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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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의 기억에는 그림책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줄글이 있고 삽화가 곁들어진 동화였다,

글을 알게 된 이후 책을 만났을 것이다,

누군가 어른이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고 혼자 글을 알고 난 이후 책을 만났고 읽었다,

누군가에게 안겨 책을 듣는 달콤한 추억이 없다고 슬프거나 불행하진 않다, 우리 나이때는 누구나 그랬을테니까

내가 만난 그림책은 국민학교 4학년때  미국에서 나온 이모가 사촌인 자기 아이들을 위해 가지고 왔던 영어라 씌여진 그림책이었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 귀여운 곰돌이 캐릭터가 있고 색감이 화려한 책

읽을 수 있는 글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예쁘고 볼만했고 갖고 싶었다,

 

결혼하면서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책을 많이 읽어줄거라고 결심했다,

아이를 낳고 그림책을 많이도 사들였다, 전집은 절대 금지 하나하나 서점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보면서 그림책을 모았다,

그 나이때  그 월령때 누구나 본다는 그림책에서 내가 궁금한 그림책

의외로 별로인 그림책을 아이가 좋아하는 경우가 잇었고

나는 정말 좋아하는데 아이가 시큰둥한 경우가 있었다,

큰 아이는 새로운 그림책을 자꾸자꾸 궁금해하고 탐내서 목이 쉬어라  이책 저책 읽어준 기억이 있고 작은 아이는 뚜렷한 주관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만 몇번이고 읽기를 요구했다,

읽다읽다 내용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지루하기도 하고 또 새롭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고 이젠 그림보다 글이 더 많은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글자들이 빽빽하게 채우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은 멀어졌다,

나도 이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되어 행복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몇권 남기고 정리했다,

그리고 독서치유를 공부하면서 다시 그림책을 읽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글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새롭게 내게 왓다,

그렇게 다시 그림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나는 그림이 주는 빈 여백과 공간이 많은 그림책이 어려웠다,

시시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너무 단순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그림속의 아이가 내 아이의 표정이고 내가 잊은  그때 나의 표정이고 상황이고 내가 미워했던 내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그림책이 다시 내게 왔다,

아직은 초보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읽고 만나면서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또 다른 묘한 감동을 배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여질때

이게 과연 상대에게 도움이 될까 주저될때

내 마음을 말하고 싶지만 내 감정이 너무 격해서 혹은 내 감정이 동하지 않아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을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을때

그림책은 그렇게 슬쩍 내밀어 주는 것으로 그냥 무심하게 넘기는 것으로  유용했다

 

그리고 그 그림책을 그리는 작가들의이야기를 본다,

창의성에 대해  공감과 위로에 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이렇게 전해주고 싶었어

아니 내가 이런 말로 위로받고 싶었어 하는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갖는다,

단순하게 그들의 생각이 말들이 위로가 되었기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적어두기로 했다,

누군가  언젠가 이 말들이 필요할 때가 있고 묘하게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고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의 그림책중 내가 아는 건 한 손가락도 다 못되지만 그래도 장바구니 가득 담아두었다,

상상력과 창조성

공감과 소통에 대해

그들은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다,

당신에게도 아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것이다, 당연히,.

 

내가 이 작가들의 그림책을 일고 난뒤 다섯개의 별을 채우기위해 하나를 뺀다,.

 

 

 

 

1. 조엘 졸리베

 

관찰력이란 정확히 어떤 능력을 말하는 걸까요?

 

-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찬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탄하는 마음이 관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관찰이라는 행위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분명 들어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째 카페나 지하철에서 관찰 크로키를 하고 잇는데요., 우리는 흔히 못생겼다고 치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전 그 사람만이 가진 선과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특징같기도 한데 사실 전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2. 키티 크라우드

 

--30년 후에 두 아이가 저를 좋은 엄마였다고 회상할지 잘 모르겟습니다, 우선은 엄마이전에 자기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읻 ㅚ어야 한다고 믿어요 아무리 음식을 잘하고 뒷바라지를 잘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엄마의 열정과 영혼이 안느껴진다면 아이는 껍데기 엄마를 만나는 겁니다, 뭔가에 열정을 지닌 사랑잇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표를 모으거나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그 대상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이 없어요, 엄마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밀리 떨어져 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올리비에 탈레크

