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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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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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년전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언니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한번도 호들갑을 떨거나  심하게 우울해하거나 슬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좋은 의미로 하려고 했던 거 같다,

그만큼 신뢰가 가고 일희일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사실 내 성격이 그렇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물에 물탄거 갔고 술에 술탄거 같고

어떤 일에도 쉽게 동요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와라라 입이 찢어지도록 웃은 기억도 없고 땅이 꺼지도록 꺼이꺼이 울어본 기억도 없다,

한 번은 돌아가신 아빠가 혼잣말처럼 한 말이 있었다,

"언제 한 번 확 필려나 필려나 하다가 나이 먹어가네"

뭐 그게 외모에 대한 품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일에도 크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 그게 싫지 않았다,

난 언제나 이성적이고 원칙이 있으며 분별이 있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회적 매너를 지닌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사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심한 변덕을  보이는 사람이 불편하고 싫었다,

물론 나도 변덕이 심하고 마음이 자주 바뀌는 편이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고도 잘 다스려 왔다고 믿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고 감정이란 많이 드러내지 않은 것이 세련되고 멋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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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던 거 같다,

어디 가서 욕먹거나 험담 듣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 흔한 말로 잘 되라고 하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였다,

그 덕인지 아이는 예의있고 나름 반듯하게 자랐다고 믿었다,

문제는 사춘기에 터졌다,

언제나 어른 말을 잘 듣고 순하게 자라는 초등 저학년때의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다

개구지고 말안듣는 녀석들이 간혹 섞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말 잘듣고  질서나 예의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자기주장이 나타났다,

아이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어하지 않은 동시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나를 주면 누군가도 내게 하나를 주어야 했고

실수로 타인을 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하면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함께 할 때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공평해야 하고 남의 물건을 쓸 때는 꼭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쓰거나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건  다른 아이들이 악하고 못되먹어서가 아니었다,

고의가 아닌 실수는 누구나 그냥 장난처럼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자기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못 알아차릴 때도 있고 친한 친구라면 연필 하나 펜하나 정도는 그냥 나눠 쓸 수도 있고  뭔가 일이 있으면 남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남의 물을 허락없이 입대고 마시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늘 사과받기를 원했고 허락받기를 원했다,

아이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말했다,

난 엄마가 잘 교육시켰다고 생각해 그런데 다른 집에서는 그런 교육을 하지 않나봐...

왜 모두가 예의없고 더러운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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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독서상담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감정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 감정에게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감정표현을 어떻게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은 괜찮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공부를 하며서 나는 내가 대가리만 커다란 콩나물같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아는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감정은 하찮게 여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머리로 들어와서 머리에 자리 잡은 모든 지식이나 사고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가슴으로 들어오는 감정 정서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원칙을 정하자

객관적으로 생각하자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그렇게 나는 비대칭적이고 기괴하게 머리만 크고 있었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만 크진 엄마는 결국 아이에게도 머리만 커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생각을 했었다,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감정은 어느정도 본능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본능이기때문에 억누르면 누르는대로 저 깊은 곳에 숨어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감정조차 내가 나에게 집중해서 느끼고  공간해주는 연습기간이 필요했다,

내가 내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남도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가끔 머리로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섬뜩해졌다. 내가 공감하고 있다, 존중하고 있다는 사고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

내 감정을 안다 느낀다는 것도 어쩌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

머리가 언제나 대장이 아니라는 것 머리가 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야 말로 그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요즘

이 책은 명확한 정리가 되게 해주었다,

어쩌면 알고 있는 일 나도 느끼고 있는 생각들이 언어로 정리된다,

아... 어쩌면 이것도 머리로 하는 이성적인 '생각'인가보다

나는 요즘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 그리고 타인 특히 아이들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걸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늘 익숙했던 이성이 먼저 들어오고 감정표현이 서투르고 그래서 타인의 표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뎌볼 생각이다,

조금 마음을 풀고 긴장을 풀고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내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 사랑과 욕망의 문제

흔히 사랑이라는 것 관심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관심과 사랑은 이것인데 타인이 주는 사랑과 관심은 이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책에도 있었다,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미워서 저러는 구나 하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해주는 그 나에게 버겁고 무거운 그 사랑은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걸 거부하면 내게 죄책감이 생기고 그렇다고 받아주자니 내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고 무겁다,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이라고 책은 말한다,

내가 이만큼 주니까 고마워해주길 바라고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으니까 알아주면 좋겠다는 나의 욕망일 뿐이지 타인을 위한 사랑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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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면 늘 싸우게 된다.

