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죽인 사람을  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아니 다시 말하자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각각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벌을 받는다는 말을 그가 반성을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육신을 벌을 받아 감옥에 가거나 죽을 수 잇지만 그 마음은 반성하지 않고 전혀 죄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 인면수심이라거나 사이코 패스라거나 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는 것 그러니까 사형을 하는 것이 방법이 될까?

달리 생각해보자

그가 누군가를 죽였다. 원한에 사무친 복수이거나 우연한 사고이거나 계획된 범행이건간에 사람이 죽었다.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표현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던 누군가를 죽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무조건 처벌하고 사형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마음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자기의 죄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죄책감에 몸무림치고 할 수 있는 모든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니 용서하라고 피해자의 가족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예전에 본 영화 "용서"가 생각난다,. 밀양과 비슷한 주제였던 거 같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주인공은 이후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다들 비슷하다

용서하라고...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망가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종교를 빌어서 혹은 선한 마음을 빌어서 모두가 말한다.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미움이 가시지 않았는데 용서를 강요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자꾸 강요한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인터뷰를 하면서 주인공이 알게 된건 유감스럽지만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사건에서 헤어날 수 없고 괴롭고 가정이 파괴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쉽게 용서를 받고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법이 선처를 해주었으니까  혹은 자신은 살만큼 살고 나왔으니까 이제는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항변했다, 사과는 당연한 거아니냐고 하지만 용서는 당연한게 아니다

내 마음속 응어리가 아직 남아있고 내 아픔이 아직 이렇게 생생한데 용서를 강요하지 말라고

용서를 전제로 한 사과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내가 생각했었다)

 

조두순이나 강호순 등등 인면수심의 인간들을 보면 정말 콩밥이 아깝고 내가 낸 죄꼬리만한 세금도 아깝고 같은 하늘아래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역겹다,

작품 속 사요코의 주장처럼 살인범을 사형하는 건 적어도 그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고 나도 소리치고 싶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법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또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주춤거려지기도 하지만

죽음을 즉음으로 갚아라.

사실 가장 잔인하고 살벌한 저 문구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는 생각이 새록새로하다,

 

소설 속에서 신생아를 죽였다는 죄로 사오리는 인생을 망쳤고 후미야는 스스로 속죄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니 이제 용서받아도 죄지 않느냐는 후미야의 아내 의 항변도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자기만족 혹은 자기변명아니냐고 하고 싶다,

죄를 짓고 두려움에 한 행동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지 않냐고

결국 그렇게 스스로 내려진 벌이 종국에는 사요코를 죽게 하고 또 누군가의 피해가족을 만들고 누군가의 살인자를 만든 셈이다,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형이냐고 묻긴 하지만 어떤 편도 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일본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피해자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건의 당사자이고 가족의 일임에도 늘 외면당하고 어떠한 사실도 알지 못한다. 범인에 대한 인권이 나날히 확대되어가는데 그 뒷편에서 울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 상처를 고스란히 스스로 지고 있다,

그들이 사형을 원하고 범인의 죽음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었다. 우리 사이는 피페해젼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주위의 시선이나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남았다

어쩌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이 정말 무겁고 공허한 십자가 아패서 아파하고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십자가는 누가 내려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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