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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 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같았다. 공기중에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 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응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hvdms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처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라디에이터가 쩡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풍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은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위에 불을 켰다. 그리고 책 한권가 눈문 몇권을 챙겨서 연구실을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제시 홀 뒤편의 널찍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그는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마른 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p 253

 

나이 마흔셋에 월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 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층 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p 272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게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완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가지가 사랑읙 ㅜ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을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p353

 

넌 무엇을 기대했나?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어떤 팟캐스트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주지도 않고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주인공의 무던하고 안온한 그래서 조금 지루한 일생이 내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책으로 빠지고 책으로 도망가고 그리고 누구의 말이든 듣고 흘리고 견디는 삶이 누군가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웬의 가족치료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가족 세대 전수에 대해 들으며 그 누군가가 가진 고독과 무심함과 어쩔 줄 몰라 묵묵히 견디던 유전자가 내개로 전수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내 속에 있던 그 유전자가 또 누군가에게 전수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스토너다,

책 뒷편에 씌여진 그 말은 맞다,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스토너에 넣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고지식하게 처리고 묵묵하게 견뎌내는 사람

책속으로 들어가고 책속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

현실생활에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

자기를 위해 변명할 줄 모르고 남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때에 따라 처세를 부리고 유들유들하게 넘어갈줄도 모르는 꽉 막힌 사람

그저 잘하는 것은 침묵하고 견디고 또 견디는 사람

사람보다 책이 더 편한 사람

그가 바로 스토너이고 바로 나이고 바로 또 누군가이다,

그의 일생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그는 소년에서 바로 노년으로 건너뛴 사람이구나

한번도 뫈전한 성인이었던 시절은 없었구나

성인이라는 것이 어떠해야한다는 규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사회를 알고 적당히 맞출 줄 아는 여유를 가진 그레서 모서리가 많이 깍이고 둥글어진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볼때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의 견딤은 선한 행위만은 아니었다,

이디스가, 대학의 동료가 그를 무시하고 모욕을 주었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견디는 그의 침묵은 또 다시 그들에게는 공격으로 느껴졌다. 나를 무시하는구나 나를 얕잡아보는 구나 하고 충분히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보편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사람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보편적인 삶이 이렇게 숭고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스토너를 통해 보았다.

 

그는 선하며 동시에 악하다.

본인의 적극적인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다지만 우직하고 원칙적인 그의 고집과 무던함 그리고 어떤 저항도 반항도 없이 견디는 그 단단한 벽같은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것이다,

한때 내가 아는 누군가를  이렇게 묘사한 이가 있었다,

" 너무 잘나서  내가 하는 수준낮은 말에는 어떤 대꾸도 안하더라. 너는 떠들어라 나는 듣지 않겠 다 딱  사람무시하는 태도다. 어떻게 아냐고? 꼭 말을 해야 아니? 사람 말에 대꾸도 안하고 들리지도 않은 것처럼 입을 딱 닫고 있으면 그걸로 무시하는게 느껴지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것도 모를까.

 난 세상에서 말안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니? 너도 딱 그 사람 닮아서 말안하고 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못들은 척하고 가만있는거 그거 얼마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줄 아니? 잘났다 잘났어

난 잘난 것들 다 지긋지긋하다..."

어쩌며 스토너에게 이디스가 퍼붓고 싶은 진짜 마음은 이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스토너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으로 반응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 뿐이다,. 아주 단순한 그로서 모르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모르는 걸 아는 척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모른다는 걸 들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오해를 받는다

견디고 있음이 오만하고 냉정한 태도라고 오해받는다.

수줍고 어색함이  모질고 무심하다고 오해받는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깊은 고민속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때문이다. 스토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것은 그런 자기속으로 파고드는 사고와 통찰이 누군가에게는 의사소통을 거부당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고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여겨저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평범하고 클라이막스가 없고 일상의 파도가 지극히 잔잔하다. 격정을 느끼지도 않은 밋밋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성공한 삶이다 실패한 삶이다 라는 규정은 살아온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누군가의 타인이 나중에 규졍내리는 것일 뿐 삶을 살아온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는 짓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스토너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무난했다고도 할 것이고  조교수를 마감했으니 학자로서 실패라고 할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은 가족때문에 힘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토너 뿐이다.

결국 나의 삶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만을 갖거나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니일 수 밖에 없다.