가족여행이라고 함께 들뜨고 출발하지만 꼭 한번 큰 소리가 나고 싸우게 된다,

별거 아닌데 사실 정말 별거 아닌데 내가 해주고 싶은 것과 바라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기왕 돈을 쓰고 나온 김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고 더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나를 가족들이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기왕 멀리 나온김에 조금이라도 더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하나를 더 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여유있게 생각지 못한 골목을 발견하고 맛있는 걸 여유있게 먹고 조금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일도 하고 싶다, 어짜피 휴가 아닌가 일이 아닌 휴식이 목적이니 쉬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른 취향과 다른 기질이 부딪친다,

각자 서로가 참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희생하고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은 너무 독재적이거나 너무 게으르다,

그래서 참다 참다 정말 엉뚱한 시점에서 터지지 말아야할 욱이 터져버리고 어색해지고 순간 여행 아니 온것만 못한 상태가 된다,

초창기에는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머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유없이 이러는 걸까

그러나 그 이유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바람이 다를 수 있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내버려두고

좋은게 좋은 거고 기왕 나온거 내가 계획한대로 하고 싶고 다른 가족은 따라주고 박수쳐주고 잘했다고 해주면 안되나? 게다가 나랑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맞는것도  외롭다는 생각도 있고.... 그렇게 욱 하고 가장은 폭발한다,

날도 덥고 힘든데 마음은  염전이다,

늘 나만 힘들고 나만 참는다, 내 선의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입장에서 아버지가 애쓴다는 건 알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뒹굴거리는 시간을 주길 바랄 뿐이다, 일정을 짜고 돌아다니고 하나라도 더 눈도장을 찍고 좋은 스폿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안해도 되는데...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그래서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상대는 아버지다, 가장이고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까 화를 내고 말안듣고 싶은 내가 나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나쁜 놈으로 나쁜 년으로 모는 아버지가 싫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내가 나쁜 놈년이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건 사랑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결국 이 다음엔 가족여행은 가지 않는게 낫겠다는 각자의 잠정적이 결심만 안고 여행은 끝이 났다, 책을 먼저 읽고 간다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

갈등은 부딫져 풀어질 수 없다면 가능한 피하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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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답고 싶다면 내 멋대로 해도 되고 내 욕구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안다 물론 잘 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함께 해야하는 존재일때는 내 욕구 내 감정은 쉽게 닫아 버리게 된다,

상식적으로 살기 위해서 교양있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나아보이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원래 감정에 흔들림 없는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드러내어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고 그냥 똑똑해보이는 것 이성적이고 담담해보이는 모습에 더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하나 일에 징징대지 말라거나  왜 그렇게 변덕스럽냐거나 너무 기분대로 하지말라는 말들

어쩌면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받는 입장에서 자잘하고 사소한 것을 좀스럽고 찌질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아닐까

그렇다고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진심은 몰라주고 왜 멋대로 해석하느냐고 하기도 뭣한게

누구나 사람은 자기 기준과 그때의 감정과 상황으로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축적된 어떤 피드백들이 감정은 되도록이면 드러내질 말것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해왔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맞춰가면서 점점 내가 원래 어떠했는지 뿔을 가지고 있었는지 뾰족한 가시가 있었는지 산만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냥 담담하고 조금 재미없는 내 성격이 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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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니다,

어쩌면 오래동안 내것인 줄 알고 가지고 있어서 이젠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성정이되었고 가장 안전한 내 은신처이기도 하다. 내 성격과 표현방법들이 말이다,

