 작가의 말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마음인지 작가를 조금 흔들어 놓고 싶었다. 꼭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 없지만 꼭 그렇게 반듯하려고 애쓰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문장사이의 주저함과 머뭇거림을 발견한다.

한문장을 쓰고 돌아보고 주저하고 또 한문장을 쓰고 처음부터 다시 보고 머뭇거리는 그 모습이 그려졌다.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애쓰지 않아도 를 읽으면서  이 작가가 지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계속 읽고 싶은데 계속 주저하고 점검하다가 이 작가가 지쳐서 글쓰기를 포기하면... 


작가의 소설 문장들을 읽으면 내가 가졌었는데 정리되지 못하는 어떤 감정들 어떤 경험들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도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던 시간들 

누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누구든 알아주었으면 했던 마음들

내가 여기 있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기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때의 소외감과  아닌척 눈은 웃고 입은 울고 있던 이상하게 이그러진 표정

애써 잊었거나 모른 척 하고 있던 그런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이야기속에 들어있었다.

그래 나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반가우면서 부끄럽고  괜히 심술이 났다.

나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알았는데 


에세이는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작가가 아니라 글보다 앞에 서 있는 작가를 만난다.

솔직하게 말하는 암투병 이야기. 고양이들 이야기., 혼자 달리는 이야기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느끼는 감정들 페미니즘을 만나고 변한 모습들 

오래전에 알고 지내다가 다시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그때 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세삼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의아하면서 새롭기도 하고 그래그래 이런 사람이라고 짐작했었어 라는 마음들 


낮잠에서 깨어나면 왠지 눈물이 났다는 문장을 보면서 어릴 때 대명동 시절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햇살이 마루 안까지 길게 들어와서 눈을 가늘게 떠야 했던 순간

마루에 놓인 요강에 앉아 오줌을 누면서 그 햇살을 보고 고요한 집에서 혼자 라는 생각을 했다.

자는 동안 가족들은 다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데 함께 살던 고모가 깼나 라고 무심하게 물어보던 소리

그리고 이웃집 아줌마가 자기 아들 생일이라고 놀러오라고 내 손을 잡고 갔던 기억

잠에서 덜 깨고 옷도 엉망인데  친하지도 않은 남자아이들 사이에 멍하니 끼어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온 기억

그때 아마 나는 엄마에게 나만 두고 어딜 갔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가 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나만 두고 어딜 갔는지 알면 더 서러워질까봐 두려웠는지 아니면 얼떨결에 간 생일에 혼이 빠져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햇살이 길게 있는 걸 보면 지금도 마음 한 쪽이 시리다.


그런 마음이 에세이 갈피마다 들어 있다. 

내게 익숙한 감각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친한 사이라고 

친한데 너무 닮아서 모른 척 하고 있는 중이라고 


사람에 대해 애정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마음

오랫동안 바라보는 마음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고 애쓰는 마음

아직 나는 잘 모른다는 주저하는 마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용기 있는 마음 

내가 아는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읽고 좋아하고 이렇게 살고 싶어  

그 마음을 받아 나도 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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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치권이 여야 가릴것 없이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를 ‘억울한 남성의 목소리‘라며 정치적으로 승인해준 결과는 남성의 더 나은 삶이아니라 ‘연쇄적 혐오‘였다. 더 성평등해져야 하는 상황에서그 반대길을 택한 대가를 우리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명백하고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숨기거나 정당화해왔던 ‘정치적 관습이, 무한경쟁과 줄세우기만이 공정이라는 ‘그릇된 공정 감각‘이, 인권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모든 언행을 역차별이나 위선으로 간주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영포티는 단순히 우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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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가잔한 집안의 폭망받는 장남이었다.

잘 생겼고 몸도 좋아고 어디서나 눈에 띄고 돋보이는 자랑거리였다. 

집안의 자랑, 학교의 자랑, 마을의 자랑

모두가 버지스네 아이들을 알았다는 건 짐의 덕일 것이다. 짐과 쌍둥이 동생들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했다.

행동에 거침이 없고 말에도 거침이 없으며 태도에도 거침이 없었다. 

가족앞에서 타인앞에서 특히나 동생 밥 앞에서

성공한 변호사. 부자 아내. 뉴욕에 주택이 있고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능력있는 짐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깊은 우물이 있음을 아무도 몰랐다. 가까운 가족조차도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 잘난척 하는 태도들은 몸을 부풀려서 적에게 맞서는 초식동물과 다르지 않았다

화려하고 크게 보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최대한 크게 부풀려서 얕잡히지 말것 내가 애를 쓰고 있음을 들키지 말 것 

가족들 앞에서 형제들 앞에서 늘 바쁜 사람이었고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연락이 잘 닿지 않지만 그가 꼭 있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그냥 자연스럽게 잘 하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고 싶었지 동동거리고 애쓰는 결과로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지키고 돌보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여기고 큰소리를 치지만 잭의 사건앞에서 그의 판단이나 행동들은 자꾸 어긋나고 비껴간다.

