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매력적으로 시작해 치정극이 되고
사이코패스지만 왠지 응원하게되는 주인공이 자꾸 평범한 미친년이된다.
작가가 여자를 몰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읽고 나니 나는 그동안 독후감을 써왔구나..

뭐 서평이라고 쓴건 아니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도 해본다,

알라딘 서재에는 리뷰가 있는 거지 서평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내성적인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야매로 검사한 애니어그램의 5번 유형은 사교성이 없다, (절대 사회성이 없는게 아니다)

자기 원칙에 엄격하고 감정적인 발산을 자제하며 머리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머리를 쓴다고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바로 연관시키면 곤란하다,

그냥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행동이 굼뜨고 쉽게 지쳐버린다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내가 말을 걸 때만 나에게 다가온다,

먼저 다가와 나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책은 내파 펼쳐 들어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해주지만 필요이상 친근하게 굴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침묵할 뿐이고 나에게 질문하지도 않는다,

책은 가장 좋은 도피처이고 가장  행복한 해방구이다,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멀어지게도 만든다,

잘난척 하느라 책만 보고 사람은 무시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잘나서 책만 보는 사람이 끔찍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구보다 내가 잘나지 않은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그렇게 말한 당사자도 내가 잘나서 책이나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냥 감정적으로 뱉은 말일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외롭지 않고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하고 책을 읽는 동안은 의미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싫지는 않았지만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온 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지쳤다, 그저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울때 느끼는 만족감이 변태처럼 좋았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

한권만으로 불안한 적도 있어서 차려입은 것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가방으로 비스듬한 어깨짓을 한 채 외출하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심지어 업무시간에도 틈틈히 책을 보는게 좋았다,

뭐 그래서 대단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많이 읽었던 아이가 많이 읽는 어른이 된 것 뿐이다,

 

지금 나는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 대신 친구랑 노는게 더 좋고 친구랑 떠드는게 더 좋다면 그걸 해도 된다도 생각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빠져서 하루종일 그 오빠만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도피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 내가 책으로 도망갔듯이 아이가 무언가로 도망치기 위해 열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요샌 너무 안읽어서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책읽기 = 지식이라는 공식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책많이 읽어서 대가리만 기괴하게 커진 괴물보다는

읽지 않아도 원칙을 알고 도리를 아는 게 더 낫다고 믿는다,

 

나는 왜 읽을까

내게 독서는 도피처였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너무 힘들고 불안할때 내 앞에 쌓인 숙제가 너무 많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며칠을 계속 책만 보고 싶다,

책만 보고 또 보다가 어느 순간 기록을 남긴다,

셔평이란건 생각치도 않았다,

그냥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내 감정 내 성찰 정도였다고 할까

책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게 고작이었다,

남들의 서재를 보면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는  글들을 좋아했지만

막상 나는 나에게로 향하는 길 이외에는 알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내 속엔 내가 꽉 들어차서 다른 곳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어도 결국 머리만 커지고 아무것도 아닌 어른인 나는

그렇게 아직도 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왜 읽을까

적어도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픈 사람 악한 사람 대책없는 사람 어이없는 사람 순한 사람 악만 남은 사람  후회하는 사람 불안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

나처럼 대책없이 비관적인 사람,,,,

조금씩 만남을 넓혀가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것도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없다는 걸 배운다,

누구나 옳고 누구나 귀하다,

제각각이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시간을 가지고 그만큼의 관계들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 그들 누구도 뭉뚱거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타인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걸 공감이라고해도 될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입장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쓰담쓰담해주는 것을 배운다,

책속의 누구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속의 누군가를 닮은  내 곁의 누군가를 본다,

이 사람은 그때 그 이야기속의 누군가를 닮았구나

진짜 이런 유형도 있구나 ...

나는 거꾸로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역시 나는 서평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7-02-07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제가 쓴 글인양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0   좋아요 0 | URL
여기 서재엔 서로 닮은 부분을 가진 분들이 많을거같아요. 그 중 님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아무개 2017-02-07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좋아요 열번 누르고 갑니다 *^^*

푸른희망 2017-02-07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님도 은근 소심하신가요?^^

cyrus 2017-02-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목적이 개개인마다 다르더라도 저는 리뷰, 서평, 독후감을 단순하게 같은 의미로 보고 싶습니다. 세 가지 용어를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릅니다. 굳이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면서까지 리뷰는 어떻고, 독후감은 이런 글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3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을 읽으며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떠올랐어요 딱 서평이라고 할만한.....님의 리뷰를 보면 제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책이 끌리거든요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쉽게 읽히는 것처럼 서평이 쉽게 쓰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나는 열심히 독후감을 써왔구나~~책읽기는 글쓰기에서 완성되고 저자는 독자에게서 확장되고 편형된다. 내게 온 모든 책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리라이팅 클래식 5
이혜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접 만난 맹자가 아닌

누군가가 소개시켜준 맹자를 만나다.

