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친구 기리시마는 왜 동아리를 그만두는 걸까?

기리시마는 누구지?

그가 동아리는 그만둔다는 건 개인적인 일일텐데 그 파도는 여기저기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물론 기리시마를 알고 있는 사람이건 모르던 사람이건 단 순한 사실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 두었다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작게 혹은 무심하게,,,

 

이야기는 사실 기리시마와 상관이 없다. 그가 동아리를 그만둔다는 사실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배구부의 히로키 이외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다,.

히로키는 기리시마가 빠진 자리에 들어가면서 긴장과 설레임 그리고 기리시마와 비교되는 자긴의 플레이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기리시마는 기리시마이고 히로키는 히로키다,

브라스 밴드의 아야는 기리시마의 변화로 좋아하는 남학생을 더이상 훔쳐 볼 수 없다, 이미 학교 울타리 내에서 게급이 나누어 지고 위와 아래가 정해진다. 위는 위 대로 고민이 있고 아래는 아래대로 고민이 있고 그건 몹시도 닮아있지만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브라스 밴드부의  아야와 영화부 마에다 료야는 소위 말해서 아래에 속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함께 음을 만들어 내는 브라스밴드나 렌즈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영화부 아이들은 그 순간은 누구보다 빛나고 위 아래의 의미가 전혀 없다,

위 에 속하는 미카도 위의 두 아이와는 상관 없이 고민이 있지만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그때의 아이가 그렇다 학교는 삶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그 이외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생활이 즐겁지 않다., 소설 속에는 입시라는 무게가 빠져 있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라 조금 편하고 여유롭지만 그들이라고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몹시 순수하고 착하다, 어른이 생각하는 이상....

사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우리의 상상만큼 다이나믹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이 이어지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 마음 상하고  또  마음이 날아갈 듯 뛰기도 할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것인데 그것이 바깥에서 보면 뭔가 대단한 위기처럼 보이고 터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교실을 채우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의 시간을 쌓아갈 뿐이다,

입시와 불안안 미래를 빼버린 청춘의 이야기라 조금은 환상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범하고 착한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만 행복하다,

왕따나 폭력 입시 스트레스와 궁지에 몰려 무언가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아이들 대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소박하게 꿈을 꾸고 맥도날드의 한정판 쉐이크에 열광하고 영화 잡지나 만화  교복 스타일에 목숨거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찾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아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고 다이나믹하고  화려한 아이들 또는 무시무시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있는데 그들이 소외받는 이유는 뭘까

모든 걸 점점 더 잘 해야하고 조금이라도 무언가 장점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미리 찾아야 하고 그게에 맞춰 자소서를 쓰고 미래를 규정하고 입시에 매달리고 어른 뺨치는 모사와 폭력을 행하기도 하면서, 뭉뚱거려서 중 병이니  미래가 없는 청년이니 하는 집단으로 판단 되어버리는 동안

소심하고 조용하고 자기의 길을 고민하고 웃고 슬퍼하고 화내고 고민하는 아이들은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기리시마의 동아리 탈퇴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들을 이제 우리가 찾아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야기에서 이런 평범하고 보통의 아이들이 지금 더 귀해졌다는 걸 세삼 느끼게 된다,

내 아이가 너무 평범해서 , 우등생은 되지 못하고 존재감이 적은 모범생일 뿐이어서 슬퍼하고 속상해 했던 내가 미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죽인 사람을  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아니 다시 말하자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각각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벌을 받는다는 말을 그가 반성을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육신을 벌을 받아 감옥에 가거나 죽을 수 잇지만 그 마음은 반성하지 않고 전혀 죄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 인면수심이라거나 사이코 패스라거나 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는 것 그러니까 사형을 하는 것이 방법이 될까?

