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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 강아지 봅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둘째가 태어났을때 신기할만큼 큰아이는 의젓한 언니가 되어주었다. 한번도 동생을 시샘한 적 없고 행여 남이 자기의 동생에게 해할까 엄마아빠를 빼고는 동생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차단하고 동생을 안고 어르고 이쁘다고 뽀뽀하고 ,,, 정말이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의젓한 첫째의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한때 자만했었다. 나의 탁월한 육아법으로 인하여 형제간의 갈등이란건 우리집에선 존재하지 않는구나.. 음하하.. 

그러나 탁월한 육아법은 없었다. 동생이 자라서 자아가 생기고 고집이 생기는 세살.. 그때 둘째는 정말 어디 내놓기 넘사스러울만큼 이기적이고 고집쎄고 누구와도 만짱뜰만큼 째려보기의 고수로 나를 힘들게 한적이 있었다, 그때 부터였다, 큰아이가 제 동생을 힘들어하고 미워했다.  

'엄마 난 쟤(지 동생)가 부끄러워..."  

그리고 그 이후 둘 사이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배운 교훈,, 아이들은 무엇이든 겪지 않고 지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때가 아이마다 다를 뿐이다.. 

그렇게 온동네가 칭찬하던  의젓하고 배려깊은 첫째딸은 어디로 사라지고 사사건건 동생과 싸투고 질투하는 큰아이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둘째가 내 옆에 있게 되었다. 

자석강아지 봅을 보면서 나는 누구보다 에트나에게 관심이 갔다. 저렇게 동생이 태어났을때 미리 좀  질투하고 화를 냈었다면 부모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라 절 다독여줬을텐데... 부모를 안심시켜놓고선 뒤늦은 질투로 모두를 당황하게 하고 더 야단맞았던 우리 큰애가 바로 에트나였으니까..  

책에서 첨 동생 봅이 태었을 때 에트나의 표정은 화사하다. 그러나 그 다음장부터 에트나는 계속 화가 나있고 뚱하고 폭발 일보직전인 표정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들 봅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어서 뚱하고 화난 에트나의 표정과 너무나 대비가 된다.그런 에트나의 표정은 봅이 몸에 철들을 붙인다는 실험을 하면서 조금씩 풀어진다. 동생을 데리고 온갖 실험을 해보고 동생의 능력을 알게 되고 온동네를 끌고 다니면서 (개니까 개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왠지 정말 저렇게 동생을 끌고 다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끌고 다닌다'   에트나의 표정은 점점 밝아진다. 친구들에게 동생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동생을 인정한다.  

그리고 마침내 용감한 남매는  자기의도와는 상관없지만 은행강도를 잡게 되고 봅의 신체의 비밀이 풀리고 이제 봅에게 멋진 능력도 없어졌지만 에트나와 봅은 다정한 남매가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여러 희노애락을 거쳐서 남매는 다정해졌다고 그렇게 책은 끝나지만  봅과 에트나가  다시 다투고 삐지고  서로를 증오하며 소리치는 일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직 한창 자라야 할 아이들이니 아직도 그만큼 많은 갈등과 시기가 남았으리라... 

그렇게 동생이 부끄럽고 밉고 숨기고 싶던 큰 아이는 요새는 동생을 데리고 등교를 한다. 엄마가 없으면 동생을 잘 돌봐주고 밖에서는 화장실에도 데리고 다녀주고.. 동생도 언니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멋지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 평화가 온건 아니다. 아직 분란의 씨앗이 남은 다만 휴전상태일 뿐이다. 조금 방심하면 너무나 유치하고 사소한 일로도 말싸움을 하고 서로 치고박고 육탄전도 벌어지고  세상에서 제일 미워서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봅과 에트나도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성잘 할 것이다. 어쩌면 철이 든 에트나가 자석을 먹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다시는 동생 봅이 그런 위험한 일을 벌이지 않도록 잘 보살피면서 지켜봐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봅도 다정해진 에트나 누나에게 감사하면서 사랑스런 동생노롯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 그런 아니다. 언젠가 이들도 싸울거고 또 으르렁댈거고.. 다시 사이좋아지기도 할것이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도 자랄 것이고 에트나와 봅도 자랄것이다. 모든 형제들은 싸우면서 자라고 그 세력 다툼 부모에 대한 애정갈구를 비교하면서 열등감 우월감을 느끼면서 자랄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을 넓혀나가리라 믿는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서로 무관심해서 아무일도 없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거라는 믿음만  자매들 혹은 남매들 다툼에서 엄마가 견디는 길이 아닐까? 