사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든가

내 성격이나 행동이 정말 맘에 안든다..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나는 내가 너무 좋다  그런 건 아니고 물론 나 스스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하는 생각 이 정도면 그래도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후회도 있고 불안도 있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집애 내어 보아도 그때 그래서 이렇게 성격이 형성되었구나. 그래서 그 사람과는 좀 불편하구나 .. 하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게 다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지 않은 탓도 있겠고 이미 지난 일 누구탓을 하면 뭐하나 싶은 것도 있고 나름 운좋게 괜찮게 살았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그럴 것이다,

<뿔을 가질 권리>를 읽으면서도 나를 생각해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받았던 겪었던 무엇도 생각하지만 그보다 나로 인해 내 아이들 혹은 주변사람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아주 썩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좋기도 하고 안맞기도 한 사람일테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상처를 입은 만큼 그 상대도 상처를 입었겠다 싶기도 하고 뭐 그랬다,

띠지에 적힌 것처럼 몇번이나 울고 내 삶의 빛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 되었다,

가장 좋은 점은 참 쉽게 조곤조곤 설명하고 알려준다는 것

조금 유치해보이는 그림들과 도표들이 이해를 쉽게 한다,

일본은 이런 책이 특화된거같다,

쉽고 별거 아닌데 읽고 나면 조금 개운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치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엔 조금 애매한 그런 책들....

 

따라서 억압당한 것을 갈등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면 충분히 의미있는 치료가 된다,

의뢰인은 '병이 나으면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야할 고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낫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하고 있을 때는 '병적인 안정'이라 할 수 있다, '병적인 안정'에서 건강한 불안정으로 옮겨가는 작업 그것이 치료의 본래 모습이다,

                                                                            26-27

 

 

지금까지 사람들은 말의 두 가지 측면을 나름대로 구분해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구분에 서툰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사적인 말을 그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거나 반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던져진 말을 자신의 사적인 필터로 받아들여 '상처입었다'거나 '심한 말을 들었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아졌다,

이런 사태는 자타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에 일어난다,  

자신과 타자가 서로 다른 내면 세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과 타자가 다른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다,

                                                                   43 

 

 

머리는 이성의 장소다

머리에서는 '해야만 한다' '해서는 안된다'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시간 공간인식에서는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나 이곳 이외의 장소를 모의 실험하는 것이 특기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 반대로 지금 이곳에 관해서는 서툴러서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 다른 머리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든 제어하려는 경향성이다,

자신의 마음이나 몸에 대해 닥쳐오는 운명에 대해 자연에 대해 등등 그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 데 소위 '욕망'은  '역구'와 달라서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머리의 제어 지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58-59

 

 

인간에게는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고 여성에게는 월경주기도 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도 기분도 이리저리 변한다, '생물'인 인간은 계절도 날씨도 나날이 변하는 관경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시계로 정한 인공적인 시간에 맞춰 규칙적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난폭한 이야기다,

                                                    80

 

 

이때 감정의 우물 뚜껑을 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분노를 말로 내뱉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한다, 뚜껑을 열고 분노를 토해내야 하지만 그걸 말로 하지 않은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원망이나 미움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 감정을 승인하는 데서 그치면 인간관계가 깨지는 문제를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이론 상으로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을 승인하는 것만으로 오래된 분노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분노를 글로 표출할 것을 권한다,  (중략0

그저 자신의 의식속에 쌓아두는 것과 글자로 자신의 외부로 꺼내 놓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노트에 쓰는 동안 자기 안에 억눌려 있던 오래된 분노와 슬픔이 넝쿨처럼 줄줄이 밖으로 나와 정리되고 정화된다, 이승을 떠돌던 혼령같던 오래된 감정이 이 작업을 통해 구원받는다,                                

                                                                 108

 

 

사랑: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

욕망; 상대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기를 강요하는 마음

 

 

 

스위스의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사랑으로 위장한 부모의 욕망만큼 아이를 왜곡시키는 것도 없다, 오히려 악의가 더 죄길이 가볍다, 사람은 자신을 향한 악의에 대해서는 거절이나 반발할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반면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가 자신에게 향할 때는 거절도 반발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ㄴ를 위해서 라고 말하며 강요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에 둔감하다, 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 생각 이면에 상대에게 감사받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감사 받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것도 역시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제어 지향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은 것이라 생각해서 한 일이니 부디 너그럽게 봐달라고도 할 수 없다,

