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벽난로에 산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3
애너벨 피처 지음, 김선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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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읽는 내내 제임스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의 부모였기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제임스가족과 같은 불행을 당하지않은 행운아여서일까 모르겠다.

 가족의 삶을 뒤바꾸는 어떤 불행이 닥쳤다고 해서 그렇게 내 삶을 내팽겨 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어서 불편했다.

알콜중독으로 빠져버리고 남탓을 하며 생활과 가정을 내팽겨쳐버리는 아빠가 그냥 계속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미웠다.

내 감정은 책을 읽으며 계속 제임스만을 따라가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가족내에 불행한 일을 겪으면 가족이 해채된다는 것 속된 말로 풍지박산이 된다는 게 어떤건지 절절하게 보여준 가족이었다.

가장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 아이를 잃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동시에 어떤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누군가를 탓해야하는데 그 대상마저 모호하다. 그럴때 가족들을 그 화살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돌린다.

아빠는 엄마를 탓했다. 왜 그때 그 곳으로 가자고 했고 왜 아이를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렇게 아이를 불렀는데도  모른척 내버려두었느냐고...

엄마는 스스로의 죄의식과 함께 쏟아지는 비난을 견딜 수 없어서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어쩌면 내 한몸 건사하기 힘들고 지쳐서 남은 가족이 남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지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왜 내가 아니라 그 아이였나 

기억을 하는 아이는 혼자 살았음이 죄스럽다. 왜 내가 아니고 그 아이였나.. 그건 평생을 따라다닐 트라우마가 된다.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꼬마에게는 모든 것이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누이 하나 죽었다고 해서 가족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기억조차 희미한 그 누나가 온 집안을 지배한다. 이제는 유골함에 들어가 있는 몇개의 뼈조각으로 남은 누나가 집안의 중심이라는것은 꼬마는 절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가족이라는 것이 붕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두가 손을 탁 놓기만 하면 그대로 스르르 무너져버리는 약하디 약한 공동체가 가족이었다.

 

2. 애도의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지만 나와 다른 애도방법을 가진 타인을 보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얼마전 읽은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애서도 애도와 비탄이 언급된다.

  반즈는 세련되게 그 애도와 비탄을 이야기한다. 하늘을 나는 기구의 이야기에 빗대어 세상을 함께 나눈 가족 반려자를 잃은 그 심정을 절절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남에게 위로하는 것이 힘든 이유이다,

나의 진심이 상대에게 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나의 방식과 상대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서로 통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이야기 속의 아버지의 애도는 정말 이해불가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절절히 제임스가 와 닿았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너에게는 책임져야할 두명의 아이가 남지 않았느냐고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 아빠가 로즈를 특별히 더 사랑해서였을까

더 영리하고 장난꾸러기이며 눈빛이 빛나던 거 아이를 더 예뻐했던 거였을까

아닐것이다. 로즈가 살아있는 동안은 누군가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즈의 빈자리가 더 커진 것이다.

이미 없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잘 해준 기억보다 못해준 기억이 더 남아 있을 수 있다.

이제 겨우 열살이 되어 죽어버린 아이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몇조각의 뼈로 남은 아이가 가엾고 안타까운 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다시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할 아이가 둘이나 남아있질 않은가

그는 소리없이 소리친다.

너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라. 더이상 바라지 말라.

그건 남은 아이들에게 정말 잔인한 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의 애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동시에 모두에게 이해받는 애도라는 것만  좋은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를 떠난 가족도 있지만 아빠의 애도는 누구보다 절절했고 진심이었음을 .. 그리고 많이 아팠다는 사실을 책을 읽는 중간중간 발견하지만 그래도 아빠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싫었다.

 

3. 제임스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무엇을 입고 있건 어떤 행동을 하건 아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가 보는 아빠는 늘 로즈 누나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아빠이다.

  직장도 집안일도  아무 상관없고 그래서 엄마를 쫓아내버린 아빠였다.

학교에서도 제임스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유일하게 제임스를 알아봐 준 슈나는 모슬렘이었다.

아빠가 악으로 규정한 존재.

누나를 죽인 존재.

어쩌면 집안 침실에서 폭탄을 제거하고 남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남의 나라에 기생하여 살면서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

제임스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모슬렘이란 그런 거였다.

절대 말도 해서는 안되고  마주보아서도 안되니 친구란건  절대 사절이다.

그런 슈나가 짝이 되었고 번번히 제임스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웃어주고 말을 해준다.

열살인 제임스는 아버지의  말과 현실의 슈냐앞에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로즈가 죽고 처음으로 자기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제임스에게는 넘치게 좋은 사람이었던 셈이다.

 

4 텔렌트 쇼에 나가고 난뒤 제임스는 처음으로 엄마를 만난다.