그의 자신감은 회사내 성희롱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는 어느 순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한 번도 고꾸라져 본 적이 없는 짐

절대 고꾸라져서는 안되는 짐

작은 실패도 없었던 짐이어서 그의 추락은 너무 위험하고 불안하다.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두려움, 내가 비웃었거나 무시했거나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나와 상관없는 추락이 내것이 되었을 때

사람은 혼란스럽고 공황이 된다.

언젠가는 발이 닿을 것이고 끝이 있고 이후에는 올라가는 일이 남았다는 걸 경험하지 못한 짐은 그냥 죽죽 미끌어지고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있다.

단단한 짐이었기에 두려움이나 놀람은 더 컸을 것이다. 

잭의 사건 중심에서  고향에서의 연설이후 그의 고백은 어쩌면 추락을 예감한 것이었을까?

그건 아닐지도

아직은 만만하고 짐이라는 이름이 통하는 이 세상에서 약간의 결험으로 여겼을까

그러기에는 감춘 진실이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또 어쩌면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자신도 어렸다는 건 이해받을 수 있다.

자신의 깊은 우물을 메우기위해 누구도 모르게 동동거렸을 짐. 

그 죄책감에서 밥을 바라보면 자기보다 못나 보이고 잘 풀리지 않은 밥에 대한 미안함이 분노로 바뀔 수도 있었고 그냥 다 밥때문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 않았을까

나의 죄를 대신 먹어버린 밥

그를 보는 짐도 편하지만은 않았겠고 그의 말투와 태도가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짐은 계속 미끄러내려가지만 결국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지진아같은 밥과 냉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수전이다. 


이후 그는 헬렌에게 최선을 다했고 자녀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외톨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 에게는 밥이 있었고 수전이 있었다.

밉지만 매력적인 짐 

그의 능력이나 힘은 미끄러진 이후 그의 태도였다.

화려한 변호사 시절이 아니라 그 이후 헬렌이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그 시간에 그의 매력이 비로소 나온다. 

참 아이러니한 짐 


밥은 똑똑한 사람이다.

어수룩해보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된다.

그가 그렇게 보이는 건 불행하게도 그의 비교군이 짐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짐이어서

그는 노력형이고 성실했고 우수한 학생이었고 괜찮은 변호사가 되었다.

순종적이고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움츠려드는 밥

엄마가 새옷을 사 입히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음에도 밥은 밥이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아이

형보다 못한 아이

늘 웃어야 하고 괜찮아야 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 뭐든 내가 할게 내가 갈게 라고 말하는 사람

나와 다른 팸의 에너지에 끌렸을 것이고 우리집을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여기고 가족들과 어울리는 팸은 팸 역시 밥의 집이 되어주었다.

밥의 가족이 팸의 가족이 되어주었지만 정작 밥에게는 팸이 그의 집이었다.

결혼이 끝나고 다시 가족을 만들었으나 밥은 집을 잃었다.

재혼하기전 한동안 그는 집없는 사람. 대학원 기숙사에 사는 사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밥은 밥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고 타박을 들으면서 수전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고향으로 돌아가고 잭을 만나고 옆에 있어주고 잭의 안전기지가 된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리고 수전이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터뜨리게 만드는 사람도 밥이다. 

이후 그가 맡은 사건의 당사자 매튜도 말한다. 밥은 밥이예요. 머리 스타일이 달라져도 밥은 밥이죠

밥은 알게 모르게 인정받고 있고 환대받고 있었다.

불쌍한 밥. 상처받은 밥. 죄를 먹어버린 밥

모두가 밥을 알고 모두가 밥에게는 무장해제되고 밥 앞에서는 편안하고 만만해진다.

그게 밥의 힘이다.

접속사 같은 사람

괄호같은 사람 

존재감이 크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곁에 있어 그 사람을 빛나게 해주고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필요한 사람

답답하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고 루시 곁에서 결국 마음을 내비치지 않은 단단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밥은 밥이다.

어쩌면 짐이 밥을 가장 큰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을까

나랑 다른 사람.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진 사람

그런 위험한 인물이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나랑 가장 쉽게 비교가 된다면 그건 정말 삶이 피곤해진다. 


수전은 예쁜 아이였고 예쁜 소녀였고 예쁜 여자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어머니의 완고함이 수전을 망쳤다. 

욕구를 누르고 감정을 누르고 타고난 아름다움이 죄가 되어버리는 것

엄마가 딸을 키우는 방식이 이해가 가지만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딸에게 전가되었다.

