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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밤 이 책을 다시 들었다,
미국에 사는 이름없는 작가가 영국의 채링크로스 84번가의 서점으로 책을 주문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다,
전후 삭막하고 외로운 시간 책이 주는 위로를 아는 작가는 책을 찾아서 영국으로 서신을 보낸다
그리고 편지가 오고가고 책을 주문하고 선물을 주고 인간관계가 커져간다,
어쩌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지금 한파가 떨어진 먼 한국의 겨울과도 닮아서
책속의 따뜻한 관계에 빠져든다,
처음 읽었을 때도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따뜻함이 책을 매개로 오가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가 간절이 원하는 것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찾아내고 보내주는 일
작은 정성을 잊지 않고 전후 물품 구입이 어려운 친구에게 선물을 보내주는 마음
그리고 오가는 서로의 편지들
내가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쓴게 언제 였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엄마에게 보내야 했을 때
덜렁 서류만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뭣해서
우체국 한 구석에 앉아 가지고 있던 노트에 편지를 썼던게 마직막이었다,
그냥 순간적인 충동으로 썼던 편지였는데
쓴다는 행동이 의외로 솔직햇고 대담했다,
말로는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감정과 표현이 그리고 내 마음이 그냥 흘러나왔다,
미안하고 고맙고 나도 힘들다는 말들
그렇게 노트 두장을 썼던 편지를 다시 읽지 않고 서류들과 함께 보냈던게 마지막 누군가에게 쓴 손편지였다, 그 편지를 받았던 엄마는 편지 고맙다는 말 이외엔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톡이나 문자를 많이 쓰는 시대지만
말이 주는 억양이나 말투가 드러나지 않아서 이게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까 걱정하거나 했던 적인 누구나 있
의도는 그게 아닌데 딱딱하게 보이거나 너무 장난스럽게 보일까봐
이모티콘을 써야할지 쓴다면 어느정도 써야하는지
예의를 지켜야 하는 관계라 그런 기호를 쓰지 않아야 하지만 다 쓰고 보면 너무 딱딱하고 투박한 느낌도 들고..정적선이라는 것이 어디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같은 글로 보내는 마음이지만 손으로 쓴 글은 그게 좀 덜하지 않을까
매번 가족의 생일에 이번엔 편지를 써야지 하지만
늘 선물이 전부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에 그게 오글오글하게 느껴지고
늘 보는 얼굴에 새삼 무슨 편지 하는 마음도 들고
결국 가장 편한 돈을 쓰는 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냥 서재에 올리는 글은 쓰지만
누군가 특별한 대상을 향한 글은 쓰기가 쉽지 않다, 점점점.......
내가 헬렌과 서점직원들간의 편지를 좋아한 것은
그것이 마음이 오가는 손편지였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작이 딱딱하고 공식적인 주문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감정이 배재되어도 상관없고 그게 오히려 당연한 사이에서 점점 빈번해지는 교류로 정을 느끼고
감정을 주고받는 사이로 변해간다는 것
그런 조금은 간격을 가진 관계라는 것이 좋았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사적인 영영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드러내고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내게
이렇게도 편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던 모양이다,
얇은 책
짧은 편지글들
결국 헬렌은 영국에 가지 못했고 프랭크는 사망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서로 애틋하지만 적정의 그리움을 가질 수 있는 거리감
그런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