 

공감능력과 창의성의 상호관계에 대해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 전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예술가는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이 대개 혼자만의 고아간에 앉아 하루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작품 생각만 하는 건데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정된 자의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기 안에 함몰되기 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새로운 경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한계를 조금씩  깨면서 성장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게 공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감 능력이 없으면 상상도 허약해질 수 밖에 없답니다, 일례로 제가 "리타와 마샹"시리즈를 그릴 때 "내가 리타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니 나중에 "리타는 이런 목소리 톤을 가진 꼬마일거야 " 하며 목소리까지 들리는 경지에 이르더군요.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었죠. 공감 능력은 상상에 숨을 불어 넣고 생각에 디테일을 더해줍니다,

 

 

4. 클로드 퐁티

 

현실논리가 통하지 않고 상식이 전복되는 상상 세계를 왜 그토록 좋아하시나요?

 

-- (중략)  말로만 민주주의 저항을 외치면서 실제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모순을 보면서 어른들의 저 번지르르한 말이 실은 상상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거를 하고 투표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정말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사나요? 저는 우리가 쉽게 현실이라고 이름 붙이며 묘사하는 내용이 얼마나 현실에 가깝냐고 질문하는 겁니다, 스코틀랜드 네스 호에 산다는 괴물 '네시 이야기를 아시죠? 각국에서 탐험대를 파견하는데 연구자마다 외양에 대해 서로다른 묘사를 내놓습니다, 쟈기 머릿속에 있는 걸 본다는 뜻이예요.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 아는 것을 봅니다, 저에게 상상은 허왕된 게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설명입니다,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과 관점이 무척 다양할 수 있다는 것 단 하나읮 ㅓㅇ답지 따위는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상 셰계를 그립니다,

 

 

 

작가님 책의 주인공들은 늘 여정 안에 있스빈다, 난관을 마주하면서 때로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왓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집니다, <끝없는 나무>의 주인공 이플렌은 여행 끝에 괴물을 만나는데요. 괴물이 소리칩니다, " 난 네가 전혀 무섭지 않다" 이뮬렌의 대답이 정말 절묘합니다, "나도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용감한 선언에 괴물은 녹아서 사라집니다,

 

--  인생의 난관에 좌절하지 않고 그걸 발판 삼아 성장하려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잇어야 합니다, 장애물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잇을 수 잇어요. 도망가거나 맞서거나 빙 둘러가거나 ... 해겨책이 한 가지 모습일거라고 믿지 마세요. 예전에 부모님과의 불화로 오랫동안 거식증을 앓다가 거의 회복되어 이제는 다른 환자를 돕는 젊은 여성을 만나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그녀에게 거식증은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거식증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이자 해결책이지요.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거식증에 기댈 필요가 없을 때 빠져 나와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좌절이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하려면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반응들은 당연한 거다" "난 과정중에 있는 거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5.새르주 브로크

 

작은 용기내기 습관이라 .. 흥미로워요

 

-- 전청의성이 그저 무언가를 할 용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것뿐이예요. 스스로에게 무언가해보는 것을 하락하는 마음. "왜 안되겠어" 라는 생각 '실패해도 괜찮아 별거 아니야  말해주는 자세 이것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예요. 학교 쉬는 시간에 가졌던 태도와 자세를 기억하는 겁니다, 쉬는 시간에 애들하고 놀 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내 앞에 잇는 상황과 논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거죠. 노는 마음이 중요해요. 유희하는 마음은 여유를 낳고 여유는 작은 용기를 낳으니까요. "나는 지금 노는 거야"라고 생각을 가지면 요리 친구와의 모임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지고 창의성을 표출하고 싶어져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창의성잉 ㅣㅅ어요. 창의성을 너무 국한 지어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잇는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조금 더 용기를 내지 안으면 때로는 타인에 의해 내려진 선택 혹은 타이밍이 만들어준 선책에 삶이 끌려갈 수 있어요.