보호해야하는 그 마음이 딸을 눌렀고 수전은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너무나 엄격해져버렸다. 

예쁘고 자유롭고 부자인 팸과 헬렌과 비교가 되는 수전

비슷한 상철르 가진 사람에게 끌려 결혼하고 소심하고 예민한 잭을 키우며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해 불안했을 수전은 결국 이혼을 하고도 계속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

세상을 경게한다.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어떻게 보일까

잭은 어떻게 보일까

엄마가 잘못 키웠다고 내 탓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걸까

수전은 짐은 무조건 신뢰하지만 어렵고 밥은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대하지만 가장 안전한 대상이다.

수전은 두 남자형제 사이에서는 가장 현명하고 냉정하다. 

그러나 잭앞에서 한없이 불안하고 세상의 시선앞에서는 조그라든다. 

잭의 일을 겪고 재판을 경험하고 형제들의 도움에 감사하고 실망하면서 세상을 향해 간다.

내가 믿어야 하는 것들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안다.

잭을 기다리고 헤어진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 것

그건 수전도 알지못하는 수전의 힘이다. 

소말리족에 대한 그의 편견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늘 두렵고 불안하다. 들리는 소문의 진위를 파악할 생각보다는 그냥 내게 익숙한 것을 받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나고 듣고 다시 알게 되면서 그는 덜 불안하다.

예쁜 나이 예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그에게는 많은 날이 남았을 것이다. 

동창이던 경찰서장과  좋은 이성친구가 되고 조금 더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알지만 개의치 않은 수전 (팸과 헬렌) 

아직 많이 힘들지만 괜찮을 것이다. 

트렁크부인과도 좋은 대화를 하고 그외 좋은 이웃들이 많으니까 



사실을 알고 나면 행복해진다는 건 동화에서나 있는 일

진실은 늘 험하고 두렵고 아프다.

진실이 모든 걸 해결하지도 않는다. 

저마다의 진실이 모이멸 각각이 가진 이질성이 부딪치고  더 커진다. 

각자 삶의 태도가 다르고 선택이 다르다.

사회나 개인은 완벽한 균형이 없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고 있을 뿐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한 순간 어떤 사건으로 휘청하기도 하고 한순간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오랫동안 쌓인 무언가에 한방울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다. 

서로가 안다고 믿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진실이 드러나며 고통스럽고 내 눈을 의심하고 타인을 믿을 수 없다.

형의 고백이 무겁게 다가오고

남편의 행동에 결혼생활이 모두 부정되고 

아들의 어떤 행동이 나를 심판한다.

불안전, 모른다는 사실 등은 안전한 현실을 스스로가 흔들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알아가지만 역시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겸손함


모두는 모두의 이야기가 있고

각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는 듣고

우리는 말한다.

작가는 그 이야기들을 기가 막히게 모으고  꾸려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짐과 밥과 수전과 헬렌과 팸 그리고 나의 최애 올리브와 루시의 이야기도 계속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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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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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쓰는구나


책을 읽으면서 혼자 중얼거린게 몇 번일까

밥을 보면서 짐을 보면서 그리고 수전과 잭의 이야기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자기만의 맥락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잘 모른다.

잘 모를 뿐 아니라  나와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혹은 우리는 타인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타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하다. 

어쩌면 내 가족에 대해, 내 이웃에 대해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짐과 밥과 수전이 어린 시절 겪었던 사건

이미 50이 훌쩍 넘은 지금은 다 정리되고 잊혔거나. 들쑤지 않으려고 하는 그 사건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올라오고 다시 거론된다. 

소말리족이라는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타인에게는 관대할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엄격할 수 밖에 없는 마음

가까운 사람은 무조건 맞다고 믿고 싶은데 모르는 사람은 두렵고 무섭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

그런 복잡하고 모순된 마음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버지스네 아이들 (이미 늙었지만) 뿐 아니라 그들을 알고 있는 그들과 엮인 사람들

헬렌과 팸과 기타 등등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고 나름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정말 애쓰고 있구나


밥은 오랫동안 죄의식으로 살아왔다.

그 마음이 누가 무슨 말을 하건 무심하게 흘리거나 모른 척 하거나 모두에게 관대해 지는 그의 성정을 형성했을 것이다.

수전은 알듯 모를 듯한 엄마의 차별이나 엄격함을 견뎠다. 냉정하고 불완전한 가족사이에서 성장해서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서 함께 외로웠다가 헤어졌다.

짐은 자신이 간직한 비밀을 안에 넣어두고  장남다운 책임감을 함께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부자집에서 자라  자기밖에 모를 거라 생각하는 헬렌도 팸도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애쓰고 있다.


