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방
에이먼 돌런 지음, 김은지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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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때문에 고통받은 경험은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렵다.

가족은 당연한 존재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한다.

나는 당연하게 가족의 일원이고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가족의 일은 가족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가족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고 지켜주고 책임을 져야 한다.

원시시대부터 공동생활을 해온 가족의 역사는 길다.

안전을 위해,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기 위해 가족은 중요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의 사랑으로 풀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곳도 가족안에서다. 가족은 대처될 수 없고 영원하며 언제나 소중한 목록의 가장 앞에 자리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훈육하고 성인으로 길러내고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며 나중에 늙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

가족단위로 사회가 굴러간다.

가족은 세상이 변해도 쪼개지지 않은 단위이다.

남의 가족을 들여다 보지 않은 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다.

개인적인 부분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다.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 함께 살아가는 규칙 등 가족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 가족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얻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박과 통제를 느낄 수도 있다.,

더 쪼개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버릴 수 없는 존재

나와 영원히 함께 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은 안정감과 함께 공포감을 줄 수도 있다.

 

단란한 가족

가족의 행복, 가족의 날,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끈적이고 들러붙고 어찌할 수 없음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냥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참 불편할 때가 있다.

버릴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손절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내가 버려도 내가 떼어낼 수 없다.

나는 죽어서도 그 사람의 자식이거나 그 사람의 부모이고 그와 형제이고 그와 부부이다.

(부부는 그래도 남남이 될 수 있다.)

 

A는 부모와 관계를 끊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모욕적인 말들을 들어왔다.

너가 태어나서 내 인생을 망쳤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말을 엄마에게 들었고 아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는 내 아내 내 자식보다 본인의 가문 본인의 조상 본인의 친척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고 본인의 직업도 한 가문의 장손이었다.

어린 시절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스란히 엄마의 폭언을 받아냈고 아빠의 무관심을 견뎌냈다. 동생과 차별을 할 때도 몇 번 화를 내고 소리쳤지만 그때 뿐이었다.

A의 선택은 조용히 집을 나오고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도와주었고 친구 부모도 도움을 주었다.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하고 가족을 단절했다. 나를 찾지 않도록 행정처리를 했다.

그리고 혼자 산다.

언젠가 다시 가족을 만날 수도 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만나지 않고 내가 노력해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A가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돈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다.

엄마에게 그동안 키워준 돈을 돌려주고 싶다.

돌려주고 나면 서로 부채감 없이 산뜻하게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지금 단단하고 야무지게 부모와 단절하고 혼자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 저 아래에는 어떤 부채감 또는 죄책감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래도 되나 라는 마음보다 그동안 힘들었다. 견딜만큼 견뎠고 내가 받은 상처도 컸다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A는 잘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 자립하는 법을 알고 도움을 받을 줄 안다.

그가 가질 죄책감이나 용서에 대한 딜레마가 있겠지만 그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지금 안 보는 것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

언니와는 유일하게 연락을 하지만 그냥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가족의 소식을 듣는 통로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그는 부모가 자신에게 나쁜 기억만 준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고 인정받았던 부분이 있고 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마음도 안다.

그건 그거지만 내가 상처받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던 것도 치유가 쉽게 되지 않는다.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상처받지 않고 죄책감느끼지 않고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많이 풀어져서 엄마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엄마가 딸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깊이 들어주면 좋겠다.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B는 오랫동안 부친의 폭력아래서 자랐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빨리 한 것도 어쩌면 부친의 폭력때문일 수도 있다.

모친은 자식 때문에 참아왔다. 이혼을 하면 딸들이 결혼하는데 흠이 될까봐 참아왔다

그리고 늘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괜찮을 때도 있으니까 견딜만했다.

그러는 동안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고 딸들이 부친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도 봐야 했다.

딸들이 결혼하고도 부친은 기세가 등등했다.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고 욕을 하고 수시로 찾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협박을 했다.

딸들도 모친처럼 부친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이어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고 가족이어서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술을 마신 부친이 모친을 폭력하고 결국 칼을 든 일이 발생했다. 어찌어찌하여 부친은 강제입원을 했고 당분간 한숨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부친은 입원중에도 계속 딸에게 연락을 하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

돈이 필요하다. 퇴원을 하고 싶다. 병원이 너무 덥고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 아버지가 거기서 나오지만 않는다면 B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그렇게 아버지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지금 아버지를 거부하면 이후에 아버지가 나올 경우 엄마는 어쩌면 우리 자매들도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부친은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잘 달래서 살살 꼬드겨서 계속 병원에 있도록 해야한다.

부친이 죽을 때까지

은근히 B가 기다리는 것은 부친의 죽음이다.

그 마음 때문에 죄책감이 들고 무섭지만 그게 다른 모든 사람이 사는 길이다.