 

 

6.  뱅저먕 쇼

 

자신의 결점과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인지 이해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결점과 함께 창작한다는 건 다시 말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라고 결심하다는 뜻이죠.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보이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흔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타인의 부족함은 관대하게 이해하고 오히려 그 서투름에서 매력을 발견하면서 스스로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잇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제가 다른 창작자들 작품에서 감돋받는 지점은 기게같은 완벽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빈틈이거든요. 우리가 똑같지 않은 이유도 그 빈틈과 서투름에 있고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해요. 만약 모두가 완벽한 그림을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림이 전부 완벽하게 지루할 겁니다, 또 자기 작업의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응로 평가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단체 사진을 찍고 나면 자마다 자신이 제일 못나왔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어느정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뭔가를 창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재능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라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눈을 사로잡는 창작물은 많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작물은 많지 않아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의지가 가장 필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죠. 그런 의지 덕분에 똑같은 사람 얼굴을 50번씩 그리는 반복을 견딜 수 있고 스쳐가는 풍경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기를 쓰며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계속하는 힘을 낼 수 잇답니다,

 

 

7. 에르베 틸레

 

(중략) 노는게 좋은 건 알지만 아이를 이렇게 마냥 놀려도 될까?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조언이 필요합니다,

 

--  이런 질문은 한국과 러시아 중국등 급속한 성장을 이룬 국가를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받았던 질문입니다, 개개인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시스템 정부와 기득권의 논리 그 틈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조종하니까요 우리를 불안에 넣는 것은 불안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세상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없게 됩니다,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라 시간을 확보하고 투쟁하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이겨낼 수 밖에 없죠. 그걸 돕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입니다, 젊은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납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배우세요. 성과주의의 논리가 통하지 않은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면 부모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가담됩니다, 그런 순간을 자주 가지세요 그렇게 세상이 강요하는 리듬을 거부할 힘을 차곡차곡 쌓으십시요.

 

 

8. 이치카와 사토마

 

작가님이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제 안엔 제가 의지하고 믿는 친구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있는 제 본성입니다, 중요하고 무거운 고민이 있을수록 남을 만나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그 아이와 대화합니다, 프랑스에서 저는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친구가 생겼다고 해도 그드에게 연애 경제문제등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순 없었어요. 모든 문제를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조언을 구할 주변인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자기안에 의지할 친구를 만들게 됩니다, 제 안에 그런 존재가 있어요. 지금도 고민이 생기면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이 결정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죠. 단지 그 친구가 '응' 이라고 답하면 떨치고 일어납니다, 머뭇대지 않고 추진하죠 새로운 프로잭트를 시작할 때 제 유일한 판단의 잣대가 내면의 친구가 좋아하는 일인가 아닌가 이것 딱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내면의 친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오랫동안 혼자 있을 시간을 줘야해요.

 

 

9.  베아트리체 일레마라

 

창의성에 대한 작가님만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는 창작물을 짓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행복했던 느낌을 떠올려 그걸 전달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때 입니다, 그 느김과 생각 충동 자기안의 목소리를 믿고 그리로 자신을 던지는 것 저에겐 그게 창의성입니다, 자기 믿음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불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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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3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이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 책을 가까이하기 힘들할 겁니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게 아닌거 같다.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닐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도데체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인지 왜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알고 있는 나 남이 알고 있는 나 나만 일고 있는 나 나도 남도 알지 못하는 나로 나눌 수 있다고 조하리의 창에서 배웠다.

남이 아는 나는 주로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 말 습관같은 거였다, 몸에 익숙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남의 눈에는 쉽게 띄었다, 사소하게 잘 화를 내거나  대답하기 힘든 화제는 슬며시 도망가버리거나 하는 모습들이 나는 숨긴다고 그래서 없다고 믿고 싶었는데 그게 타인의 눈에는 기가막히게 잘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하고 내가 정의내리는 나는 어쩌면 원래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롤모델이 있을 것이고 이러이렇게 되고 싶은 이상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정확하게 내가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고 내가 흉내를 내는 나의 모습이다 그것도 역시 나일까?

