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프로젝트 - 2010 제4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7
이제미 지음 / 비룡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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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고 건강하다.

키득거리면서 끝까지 읽게 한다.

얼마전까지 열심히 봤던 "응답하라 1997"의 시원이가 떠오른다.

다른건 다 다르지만  아마 시원이나 수선이는 같은 대학을 간게 아닌가 싶다.

시원이는 펜픽을 쓰다가 원하는 대학의  문학상에 응모해서 특차로 대학을 갔고

수선이도 아마 시원이랑 같은 대학의 문학상에 응모해서 갔지 싶으다.

둘 다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맺힌구석이 없다.

시원이는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라면

수선이는  혼자서 의연하고 무심한 성격이라고나 할까

 

열악한 환경에서도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쓰는 작가 지망생은 첨이다.

아니 모든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데 나만 몰랐던거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삼겹살집 구석에서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수선

이제 명실상부 작가가 되었고 매스컴에서도 주목하는 존재다.

부럽다.

역시 뭔가 하나를 깊이 파면 길이 보이는구나

그리고 언제나 무한 긍정에너지를 지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글을 써야한다는 것

딸같은 소녀에게 많이 배운다.

나에게도 허코치가 필요한데 어디 없나?

 

참 최고야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인물 하나하나가 참 낯설지 않으면서 예사롭지 않다.

이보험 작가는.. 왠지 누군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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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더웠었나싶게 선선하다.

잠들때는 두툼한 양모이불이 더 편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것인지 기후변화의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불과 얼마전 더워서 미치겠다고 했던 말들이 아스라니 멀어지고 있다.

태풍이 지나고 선선해지다가 다시 더워지겠지 싶던 예상은 온데간데없다.

이러다 봄과 함께 가을도 사라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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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될 수도 있어 그분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 고 있어도 그 분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 또 네가 아버지께 이렇게 해보세요 라고 말씀드리면 어린아이가 주제넘게 나선다고 혼이 날지도 모르구 그러니까 오늘 내가 알려주는 방법은 네 마음 속에 잘 몯어두고 이 다음에 네가 커서 실천에 옮기면 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 아들이 되면어른들은 정말 기뻐하실거야"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버리면 어떤일에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해 내 생각엔 말이야 동구 할머님은 아마 다섯 아니 네식구중에  당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같아"

.........................

 그리움아 그리움아 나에게 힘을 다오 박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내 안에서 꿈틀꿈틀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대하게 부풀어오른 그림움은 순식간에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자리기를 멈추지 않아 좁은 내 몸뚱이  하나하나마다 황금빛 깃털이 되어 쏟아져나왔다. 내 가슴팍에 맺힌 황금빛 깃털 내 온모을 휘감은 주홍빛 능소화 나는 단 한번도 땅에 붂여 있었던 일이 없는 것처럼 박선생님이 떠나신 어둑한 하늘 끝 어디쯤을 향해 가볍게 후루룩 날아올랐다. 꽃잎처럼 붉은 그리움이 나리는 눈처럼 세상을 덮었다.

 

하나

 

세상에 이런 아이가 있을까

한동

가족조차 모자라다고 무시하고 한쪽으로 밀어놓은 아이가, 난독증이 있어 글을 읽는것도 쓰는 것도 어려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상대방을 깊이 공감하는 마음

나는 동구에게 그것을 본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때  진심이 있다는 것 나를 낮추고 상대방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동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악다구니만 쓰고 나에게 욕지꺼리만 퍼붓는할머니도 집에서 무뚝뚝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누구의 말에도 귀기울이지않은 아버지 그리고 늘 당하기만 하는 엄마 사랑스러운 동생

어떤 사람이건 동구는 진심으로 대한다.

내가 미련해서 .. 내가 모자라서.. 그래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위해주고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동구가 자존감이 낮아서 스스로를 귀히 여길줄 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구의 자존감은 그런게 아니다  나를 무시 하는  상대와 한판 뜨는 것 그게 자존심이 아니라 조금 물러서서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 그리고 내가 가슴아픈것이 더 낫다고 믿는 마음 그것이었다.

예전 큰아이가 6살 무렵 유치원에서 작은 세력다툼이 있었다. 한 친구를 두고 우리아이랑 다른 아이가 다투었고 막상 인기있는 친구는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 아이가 우리아이를 모함하고 놀지 말라고 하고.. 암튼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마음을 많이 다친적이 있다. 그때 속상한 마음에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너두 엄마한테나 선생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애 행동이 분명히 잘못된건데.. 야단맞아도 괜찮아 그애는.."

그때 아이의 말이

" 내가 아무한테도 말안하면 나혼자 맘아픈거지만 내가 누구에게 말해서 그 아이가 야단맞으면 두명이 맘아픈거니까.. 두명보다 한명이 맘아픈게 낫잖아.."

 

물론 아이는 그때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낀 충격 그리고 부끄러움은 참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느니 내가 상처를 받겠다. 그건 자존감이 낮은 문제가 아닐것이다.