  늘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엄마

  엄마를 기다리며 빨지 않고 계속 입었더 스파이더맨 티셔츠를 드러내 보이지만 엄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말미에 드러난 진실

사실 엄마는 아빠를 못견디고  간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빠의 원망을 핑계삼아 스스로 집에서 도망간 것이었다.

어쩌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술의 나날을 보내는 아빠보다 더 무책임하고 나약한 사람이 엄마였다.

간혹 현실을 마주하면 차라리 용기가 생기고 살아갈 힘이 생길 때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제임스는 포기와 함께 미련도 버린다.

그리고 고양이의 죽음앞에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고 난 후 조금은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  남의 처지를 알게 된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진실이고 가장 아픈 배움이다.

서로를 알게 되면 더 이상 마법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살아갈 힘은 얻게 된다.

제임스와 재스민과 아빠는 이제 함께 앉아 티비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따뜻한 밥상이 아닌 패스트 푸드나 냉동음식에 멍하니 화면만 쳐다보는 삭막한 풍경일 지언정 이제 가족은 모여있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5 9.11이 준  깨달음 중 하나가 테러라는 것이 전쟁터나 위기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란다. 저 멀리 중동지역 분쟁이나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평화로운 미국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불안을 주게 된 사건이라고 들었다.

이제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은 누군가 원망하고 미워할 대상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 미움이 그리고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모든 일들의 인과관계를 살펴볼 겨를도 여유도 없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내게 피해를 주었다고 믿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분풀이 한다.

미국의 사건이 그리고 영국의 사건이 미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슬렘이었다.

그들의 피부색 옷차림 종교는 이제 악의 축이 되었고 그들에 대한 공격은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제임스의 아빠도 딸을 잃은 슬픔을 이성적으로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당장 눈앞에 있는 모슬렘에게 모든 원망을 던지면서 하루하루를 산다. 남을 원망하는 힘으로 살아간다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었지만 제임스는 어렴풋하게 아빠를 이해하게된다.

아빠도 이렇게 아팠겠구나. 이렇게 슬프고 미안했겠구나...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젠 알 수 있다.

저럴 수도 있구나...

 

마지막 숨은 주인공 재스민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나는 더 이상 로즈랑 똑같을 수 없다.

아무도 몰랐던 로즈의 비밀을 바램을 이제 혼자 스스로 해낸다.

나는 로즈가 아니다 재스민이다

이제 제스민으로 살것이다..

그 아이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았어도 혼자 성장했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고 잊고 있는 사이에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남은 남매에게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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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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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촌에서 자랐는데요.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 한 마리만 팔아도 그 어미 소가 밤새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시끄럽다거나 하지 않고, 다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입니다.”

              - 김제동 -

 

 

저 말을 처음 인터넷으로 접하고는 역시.. 김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나서 저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의 기한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가 죽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이 비탄하고 애도하는 기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는 너무 질질끈다 싶을 수도 있고 너무 매정한게 아닌가 싶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서는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도 내내 절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절절함이 겉으로 드러나 도저히 일상을 견디기 힘든 사람도 있다.

 

책을 시작하면서 도데체 이건 무선 이야기를 하려는건가 싶었다.

내가 들은 첵 소개로는 저자가 아내가 죽고 난 뒤의 감정을 거의 5년이 지난 뒤에 써낸 최초의 작품이라는데..  엉뚱하게 기구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로 올라가는 기구

내가 사는 곳을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되는 도구

내가 발을 딛고 선 그 곳을 또다른 높에에서 바라보는 도구

하늘로 올라갈 때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발란스를 떨어뜨리고 가스를 조정하고 아래 무엇이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내 멋대로 할 수 잇는 일과 되지 않은 일 어떤 것이 더 많을까?

 

기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기구에 탔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꾸역꾸역 읽으면서  어디서 죽음이 ... 이별이 나오는지 기다렸다.

드디어 세번째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이야기는 연결된다.

애도와 비탄은 내가 내 감정이 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서고 사실 엄마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뜰한 부부도 아니었고  지독한 시집살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철철이 돌아오는 제사와 행사들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떠나 본 부부여행등등 내 기억으로는 아빠는 엄마의 그리운 그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암치료때 아빠가 보여준 이기적인 건강욕심과 그 후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가족사랑 (자기 친가쪽의0 그리고 마지막 재발과 악화로 인한 고생등등

어쩌면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이제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제 자유로울수 있는 거 아닐까

엄마도 이미 70을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조금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매일매일 우셨다.

삼일장동안도  너무 미망인답지 않게 말도 잘하시고 손님도 잘 챙겼던 분이 모든 일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순간 그렇게 낯설게 울기만 하셨다.