 

               130-132

 

 

때로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했으니 그만큼 더 사랑받지 못하면 나는 이 고통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밖에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게다가 이 경우 당사자가 기대하는 사랑은 자기 생각대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희망대로 상대가 응해주는 것이며 명백히 비대화한 욕망이라는 환상이다,

이 생각을 깨기 위해 플요한 것은 '사랑의 자급자족'을 채현하는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급자족을 방해하는 요소를 성심껏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해야한다,

 

 

기다리다 지치면 사람은 어떤 상태에 묶인다, 절망을 입에 담을 때 사람들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대했지만 얻을 수 없다며 한탄하는데 그 고통은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타에 묶여 자연스럽지 못한 데서 온다, 결국 이것은 집착에서 오는 고통이다, 하지만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약간의 바람이 남아 있을 때 절망을 말한다, 만일 기다리는 대상이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만두고 다른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원망이 끊긴 절망의 모습이다, 진짜로 절망했을 때 사람은 집착을 떠나 자유로워진다, 더는 그 곳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그리고 진실로 필요한 행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

                                          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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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웃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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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가 쓴 개를 키웠던 이야기,,,

처음 개를 데려오고 첫 인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철학자와 늑대"를 떠올렸다,

그 철학자가 늑대 새끼를 데려오던 첫날 개와 다른 습성을 가진 늑대에 놀라고 당황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겐지가 데려온 건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개이다,

작가의 인상답게 큰 개를 좋아하는 겐지는 세퍼트를 비롯 여러 종류의 큰 개들을 키웠다,

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모르겠다,

워낙에 요즘은 애견인이 많고 개를 자식마냥 물고 빠는 사람들도 많아서 별로 인 경우도 많아서인지 개를 개답게 키우는 겐지가 나쁘진 않았따,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개집을 만들고 개가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굳이 집에서는 목줄을 하지 않고 사람과 공간을 분리하는 일 등등은 좋았다,

개에게는 사람처럼이 아니라 개처럼.. 그게 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개의 습성이나 본능을 인정해주는 거 같았다, 인간에게 인품이 있고 인성이 있듯 개에게는 견품이 있고 견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거 같달까 뭐,,

그런데 자꾸 읽어가면 꼬장꼬장한 중년 사내가 개를 쉽게 기르고 쉽게 싫증내는 게 아닌사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소하게 꼬투리를 잡고 까탈스럽게 굴면서 쉽게 남에게 주고 쉽게 죽었다고 말하는 게 불편했다,

개에 비유해서 사람을 판단하거나 자기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사람의 개성이거나  어떤 특성으로 보긴 하지만 본인은 본인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너무 나만 옳다는 입장에서 내가 가진 견고한 틀로만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생각?

그리고 개를 키우면서 점점 그 틀이 더 견고해진달까? 더 집착하게 된달까

처음에 '철학자와 늑대'와 비교한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 철학자는 늑대를 키우면서 인간에 대한 시선이 넓어지고 세상에 대해 안목을 키웠는데.. 겐지씨는 점점 고착되고 좁아지는 것 같다,

음. 어쩌면 나랑 맞지 않은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말 다정한 말을 못하는 무뚝뚝하고 괴팍한 성격이라서... 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조금 불편하다,

겐지씨가 자기가 길렀던 개들을 하나하나 품평하고 불평하고 뒷담화를 하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알았다고 고백도 하지만...

문득 그 개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겐지씨가 어땠어?