누군가 타인이 아파하는 걸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아파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건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거란걸 이해한다는 것이다.

가족도 학교에서도 아무도 동구에게 관심이 없다.

더 사랑스럽고 똑똑한 영주가 집에서 모든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도 동구는 그냥 성적이 떨어지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좀 모자란 아이일 뿐이었다.

그 아이가 마음속에 깊고 깊은 우물을 가지고 있어서 그 속에 얼마나  맑고 쨍한 물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 보는 사람은 없다. 아니 박선생님이  동구를 발견했고 집에서는 영주가 동구를 알았다.

박선생님은 아이가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난독증을 겪는 다는 걸 알았고

영주는 자기 오빠가 누구보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동구곁을 떠났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못했던 소년은 이제 스스로가 누구에겐가 의지가 되려고 한다.

동생이 그렇게 되어버린데 작은 죄의식을 가지고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 이제 중심을 잡을 수도 없는 아빠 악다구니만 남은 할머니에게 스스로가 의지가 되려고 한다.

나의 10년을 아름답게 지켜봐준 아름다운 정원의 문을 닫으면서 이제 스스로가 누군가의 아름다운 정원이 되려고 한다.

이미 그 높고 깊은 동네에서 동구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하지않지만 누구나 기댈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동구였던거 같다.

 

두울

 

집안이 평화롭지 못하고 서로가 겉돌고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은 외롭다.

부모만큼 아이들도 외롭고 서글프다.

아니 바꾸어 말하면 아무데도 의지할 수 없고 마음이 불안한 아이들 만큼 부모도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의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하고 바란다.

가족은 문제가 생겨도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면 안되고 서로 속으로 삭여야 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조금씩 삭아가고 허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이미 속이 아니다.

동구네 가족을 보면 가족이 어디서 허물어지는지 보인다.

괜찮다 가족이니까 괜찬다고 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따지지 않는 것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그 순간이 정말 무서운 순간이다.

 

세엣

 

왜 성장소설속의 소년들은 혼자 성장할까

누구도 그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만큼 자란다는 것 내가 성숙해진다는 건 혼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어여서인지도 모른다.

동구가 아름다운 정원의 문을 닫고 이제 다른 곳으로 내닫는 걸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외로워지는다는 것이 커간다는 것일까

자라면서 조금씩 외로워지고 그걸 견디는것 그것이 성장인가보다

 

아이가 나중에 이 책을 본다면 누군가에 대한 배려와 함께 나의 외로움과 그걸 견디어 냄이 바로 나의 성장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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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소녀가 사랑에 빠진다. 어딘가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따뜻하고 심성 고와 보이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고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이 조금씩 쌓여가던 중 남자는 망설이다 고백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실,,, 나는 늑대야

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늑대라는 것인데.. 그게 어쨌단 말이야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둘의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온전히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한다.

그러나 동물의 본능을 가진 남자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죽었다.

그리고 소녀는 여자가 되어 두 아이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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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육아서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고 엄마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만  엄마의 혼란 막막함을 만져주는 위로는 없다

이제 막 스무해 조금 넘게 살아왔고 누구에게 의지할 곳도 없는 엄마로서는 더욱 막막하다

아이가 열이나고 자꾸 보채고 사고를 치고  이유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도 엄마는 막막하기만하다

게다가 이 아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존재인 늑대아이들

엄마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혹은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결심한다. 아빠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

자연속에서 최대한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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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인가와 떨어진 곳에서 생활은 시작된다.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라 농작물을 키워서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

여기서도 서툰 엄마는 늘 실패다.

책을 보고 익힌 농사일은  제대로 된 수확물을 내주지 않는다.

책을 보고 익힌 육아가 매번 실수투성이었던것처럼  농사일 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이웃의 고약해보였던 노인의 혹독한 도움과 이웃의 정으로 마을 사람과 소통하면서 농산물을 아이들을 키워낸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혼자 동동거리고 힘들어했던 엄마는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연결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간다.

  이렇게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늑대의 본능에도 충실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호기심을 썸네일가진다.

큰 딸  유키는 천방지축이던 유년기를 지나고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점점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른 무리속에 섞여 튀지 않는건  누구와도 비슷해 보이는 것 그걸 원한다

내성적이던 둘째는 쉽게 섞이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늙은 늑대를 만나 자기의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학교 보다는 산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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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던 날

유키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성장을 결심하고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엄마를 떠나간다.

아무것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아니 내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벼랑으로 떨어질것만 같은 연약한 아기들의 손을 놓는 법을 하나(엄마)는 배운다.

어쩌면 아이들은 탯줄을 끊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하나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길 갈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엄마는 열달을 함께한 그 시간을 잊지 못하고 한시라도 내가 눈을 돌리면 손을 놓으면 아이가 어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아이가 어느순간 내가 알 수 없는 막연한 눈빛으로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면 엄마는 불안하다.