창밖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텔레비젼을 보아도 울음만 나고 남은 감정은 미안하고 아쉬운거밖에 없다는 말이... 사실  나는 몹시 낯설었다.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문득문득 밀려드는 감정에 무릎이 꺽이고 목이 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었고 애증을 나눈 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애정을 받은 사이였으니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 계신 분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늘 마지막은 울음이고 나도 곧 죽고 싶다는 말뿐이고 자식은 다 소용없다는 말뿐이어써 그 전화조차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사람인... 두개의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어쩌면 두 분은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우리가 둘이어서 이렇게 존재하는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책장을 덮으며 너무나 무지하고 단순하고 멍청한 나에게 조용히 욕해줬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 아는 게 늘어나면 무엇하나...

눈뜬 장님이고  속빈 강정이고 헛똑똑인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지르우니 우리네 정이라고 하자

정이란 놈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운만큼 원망이 컸던 만큼 애도의 기간이 탄식의 기간이 길어지리라...

자식들 자 짝지워놓으면 다 자리잡으면 이혼할거라고 다짐했던 엄마는 결국 그 때가 오자 암에 걸린 아빠를 덜컥 맞게 되고 그렇게 다시 자유를 꺽고 15년을 사셨다

그 애도의 깊이를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 뿐일것이다.

어쩌면 엄마도 내성적이고 수줍은 아빠를 이미 나보다 먼저 알아봤을 것이고

미워하고 미워하며 쌓은 정 사이에  더 어찌 할 수 없는 애정이 켜켜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저 바다 건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 중늙은이 작가의 절절한 글에서

나는 내 엄마를 본다.

 

 

 

그리고 이제 떼를 그만쓰라고 헛소리하는 그들이 이 절절하고 아픈 애도의 마음을 알기나 할지 ..

그들에게 읽어보라고 .. 이해좀 해보라고 한들....

우리 반스씨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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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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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무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마음 깊이 눌려져서 삭히고 또 삭혀서 이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믿는 순간 그 비밀은 이제 두껑만 열면 폭발해버릴만한 무시무시한 상태가 되어있다.

마음에 눌러놓은 비밀은 그렇게 저 혼자 익어가고 형태픞 바꾸어가며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처음엔 사소하고 작았을 무언가가 비밀로 봉해져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 자란다.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도 한다지만 (코난에서)  사람을 눌러버리는 무시무시한 힘도 가진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편하게 기억을 만들어 지닌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나중 진술이 제각각이라는 건 어디서나 알 수 있다.

그 제각각의 기억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고 내가 피해받지 않을 어떤 방어기제로 내 속에 형성되어 간직된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나를 어루어만져주고 따뜻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수빈은 신문에 80년대 유년기의 추억을 칼럼으로 개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가족이 함께 오글거리며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연재한다.

단칸방. 연탄 아궁이 공동 화장실 부업  골목길과 구멍가게등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추억을 재생산한다. 어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빈의 추억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던 지금의 남자친구 수돌과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의 소재를 더 얻고자 SNS에 그때의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하나 둘씩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기억은 제각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된다. 내가 알 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하얗게 지워지고 내가 유리한대로 내가 본것조차 각색되어 기억된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과 그 기억들이 뒤섞이면서 두렵고 괴이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 기억과 비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어릴적 추억이라는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수빈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꺼집어 낸것이겠지만 그 때의 일들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정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퍼즐조각처럼 이어지면서 그때 그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라일락 하우스의 실체는 음습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절대로 되살려야할 그 때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지워 절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철없던 수빈에게 그 집은 즐겁고 좋았던 사람들의 공동공간이었고

수돌에게는 눌러서 절대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야 할 악몽같은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껀 잡아 편하게 살꺼리를 마련할 로또같은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함께 가진 기억조차 이렇게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악은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만이 악이고 공포가 아니다.

타인은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내게는 지옥같고 벗어나고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악이고 공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내 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악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존재다.

덮어버린 악은 비밀의 이름으로 혼자 자라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타인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일상속에 태연하게 자리잡은.. 그 까짓거... 하는 사소함이 더 무섭다.

 

라일락이 붉게 피던 그 집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 집은  집일 뿐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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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영원의 아이 - 전2권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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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넌 괜찮은 사람이야

니 잘못이 아니야

넌 착한 아이야.

괜찮아. 다시 하면 돼

한 번 더 기회가 있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하는 말들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자라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너무나 듣고 싶은 말과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수 밖에 없는가..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일본의 특수성이니까.. 일본이라는 민족성이 특이하니까

하고 치부하기엔 지금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괴물이 나온다.

학교에도 있고 군대에도 있고 심지어 직장에도 거리에도 있다.

그들은 얼굴에 괴물이라고 쓰여있지 않다.

누가 말했듯이 악은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고 괴물도 우리와 닮은 꼴이며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일 수도 있다.

책에 나온 세명의 아이도 사랑이 필요했고 니 잘못이 아니야 하고 어렵게 꺼집어 낸 말에 귀를 열어주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혹자는 말했다. 굳이 부모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병원의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없었을까?