유교라고 하면 늘 공자가 떠오르지만 맹자의  유교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

 

 

그는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파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을 염려하는 능력이다, 함께 느끼는 능력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르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맹자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과 우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한가지 일이다,

 

 

유학이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준 윤리이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학은 또한 정치이론이다, 개인의 선한 삶이 모두의 선한 삶으로 이끈다는 윤리 정치 이론이다,

서양에서 수입된 근대의 정치는 윤리와 분리된 것이다, 물론 정치인의 직업윤리는 묻지만 정치인의 자질로 전인격적 고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보수주의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전통은 유학이고 맹자일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먼저 자각한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장 포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였다,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사랑을 가장 폭넓게  실행하기 위한 길이엇을 뿐이다, 이기적이기 십상인 권력자들을 다루는 것은 그의 또다른 과제였다

 

                                                               머리말에서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도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살을 버리고 도의를  택할것이다, ........... 만일 사람들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삶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란을 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느 ㄴ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진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잃지 않았을 뿐이다,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 (공경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의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이다,

 

 

이 사단의 마음 말고맹자는 또 다른 중요한 마음의 작용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얻는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착한 마음의 싹 즉 본성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것이 이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 생각이란 본성에 대한 생각하는 것일 텐데 본성을 생각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맹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되지" 하고 순간 엇나갈 숭 ㅣㅆ는 자신에 대해 제동을 걸고 반성하는 마음이 이 마음에 해당되리라 생각한다,  

 

 

측은지심의 마음 즉 사랑은 자극에 의해 자라는 감정이다, 그르므로 채어나면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면서 형성한 부모와의 유대감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르므로 아이가 자신의 측은지심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난가 점점 많느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수는 없다, 부무 자식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다, 그 사랑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며 그 사랑을 핵으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퍼져 나간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언대이고 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 측은지심을 키우는 첫번 째 장은 그 가족이다 부모이고 형제이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형제 사이의 애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옳고 그름의기준이라든지 원망이나 노여움의 감정이 그것을 이길 수 없다,  

 

 

맹자는 사상가이면서 어쩌면 심리학자이다,

초기 애착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볼비가 그 안에 있고

초기 애착이 잘 형성되면 욕구가 안정되고 나아가 사회성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맹자에게서 볼 수 있다니

결국 초기 양육자 결국 엄마를 비롯한 가족간의 사랑이 모든 인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타고난 것이라 무턱대로 억누르거나 없는 척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고난 인의에지와 함께 타고난 오감의 욕구도 자연스럽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므로 스스로 원리에 의해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타고난 선함을 인간의 노력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그 길로 가지 않으며 마음을 놓아 버리고서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사람이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르는구나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쇨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하며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진실에 대해 항상 깨어있으려는 의지 옳은 것을 실천해야한다는 의지를 갖는일이 맹자가 말하는 '일 삼음"일 것이다, 또한 그긋이 내 몸과 마음을 전일하게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강행해서도 안 된다,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은 있더라도 몸은 그릏게 안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스스로 하나가 되는 지점에 이르도록 서로를 키우는 과정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 마음의 올바름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것이 어떤 위협을 동반하는 일일지라도 나는 흔들림 없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내 감정 내 몸 내 정신이라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배우고 반복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해내는 것도 아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 감정도 내것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남에게 적당하게 피해지주 않고 보이는 것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

이것은 심리학책에서 본 것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인의에지의 싹이다, 내게 와 닿는 타인의 인의에지는 나의 싹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본성을 어느 정도 키웠느냐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본질적응로 너와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는 같다, 누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맹자의 생각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가 같다면 문제는 자신의 인의에지가 부족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누구나 타고 나는 선함의 싹을 어떻게 인의예지로 키워나갈것인가는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고

그가 처한 상황화 교육에도 좌우된다, 내가 가진 본성의 선함은 결국 타고난것인 동시에 키워나가야하는 것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맹자가 대답햇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지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림 없이 따르실 것이다,

 

 

 

덕을 존중하고 정의를 즐기며 등용되는가 여부에는 초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비는 공궁한 상황에 처해도 정의를 잃지 않으며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곤궁해도 정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는 자족할 수 있고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도록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다, 곤궁한 상황에서는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천하 사람들과 함께 선을 실천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의 싹을 얻어 태어나고 스스로 결단과 노력을 통해 그것을 키워나간다고 보았다, 그 선한 싹은 서로를 알아가는 공감의 능력이지만 그저 싹일 뿐이니 계속 키워나갸야 하느 ㄴ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것도 선한 싹을 키워나가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란 타고난 선함이 아니고 키워나가야 하는 선함이라고 할때