제목이 자석 강아지 봅.. 이라는게 조금 걸린다. 봅 만큼이나 에트나의 비중도 큰데...혹 저자가 둘째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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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가 쓴 10대들을 위한 심리학 책. 

표면적으로 위험한 십대니 버릇없는 세대니 하는 단정은 그만하자. 그맘때 나도 그 당시 어른들의 눈에는 불안하고 유치하고 버릇없이 보였던건 마찬가지일거다. 내아이 혹은 내 아이의 친구 나아가 세상의 모든 10대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그때를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의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라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에게 시시하고 우스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걸 읽고 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떼쓰면 안되는데... 좁은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사람들에게는 행복인지 몰라도 개에게는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그럴 듯한 핑계로 미루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지만 강아지 입양이라는 것 그리고 강아지도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건 좋은 일이다.. 얘들아 강아지는 책속의 강아지로 만족하자꾸나...

 

  

요새는 아이들도 몸매나 외모에 민감하다. 왠만해선 자신이 날씬하다고 예쁘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항상 더 이쁘고 더 마르고 더 멋진 이상형만 동경한다. 외모란게 노력으로 커버되기도 하지만 타고난 것인데.. 그건 몸매와 얼굴은 자신이 선택한게 아니므로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대도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마르고도 그런 고민이 있을거다. 그러나 표지에서 그 마르고가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다. 아니? 어째서 저렇게 행복해보이는거지? 책 속에 그 비밀이 있을거다. 아이와 함께 읽고 생각해보고 싶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 이라는 그림책을 참 감동적으로 읽었다. 단순한 이야기에 콧잔등이 찡해지면서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내가 먼저 먹먹해졌었는데.. 그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던 바닷쇠오리가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내용... 언제나 어린아기 일 수 없고 언젠가 내 손을 놓고 혼자 발걸음을 떼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그 손을 놓아줘야 하는 부모에게도 작은 감동을 주지 않을까... 항상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용감한데 어른들이 겁쟁이인 경우가 많다. 지레 겁을 먹고 손을 놓지 못하는건 어른이 아니었을까? 바닷쇠오리의 행운을 빌며...

 

 

 

 

항상 내아이가 수학을 잘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수학이 너무 싫어서 거의 수포자로 살다겨 겨우 겨우 대입을 끝낸 엄마 마음에 아이들이 수학을 잘했으면.. 아니 잘 하진 못해도 포기하지는 말고 좋아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수학.. 이라는 글만 보이면 눈이 번쩍!이고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고 본다.그 수학이 미스테리라는 옷을 입고 나왔다. 한창 미스테리물 에 빠진 아이에게 좋은 당의정이 되었으면... 달콤한 이야기에 끌릴 지라도 그 속에 숨은 수학의 재미도 알았으면 한다.. 엄마만의 욕심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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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1-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완료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지난 주 나가수에 이소라가 나왔다. 호주공연에 참가했던 이전 맴버들과 함께 이소라가 나왔다. 

단 하나 피아노만의 반주로 이소라가 노래를 불렀다,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 해..." 

원래 이현우가 불렀을때는 이현우 특유의 건들거림이랄까 시니컬함이 목소리에 묻어서 덤덤하 

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불렀던 노래라고 기억한다. 

