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그건 무슨 맛이야?
무슨 맛이긴 영진 구론산맛이지
엥?
저쪽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주인아주머니가 쿡 하고 웃으신다,
하긴... 영진구론산은 영진구론산 맛이고 바나나 우유는 바나나 우유맛이고 자몽소다는 자몽
소다 맛이고.. 감동란은 계란 맛이고 불닭면은 불닭면 맛일뿐이지
동네 편의점이 가까이 있다보니 자주 가게 되었다.
옆건물 지하에 수퍼가 있으니까 그곳이 가격이 더 싸긴 하지만 굳이 지하로 내려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싫다거나 늦은 밤이라면 가장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처음엔 간단한 음료나 버스카드 충전이 전부였지만
아이가 밤늦게 독서실에서 오는 날이 길어지면서 자정 넘어 갈 수 있는 편의점은 아주 유혹적이었다,
작은 편의점안은 나에겐 신세계였다,
한면을 가득 채운 음료코너의 알록다록한 음료들은 언제든 선택장애를 일으키게 한다,
슈퍼에도 있는 음료도 여기서는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편의점에만 있는 다양한 맛의 음료들은 더욱 유혹적이었다, 도깨비도 아니면서 여기서 저기까지 전부 골라보고 싶은 충동을 막는건 언제나 주머니사정이다,
편의점에만 있는 간편음식들이나 편의점용 과자들도 매력있고 계산하는 동안 계산대 아래칸에 있는 껌이나 젤리류도 괜히 손이 한 번 더 가게 한다,
이주간 거의 매일 딸이랑 드나들면서 죄책감도 느꼈다,
명색이 엄마인데 아이에게 홈메이드 간식을 먹이는게 아니라 편의점의 간편식을 사준다는게 괜히 혼자 찔리기도 했지만 그 죄책감보다는 편의점의 유혹이 더 컸다,
그렇게 2주를 드나들고 댜양한 맛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어느날
주인 아주머니가 아는 척 한다,
아! 이제 그만 올 때가 되었구나
나란 인간이 누군가와 안면을 트고 나면 더 편해지는게 아니라 더 불편해지는 편이라
앞으로 자정이후에 이 편의점은 왕래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다행히 아이 시험기간도 끝났다,
#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몇백만원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편의점에서 만원이상 쓰는 경우 굉장한 과소비를 하는 기분이다,
명품관 핸드백들의 가죽냄새나 백화점 일층 다양한 코스메틱의 향기 혹은 유기농 판매점의 신선한 야채에 마음이 끌리는게 아니라 환한 불빛 아래 알록달록 조금은 산만한 편의점 빛깔 아래 나는 항상 유혹을 받는다,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사보고 싶고 맛보고 싶다,
삼각김밥은 맛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인스턴트 요리들도 종류가 점점 많아진다,
계란 종류도 훈제란뿐 아니라 요샌 감동란이 더 인기란다,
4대에 만원인 세계 맥주들도 가끔 종류가 바뀌어서 고를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그만큼 서너개만 집어도 단가가 올라가 만원이 우스워지지만
그렇게 편의점에서 과소비를 하고 나면
명품관에서 쇼핑한 이상 허탈함과 죄책감과 뿌듯함이 뒤섞여서 짜릿하고 묘한 기분으로 문을 나선다,
# 늘 집앞 gs 25만 가다가 버스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cu에 처음 간 날
아이는 촌년처럼 놀라고 어리둥절한다,
늘 텔레비젼에만 나오는 편의점이 이렇게 우리집 근처에도 있었구나
늘 가던 편의점의 두배이상의 크기에 한쪽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고 음료 코너도 늘 가던 곳의 2배 길이다,
더우기 편의점마다 특색있는 물품이 있는데 여기는 계산대 앞에 즉석식품까지 있다,
아이는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하다
찬찬히 보면 우리집 앞 편의점과 구색이 다르지 않지만 다른 공간에서 만나면 늘 보던 것도 새로운 법이다, 온갖 촌티를 풀풀 날리면서 편의점을 몇바퀴를 돌아서 물건을 고른다,
고르는 건 늘 그게 그거지만 .. 아이에게 이곳은 또 다른 신세계일것이다,
나는 나만 알던 핫플레이스를 아이에게 소개한 뜬금없는 뿌듯함을 안고 편의점을 나왔다
# 슈퍼에서 사면 얼마를 더 아낄 수 있는데
늘 집에 오면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라고 결심하진 않아도 조금 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저녁 귀가시간 편의점의 환하고 밝은 불빛은 언제나 유혹적이다,
내가 뭐 다른데 돈을 쓴다고 하면서 편의점에 들어가 새로운 음료를 사보기도 하고
오늘 새로온 알바의 군기가 바짝 들어가 뻣뻣하게 계산하는 손길도 평가하듯 바라보기도 하는게 나름 하루의 즐거움이다,
# 어쩌면 편의점이 편한 이유는 익명성의 보장과 아무 말 없어도 모든 계산이 끝난다는 것도 있다. 요새야 대형 마트도 누구와 말하지 않고 계산까지 끝날 수 있지만 그래도 편의점이 주는 스쳐지나침과는 또 느낌이 디르다,
그리고 언제든 내가 가고자 하면 갈 수 있다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다,
늦은 밤 제각각 할일을 하고 나른하게 거실에 가족이 모였을 때
잠은 오지 않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때
우리 편의점이나 다녀올까?
이 말은 꽤 유용한 쉼표가 되기도 하다,
너무 편의점을 사랑해서 내가 주부로 엄마로 너무 마이너스가 아닌가 고민도 되지만
그래도 매일 가는 건 아니라고
안 갈 땐 몇주를 안가기도 하지 않냐고 스스로 위안하고
동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곳에서 구매를 해야하지 않냐는 거시적 의미도 부여하면서
아마 나는 또 편의점으로 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명의 편의점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