주인으로써? 함께 살아온 동료로써?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게 더 궁금해졌다,

 

내가 절대 가까이 하거나 키울 수 없는 다양한 개를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는 건 좋았지만,,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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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대부분 이 책에 대해 평이 안 좋네요. 마루야마 견지는 사람이 그런걸 어쩌겠어요? 저는 적어도 거짓은 없다는 점에서 견지가 밉진 않더라구요 ^^

푸른희망 2016-08-09 11:51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 밉다기 보다 함께 있으면 조금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시이소오님 서재에서 보고 궁금해서 읽었어요.. 이 책은 별로였지만 겐지에 대해선 궁금해졌으니 나쁘다고만 할 순 없네요. 늦었지마나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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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강박증이 있다,

어딘가 외출하기전 집안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반질반질하게 살림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일찍 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괜히 좀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 날따라 꿈지럭 거리는 가족들이 너무 미워서 미치겠고

먹지도 말고 얼른 얼른 후딱 후딱 모두 나가버렸으면 좋겠고 그렇다,

그 이외에도 뭔가를 해야할 때 내가 생각했던대로 딱딱 맞아지지 않으면 너무너무 화가 났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고 각자가 리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한 리듬과 속도가 어긋나면 화가 나고 불안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물론 늘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게 어긋나면 혼자 불안해서 아예 시작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고쳐야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의 리듬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라 수 없다는 건 머릿속에서 충분히 충분히 스며들만큼 알지만 늘 그런 상황에 닥치면 화가 났다

누구에게도 표현 못하고 혼자 뚱해있거나 저 멀리 혼자 딴 나라에 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랬다,

 

최정화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나와 다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터뜨리기엔 아직 미진하고 너무나 주관적인데다 인물들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터드리도 못한다,

그렇게 내 뜻대로 되어가야한다는 강박과 제대로 되지 않은 불안이 점점 어긋나면서 결국은 터져나오는데 그게 참 찌질하다,

그저 바뀐 구두하나로 타인을 판단해버리거나(구두) 내 발에 박힌 유리조각조차 짜릿함으로 착각하고 (팜비치)

두꺼운 파란책의 하이데거로 내 삶이 바뀌리라 믿는 것 (파란책) 상대의 표정에 따라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해버리는 일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  건강염려에서 윌빙과 삶의 질에 집착해버리는 일 (오가닉 코튼 베이브) 그리고 딸에게 닦친 상황으르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타투)까지 모든 인물들은 꿩처럼 머리만 풀더미 속에 들이밀고 모른 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거라고 믿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가다가 어느 순간 뚝 하고 끊어진다,

모든 불안의 원인이 어쩌면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주보지 못하고 미루어짐작하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구두를 신고가 그 도우미는 내 삶을 부러워했다고 믿어버리고  발바닥에 유리가 박힌 그 사내는 내 가족이 내 가족이 아닌거 같은 고립감을 애써 모른 척한다, 웰빙과 유기농만이 내 삶을 구원할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고  나를 무시했던 그 작가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대신  사소한 상대의 반응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하는 행동따위가 회피의 모습이다,

그 회피의 최절정은 타투의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딸에게 생긴 충격적인 사건을  직면하지 못하고  그 직면하지 못함을 자꾸자꾸 이유을 찾는다,

딸아이의 친구들 딸아이의 소지품 게다가 예전에 떠난 아내까지 그러다 그 이유를 타투에서 찾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기는 타자로 빠져버린다, 이런 뭐만도 못한 놈을 보았나...

어쩌면 파란책에 빠진 그 여자는 자기가 직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가장 귀여운 존재인거 같다,

 

불안을 직면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모습이 남의 모습만은 아니다,

누군가 나 대신 책임을 질 대상을 찾아내고 싶고 누군가 나타나면 혼자 안도하게 되는 것

그것이 그 사람 탓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눈감아 버리는 순간 모든 최정화의 단막들처럼 이야기는 뚝뚝 잘라먹어버리는 꼴이 된다,

그러나 삶에서 그렇게 잘라먹어버리고 미뤄놓은 부분이 꼭 어떤 모퉁이에서 드러난다,

그걸 마주하거나 혹은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거 같거나,,

 

소설속에서 나는 나의 여러가지 모습을 본다,

누군가 가해자가 있어야 할거 같은 강박

뭔가 내 삶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남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강박

계획대로 되어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유없는 분노들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고 교양있게 행동하는 참 속이 텅텅 비어있는 나까지....