가사 자체가 참 슬프고 아름다웠었는데 이현우의 목소리로 듣는 노래는  

" 이별  뭐 그까짓거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사랑했지만 이제 잊어야지 뭐.." 

하는 그런 시니컬하게 손을 내젓고 뒤돌아 걸어가버리는 그런 모습이 떠올려졌다. 

그 노래를 그때 이소라가 불렀다.  

이소라 특유의 집중력이 또 시작된다. 반주가 시작되고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음악이란게 무언가를 하면서 배경으로 들을 수도 있고 귓가를 스쳐가게 하는 부수적 

인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그 꼴을 못본다. 

당장 내 목소리에 내 노래에 집중하라고 시선을 청각을 촉각까지 잡아 끌고 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면 노래가 끝나고 반주도 끝나고 그녀가 무대를 내려갈때까지 다른 짓을 

할 수가 없다. 꼼짝없이 시선을 귀를 그녀에게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  

노래가 끝나면 꼴깍.. 하고 참았던 침이 넘어갈 때도 있다. 

예전 20년 가까이 전에 그녀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녀의 앨범을 다 샀고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고 자주 들었고 그래서 콘서트도 갔다.  

솔직히 그때 중간에 20분 정도 졸았다. 매번 같은 분위기의 노래와 그녀의 나른하고 조근거리는 

음성 특별하게 기억나지 않았던 게스트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전에 다녔던 이승환이나 김종서  

심지어 조관우의 콘서트에서 봤던 방방거리는 분위기는 하나도 없는 조용하게 가라앉은 콘서트 

그땐 음반은 좋은데 콘서트는 못오겠다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었고 그다음 나오는 그녀의 음반을 사지않은 시간들이 

채워졌고... 나는 가수다...에서 그녀가 나왔다. 

한때 좋아했던 열심히 들었던 그녀의 노래를 반가운 마음에 듣고 싶었다. 

첫날 부른 것이 "바람이 분다" 였을거다. 

바람이 분다....... 

그가 첫 소절을 내는 순간 마음 저 쪽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졌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그때 그 소절을 듣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서 노래를 듣고 있 

었다는거...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렇게 끝나는 노래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 그대는 나일 수 없다. 내가 그대가 아닐 수밖에 없듯이.. 그리고 기억은 추억은 저마다 

다르게 적히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오해이더라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가면서 그 노래가 가슴이 박혔다. 

바람은 분다 도 아니고 바람이 분다... 라는 그 조사 하나마저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주말이 내내 즐거웠다,. 

당시 사정상 주말 예능을 보고 깔깔거리는 여유가 없었음에도 그녀가 나온다는 이유로 열심히 

챙겨봤고  그 밤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찾아서 헤매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고 다시 지난 주말 홀연히 (내게는 정말 홀연히...다)  나타나서  소박한 반주 

로 그대를 슬픔속에 지워야 한다고 읆조렸다.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정말 많다. 

그런데 내게.. 그녀만큼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가수는 없었다. 

세상엔 내가 좋아했던 조관우의 목소리도 하나도 욕을 먹는 김건모도 하나다 (나의 이십대에  

나는 그의 노래에 목소리에 정말 많이 위로받았엇다. 그의 노래는 어떤 상황이든 나를 웃게 했 

고 기운나게 해줬다.. 요즘 찌질하게 나와도 그때 그 위안이 너무 고마워 난 무조건 그의 편이다) 

그러니 그 좋아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이소라는 튀지도 않으면서 귀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흘러 

가버릴 그른 낮은 소리로 나를 잡는다. 매달리지도 봐달라고 애교부리지도 않으면서  

담담하게 나를 잡는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녀의 노랫말이 공감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녀는 나랑 동갑이다. 근데 그때 부터 그렇게 겉늙은이같은 가사를 읋었는데 난 그때 무지 

유치했었나보다... 