그러나 한번 마음이 닫히고 모든것이 내 탓이라고 결정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여자라서인지 딸을 키워서인지 모울이나 지라프의 일보다 유키의 일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가 모두 내 잘못이며 나하나 입다물면 사랑하는 가족이 편안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현실을 마주 할 수 없어 거짓을 만들고 거짓은 비밀을 만들고 또 비밀이 거짓을 낳고 그러는동안 사실은 현실은 점점 사라진다. 일단 마주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프다는 것도 잘 안다.

용기를 내어 사실을 말해. 현실을 봐..

말은 쉽지만 그게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정말 있다.

그걸 알아서 유키가 아프고 지라프나 모울이 안타까웠다.

세심한 묘사와 설명에 조금 지루한 감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회탓이야. 가정이 문제야.. 라고 하지 않는 작은 울림이 좋았다.

사회와 가족은 서로탓하기 바쁘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으면 그런 괴물은 사회에 나온지도 않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가족에서 벗어나도 안심할 수 있는 거잖아..

누구탓인가.. 결국 모두의 탓이다.

가족이든 사회든 제몸에 묻은 허물은 보지 못한다.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주자는  생각이상으로 어쩌면 어른이 되어도 저 말들을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 퍼뜩든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아니라고 비밀과 거짓말로 살아가는  나이먹어버린 아이도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니 잘못은 아니라고지금이라도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가

그리고 조금 기다려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막막한 지금 책을 읽고 더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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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통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위와 같은 인용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  폴의 아빠는 아틸라 마르셀이고 폴을 치유해주는 부인이 프루스트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고  폴이 과거의 기억을  꺼집어 내는 낚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차와 마들렌이다.

들은 풍월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멋진 오마주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폴은 쌍둥이같이 닮은 두명의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젊은 연주가상  대회에 늘 내보내지만 이제 서른 두살 그 대회 자격이 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폴은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말을 잃었고 (간혹 말을 하기는 했다) 그저 이모들의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우연히 알게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마담을 만나 독한 차와 마들렌으로 순간 정신을 잃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수면아래에 꼭꼭 넣어두었던 기억을 하나 둘 기억해낸다.

폴이 프루스트 부인을 만나기전 두 이모와 노신사들의 대사에서 얼핏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확실하진 않지만 부모의 죽음을 그렇게 묻어두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지만 지금 현재 어떤 문제도 없으니 굳이 꺼집어 내어 상처가 될 지 모를 문제는 묻어두자고 두 이모는 말한다.

그래서 조금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 평화롭게 살던 폴이었지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자기의 기억속에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모습 그리고 어렴풋한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행 기억앞에서 폴은 흐느껴 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걸 마주하는 것은 몹시 힘들기때문에 누구나 가능하면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지금 이순간 직면하지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어쩌면 마주하기 두려워서 속에 꾸역꾸역 눌러담아두기때문에 쉽게 딱지가 앉지 않고 늘 짓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눌러진 상처나 외면하는 과거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모르기때문에 지금이 편안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나의 온전한 삶이 아닌지도 모른다. 폴처럼 자기의 과거를 모르고 기억을 알지 못해서 늘 무기력하고 어딘가 비어버린 모습이다.

영화에서 폴의 과거는 뮤지컬처럼 경쾌하고 예쁜 색감으로 표현된다.

갓 태어난 폴에게 각자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담아 미래를 예언하고 소원하는 이모들이나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할거라고 한다.

좀 더 자라 해변에서 엄마는 부모에게 강요받은 피아노 대신 다른 삶을 살거라고 하며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불안한 개구리들의 연주와 합창은 아빠와 엄마를 오해하게도 하지만 그것도 폴의 기억이고 과거의 한 부분이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폴의 과거는 꼭 인도영화처럼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며 행복하고 아름답다. 음악도 좋지만 나는 그 색감이 끝내준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억을 찾고 콩쿨에서 멋지게 연주도 해낸 폴은 마지막 프루스트 부인이 떠나기전 남겨준 차를 먹고  이모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는 않지만 폴은 행복하다.

새롭게 알게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자기를 사랑했는지를 알고 꽤 괜찮은 아빠가 된다.

 

꾸역꾸역 눌러담아놓은 기억은 치유가 될 수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나의 내면을 직면하라고 한다. 심리치유가 별것 아니다 내가 나를 용기있게 마주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면 된다,.

과거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나를 돌아보고 마주하면 더이상 그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바라봐 주고 모듬어주고 나면 현재를 살아갈 힘도 생긴다.

상담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보고 그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면서 눌렸던 억압을 해소하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나는 과거를 사는게 아니고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나서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건강하게 살아내야하는게 더 중요한 거라 믿는다.

폴도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고 이제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행복하고  이모들이 혐오하는 중국인 아내와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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