달리 생각해보자

그가 누군가를 죽였다. 원한에 사무친 복수이거나 우연한 사고이거나 계획된 범행이건간에 사람이 죽었다.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표현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던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무조건 처벌하고 사형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마음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자기의 죄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죄책감에 몸무림치고 할 수 있는 모든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니 용서하라고 피해자의 가족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예전에 본 영화 "용서"가 생각난다,. 밀양과 비슷한 주제였던 거 같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주인공은 이후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다들 비슷하다

용서하라고...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망가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종교를 빌어서 혹은 선한 마음을 빌어서 모두가 말한다.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미움이 가시지 않았는데 용서를 강요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자꾸 강요한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인터뷰를 하면서 주인공이 알게 된건 유감스럽지만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사건에서 헤어날 수 없고 괴롭고 가정이 파괴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쉽게 용서를 받고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법이 선처를 해주었으니까  혹은 자신은 살만큼 살고 나왔으니까 이제는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항변했다, 사과는 당연한 거아니냐고 하지만 용서는 당연한게 아니다

내 마음속 응어리가 아직 남아있고 내 아픔이 아직 이렇게 생생한데 용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용서를 전제로 한 사과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내가 생각했었다)

 

조두순이나 강호순 등등 인면수심의 인간들을 보면 정말 콩밥이 아깝고 내가 낸 죄꼬리만한 세금도 아깝고 같은 하늘아래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역겹다,

작품 속 사요코의 주장처럼 살인범을 사형하는 건 적어도 그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고 나도 소리치고 싶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법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또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주춤거려지기도 하지만

죽음을 즉음으로 갚아라.

사실 가장 잔인하고 살벌한 저 문구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는 생각이 새록새로하다,

 

소설 속에서 신생아를 죽였다는 죄로 사오리는 인생을 망쳤고 후미야는 스스로 속죄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니 이제 용서받아도 죄지 않느냐는 후미야의 아내 의 항변도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자기만족 혹은 자기변명아니냐고 하고 싶다,

죄를 짓고 두려움에 한 행동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지 않냐고

결국 그렇게 스스로 내려진 벌이 종국에는 사요코를 죽게 하고 또 누군가의 피해가족을 만들고 누군가의 살인자를 만든 셈이다,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형이냐고 묻긴 하지만 어떤 편도 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일본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피해자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건의 당사자이고 가족의 일임에도 늘 외면당하고 어떠한 사실도 알지 못한다. 범인에 대한 인권이 나날히 확대되어가는데 그 뒷편에서 울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 상처를 고스란히 스스로 지고 있다,

그들이 사형을 원하고 범인의 죽음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었다. 우리 사이는 피페해젼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주위의 시선이나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남았다

어쩌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이 정말 무겁고 공허한 십자가 아패서 아파하고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십자가는 누가 내려 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히잡, 부르카 수니파 시아파......

그냥 나와 먼 이야기이고 그저 뉴스에만 나오는 것으로만 알았던 곳에 대해 알게 된 책이다,

그곳에도 소년들이 있었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남겨둔 사람이 있더라,

소년 아미르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성장통을 겪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그때의 아픔이나 기억을 모두 잊었다고 생각하고 삶을  이어가는 순간 먼 고향에서 소식이 들려온다,

정신적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라힘 칸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리고 아미르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할 유일한 순간이 되었다,

연날리기 경기가 있던 겨울날 

우승의 기쁨에 취해 있던 아미르는 연을 잡으러 갔던  하산을 찾으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때 어렸던 아미르는 나설 수도 없었고 도망 갈 수도 없었다,

없던 일처럼 하기에도 그는 아직 너무 어렸다,

자기 죄를 덮으려고 작은 음모를 꾸미고 하산을 멀리 보내버리고 그리고 잊으려고 애를 썼다,

멀미를 하고 오물을 토해내면서 아미르는 자기의 죄를 적나라하게 마주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무언가 하기엔 어리고 나약했다,

이후 아프카니스탄에는 소련군이 주둔했거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민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바바와 그 속에 동화되어가는 아미르 그들은 누구도 아프카니스탄의 일들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잊지도 않았다,

미국속 소수민족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자기들 끼리의 축제를 지내고 모여서 벼룩시장을 열고 때떄로 그때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소련을 증오하면서 시간을 흘러보낸다,

아미르는 결혼을 하고 산처럼 버틸 줄 알았던 바바도 늙어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라힘 칸의 전화가 아미르를 다시 되돌릴 기회를 준다,

 

율법 선생이 뭐라고 가르치건 세상에 죄는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딱 한가지 뿐이야,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겠니?