이제야 그녀의 노랫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해되니까...  

그녀를 안다는게,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잇다는 것이 참 행복한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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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응모해서 보러가게 된 영화. 몇년만에 혼자 밤에 하는 시사회를 가서 만난 영화 

사실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고 덕분에 어떤 편견도 없었고 그냥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이 나온다는 거 그것말고 아는거 하나 없이 보게 된 영화다. 영등포 CGV의 스타디움은 무척 컸다. 그 커다란 영화관은 예전 대학에 첨 와서 대한극장에서 느낀 크다!라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 크다란 영화관에 혼자 달랑 (물론 객석은 찼지만 나는 혼자니까)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컥했다영화내용자체가 울컥한 면도 없진 않았지만 지금의 나를 비춰보면서 느끼고 배우고 감정이 이입되면서 울컥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영화는 미국 케네디 시절 아직 흑인차별이 활발하던 시절 집집마다 흑인 하녀를 두고 살던 마을의 이야기다. 다들 결혼하는 것이 목표이고 결혼을 한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머리도 심한 곱슬이라 외모 콤플렉스도 있지만 결혼보다는 일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스키터가 살림정보에 대한 칼럼을 쓰게 되면서 가정부들과 만나게 된다. 아무런 편견없이 가정부들을 대하는 스키터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고  가정부 일외에 아무것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가정부 "에이블린"과 주인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쫓겨난 활발한 "미나"의 도움으로 책을 써나간다. 

사실 첨에 흑인 가정부와 백인 주인간의 갈등 그리고 그 사이를 이해하는 주인공이 나오고 뭐뭐 그렇구나 했을때 지금 21세기도 십년이나 지나서 이런 이야기가 왜 나올까 이렇게 두 계급간의 갈등이 이어지다가 그렇게 화해하는 그런이야기인가 싶은 생각도 했었다. 남의 나라의 인종문제를 보러 늦은 밤 극장에 앉아있는 건가 하는 조금 꼬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건 그냥 그때 그곳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와 관계가 없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지금 2011년부터 앞으로 다시 계급사회가 돌아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지금의 계급은 신분이나 피부색깔이 아니라  얼마나 돈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돈으로 얼마나 큰 권력을 살 수 있는 가로 나뉘어 지는 건 아닐까.. 가진 사람들은 이제 점점 노골적으로 그들의 울타리안으로 타인이 진입하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점점 박탈감을 느끼고 분노하면서 둘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그 차이가 점점 명확해지는 것 이게 21세기의 새로운 계급으로 굳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엉뚱하게 들었다. 

저 흑인들이 병을 옮길 수도 있고 불결해서 집에서 일을 시키고 부려먹을수는 잆지만 함께 화장실은 쓸 수 없다는 주장... 없는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노동을 하고 귀찮고 더럽고 사소한 일들을 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언제든 내가 원하면 바로 자를 수 있다는 것 그게 지금 과 뭐가 다를까...  

첨엔 주저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백인여자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에이블린과 미나는 거절하지만 계속되는 차별과 멸시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꽁꽁 숨겨놓고 혼자만 앓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서 그들 사이에 이해와 공감이 오가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스키터도 자신을 키워준 하녀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듣게 된다. 

스키터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젤 맘이 아팟다. 그건 쫒겨난 가정부에 대한 슬픔 연민같은 게 아니라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정부를 쫒아내야하는 스키터의 엄마 마음에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였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기보다 우위인에 있는 위원회 사람들이 버릇없고 무례한 하녀에게 뭔가 조치를 해야한다고 강요하고 단체로 몰아세우면서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이게 아니란걸 알면서도 마음과 다르게 행동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건, 다 알면서 이해하면서 다르게 행동하거나 입을 다무는 것이다. 차라리 나쁜 짓을 하는 주체보다 옆에서 보면서 모른 척 하고 함께 동조하고 떠밀려 다니는 무리인지모르겠다.  