누군가가 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올 때 내가 생각하고 답하는 내 모습은

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간혹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내 모습을 말하게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는 ...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어떤 모습인지,,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해 보게 되지만 간혹 거울속의 내모습에 사진에 찍힌 내모습에 많이 놀랄 때가 있다, 나는 적어도 이 모습보다는 더 예쁘다고 믿었고 더 활기차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마주하는 나는 더 지치고 피로하고 늙어보이고 간혹 심술궅거나 약해보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상상하는 나를 나 자신으로 생각했던 건가보다,

착각이 즐거운건 그래서구나 하고 꺠닫는다,

사람은 타인이나 다른 대상을 착각하는 것 보다 자신에 대해 하는 착각이 가장 크고 가장 심할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것들 좋아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은 싫어하며,, 어쩌구 저쩌구하는 다양한.. 내가 내리는 니의 정의는 얼마나 맞을까?

 

어쩌면 나란 사람이 어리석어서 나만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야무지게 자기를 알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데 나만 착가과 망상에서 나를 규정하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오래전부터 우리형제들을 잘 알았던 어머니의 지인이 얼마전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자녀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제 자녀들도 장성해서 그 자녀의 자녀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분께서  내 안부를 물었단다,

어릴적  똑똑하고 야무졋었는데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다는 건 너무 아깝지 않냐고...

헐.....

어릴적 똑똑하지 않은 계집아이가 있었을까 야무지지 않은 아이가 있었을까?

아마 그 분이 아들만 있어서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릴 땐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들이 그것도 남의 딸들이 야무져보이는 법이니까,,,,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농담반 우울한 반으로 앞으로 그럴일 없겠지만 절대 그 아주머니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만나는 순간 그 아줌마 환상이 깨질거야,,,ㅋㅋ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그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그때 그렇게 똘망똘망 했던 아이는 지금 어디갔을까?

내가 정말 궁금하다,

한편 내가 기억하는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어딜 봐서 야무지다고 그 아주머니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지나가는 인사라기엔 너무 콕 집어서 물어봤다고 엄마는 기가 막혀하며 전해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 말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자주보는 가족이나 누군가가 나를 계속 똑똑하다고 야무지다고 말해줬더라면 지금 나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고 못났다 못났다고 하면 정말 못나지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잘한다고 야무지다고 하는 말들을 계속 들었다면 지금과 다를까?

그건 아닌거 같기도 ...

아버지가 가끔 내개 하신 말씀이 있다,

조금만 더 악바리같이 하면 될거같은데 왜 순간 먼저 포기하는지 모르겠다

넌 항상 그렇더라,, 조금 아니다 싶으면 안하는거...

하면 되는데...

그때 그말이 참 싫었다,

하면 다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당신 혼자 수준을 높여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나 하며 원망했고 무시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내가 남들 눈에는 참 아깝고 답답한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하다고 조금 힘들거나 지친다 싶으면 언제나 변명을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포기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을 생각하며 그건 내것이 아니고내길이 아니라고 나를 가장 먼저 설득했다.

그래서 후회되는 점도 있지만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야무지고 적극적이고 아버지 말대로 악바리같았다면 달라졌을까?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나 인성에 비해 많은 인복이 있구나 하는 걸 에전에도 지금도 많이 감사하는 편이다,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어도 늘 친구들이 알아서 챙겨주고 그래서 모임도 지속되고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늘 있었다, 나누어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늘 곁에 있었고 나는 그렇게 나누어 받고 도웅받는 일을 자존심상한다거나 동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니까 고맙고 설령 이게 내개 꼭 필요한게 아니더라도 그저 상대의 지나친 오지랍이더라도 일단은 감사하다고 하고 받았다, 사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챙겨준다는 일은 참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일이다, 이게 동정이 될까 오지랍이 될까 어쩌면 저 사람은 이게 필요없는게 아닐까 나만의 착각이면 어쩌나 하는 오만가지 고민만 하다가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마음은 가득한데 손을 내미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핑계같지만) 누군가가 주는 도움이나  챙김을 받으며 그 사람이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감사하게 생각하자,, 하고 마음 먹었다, (쓰고보니 참 아전인수격이라는 생각만 ..)