 

 

스토너를 타자를 놓고 보면서 그는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가족에게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책에서는 이니스의 악행들이 나오지만 어쩌면 그녀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지 않았을까? 싸움을 걸고 말을 해도 침묵하고 견디는 스토너는 거대하고 이길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레이스에게 아버지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릴 적 그레이스에게 보여준 다정하고 조용한 애정표현은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후 무조건 지켜보고 침묵하기만 한 아버지 스토너는 그레이스 입장에게 들들볶아대는 엄마보다 더 두렵고 원망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얼굴을 가진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내면의 그림자를 가려줄 페르소나는 위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 잘 적응하고 맞추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스토너는 전혀 그것을 쓰지 않은 인물처럼 보인다,

두가지 얼굴을 가지는 것을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 같은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완전한 모습을 알지도 못하고 그걸 감추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성인기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

결국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으로 뛰어버린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서성임이 고독했을 것이고 그러다 익숙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후 잊혀졌을 것이다,

그는 스토너이고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이고 그리고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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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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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때 누군가가 등짝이라도 두둘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뺨을 맞기엔 좀 심하다 싶고 등짝이라도 세게 누군가가 두들겨 준다면 그걸 핑계로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생각하는 주제중 하나인데

감정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참 서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나만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내 감정을 직면하고 느끼고 알아가는 일이 참 힘들다

기쁘다, 너무너무 좋다 어쩔 줄 모르겠다,

이런 감정을 내보이는 건 너무 건방지고 오만한거 같아서 되도록이면 누르고 싶다,

슬프다, 그냥 펑펑 울고 싶다

이건 쪽팔리니까 힘들고 누군가 내 속에서 징징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거 같아 쉽게 내색하기 힘들다

화가 난다, 뭐든 때려부수고 싶고 아무에게나 소리치고 싶다, 내가 폭발해버릴 거 같다

이런 건 사회악이 될까봐 내가 쫀쫀하고 못난 놈이 될까봐 함부로 듣러내기 위험하다

한없이 우울하다 땅을 파고 그 속으로 꺼지고 싶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것도 먹기 싫고 하기 싫다,

이건 때때로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온전하고 푹 빠지는 건 늘 시간에 쫒기는 일상탓에 힘들다

그렇게 감정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마주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슬픔이 닥쳤을 때 그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어쩌면 모두가 억제하고 누르며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은 메이 아줌마의 장례식부다 더 장례식답고 푸근했다, 일단 장례식을 직업으로 삼은 장의사나 목사같은 외부인들이 오면 사람들의 슬픔마저 어떤 틀에 맞춰야 한다, 마치 극장에 들어갈 때 누구나 줄을 서는 것처럼 또는 병원에 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안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리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레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애기 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명의 친척과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낼 도리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보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p 53-54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2년전 아버지 상을 떠올렸다,

나쁘다 좋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관혼상제라는 틀속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슬퍼하게된다는 걸 그때 경험했다,

예전 어릴적 아직 어떤 사별도 한  경험이 없을 때 간혹 조문을 가면 웃거나 일상적인 말을 나누는 상주들이 그렇게 어색했고 언짢았다, 누군가는 죽었는데 그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을까?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도 몹시 곤혹스러웠다,

장레다운 엄숙하고 슬픔이 충만한 것 그런건 영화나 드라마 속인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도 그때 슬픔과 함께 일상적으로 처리해야할 일들이 함께 했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고 종종 사무실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요구하고 중간 정산을 하고 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듣고 그리고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하고 밥도 먹었다,

일상과 슬픔이 뒤섞였고 이때는 그저 정신차리고 지금 하는 일들을 잘 해나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딱 한번 시신을 염하는 자리에 가서야 모두가 목놓아 통곡을 하긴 했지만 그리고 돌아와서는 어머니나 형제들 아버지의 형제들 모두가 일상적인 일을 이어갔다,

입관을 하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 뿔쭐히 집으로 와서는 지친 몸뚱이 속에 어떤 사고도 감정도 없었다, 그땐 부끄럽지만 그냥 자고 싶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절차가 끝나고 금전관계 행정절차를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사하고 전입신고하듯이 아이 학교에 가게 취학통지서를 받듯이 담담하게 일처리가 지났다,

그리고 첫 명절이 지나고 제사가 지나고 그제야 슬픔이 나타났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이제 정리되고 감정도 추스려졌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이 들이닥쳤다,

이제 아버지가 없다는 것 남편이 없다는 것이 가족을 덮치고 슬픔이 밀려오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내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도무지 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미 정리되었다고 믿는 타인들에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았다,

눌러야 하는가? 터뜨려야 하는가?