학급에서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도 나쁘지만 내가 왕따 당할까봐 두려워서 어떤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그 상황에 눈감아 버리는 친구들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있게 나서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친구들 

세상이 불공평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놈도 싫고 저놈도 싫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것 모른 척 하는 것 뒤에서 말은 많지만 귀찮아 나서지 않는것. 그건 잘못이야라고 말하지 않는것.. 그러면서도 나는 다 알고 있어 뭐가 옳고 그른지... 알기는 알아 하면서 아는 걸로 끝내는 것 정말 나쁜 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고 그런 사람이 나다.  

주인공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 오래된 하녀와 아꼈던 하녀의 딸을 쫓아낼 때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그 마음을 안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그 장면에서 젤 많이 울었던거같다. 나도 참 비겁하게 눈치보면서 살고 있구나.. 그러면서 내가 옳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구나..  

결국 책은 성공하고 미나는 새로운 주인과 연대감을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새삶을 찾는다. 미나가 힐리에게 먹인 파이이야기는 온 동네를 웃게 만들면서도 할리의 허위의식때문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 고소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에이블린이 키워주는 백인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 참 좋았다.   

YOU ARE KIND    YOU ARE SMART  YOU ARE  IMPORTANT (맞는지...) 

너는 착하고 너는 똑똑하고 너는 소중하다.. 그말을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끝임없이 들려주면서 자존감을 키워조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쫓겨날때 아이는 그말을 에이블린에게 들려줄때 또 울컥했다 아이를 한번도 안아주지 않던 백인엄마대신 아이의 엄마가 되어준 에이블린은 아이를 키우는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던 여자와 미나와의 관계도 참 좋았다. 가정부를 첨 써보는 시골에서 온 여자는 미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존중해줬고 미나는 첨으로 주인이면서 자기가 보살피고 돌봐야 할 사람으로 그녀를 대한다. 둘은 서로에게 아픈곳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유대감이 자라고 편견없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런 시선들에 대해 이 영화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거 같다 (내 눈에는) 스키터가 바라보는 가정부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고 아픈 엄마자리를 대신 해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할리의 눈에 보이는 가정부는 그저 힘든 일을 하고 언제든 부려먹을 수 있지만 불결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에이블린이나 미나의눈에도 백인 여자들은 요리도 청소도 육아도 못하면서 잘난척하는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고.. 자신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상대는 어쩌면 자신의 편견이라는 틀을 통해 보이는 일그러진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솔직하게 다가갈때 그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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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초등교사입니다. 자격미달 교사 얘기 나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고 교사라는 직업군을 싸잡아 욕하는 분위기 저도 익히 압니다. 저는 그동안 그런 글들을 봐도 욕먹을만한 교사도 있으니 저런 소리 나오겠지 생각했고 나만 똑바로 하면 저런 말 안 듣는다,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지 말자 싶어 읽기만 하고 패스하는 편이었습니다.




5-6년 지나면 면역이 생긴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신데 경력 15년이 되어도 '6학년'에 대한 면역은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초임 때나 15년차인 지금이나 6학년은 여전히 힘듭니다. 아이들은 점점 거칠어지고 ‘대화’가 불가능한 일방통행의 학부모들도 점점 늘고 있거든요. 게다가 문제는 6학년이 그 정점에 서 있을 뿐이지 3,4,5학년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좋은 교사를 만나야 1년이 행복하지만 교사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저 역시 6학년을 맡을 때마다 2년 연속은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입교사, 초임교사가 6학년은 담당하는 것은 어느 학교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득권(?)이 있는 선배 교사들이 선뜻 하겠다고 인심쓸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지요. ‘6학년 담임’은 신입 교사에겐 당연한 관문이 되는 거지요.