그렇게 운 좋게 좋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굳이 내가 아둥바둥 할 필요없이 삶을 이어왔었나보다,

 

그 지인 아주머니가 기억하는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 아이가 몹시 궁금했다,

착한 언니랑 비교당하고 독자인 남동생에게는 양보해야하는 그래서 심술궅고 자기가 챙기지 않으면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아이가 타인의 눈에는 야무져 보일 수도 있었겠다,

타인이 타인을 잘 볼 때도 있지만 결국은 보이는 것만 볼 수 밖에 없기도 한 법이다,

 

 

 

 

 

 

 

 

 

 

 

 

 

 

 

 

 

 

 

 

 

 

 

 

 

 

 

 

 

저자도 다르고 출판사도 다른데 두 책이 횽제처럼 닮았다,

표지의 다양한 표정 이모티콘때문인거 같기도 하고...

나를 안다는 건 내 감정을 아는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가는 것 그건 쉽지 않다,

그냥 화가나. 우울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날아갈거같이 좋아,,

감정카드에 씌여진 감정은 60개나 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감정은 한손가락으로도 끝이다,

그냥 희노애락으로 뭉뚱그릴 뿐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귀 기울여보고 느껴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왜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나를 아는 시작이다,

 

(책에서 알았는데 감정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이란다,

기분은 감정과 비슷한데 그건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 없이 그냥 느껴지는  정서라면

감정이란 어떤 외부의 (혹은 내부의)자극으로부터 반응하는 정서인것이다,

그래서 감정은 꼭 어떤  자극이 있고 그 자극을 원인과의 관계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다 아는 이야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그 단순하고 아는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감정은 하나도 슬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

어떤 감정도 지금은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나 뇌는 참 단순헤서 익숙한 것만 느끼려고 하고 익숙한 상황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자꾸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도 자꾸  아닌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건 운명이나 상황이 아니라 내 감정이 내 뇌가 그게 가장 익숙하다고 인지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끌리는 것이다,

내가 첫눈에 반한다는 건 운명이 아니라 그저 가장 익숙한 것일 뿐이다,

참 낭만도 없지만 그게 옳다,

 

어쩌면 나도 어떤 익숙함에 끌려 여태 살아왔던 거같다,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에 반응하는 경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책을 읽는다고 얼마나 바뀔까 싶다만..... 이란 생각 역시 익숙함에 만족하려는 나의 뇌 혹은 감정 작용이겠지만... 그래도 알고 있다면 자꾸 걸릴 것이고 어딘가 불편할 거고 조금은 바뀌러하지 않을까

 

내겐 조금 낯선 야무지고 똘망한 어린 아이를 다시 찾아 봐야겠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 주길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하련다,

그 지인 아주머니가 나름 인텔리이시고 좋은 분이니까,, 뭐 틀린 식견은 아니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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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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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생각났다.

제 머리만 모래속에 숨겨넣고 모든 것이 되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어리석고 순진한 꿩

이야기들이 그런 꿩을 연상시켰다,

나만 아니라고 믿으면 아닌게 될거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옛애인 미스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희준씨의 이야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는 희준씨에게 어느날 아버지의 옛애진인 미스조의 부고가 날아오고 미스조가 키우던 거북이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아 한달에 한번 톡을 하고 만나고 밥을 먹는 사이가 전부였던 희준씨와 미스조는 어느 샌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이라고 인정된다, 몰랐다,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지.... 한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이라니...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들어주는 사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뭘까? 미스조의 과거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희준씨는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인형 샥샥을 고백하는데 이건 다른 누구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기도 하다,

미스조가 예전 끝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나이든 애인과 관계를 계속해오면서 이제 끝이라는 걸 알아버린 순간처럼 희준도 매번 반복되는 무탈한 일상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탈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불길하라 수 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게 옳은 것도 아니고 안심할 일도 아니라는 것.. 아니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은 사실들을 미스조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들로 슬며시 알아가고 있다

 