나이를 먹도록 알지 못하는 건 여전히 많았다,

책속에서 어떤 상황속에서 아버지가 떠오르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꼐 두 발을 뻣대고 울고 싶은 마음이 뒤석이면서 힘들었다,

가장 힘든건 역시 절대 힘들다는 걸 내보이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때  도움이 된 책이  줄리언 반스였다,

 

 

 

앞의 기구 이야기를 꾸역꾸역 읽어내려간 후 만난 줄리언 반스의 애도 이야기가 나를 위로했다,

애도의 시간은 끝이 없다. 지나치게 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슴을 쳤다,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 잊어라...

하는 위안이 진심임을 안다. 위로하기 위해 나름 생각하고 생각해서 한 말인 걸 알지만

그건 절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충분한 애도와 슬픔에 잠기지 않는다면 끝날 수 없는 것이 애도이다,

그걸 줄리언 반스가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위안을 얻었다,

 

오브 아저씨와 서머도 충분히 메이 아줌마를 애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부재는  남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조가 하루에도 수십번을 교차하는 시간을 지나야 하고 충분히 슬픔에 젖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항상 누군가가 해야하는 숙제와 같았던 섬머는 처음 알게된 천국같은 메이아줌마 오브 아저씨와 함께한 트레일러 생활에 금이 갈까 전전긍긍이다. 메이아줌마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크고 조만간 오브 아저씨마저 떠날까 마음을 놓을 틈이 없다. 늘 긴장하고 화가 나있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살피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오브아저씨조차 그 나이에도 처음 겪는 상실로 주위를 볼 수도 챙길 수도 없다,

서로를 잊고 자기 슬픔에 빠졌으되 그 속에 깊이 잠기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너무 불안할 뿐이다,

그때 클리스터가 나타났다,

엉뚱하고 더럽고 아무거나 모으는 클리스터는 뜻밖에 두 사람에게 중요한 역활을 한다,

그 아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 아이는 두 사람을 깊은 애도와 슬픔으로 빠져들게 한다,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 .....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분수처럼 슬픔이 터지고 나면 비로소 후련하고 그 사람을 진짜 보낼 수 있다,

메이 아줌마의 마지막 독백은 참 슬프면서 따뜻하다,

이제 오브 아저씨도 서머도 살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그림책속의 아이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 이제 괜찮아진 것처럼 두 사람도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나의 애도는 이제 끝에 닿았을까?

아직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냄새를 위해 환기를 하지 않는 아이나 모두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슈퍼앞에서 보초를 서는 여자의 표정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틈틈히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면서 조금씩 내 감정을 들여다 본다,

한때 미워하고 무심했고 부담스러웠지만 언제나 내갠 든든한 산이었음을 이제 안다,

많이 닮아서 미웠던 것도 알았고 그래서 모른 척하기 더 힘들다는 것  알고 보면 큰 산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이고 약하다는 것도 알아가면서 그를 애도하려 한다,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또 한가지....

엄마의 역활을 생각해본다,

부모란 엄마 이외에 아빠도 있고 조부모도있고 친척이나 형제도 있겠지만 늘 엄마의 역활이 모든 걸 떠안는다,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막말로 모든 정신적 문제는 엄마의 양육탓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나 대상관게 애착관계 등등 엄마에게 너무 무겁게 짐을 지운다,

그 부담감에 저항하면서도 엄마란 어떤 역활을 해야하나 생각하게 한다,

메이 아줌마는 엄마로서 꽤 괜찮다,

가난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해 줄 수 있는 것에 많은 제약이 있지만 늘 긍정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 어떤 말이든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아끼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는 것...

그건 가장 쉬운데 가장 어렵다,

어쩌면 건강해서 늘 따라다니며 챙기고 돈이 여유있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가장 쉬운지 모르겠다,

솔직하고 건강해서 언제나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아이가 무엇이든 말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기지.. 그것이 엄마라는 사실이 참 어렵고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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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연쇄 살인범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그는 이제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기억을 잃고 시간이 뒤섞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간다

사람은 살과 뼈와 피와 같은 유기물로도 이루어져 있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들 기억들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나는 내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서 비로소 내가 된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계급이나 부 역할들이 아니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살아온 시간이 나를 스스로 증명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건 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존엄함을 잃게 하는 것이고 나를 더 이상 인정할 수도 없고 존재를 증명하라 수 없다.