가장 최고는 하나하나 단편을 읽으면서 짐짓 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인냥

킬킬거리고 한숨 쉬고 아쉬워하면서 우아하게 책장을 넘기는 내 모습잉다,

그냥 나도 지극히 내성적으로 모른 척 아닌 척 하고 있는 중이다,

 

꼭 딸아이들 행동에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같은....

막 화내고 싶지만 그게 바로 내 모습이라 화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그 갈팡질팡하면서 혼자 분노 게이지만 올리고 있는.. 딱 그순간이

이 책을 읽는 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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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출하기 전에 얼굴, 옷차림새를 거울을 보면서 확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곳, 예를 들면 코털이 삐져나왔다거나 머리에 왁스를 발랐는데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경 쓰다 보면 십 분 이상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이런 습관 때문에 지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

푸른희망 2016-07-11 15:46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며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었죠
님도 그러시군요^^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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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을 읽고 '삼행인'을 읽은 후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냥 읽어내려갈 게 아니라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어야 할 거 같았고 이렇게 시작이 좋은데 뒤의 작품들이 실망을 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결국 모든 작품이 다 좋았다고 미리 고백한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벽들이나 내가 어쩌지 못하는 순간들이 결국은 내가 선택하고  저질렀던 나의 어떤 행동들의 결과일까 아니면 어쩌지 못하는 운명탓일까?

사실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어디든 도망갈 길을 만들어주고 남탓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세상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운명도 잇는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 싫었다.

그 운명조차 당신이 선택한 거라고 면전에서 박아주지는 못했지만  내 속내는 변명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물론 세상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와 제도적인 한계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사회 통념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운명이라는 말이 싫었다,

제도 역시 사람의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봄밤을 읽으며 역시 생각했다,

영경과 수환 역시 본인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상황을 만났더라면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거라고 믿었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내몸을 그렇게 망가뜨리는 지경까지 가지 않을 선택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삼인행에서는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어떤 우연도 운명도 결국 그 이전 내가 무심코 했던 선택의 결과지일 뿐이야

정훈과 규와 주란의 여행이 다른 색깔일 수 있고 그 이전 그들의 관계가 그렇게 날선 모습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이미 감추지 않아도 다 드러남에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모'를 읽으며 조금 흔들렸다,

어쩌지 못하는 것

내가 그렇게 선택하도록 내가 마주치도록 하는 내 성격적인 약함에 약간의 운명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같은 상황을 마주친다고 해도 제각각의 선택이 다를진대 내가 그렇게 선택했음은 내 셩격의 문제라고 한다면 내 성격을 그렇게 규정하게 된 상황에  내 선택들의 집합이기도 하지만 어떤 환경 어떤 운명 내가 어쩔 수 없음이 기인하는 건 아닐까

운명에 끌려 살다가 죽기 마지막 몇년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며 자유를 누렸던 이모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그 어린 조카 며느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그리고 그게 운명이든 선택이든 잘 버텨왔다고 해주고 그렇다고 계속 또 버텨야 할 이유도 없다고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 옳은거라고 말해줄 수밖에

나는 제 3자이므로...

 

'카메라'는 운명이라는 것에 관한 한편의 시같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힘이 강해서사람의 살은 조금은 일그러뜨렸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오해를 하고 누군가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니 다들 조금씩 오해를 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으나 결국 스스로를 미워한다,

모두가 윤동주처럼 죄책감을 느끼고 늘 참회하며 살 수는 없는데

우리는 나도 모르게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결론을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뒤끝이 나를 향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누구도 탓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는 일

결국은 내가 못난 탓이거나 나쁜 탓이라고...

그건 그냥 그렇게 만든 신의 탓이라고 해야함에도 신은 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나만 남을 때가 있다,

카메라는 결국 돌고돌아 주인 손에 왔지만 그 동안 서로가 탓하고 탓했을 시간은 결국 고스란히 남았다. 가끔 아니 대부분 내가 아픈 게 누군가가 아픈게 내 탓이 아니다.