사람을 죽이면 그건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이렇게 정의로움을 말하고 총구 앞에서도 품위와 양심을 이야기하던 바바에게도 엄청난 비밀과 말하지 못한 죄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아미르는 알게 된다, 한순간 배신감을 느끼지만 자기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잊고 있던 죄의식이 그것을 덮어버린다, 죄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죄의 무게. 어쩌면 바바의 삶은 그 죄에 대한 속죄였을 것이다,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에 도망쳤다, 아세프가 무서웠고 그가 내게 할 짓이 두려웠다, 샃어받을 것이 두려웠다, 골목의 하산에게 등을 돌리면서 나는 나자신에게 그렇게 변명했다, 나는 나자신에게 그렇게 믿게 했다, 나는 사실 나의 비겁함을 열망했다, 또 다른 변명 내가 도망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아세프의 말이 옳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하산은,  바바의 마음을 얻기위해 내가 치러야만 하는 댓가이자 내가 죽여야만 하는 양이었다, 그것은 공정한 댓가였을까? 그 대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속에 떠올랐다 그는 단지 하자라인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 아자르에게 죄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무엇이든 생각을 해내야 했고 자기 행동에 정당화를 만들어야했다, 그에게 떠오른 건 양을 잡는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죄도 없는 양이 목이 잘리고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은 순교였고 재물이었다, 그 대상이 이제 하산으로 바뀐다, 나는 얻어 마땅한 바바의 사랑을 위해 하산을 재물로 바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사회적 통념이 은근히 스며든다, 그는 그저 하자라인이지 않은가?

그 생각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때  자기 앞가림에 급급한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고 모른 척했고 그럼에도 변함없이 충성심을 보이는 하산이 너무 버거워서 이제는 멀리멀리 보내고만 싶어졌던 것이다,

죄의 무게는 그렇게 누르고 눌러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거 튀어나온다, 그냥 잊어버리는 것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잊어라 없애라 모른 척 하라,, 그러면 사라질 것이다,

하산만 사라지면 내 죄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비밀을 드러내서 이야기하고 해결했다, 나는 입을 열고  내가 어떻게 하산을 배신하고 거짓말을 했는지 어떻게 그를 쫒아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바와 알리의 40년 우정응ㄹ 망가뜨렸는지 그녀에게 말해줄 뻔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야라 타헤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용기가 그 중 하나였다,

 

아미르는 몇번이고  죄를 드러낼  기회가 있었다,

알리가 물었고  라힘 칸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았다, 나만 모르면 모두가 모르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거 같다,

입 밖으로 꺼내버리면 순간을 견디고 나면 무게는 줄어들 테지만 속으로 꾹꾹 눌러놓은 죄의식은 물먹은 솜처럼 점점 그 무게가 늘어갈 뿐인데..

그건 정말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이다.

 

다시 라힘칸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인력거 위에서  내 문제는 항상 누군가가 내 ㅐ신 싸워주었던 것이라는 바바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이 나는 많이 아팠다,

아미르의 죄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건 나와 그가 닮았다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였다, 물론 나에게는 충성스러운 하산이 있진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문제를 피해오고 누군가의 뒤에 숨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좋게 여태까지 잘 살아왔고 내 몸을 감출 수 있는 큰 기둥이 있어 그 뒤에 숨으면 그만이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 번도 기둥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나는 나이만 먹은 징그럽게 늙어버린 어린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

책속의 이 문장을 발견한 순간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이  충격이었다,

알고 있던 사실을 마주하는 것

결국 아미르는 나와 달리 용기를 내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러 돌아간다,

이제 지나가버린 아버지의 죄의식마저 함께 품고 소랍을 구하기 위해 생전 처음 용기를 내고 자신과 마주하고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해냈다,

여러 충격으로 아직 소랍은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다릴 수 있다,

하산에 그에게 해주었듯이 그도 소랍을 기다리고 이해하고 품어줄 큰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삶은 계속된다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시작과 끝 위기나 카타르시스에 상관하지 않고 삶은 계속된다, 느린 흙투성이 대상 행렬처럼 앞을 향해 계속 된다,

 

그리고 적어도 소랍은 필요없는 죄의식을 품지 않도록 그는 노력할것이고 기다릴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총탄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고 여자들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것도 좋은  배움이되었다,

그리고 죄의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의 죄에 대한 부채감이 알게 모르게 자식에게 되물림되는 것도 생각해본다,

바바의 실수, 그냥 덮어버렸던 그 실수가 알게 모르게 아미르를 주눅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하산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게 되었을 것이고  어린 아미르는 거기에 죄를 하나 더 얺어놓고 괴로워했다는 것