아이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이제 내 울타리를 나갈지도 모른다느 것

그런데 그런 분리불안을 아이보다 엄마가 더 겁내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곁을 떠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어떤 위험에 빠질지 엄마는 혼자 상상하고 몸서리치고 차마 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도 비오는 날 온 산을 헤메며 아메를 불렀던거 같다.

아직은 여리고 보드라운 내 새끼를 어쩌면 ,,,,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이와 함께 애니매이션을... 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막막한 마음으로 나온다.

남들과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세상에서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앞에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하는 엄마

하나가 가졌을 불안과 막막함이 막 온몸으로 느껴지고 하나가 아메를 이제 보내줄때 느꼈을 막막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 그걸 함께 느낀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고 세상에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늑대 아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흐르는 노래가 .. 참 처연하고 촌스러운데 그 가사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영화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금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그 가사가 바로 영화 내내 막막하게 공감했던 하나의 마음같아서..

 

대사 없는 하나와 늑대 인간의 사랑

커텐이 휘날리던 교실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고백하던 유끼

그 아이르 가렸다 보였다 했던 커텐의 펄럭임

그리고 쓸쓸하지만 단단하게 등을 보이며 산으로 걸어가는 아메의 뒷모습

늘 웃어주던 하나의 코믹하기도 한 표정

참 아름다운 에니매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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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집에 계신 티비는 달랑 네개의 공중파만 나오는지라 캐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때마다 하도 1997 1997 해대는 통에 도데체 뭔가 하고 보기시작해서 딱 4일만에 15화까지 다 마쳤다.

아.. 이런 재미난 드라마가 있었다니..

첨 드라마를 볼때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보다는 그 깨알같은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시원이와 윤제 사이가 참 오묘하다.

어릴적부터 허물없이 보아온 친구사이

나는 저 아이의 식습관 잠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세세하게 다 알고  상대의 첫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아는 사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울하면 옆에서 어꺠를 내밀어 주고 기분좋아 미치겠는 순간에 등짝을 팍팍 맞아주며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이..

아 흔한 구도로 친구가 언젠가 연인이 되는거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봤는데 오묘한걸 발견했다.

윤제에게 시원이는 엄마가 아닐까?

윤제가 싫어하는 오이를 대신 먹어주고 자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대신 먹어주고

내가 빨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입으로 빨고 침을 뭍혀서 뭐 묻은거 때어주고

그건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게 아닐까

어릴적 부모를 잃은 윤제에게 아마 엄마는 늘 부제중이었을테고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시원이가 차지하고 메워주는 것이아닐까 했다.

시원이가 그렇게 윤제를 구박하고 떄리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도 그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고 간섭이고 잘되라고 하는 매질(?)이고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윤제의 정서적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람 그 사람이 시원이고 그렇게 둘이 정을 쌓고 그게 사랑으로 변해간다.

 

열달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나온 아이는 몹시 두렵다.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그때 첨으로 나를 안아주고 배고플때 먹을 것을 주고 기분나쁜 젖은 귀저기나 불쾌함 두려움을 울음으로 나타내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모성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그런 엄마가 채워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기에게 대단한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고 빽이고 투정이나 화내는 것짜증내는 것 다 받아줄 사람

내가 나보다 더 편하게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면 아이는 세상에 나설 용기가 생기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열어젖힐수 있지 않을까

윤제와 시원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밀당을 하고 서로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20년 가까이 그렇게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빈 정서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와 아들같은 관게구나 하는 걸 보았다.

시원이의 잔소리 니킥 무모한 고집이 윤제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함께 주었던게 아닐까

책 썸네일

최근 읽었던 홍당무

그 소년도 불안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엄마로 인해 정서적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소년이었다.

늘 속을 줄 알면서도 엄마말을 믿고 따르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채워지지 않은 내 정서의 빈공간을 어서 채워달라고 비어있어 지금 내가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지치고  임계점까지 화가 찬 엄마의 마음을 그스를까봐 자기 감정은 죽이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자꾸 바라는 것

그도 빈 공간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자라는 내 아이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빈공간이 남아있을까

탯줄을 자르면서 부터 함께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얼마나 달래주고 안아주었을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기준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배려가 그랬다는 건지 좀 모르겠다

주는 사람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가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하고 이만하면 충분하ㅏ다고 느끼는 만큼이 진정한 충분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왜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동정이거나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단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너를 가르치고 기르고 돌보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나를 보고 나를 원망하니 내가 도데체 뭘 잘못했니? 나는 하느라 했다.

이런건 어쩌면 자식에게 족쇄가 되고 도망가고 싶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정서를 매워주면서도 쿨한 엄마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은 거기를 두고 무심한 엄마

그 적당한 거리가 참 어렵다.

암만 생각해도 홍당무의 엄마 르픽부인은 홍당무를 사랑하는 방법이 홍당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걸 모르는 거같다. 그럼에도 자기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믿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갈 그녀가 안쓰럽다.

나는 지금 나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이라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가고 있지 않나

사춘기가 된 아이는 그걸 지*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하다.

딱 윤제에게 시원이만큼 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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