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쓰러지고 병원엘 갔더니 임신이라는 사실에 놀랄 새도 없이 24주만에 아기를 낳았다, 무탈하다고만 할 수 없는 나날을 살았고 그렇게 아이도 자랐는데 지금 이순간은 도무지 현실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청천벽력이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는 보고 싶지 않고 출산하고 돌아누운 딸아이의 등짝이라고 후려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나버린 일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불행 와중에서도 다행이다 싶은 일들을 억지로 발견해내면서 이건 잘 지나갈거라고 잘 지나가야한다고 스스로 되내이면서 섬뜩한 결심을 한다,

함께 등장하는 상대방 남자아이의 엄마역시 깨어져버린 후라이팬 뚜껑때문에  화가 치솟는 경험을 하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유도 알 수 없이 폭발해버리고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프라이팬 뚜껑이라면 참 다행한 삶일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비슷하지만 다른 뚜껑 미묘한 어긋남이 폭발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런 깨달음은 현실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아기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은 건 여자아이의 엄마와 마찬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일단 모른 척 하면 없는 일일거라도 믿고 싶은 것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렇게 두 엄마는 공모자도 아니면서 함께 모른 척하는 섬뚝함을 보인다,

 

이 단편에서 가장 무서운건 그 제목일 것이다, 이런 글에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사이에서 무거운 장찬식도 웃음도 새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길 위로 나섰다. .................. 운전대에 엎드려 울 수도 없었다, 하늘을 유난히도 새파랬다, 파란 빛깔의 돔형 지붕이 이 세계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뚜껑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

 

세번째 이야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하면 말도 안될까?

함께 동거하는 커플이 있고 둘은 잘나지도 그렇다고 뚜렷하기 못나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흔한 젊은이들이다, 오래 사귀다가 동거하지만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예감과  아슬아슬한 갈등을 격어내고 있는데 어느날  남자가 어떤 살인을 제안받는다, 이복형이 나타나고 돈 많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유산을 받게 되면 나누자고... 그 문제로 둘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함께 마음을 함친다, 일단은...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그 일에 여자도 함께 나서면서 둘은 더 끈끈해지고 더 서먹해진다,

공범은 오래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약하고 위험한 부분을 알고 있는 이상 신뢰는 끝이다,

둘은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아무렇지 않다고 별일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그 흔적은 죽을 때까지 그래고 상대를 바라보는 동안은 떨어지지 않고 질기게 달라붙을 것이다,

설령 그 일이 제대로 되었건 아니건...

왜 제목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안의 천사가 우리삶을 더 꼬이게 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문득한다, 내 속에 악마만 득시글거린다면 세상은 그렇게 살기 팍팍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게 껴있는 내 속의 천사가 나를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죄가 또 유에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 않을 텐데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우리안의 천사-

 

 

 

네번째 이야기는 먹먹했다,

소녀가 자신의 별명을 되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은 새로운 학교가 낯설다는 전제가 먹먹하고 아팠다,

그렇게 조숙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겪는 새로운 K에서의 이야기다,

그 곳에서 아이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부모대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메이라는 친구는 자기보다 더 말이 없고 짝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둘은 단짝이 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논다,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보았을까

아이와 메이는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엣애인의 부고를 지나간 신문에서 발견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50대 교사의 이야기 를 지나

 

이사에 대한 어떤 공포물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잘 잡아낸 이야기도 지나

 

마지막 '안나'로 넘어가면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우리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적성 선 이상응로 들어왔다고 여겨지는 순간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 바운더리에서 사라지는 것 그건 다행이다,

내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으므로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무어라고말 한 적이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만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내 생활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될 수 있다,

욕하고 미워할 수 도 공감할 수도 애매한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불편하고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은 나는 아니라고 나만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별탈없는 일상을 지겨워하면서도 약간의 균열에는 심하게 동요한다,

무심하게 15분동안 한바퀴를 도는 관람차에 재미없어하면서도 쉽게 올라타지도 않는다. 올라타기엔  뭔가 두렵다,

삶이 그렇다, 무심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게 계속되어지면서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길,,,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어리석은 타조처럼 모래속에 머리만 쳐박으면 아무일도 없는 거라고 믿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다행히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기도 하지만 한 번의 균열은 절대 그 이전으로 되도릴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돼!!