아미르의 기억처럼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에서의 고단한 삶에서 오히려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더 의지하고 가까워졌다. 하산이 곁에 없고 내 삶이 여유가 없어 빡빡한 그 순간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말하지 못한 죄의식과 내속에서 성장을 멈춘 아이가 내 아이에게 어떤 무게를 얹어 주고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는 아미르가 아닌 바바입장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내색하지 않고 두 아이에게 무겁고 든든한 산이 되어준 바바는 이제 그 어깨의 짐은 내려놓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왜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고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책읽기를 하기를 바라며 모든 연령대에는 꼭 읽어야 한다는 필독서라는 게 있고 매체마다 각자의 베스트셀러 혹은 올해의 책등등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 책읽기에 빠진 또 한명의 독자가 생겼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그녀가 영국의 여왕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녀는 우리와 같은 평민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다,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으면 어떻게 되는지 책이 어떻게 삶을 바꾸고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를 재미있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조금은 어이없고 난해한 영국유머도 있고 생각해 볼 거리도 있다,

찾아보니 많은 알라디너들이 이 책을 좋아했다.

누구나 인용하는 구절

 

영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p 28

 

사실 브리핑은 독서와는 정반대지, 브리핑은 간단하고 사실에 입각한 것이고 요점만 추린 것이야. 반면 독서는 자유롭고 광범위하고 쉴새없이 마음을 끌어 브리핑은 대상을 축소시켜 가두지만 독서는 대상을 활짝 열어놓지. p 29

 

노먼은 그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고 깨달음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었다. 물론 그 즐거움의 일부는 깨달음에서 온다는 것을 노먼도 알고 있었지만 의무는 그 안에 없었다,

그러나 여왕과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즐거움이란 늘 의무 다음이었다,

 

책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p 39

 

 

책을 읽고 마음에 든 작가가 생겼는데 그 작가가 쓴 책이 그 한권만 있는게 아니라 알고 보니 적어도 열권은 넘게 있는 거예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p79

 

책읽기는 세상을 넓혀지구 나를 더 넒은 세상을 이끈다. 세상을 확대하고 대상을 광범위하게 펼쳐놓으며 나를 유혹한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책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유혹이고 매혹이다.

책읽기는 누구든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이고 시간 보내기이고 오락이고  연구이고 학습이기도 하다,

여왕은 책을 읽으며 세상을 만나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열었다. 그 과정속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여왕은 점점 넓어지고 확장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여왕은 닫힌 문앞에 놓여있었다., 이것만이 전부일까? 과연 읽는 것이 전부일까

여왕은 이제 쓰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쓴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고 읽는다는 행위보다는 조금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여왕은 이제 읽는다는 단순하고 소극적인 행위에서 쓴다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로 넘어간다. 책읽기의 확장이다. 그것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 채 책은 마무리가 된다,'

읽기가 개인적이라면 쓰기는 사회적인 일이다.

이제 여왕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개개인의 책읽기는 어떤 것일까

조금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책읽기는 도피였다,

현실에서의 도피였고 내 앞에 놓인 문제에서의 도피였고  나자신으로 부터의 도피였다,

책속에는 무궁무진한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그건 나를 쉽게 중독되게 하고 마취시켯고 현실의 문제를 잊게 한다.

양귀자의"모순'을 보면 주인공 진진의 엄마는 무슨 일이 닥치면 일단 책을 읽었다.배움이 짧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가족을 먹이는 억척스러운 캐릭터였던 그 여자는 일본관광객을 상대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일본어 책을 보았고  폭력으로 감옥에 간 아들을 위해 우선 한 것이 볍률책들을 사들이는 것이었고 암에 걸려 돌아온 남편을 두고 맨 먼저 식이요법이나 병에 대한 책들을 꾸역꾸역 읽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책읽기가 생활이 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문제를 앞두고 결정을 앞두고 그리고 난관을 앞에 두고 책을 모았고 읽었고 꾸역꾸역 읽었을 뿐이다. 그 책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녀에게 해결책을 주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부딪치고 겪어내면서 실패하고 속아넘어가고 뒤통수를 맞으며 일을 해결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책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혹 그녀는 책속에 길이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아닐까 순진할 만큼....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무슨 문제에 부딪칠 때 책을 읽었다., 그녀와 다른 점은 문제 해결을 위한 책읽기가 아니라 도피를 위한 책읽기였다는 것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몹시도 부족한 나는 책에게 위로를 얻고 평화를 얻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무시무시하고 오싹한 추리물을 읽으면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 속의 악마를 다스릴 수 있었고 냉정하고 현실적인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서 조금 차갑고 냉소적으로 나를 무장했다. 성장소설을 읽으며 아직도 나는 더 자랄 여지가 있다고 믿고 싶었고 나도 바뀔 수 있을거라고 꿈꾸기도 했지만 늘 현실앞에서는 쑥맥이고 비겁했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책은 내게 위안인 동시에 위험한 도피였다,