나는 A를  받아들이고 B를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이 필요했다. 

괜찮겠지? 와 괜찮아 사이에 내가 있었다.

가족을 버려도 괜찮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잖아 라는 말이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 설득력있게 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내 부모의 치부를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부모에게 맞았다는 말은 장난처럼 혹은 겉멋부리듯이 하는 말이 아닌 이상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 자식에게 맞았다는 말은 더욱 그렇다.

부모는 때릴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때릴 수는 없다. 세상의 윤리가 그렇고 상식이 그렇다.

그럼에도 가족이어서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때리는 부모를 쉬쉬하며 살아야 하고 때리는 남편을 때리는 자식을 그저 내탓이려니 하고 끌어안고 버텨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서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이 책은 가족을 끊어내도 된다고 말한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되도 된다고 한다.

 

 

가족은 우리가 정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친구이거나 반려동물이나 식물이거나 나의 동료이거나 누구든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가족과의 관계는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짜 관계를 말하기 어렵다.

 

가족과 멀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우리에게 사랑, 애정, 헌신, 감사. 존중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절연을 통해 마침 나는 나 자신이 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버륵. 나를 나답게 하는 열정, 부모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가치 있게 여긴 나의 개성을 사랑하게 된다.

 

미성숙한 부모가 허용하지 않는 여섯가지 감정과 행동

분노, 열정, 자발성, 상처와 상실과 변화에 따르는 슬픔과 비탄, 거리낌없는 애정, 진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 말하기

 

때로 가족은 어떻게 보이느냐가 실제 어떠냐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이 변할지 아닐지는 알 수가 없다. 학대자에게 입힐 수 있는 주된 타격은 접촉 횟수를 줄이는 일이다.

 

자기 돌봄과 자기 경계는 공생관계여서 하나에만 집중해도 다른 하나는 강화된다.

자기돌봄은 매순간의 실천이지만 우리가 언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가는지 미리 생각해보면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나는 언제 라고 하고 언제 아니요라고 하는가?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많이 미국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적극적인 행동과 자신감 행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틀린 건 아니다.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내가 나를 바꾸는 건 내가 이제부터 바뀔 거야 라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내가 뱉는 한마디 내가 하는 거절의 몸짓이나 말들 내가 스스로의 욕구를 말로 하는 것 등 어쩌면 사소하지만 사소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서 참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거절하기 힘들면 침묵하면 되고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가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의 죽음앞에서 웃더라고 그것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참 어려운 일이 내 욕구를 말하고 내 의견을 드러내고

거절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몸에 붙은 익숙함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

그냥 나만 참거나 내가 해서 편한 일이 어디 한두가지였겠는가

다 좋자고하는 일인데

괜히 분위기 망칠 것도 없고

늘 하던 걸 안하는 것도 껄끄럽고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 그냥 내가 조금 조심하면 되는 거고

어쩌면 저 사람도 저러는 것이 미안하기도 할 것 같고

뭐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자꾸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당연함으로 굳히고 있다.

 

내가 저 사람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꿀 능력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

그냥 내가 안전하고 내가 편안하고 내가 좋은 걸 하는 수 밖에

그게 싫다면 저 사람이 뭔가 액션을 할 테고 그 방식이 폭력적이라면 나는 도망칠 것이다.

저 사람에게 도망쳐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넓고도 많다.

 

가끔 늙은 부모를 걱정한다. 내가 버리면 늙어서 어디서 손가락질이나 받다가 죽을 것이고

그를 아는 주변 친구들이 우리를 욕할텐데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한국이라는 곳은 가족을 버리고 싶어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며 미적거린다.

가족을 버린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나는 저렇게까지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가족은 버리거나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함께 하는 관계이다.

누군가 이 관계로 힘들다면 떨어져도 된다.

끈끈한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면서

멀리 떨어져도 평생 안봐도 가족이라면서

그런 대책없이 국건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떨어지고 해체되는 걸 겁내는 건 모순 아닌가?

쪼개져도 가족이고 떨어져도 가족이고 다시 보지 않아도 가족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독립되어야 한다. 물론 돕고 돌보고 의존하는 존재이지만

누군가 당연히 나를 돌보는 사람, 당연히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이제 없다.

가족은 그 당연함을 그 동안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일 뿐이다.

 

미국스타일의 매끈한 전개가 좀 걸리긴 해도

가족을 몰래 말고 그냥 떼어내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나 말고 누군가가 이야기 해주고 내가 그것봐 그렇다고 하잖아 라고 맞장구를 치고 싶었다.

 

가족이란

참 어려운 관계다.

가족을 조금 더 유연하고 다양하고 주관적으로 정의하고 싶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

돌보고 싶고 돌봄을 받고 싶은 사람

나답게 살 수 있고 그 답게 사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관계

그렇다면 혈연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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