이야기를 읽어갈 수록 선명해지는 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잘 안다고 믿어버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무섭고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야기는 두가지 줄기가 있고 그 줄기가 어느 순간 얽히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와 겹쳐진다.

낯선 타인인 소말리족에 대한 두려움 

우리 커뮤니티가 타인들에게 점령되고 성격이 바뀌고 어쩌면 주인이었던 백인들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두려움은 이방인을 괴물로 보게 만든다.

소말리족 역시 인간으로 겪지 말아야 할 경험들을 겪고 지역에서 떠나야 하고 쫒겨난 이후 자리잡은 곳에서 사방이 적이고 안심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 마음이 부딪치면서 그냥 내가 익숙하고 내가 안전한 틀고 세상을 바라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분노를 느끼고 상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천천히 상대를 바라보는 것.,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일이 필요했다.

잭이 법정에서 손을 떨고 실수를 하고 말을 더듬는 그 행위를 어쩌면  고도의 연기라고 한 겹 막을 씌여 보지 않은 압다카림의 태도에서 비로소 상대를 받아들인다 

뒤집어 보면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그만큼 절대적이다.

책에서 방송에서 어떤 말을 듣고 보고 알게 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내가 내 감각으로 체득한 것이상 의미가 없다.

 내가 봤어. 내가 들었어. 내가 겪었어 

그것만큰 큰 힘은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비지스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반면 서로에게 무지하게 비난하고 조롱하고 냉정한 가족들

어린 시절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누군가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문제 주변에서 스스로를 누르고 살았을 것이다.

가족이 주는 공기는 대단하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가족안에서 떠도는 공기의 질감이 가족을 정의 한다.

두려움과 죄책감,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되. 좋아해서도 안되고 심하게 우울해서도 안되

애써야 하고 괜찮아야 하고 계속 괜찮아야 하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그런 공기가 짐, 밥 그리고 수전 주위를 돌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성공하고 남부럽지 않은  명예와 지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텅 빈 어떤 공간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족을 보는  법적인 가족들 (배우자와 자녀 등) 도 적당히 모른 척 하기도 하고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기도 하면서 주변을 서성이고 함께 하고 멀어진다. 



책을 읽다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은 의외로 헬렌이나 팸의 생각들

수전 집 위층에 세들어 사는 노부인의 이야기들이었다. 

야심이 있어 보이는 짐이나

무조건 따뜻하고 멍청한 밥이나

냉정하고 어리석은 수전이나 

그들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주변에서 오히려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관찰자들 역시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가 상대를 잘 몰라

그러니 더 잘 알기 위해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고  오래 바라보는 것

그건 관계에서 꼭 있어야 하는 것

그런데 그 행동들이 멋적고  난처하고  쑥스러워서

그냥 알고 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 그게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상대에게 뿐 아니라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사람이야 라고 정의되면 거기서 한발도 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겠어 이렇게 생겨먹은 걸.... 여기서 멈추는 것

그래서 인간이고 그럼에도 인간...


비지스 형제들을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봤을 것이다.

망가지는 형에게서 내 모습을 보고

멍청하고 어리석은 동생의 행동에서 나를 본다.

두 남자형제들을 부럽게 때로는 한심하게 바라보는 수전

그러나 가장 힘든 순간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는 건 서로라는 걸 잘 안다. 



버지스 형제를 읽으려는 마음은  < 이야기를 들려줘요> 를 읽고 나서

루시와 올리브 사이에 등장하는 밥을 보면서  

도데체 저 인간은 뭐지? 라는 마음에서였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 책에서 호감이 아닌 어떤 이끌림에서 

다시 든 책이 버지스 형제 

그리고 결국 우리는 노력하지만 서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한다는 걸 긴 이야기속에서 알았고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의미가 뭔지 주제가 뭔지 내가 판단하기 전에 화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그럼에도

청자의 판단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것 


다시 읽어보고 긴 페이퍼를 써 봐야 겠다. 



사실 스트라우트 월드에서 나의 최애는 여전히 올리브다.

올리브와 헨리를 가장 좋아하고 헨리의 죽음에 가장 슬퍼했고 행여 올리브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될까 가슴조였었다.

루시는 처음엔 너무 낯설고 작고 쥐같고 약하지만 질긴 그 모습에 정이 가질 않았다.

월리엄은 말할 것도 없고 ..

그러나 루시 시리즈를 읽으면서 점차 루시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이해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등장한 밥은 도데체 이 인간은 뭐지?

이렇게 흐물흐물하고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이 유형은? 이라는 질문앞에서 

어느 순간 밥 비지스가 올리브 다음 순서로 훌쩍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들, 자신의 욕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내가 그러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몹시 그러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다시 길게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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