적어도 나에게 책읽기는 즐거움을 주면서 그만큼의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과도 같았던 그런 때도 있었다. 내앞의 문제들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책속으로 도망가고 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깨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던 나는 그저 책을 많이 읽었던 어른이 되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세상을 향해 외쳤던 것처럼 책이 사람을 만들고 인재를 만드는 건 아닌 모양이다,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일 뿐일 때도 있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위안과 깨달음으로 맺음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아차렸다,

 

 

책을 읽는 것은 움츠려드는 일입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시려면 추구하는 게 조금 덜......이기적이셔야 합니다. p 35

 

내 아이가 책을 읽기 원한다, 많은 책을 읽고 똑똑해지고 성적이 좋아지고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가고... 그리고 나중에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나를 꿈꾼다,

그냥 책만 읽었을 뿐인데... 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저렇게 성공했네요,...

그러나.,,

세상에 관심이 많고 친구가 좋고 사람과 직접 부딪치기를 좋아하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세상엔 저렇게 궁금한게 많고 알고 싶은 게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책에 정신을 빼앗길ㅐ 수 없다 물론 책도 재미있고 즐거운 세상이지만 이 우주는 책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친구가 많고 해야할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책읽기보다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친구도 없고 재미있는 걸 세상에서 찾지 맛한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는 책으로 들어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내 부모는 자랑스러워하고 무언가 기대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부끄럽고 수줍고 자신이 없어서 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을 한명 더 알고 있다,

여왕은 매력적이지만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입헌군주제가 되어 나라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의전과 보여주는 게 전부인게 왕실이다. 나름 바쁘긴 하지만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없다고 왕실이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왕이어서 누구와도 쉽게 마음을 열수 없고 누구도 내게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떼 여왕은 책을 만났고 노먼을 만났다. 그리고 그 속으로 아무런 주저없이 빠져들었다.

책은 여왕에게 위로였고 쉼터였고 친구였을 것이다.,

한때 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듯이...(물론 나는 여왕과는 비교 할 수 없지만...)

책은 여왕을 그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이끌었고 즐거움을 주었고 때때로 현실을 잊게 하고 현실에 조급증을 내게 하고 무의미하게 느끼게도 했을 것이다,

당연히 주위사람은 대공을 제외하고는 여왕의 책읽기가 못마땅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여왕이 내가 알던 그 여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건 주위사람에겐 두렵기도 하지 않았을까

나를 안다는 것이 나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때때로 불편하기도 하다,

그건 주위사람처럼 여왕도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변해버렸고 이젠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은 언제나 불편하고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해야 내가 보이고 내가 확장되는 것이다, 여왕은 그것을 영리하게도 알아냈고 그리고 세상을 넓히기도 했다,'다행히도 여왕은 책속에 도망간 인물이 아니었고 다시 책 밖으로 나와 나를 보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읽기가 진정한 읽기의 완성이 아닐까

위로받고 때떄로 도피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도 책읽기에서 시작된다,

읽고 알고 깨닫고 그리고 행동하는것

그렇게 독서는 완성이 된다,

 

책읽기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사람은 여왕보다는 노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현재 책읽기 열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바로 노먼이 아닐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한다,'

노먼은 주방 보조라는 하찮은 일을 가지고 있지만 책읽기를 좋아하고 그것으로 여왕과 알게 되고 여왕에게 책을 골라주는 역활로 승격된다.