주인공의 이웃에  살았던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 둘이 장성한 자식을 떠나보내고 살다가 남편이 그리고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

둘은 점점 시간을 잊어가면서 기억을 잃고 점점 두 사람의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모든것이 통제 당했고 감시 당했고 언제 어디로 끌러갈지 모르던 불안의 시절로 돌아간 노부부는 마주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굽신거리고 쩔쩔맸다

결국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그 존엄마저 내려놓고 요양소로 떠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주인공은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스스로를 떨어뜨리는 일 그건 무서운 일이다

그 모든 것이 기억을 잃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음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모에도 시간을 훔쳐가는 회색신사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시간을 훔쳐야 살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그들에게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그것이 시간을 저축하는 일이고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놓친다,

친구를 만나고 대화하고 놀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을 잃어벌인다,

그건 다름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잃어버리는 일과도 같다,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가지 못하고 동동거리게 하는 것 시간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은 스스로가 주인이지 못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든 전체주의에 의한 것이든 사람은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무언가에 속박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빠진 사람들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추억할 것들이 없고 추억할 시간이 없다, 추억은 기억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고달프고 스스로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회색신사들은 시간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삶의 품격을 앗아간 것이다

 

다시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돌아와서

주인공 김병수도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 간다,

이렇게 누군가가 기억을 잃고 망가짐을 보며 서글프고 안타까워야하는데 문제는 김병수가 연쇄 살인범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잡히지 않고 70이 넘어까지 잘 살고 있었다,

나름의 부를 이루고 안정을 이루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덜컥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쉽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기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

알츠하이머는 현재의 기억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과거만 기억하고 그 시간을 살게 되며 현재는 망각되는 병이다,

김병수는 현재 잘 살고 있던 삶은 잊어버리고 과거의 살인범의 시간을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지 누군가를 죽였는지 나를 쫒는 사람이 누구인지 저 사람이 형사인지 또다른 살인자인지 모든것이 뒤죽박죽이다,

시간이 그에게 형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당황하고 정신이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것마저 진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내게 딸이 있었는지 내가 죽인 사람이 있는지도 헷갈리면서 그는 어쩌면 그동안의 업을 짊어진 형벌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스틸 엘리스" 그녀도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세 아이의 엄마로 언어학 교수로 한참을 더 삶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에 덜컥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그리고 서서히 잊어가는 중이다,

기억이 시간이 한 사람의 존엄성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진짜 인간의 존엄은 그 모든 것을 잃어도 잃어버버릴 수 없음을 그녀는 보여준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되고 주위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지만 그녀는 그녀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텅 빈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래도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존엄하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회적인 이름이 아무것도 없고 기억을 잃고 시간을 뒤섞어버린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누군가 타인을 여전히 나는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책. 그리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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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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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그림책은 강하게 시작한다,

엄마가 죽어버린 아침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그러나 달라진게 없다,

여전히 해는 뜨고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집안의 가구도 그대로이고  동네에 보이는 풍경도 그대로이다,

다만 엄마가 없다,

아빠는 갑자기 바보가 되어버렸고

나는 대꾸할 말도 해야할 행동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엄마가 없음은 불편함으로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엄마 이외의 사람은 할 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엄마만 알고 있었는데

아빠는 잘 하는 것이 없다,

이제 내가 아빠를 돌봐야 할까

 

집에 남은 엄마는 냄새뿐이다, 그 냄새가 나가면 안된다

창문을 꼭꼭 닫아둔다,

나는 엄마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다고 말 하지 않는다

아빠가 울기 때문이고 엄마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집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떨린다는 것

무언가 침묵의 언어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아버렸다

알려준 사람은 없다

 

마당에서 뛰다가 넘어졌다,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그때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했어?

