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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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강박증이 있다,

어딘가 외출하기전 집안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반질반질하게 살림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일찍 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괜히 좀 더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 날따라 꿈지럭 거리는 가족들이 너무 미워서 미치겠고

먹지도 말고 얼른 얼른 후딱 후딱 모두 나가버렸으면 좋겠고 그렇다,

그 이외에도 뭔가를 해야할 때 내가 생각했던대로 딱딱 맞아지지 않으면 너무너무 화가 났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고 각자가 리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한 리듬과 속도가 어긋나면 화가 나고 불안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물론 늘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게 어긋나면 혼자 불안해서 아예 시작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고쳐야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의 리듬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라 수 없다는 건 머릿속에서 충분히 충분히 스며들만큼 알지만 늘 그런 상황에 닥치면 화가 났다

누구에게도 표현 못하고 혼자 뚱해있거나 저 멀리 혼자 딴 나라에 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랬다,

 

최정화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나와 다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터뜨리기엔 아직 미진하고 너무나 주관적인데다 인물들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터드리도 못한다,

그렇게 내 뜻대로 되어가야한다는 강박과 제대로 되지 않은 불안이 점점 어긋나면서 결국은 터져나오는데 그게 참 찌질하다,

그저 바뀐 구두하나로 타인을 판단해버리거나(구두) 내 발에 박힌 유리조각조차 짜릿함으로 착각하고 (팜비치)

두꺼운 파란책의 하이데거로 내 삶이 바뀌리라 믿는 것 (파란책) 상대의 표정에 따라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해버리는 일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  건강염려에서 윌빙과 삶의 질에 집착해버리는 일 (오가닉 코튼 베이브) 그리고 딸에게 닦친 상황으르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타투)까지 모든 인물들은 꿩처럼 머리만 풀더미 속에 들이밀고 모른 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거라고 믿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가다가 어느 순간 뚝 하고 끊어진다,

모든 불안의 원인이 어쩌면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주보지 못하고 미루어짐작하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구두를 신고가 그 도우미는 내 삶을 부러워했다고 믿어버리고  발바닥에 유리가 박힌 그 사내는 내 가족이 내 가족이 아닌거 같은 고립감을 애써 모른 척한다, 웰빙과 유기농만이 내 삶을 구원할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고  나를 무시했던 그 작가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대신  사소한 상대의 반응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하는 행동따위가 회피의 모습이다,

그 회피의 최절정은 타투의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딸에게 생긴 충격적인 사건을  직면하지 못하고  그 직면하지 못함을 자꾸자꾸 이유을 찾는다,

딸아이의 친구들 딸아이의 소지품 게다가 예전에 떠난 아내까지 그러다 그 이유를 타투에서 찾으며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기는 타자로 빠져버린다, 이런 뭐만도 못한 놈을 보았나...

어쩌면 파란책에 빠진 그 여자는 자기가 직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가장 귀여운 존재인거 같다,

 

불안을 직면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모습이 남의 모습만은 아니다,

누군가 나 대신 책임을 질 대상을 찾아내고 싶고 누군가 나타나면 혼자 안도하게 되는 것

그것이 그 사람 탓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눈감아 버리는 순간 모든 최정화의 단막들처럼 이야기는 뚝뚝 잘라먹어버리는 꼴이 된다,

그러나 삶에서 그렇게 잘라먹어버리고 미뤄놓은 부분이 꼭 어떤 모퉁이에서 드러난다,

그걸 마주하거나 혹은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거 같거나,,

 

소설속에서 나는 나의 여러가지 모습을 본다,

누군가 가해자가 있어야 할거 같은 강박

뭔가 내 삶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남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강박

계획대로 되어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유없는 분노들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 드러내지 않고 교양있게 행동하는 참 속이 텅텅 비어있는 나까지....

가장 최고는 하나하나 단편을 읽으면서 짐짓 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인냥

킬킬거리고 한숨 쉬고 아쉬워하면서 우아하게 책장을 넘기는 내 모습잉다,

그냥 나도 지극히 내성적으로 모른 척 아닌 척 하고 있는 중이다,

 

꼭 딸아이들 행동에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같은....

막 화내고 싶지만 그게 바로 내 모습이라 화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그 갈팡질팡하면서 혼자 분노 게이지만 올리고 있는.. 딱 그순간이

이 책을 읽는 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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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출하기 전에 얼굴, 옷차림새를 거울을 보면서 확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곳, 예를 들면 코털이 삐져나왔다거나 머리에 왁스를 발랐는데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경 쓰다 보면 십 분 이상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이런 습관 때문에 지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

푸른희망 2016-07-11 15:46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며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었죠
님도 그러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