주위의 질시에도 굴하지 않는다., 기회는 만들어지고 노력하는 자는 그 기회를 잡는다,

노먼은 여왕과 친해지고 함께 책을 읽고 점점 중요한 위치에 오른다, 여왕에게 책을 골라주며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이겨낸다

질투를 받고 궁에서는 나가게 되지만 결국 대학을 진학하고 그곳에서 자기의 능력을 펼치고 인정받는다,

책을 좋아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 성적이 올라간다. 좋은 대학에 간다, 좋은 직업을 갖는다. 존경받게 된다.

학습지가 독서논술 수업이 지향하는 책읽기의 전형이 노먼이라고 하면 조금 억지가 될까

유쾌하고 발랄한 노먼에게는 자기의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책읽기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성공의 사다리로 가는 필독서와 교양서가 있다고 하면... 너무 심한가?

여왕의 책읽기를 들여다 보면서 노먼의 책읽기는 어떻게 노먼을 변화시켰는지도 살짝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여전히 나는 책을 읽고 사고 모은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고 혼자 탄식하고 어처구니 없게 여기면서도 쉬지 않고 읽어 치우고 꾸역꾸역 모으고 있다,

내게 책읽기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도 도피이기도 하지만 이젠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게 뭔지는 나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읽기에 축복이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리라, 천분을 넘어서는 것을 욕심내지 마라, 욕심이 과하면 탐심이 생긴다, 탐심은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든다, 도둑질은 절댈 절대로 절대로 하면 안된다, 필요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것과 바꾸어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훔치는 것은 안된다, 훔치지 마라, 훔치고 나면 너는 네것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네 삶을 도둑 맞는다, 그러면 너에게 무엇이 남겠느냐,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휠씬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살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같은 평범한 사랆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내가 포기하는 건  가족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인터넷 명언 중의 하나  "진상은 호구가 만든다"

이 말이 딱 떠올랐다,

조금 속되게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천지간에  인간이 가장 귀할 수 있는 이유 바로 염치를 아는 것

그 염치를 가장 잘 알고 겸손하게 몸을 낮추고 살았던 김만수는 결국 호구가 되었고  종내 투명인간이 된다. 유리처머 투명해서 그의 존재는 보이지 않지만 그를 통과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본다, 엿같은 시대라는 생각밖에

인터넷 명언중 또 이런 게 있다  "나를 가장  끝까지 괴롭히는 건 결국 가족이다"

내가 도망갈 수도 없고 끊어낼 수도 없는 가족이 나의 발목을 잡고 나를 막고 나를 가장 오해하고 미워한다.

보통의 속되고 뒷담화를 좋아하고 세상사 모든 일에 토를 달고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인터넷의 보이지 않는 인구들이 만든 말이 세상 어떤 석학이나  지도자 권력자가 만든 말보다 가장  진리에 가깝다

적어도 지금 이순간은 그들이 인터넷속에서 시니컬하게 내뱉는 말이 가장 귀한 명언이다,

김만수씨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순간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그는 모든 이들에게 버림받고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다, 누구나 그를 이용하고 싶어하고 기대고 싶어하고 귀찮아하고 잊어버린다,

가장 열심히 살고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 이야기는 계속 김만수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타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김만수는 스치듯  간혹 그 대상으로 등장한다,

김만수는 한 번도 자기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알게되는 김만수는 타인의 눈에 보이는 김만수다,

그건 조각조각 된 김만수의 한 조각일 뿐이고 그 조각마저도 제대로 의미포착이 된 그가 아니다. 말하는 화자를 통해 걸러지는 김만수일뿐이다,

그는 끝까지  형식을 통해서도 외면을 당했나보다,

"국제시장"의 덕수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만수지만 그는 끝내 주인공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 덕수나 만수나  현대사의 모든 굴곡을 몸으로 다 넘어왔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자는 그 시대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후자는 그 시대들의 찌질함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들이댄다. 그래서 만수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나보다,

책장을 열고 덮을때까지 내내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흔히들 말하는 작가 성석제의 입담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미련한 독자 입장에서 도데체 언제 만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지가 몹시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드러나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 조금 많은 비중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건 결국 다 지나고 난 뒤 한두마디 덧붙이는 해제에 불과하다,

그는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살아왔으니 되지 않았냐며 두리뭉실하게 넘어갈 뿐이다. 그 전에 언제나 그래왔듯이..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느 순간 사라진 석수와 그의 생물학적 아들 태석의 모습이 만수보다 더 오래 마음이 써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