넌 씩씩하니까 뭐든 이겨낼 수 있단다

눈을 감으면 엄마가 팔을 벌리고 나를 안아준다,

그러면 아픈게 다 나아버린다

 

엄마와 만나기 위해 엄마의 소리를 듣기위해 나는 계속 무릎딱지를 뜯고 뜯는다

아프지 않다

덜 슬플 뿐이다,

 

할머니가 오셨다,, 엄마의 엄마

내가 돌봐야 할지 모르는 어른 또 한명

할머니가 창문을 활짝 연다

'집이 찜통이구나"

나는 나는

울음이 터진다,

안돼

열지마

엄마가 빠져나간단 말이야

 

할머니가 알려준다

가슴을 만지면 오목하게 들어가는 부분

엄마는 거기 있단다, 언제나 언제까지나,,,

 

아이는 드디어 울었다,

언제든 터져야 하는 것이 터지지 않으면 안으로 곪아버린다

그때는 딱지를 떼는 정도의 아픔이 아니다.,

누구도 모르게 안으로 안으로 살을 파고 들어가는 상처는 상처인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참 의젓하구나.. 어른 스럽구나"

"괜찮아 아직 어린애니까 모를거야"

무릎 딱지를 뜯으며 엄마 목소리를 듣는 아이가 아프다

그러지 말라고 딱지를 뜯지 않고도 울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울어도 돼 괜찮아

 

상실감이 무릎 상처로 비유되면서 점점 읽는 사람을 조여오더니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아.. 울었어 다행이다

언젠가 무릎은 새 살이 돋을 것이고 아팠던 흉터도 점점 희미해질것이다,

탄식과 애도 상실감도 언젠가는 옅어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기억이 남아 있을 테니까,,,

잊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누군가를 더 사랑해도 괜찮아

엄마는 언제나 여기 오목한  곳에 있을 거야

아이야,,,

 

빨간 바탕이 불안하고 불안하더니 나중에는 아주 따뜻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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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의 번역에 대해 말이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토니가,,, 계속 찌질하지 않을까했던 나의 첫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나이 먹어서도 찌질했고 구질구질 했으며 도통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허나 그의 자리에 나를 넣어보아도 모든 걸 알아차리지는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꼬이리라고는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모두가 60대에 이른 토니긔 기억을 토대로 씌여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실들은 모두 토니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토니가 말하고 싶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토니를 통해 베로니카를 보고 에이드리언을 보고 포드 부인을 보고 그 당시 상황들을 알아낸다,

모든 건 철저하게 토니의 시각이다.

 

지나간 사실에 대해서는 현재의 정신상태와 나의 상황에서 판단하고 그 행위를 규정한다,

역사도 신문기사도 결국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사실= 진실은 아니다, 이건 이제 초등학생도 안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 않은 법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확신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회고에 가깝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하게 가지를 쳐 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는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이야기 했다고 해도 결국 주로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읽으니 곳곳에 토니의 생각을 빌어 이 이야기는 모두 토니가 자신의 왕년 스토리를 들려주고 자기가 기억하고 윤색한 이야기라고 암시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어떤  나이든 사내의 회고담을 듣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 그래서 아주 멋지게 편지를 보냈는데........ 블라불라,........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쿵 저러쿵이라고 여겼는데,....... 잘 들어 여기가 중요해,,, 세상에 세상에,,,

나만 몰랐네,,, 사실은 말이지,,,,,,,

 

그나마 토니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착오를 고칠 수 있고  인생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행이다, 나의 기억은 왜곡되고  잘못 주입되었다는 걸 깨닫는 행운아다,

끝까지 나는 모른 체 내가 아는 게 전부임을 굳게 믿고 삶은 마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깨달음이 전부는 아니다. 이미 알았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때이기도 하다,

토니의 잘못흥 그 지랄같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편지를 보내놓고 잘못 기억하고 있고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그냥 스쳐보낸 것들이 있었고 혼자 짝각하고 껄떡거리고 혼자만 아는 만큼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의 죄이다,

 

사람들은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요즘 모르는게 정말 죄가 되는 경우가 있긴 있더라

모르고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된다,

내가 몰랐잖아, 모르고 한 일이잖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몰랐니? 진짜 몰랐어?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외면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자기 촉이 좋다고 자랑하는 인간이야

 그런 인간은 아주 강한 자기 틀을 가지고 있거든 절대 깨지지 않지

 세상 모두를 그 틀로만 보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믿고.."

 

내가 보는 것 들은 것 기억하는 것 그건 단지 내게 전부 일 분이다

그리고 나는 우주에서 내려다본다면 눈에 띄이지도 않을 작은 미물이다,

가끔 살면서 그걸 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위험하다,

 

늦게라도 토니의 틀이 깨어져서 그리고 많이 돌아봐서 다행이다.

토니의 삶은 절대 찌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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