4학년밖에 안된 아이가 스스로 자해를 하고 납치를 당했었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자신을 혼낸 교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서실에 몰래 들어와 책꽂이의 책을 다 빼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놓고 소변까지 갈기고 가는 아이도 있답니다. 안티카페를 만들어 교사들 비호감 서열을 매기는가 하면 들으란 듯이 교사에게 대놓고 욕을 하는 아이도 있고, 교사를 교실 바닥에 눕혀 놓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어퍼컷을 날리는 아이도 있어요. 내 아이가 그렇게 맞았다면 학부모는 당장 교육청이나 경찰청에 전화하지만 교사가 그런 폭력을 당했을 때는 사회적인 통념상 덮어주고 용서해야 하지요. 그런 일이 신문이나 방송 매체에 기사화되면 좋을 것 없으니 상급자들은 어떻게든 쉬쉬하고 몰래 수습하려고만 합니다.




저도 한 때 저를 너무 괴롭혔던 6학년 남자 아이 때문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교직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게 악몽을 꾸다가도 어느 날은 그 아이가 정말 착한 아이로 변해서 제가 너무 너무 행복해하는 꿈을 꾸기도 하지요. 꿈에서 깨어 출근하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 때문에 가슴이 옥죄곤 했지요.




그 땐 그 아이만 극복하면 될 것 같았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어느 학교를 가든 6학년 교실엔 그런 아이들이 몇명 씩 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정말 힘들지만, 사실 문제의 아이들 뒤에는 대부분 문제의 학부모가 있습니다.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자녀에게 휘둘리는 학부모들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자식이 어디 부모 뜻대로 되느냐고 따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자식을 그 지경까지 만든 데에는 부모의 책임이 9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학급에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이 거의 없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원 다녀서 효과를 보는 아이들은 30%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켜주고 스마트폰도 해주고 노스페이스 점퍼도 사줘야 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들 인성과 정서를 위해서는 그만큼 애쓰지 않지요.




폭력적인 아이 뒤에는 폭력적인 학부모가 있고 나태한 아이 뒤엔 나태한 학부모가 있습니다. 밤새 야동을 보느라 피곤해 9시가 넘어 등교하는 4학년 아이의 뒤에는 생계 때문에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하는 부모가 있지요.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닮고 부모의 그늘에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 뒤에 있는 그 애들의 부모를 탓하다보면, 또 그 부모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지요.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못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좀 못 풀어도 기죽지 않고 학교 다닐 수 있는 풍토,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노래를 잘 하는 아이가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풍토, 부모의 경제력이나 직업이 썩 자랑스럽지 못해도 저마다 나름의 행복과 보람을 찾으며 살 수 있다는 철학 같은 걸 아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보람 있게 가꿔가고, 물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암담하고 오늘이라도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그만 둔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 내가 눈 감고 있는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 아이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제 아이가 앞으로 10년 이상 다녀야 할 ‘학교’라는 곳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앞정서야 한다는 투지(?)로 출근을 합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허리 숙여 인사하는 저학년 아이들을 보면 ‘지금의 6학년 아이들도 몇 년 전에는 저렇게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었겠지.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이 어쩌다가 저렇게 거칠어졌을까...’ 생각하면 왠지 눈물이 핑 돌고 그 아이들을 어떻게든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더 능력을 키우고 마음 수련을 해서 그런 아이들까지 감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날이 올 때까지, 어쨌든 되는 데까지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삽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힘들겠는가,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하루 끼니 걱정으로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만큼 힘들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자녀 교육에 관해 조금 더 넓은 안목과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엄마, 부족한 교사라서 이런 글을 올리기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만 제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도 간혹 계실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내 아이를 위하는 만큼 교사도 존중해주시길, 내 아이 키우는 게 힘든 만큼 3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도 이해해주시길...... 아이들이 공부 잘 하는 것보다 바른 마음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도록 더 살펴봐주시길.... 작은 것 때문에 정말 큰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쯤 되돌아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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