각자도생의 시대

냉정하고 살벌한 현실이 나만 지나기진 않을 것이다,

균열이 생겨도 나혼자 삭히고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시대다

타인의 불안이나 떨림은 더 이상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않다.

외롭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면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이 된다,

 

별것 아니지만 섬뜩해지는 순간 그리고 돌아서면 잊버리느고 기억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 그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이 아닐까

쓸쓸하다.

 

너무 섬뜩해서  그리고 쓸쓸해서 별을 두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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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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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은 코메디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고민도 생각도 맥락도없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의 앞뒤가 안맞는 행동들은 분노보다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런데 그런 우스꽝스런 행위들이 힘을 얻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혐오하게 한다는게 섬뜩하다.

양성평등이 옳은 명제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은 양성으로 나뉘고 그 두 성이 서로 평등한건 당연히 옳다고만 생각했다.
양성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사이에 다앙한 성들이 있었다.
일반적 다수가 가진 성기와 성적취향만으로 기준을 삼으면 배제되고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성들이 많아진다는걸 몰랐다.
평등이란건 결국 양팔저울이다
균형이 맞지않은 양팔저울은 한쪽이 올라가고 동시에 다른 한쪽이 내려와야 평등한 균형이 된다.
현실의 남성 평등에서 여성쪽의 추는 올라가기위해 즉 남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남성쪽의 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균형을 맞춘 저울은 한쪽이 이그러처버린 이상한 모양새로 서로 마주한다
평등이란 어떤 기준에 다른쪽이 맞춰가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닮아가며 동시에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해야한다.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그들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어떤 평등도 이그러진 저울이다.

나도 제주 모 검사장의 사건을 바바리맨 사건으로. 변태짓으로만 생각했다.그런 나의 규정에 어떤 불공정함 편견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 의미로 두번째글은 내게 내려진가장 세찬 도끼질이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가지 양성만 존재하며 그 이외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더라도 비정상이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글에 동의하든 아니든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알게 해준 도끼질이었다,

 

세번째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서 여러번 읽었다,

사실 한번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잗을도 있었고 그래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에서 미성년자 규정 연령을 내려야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조금 헷갈렸다, 내가 예 아니오 라는 테두리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은 나중에 깨닫는다,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는 성인들의 기사를 볼때 마다 불쾌하기 짝이 없고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비해 터무니없는 형량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이때 대상 미성년자의 나이를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몇살이 되었건 나이 많은 어른들의 요구는 그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권력이고 강제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동의하에 행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 동의가 과연  단어 그대로 동의인지 동의할수 밖에 없는 강제인지를 살펴야하는데 법은 너무 헐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또다시 성인의 미성년자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와 미성년자와 미성년자 사이의 강간 혹은 합의된 성관계의 문제가 있고  성인 여성의 미성년자 남학생에 대한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등등 사안에따라 생각해야할 방향이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보호되어야 할 딸의 순결이 아니라 개인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라는접근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다,

다른 모든 권리는 상한선이 높으면서 성행위에 대한 결정만은 그 상한선이 겨우 13세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나아가 그렇게 어린 아직도 애기티가 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성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네번째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사실 잘 알지 못하다가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번번히 거론되면서 흘려들은 게 전부였다,

당신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발끈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

누군가의 행동은 당연한 반응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반응은 공겨기고 있을 수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미러링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고 일그러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는 ,,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관념일 뿐이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억압과 차별에 대해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못알아먹는 사람이 셍각외로 너무 많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없어서 고도의 블랙유머나 해학을 알아먹지 못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어긋나면 모든 것이 잘못된 일이고 틀린일이다,

 

두고두고 자주 들춰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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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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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여러번 읽어도 새로운 것이 보인다.
지금 여기의 상황에 맞게 소재를 잡고 주제를 드러내서 이해가 쉽다.
‘양성‘이라는 것 ‘펑등‘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르게 웑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세상의 어떤 정의 혹은 의미도 각각의 입장과 태도 이익을 지닌다.정치적 옳음을 늘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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