 

"역광'과 '실내화 한켤레'를 읽으며 결국 내 생각으로 돌아왔다,

어떤 운명이든 그 순간 내가 한 선택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커피잔에 소주를 넣어 마셔야 하는  순간도 내가 정하는 것이고

학교 현관앞에서 실내화 한켤레처럼 덩그러니 남아버려야 하는 순간을 견디는 것도 내가 물어보지 못한  혹은 주저하고 말았던 소심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거야? 왜 그러는데?

그런 질문이 내 목구멍으로 쑥 도로 들어가는 순간, 역시 그럴 수 밖에 없는 분위기나 상황을 알더라도 속으로 삼킨 건 나였으니까

'층'은 영화같다,

계속 엇갈리는 운명의 남녀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어떤 오해들이 모이고 모여서 틈을 만들고 그 틈이 뭐냐고 서로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모른 척 하다가 점점 벌어지고 순간 미움이 쌓이고 오해가 두꺼워지는 이야기들

커다란 기둥뒤에 각각 서 있는 남녀가 그 기둥을 돌면 바로 연인이 보일텐데 그저 기둥앞에 하염없이 서 있거나 혹시나 하고 돌아보는 순간 상대도 함께 돌아  지구를 도는 달처럼 서로를 어긋나게 하는 그런 처연함이 있었다,

순간의 한마디.. 전체의 흐름을 알려주지 않는 한마디의 쌍소리나 한번의 무심함이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든다,

역시 물어보면 된다,

무슨 일이 잇어요?

그러나 둘 다 미루어 짐작하고 결정하고 묵혀버린다,

화가 나고 불쾌하지만 드러내지 않게 쿨하게 넘어가거나 먀낭 기다리며 우연을 바란다,

그래 운명을 믿고 우연을 기다리는 그에게 혹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내 결정에 전적으로 믿어버린 그녀에게 뭐라할  수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편들은 제각각의 관계들이 나온다,

사람이란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 관계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틈이 생긱도 운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설에서 씌여진 호모 파티엔스 라는 것

고통을 하는 사람.. 혹은 견디는 사람  그 견딤이 어쩔 수 없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내가 스스로 견디기로 결정해버린 사람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그 견딤 역시 우리가 혼자가 아니므로 생기는 게 아닐까 했다.

혼자가 아닌 존재가 혼자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혹은 혼자 일수 없는 상황은 언제나 견뎌야 하는 것이고 그 견딤이 나의 선택인가 운명인가는 늘 아리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어쩔 수 없었어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내 탓은 아니잖아요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요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더 중요한 진실의 얼굴을, 즉 인생에서는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어떤 파열이 발생하며 그것은 늘 돌이킬 수 없게 된 뒤에야 발견된다는 것,,,

 

옳은 말은 관찰자가 하는 것이지 희생자/ 피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희생자/ 피해자는 거기 빠져 죽은 사람이 왜 하필 내 자식이어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생각할 여력도 아량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단지 저주받아 마땅하나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말들이 다 위선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운명이냐 선택이냐에 따라 닥친 고통의 무게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엿같은 구분따위와는 상관없이 아픈건 아픈것이고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것이고 소리치고 싶은 건 소리쳐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티켓이 있고 인간적이고  쿨한 우리들은 그저 넘긴다,

그냥 넘긴다고 믿는 그 순간 우리는 견디고 참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것도 그냥 견디는 순간이다,

잊음으로서 견디는 것이고 그냥 넘기면서 견디고 있다,

그렇게 익숙해지면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알 수 없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모르는 것은 저 우주의 신비가 아니라 바로 숨쉬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내 선택이라고 견디는 일

그것이 결국 살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술이 필요하다,

 

이 소설은 바이~ 주정뱅이가 아니고 헬로우~ 주정뱅이다,

안녕 주정뱅이

결국 술이구나... 나를 위로하는 건..

쓸쓸한데 실실 웃음이 나오는게 이 한권의 소설집에 내가 취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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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빵굽는타자기를 읽었다면 굳이 읽지않아도....이인칭 시점도 좋았고 1부 내면보고서의 유년기는 흥미롭지만 의미는 있겠지만 긴 영화이야기와 편지들은...글쎄
너무 쉽게 책을 썼다는 생각 그는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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