맹자는 인간의 의지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더 말하고 있는게 아니었을까

 

이것이 저자가 소개해주는 맹자의 이야기다,

내가 직접 맹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난 맹자는 활달하고 유쾌하며 단호하다. 공자의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세상의 질서가 혼란으로 덮인 시대에 맹자는  그 욕망가특한 인간이 그래도 선한 싹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제후와도 관계하지 못하고 관직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맹자는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본게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군가 스스로 노력해서 선함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식견으로 맹자가  생각하는 정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도덕적인 군주라면 마땅히 실패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나?

그정도 흠이 없는 사람이 있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원만하게  두루뭉실 안일하게 지도자를 생각해왔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대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당연히 타인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으니 완전하지 않은 삶에  완전하지 않은 질서에 순응한다는 건 다른 말이다

완전하지 않아서 완전함을 추구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겸손해야한다는 게 우선 아닐까

 

나는 완전하지 못하니 완전하과 위대한 누군가 절대자를 기다린다?

그건 착각이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없을거다,

누구든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인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한계를 스스로 알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겸손하고 늘 자기를 돌아보려는 사람 그리고 돌아보는 사람을 원한다,

실수하면 질책도 받아들일 줄 알고 고치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

보수든 진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 아닐까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밤 이 책을 다시 들었다,

미국에 사는 이름없는 작가가 영국의 채링크로스 84번가의 서점으로 책을 주문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다,

전후 삭막하고 외로운 시간  책이 주는 위로를 아는 작가는 책을 찾아서 영국으로 서신을 보낸다

그리고 편지가 오고가고 책을 주문하고 선물을 주고 인간관계가 커져간다,

 

어쩌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지금  한파가 떨어진 먼 한국의 겨울과도 닮아서

책속의 따뜻한 관계에 빠져든다,

처음 읽었을 때도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따뜻함이 책을 매개로 오가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가 간절이 원하는 것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찾아내고 보내주는 일

작은 정성을 잊지 않고  전후 물품 구입이 어려운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주는 마음

그리고 오가는 서로의 편지들

 

 

내가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쓴게 언제 였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엄마에게 보내야 했을 때

덜렁 서류만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뭣해서

우체국 한 구석에 앉아 가지고 있던 노트에 편지를 썼던게 마직막이었다,

그냥 순간적인 충동으로 썼던 편지였는데

쓴다는 행동이 의외로 솔직햇고 대담했다,

말로는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감정과 표현이 그리고 내 마음이 그냥 흘러나왔다,

미안하고 고맙고 나도 힘들다는 말들

그렇게 노트 두장을 썼던 편지를 다시 읽지 않고 서류들과 함께 보냈던게 마지막 누군가에게 쓴 손편지였다, 그 편지를 받았던 엄마는 편지 고맙다는 말 이외엔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톡이나 문자를 많이 쓰는 시대지만

말이 주는 억양이나 말투가 드러나지 않아서 이게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까 걱정하거나 했던 적인 누구나 있

의도는 그게 아닌데 딱딱하게 보이거나 너무 장난스럽게 보일까봐

이모티콘을 써야할지 쓴다면 어느정도 써야하는지

예의를 지켜야 하는 관계라 그런 기호를 쓰지 않아야 하지만 다 쓰고 보면 너무 딱딱하고 투박한 느낌도 들고..정적선이라는 것이 어디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같은 글로 보내는 마음이지만 손으로 쓴 글은 그게 좀 덜하지 않을까

 

매번 가족의 생일에 이번엔 편지를 써야지 하지만

늘 선물이 전부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에 그게 오글오글하게 느껴지고

늘 보는 얼굴에 새삼 무슨 편지 하는 마음도 들고

결국 가장 편한 돈을 쓰는 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냥 서재에 올리는 글은 쓰지만

누군가 특별한 대상을 향한 글은 쓰기가 쉽지 않다, 점점점.......

 

내가 헬렌과 서점직원들간의 편지를 좋아한 것은

그것이 마음이 오가는 손편지였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작이  딱딱하고 공식적인 주문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감정이 배재되어도 상관없고 그게 오히려 당연한 사이에서 점점 빈번해지는 교류로 정을 느끼고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로 변해간다는 것

그런 조금은 간격을 가진 관계라는 것이 좋았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사적인 영영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드러내고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내게

이렇게도 편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던 모양이다,

얇은 책

짧은 편지글들

결국 헬렌은 영국에 가지 못했고   프랭크는 사망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서로 애틋하지만 적정의 그리움을 가질 수 있는 거리감

그런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은 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