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노라는 사내가 있었다.

학창시절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다가 아킬레스건에 상처를 입고 운동을 그만 둔후 운동용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대단한 감정기복을 겪은 것 같지 않다,

해왔던 운동을 포기해야할 때 느껴야 할 좌절감이라거나 패배감 혹은 새로운 삶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어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며 예전 내가 했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을 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요구를 듣고 제품에 반영하는 일

작지만 성실하게 일하자는  사훈을 가진 창립자의 직원답게 그렇게 성실하다,

아내와의 사이를 의심하지 못한 어느 날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아내가 가장 친한 동료와 바람이 났고 그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기노는 그냥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끝

이모의 집을 빌려 작은 바를 열고 늘 그렇듯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손님을 만나고 가게를 영업하며 살아간다,

고양이가 찾아오고 이제 단골도 제법 생기고.. 그리고 뱀이 나타나고 기노는 길을 떠난다,

자의가 아니다, 누군가의 조언 거절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조언에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리고 낯선 도시 낯선 밤에서 이제 오롯이 자기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삶의 어떤 모퉁이에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던 기노는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서 자기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알아간다,

그건...... 감정이다,

 

이상하게 헤어진 아내나 그녀와 동침한 엣 동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일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지만 이윽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런 날을 맛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데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 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 둘 장소를 마련하는 정도였다, '기노'라고 하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p 227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놀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맛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고 하고 있다.

                         p 265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서

그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싸늘하게 세상을 적셨다,

 

                                            p  27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워터파크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와 핸드폰을 확인한 후였다,  아직 머리에는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았고  오래 놀고난 후라 아이들과 나는 배가 고팠고피곤한 상태였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열개 가까이 찍혀 있었고 언니의 짧은 메세지가 있었다,

 

"오늘 12시 경 아버지 돌아가셨다, 준비하고 부산에서 보자"

 

아침에 워터파크 안에 들어가기전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문자를 넣었다,

애들 방학이라 놀러왔다고... 아버지는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냐고.. 힘들어도 운동도 하고 집안에서라도 많이 움직이시라고... 그렇게 넣은 걸 아빠는 보고 가셨을까?

정신없이 짐을 싸서 내려가는 내내 내가 붙들린 생각은 한가지였다,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상주인데.. 울음이 안나오면 어떡하지?

내려가는 기차안에서 내내 그 걱정만 하고 있었다,

다행이 눈물을 적당한 순간 적당하게 잘 나왔고 의외로 상가라는 곳이 울음만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상주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손님을 맞아야 하고 준비를 해야하고 사무적인 처리도 필요하고... 그리고 간간히 웃음도 있었다, 삶이라는 것이 늘 한가지 감정만 한가지 상황만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고 아버지 유산 정리와 금전적인 정리를 위해 서류를 보내야 할 일이 있었다,  등본이며 인감을 끊어서 우편으로 보내면서 왠지 그렇게 보내는 건 너무 박정하다는 생각에 우체국  대기 의자에 앉아 급하게 노트를 찢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 엉뚱하게 울음이 터졌다,

엄마에게 그때 뭐라고 썼을까?

그냥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여기 서재에도 몇번 썼던 기억이 있던 내가 알게 된 아버지 모습

어쩌면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족에 대해 무감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아빠는 아주 많이 수줍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것

아빠는 잘난 척 하느라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틈으로 섞이는 것이 어려워서 책속으로 숨었을 거라는 것

그걸 그때는 몰랐다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빠를 닮은 것도 어쩌면 우리는 비슷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 어렵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했고 감정을 토해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균형을 맞추고 하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빼앗기는 존재들이라는 것 그래서 표정은 무뚝뚝해지고 말이 없고 그저 책속에 눈을 숨길거라는 걸...

왜 그런 편지를 엉뚱하고 뜬금없이 썼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빠를 생각하며 나를 생각했고 그렇게 닮아서 그렇게 미웠다는 걸 그 때 그 우체국 낡은 의자에서 알아버렸던 거 같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오해받는게 싫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오해가 어쩌면 오롯이 내가 받고 있는 오해일지 모른다는 무의식속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틈에서 울기가 쉬웠다, 의외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내야할 우편물과 택배에 더 정신이 팔려서 구석에서 누가 울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편지를 엉망이 된 채 서류들과 엄마에게 보냈다,

나중에 엄마가 그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땐 담담하게 들었다,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

다들 울었다, 충분히 슬픈 상황이었고 내용이었다,

나도 슬픔은 느꼈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가가 뻑뻑해왔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왈칵 하고 느끼는 순간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나를 막았다,

그만.... 우는 거 아니지,,

그리고 눈물은 쑥 들어갔고 나 혼자 손수건도 휴지도 필요없었고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을 때 혼자 얼굴이 멀쩡했다,

그게 또 부끄러웠다,

나도 감정을 느꼈는데,,, 나도 똑같았는데 나는 울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울고 싶은 나와 동시에 브레이크를 거는 내가 있다,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건 못난 짓이고 부끄러운 것이었고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서서히 감정을 잊었다,

머리속으로 이성적으로 감정을 알고 분류하는 일은 쉬웠다,

그러나 그걸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두렵고 어려웠다,

통제하고 절제하는 일이 너무 쉬웠고 그게 편했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더 멋있고 쿨하다는 표현이 더 우위를 지녔다,

찌질하고 감정을 흘리고 다니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필요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냉정해졌고 말투가 딱딱해지면서 그걸 즐기기 시작했다,

 

한번도 니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가라앉는 걸 본 적이 없어, 늘 한결같고 늘 그랬던 거 같아

 

오래 알고 지낸 선배의 말이었다, '나도 화를 내고 울고 웃는데 왜 그럴까?

어느새 나는 늘 어느 선에서 기복이 없는 감정을 가졌던 거같다,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는 건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참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걸 아이가 다 크고 나서 알았다,

내가 키운 내 아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젓하고 착하다

그런데 대신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제 나이먹은 나는 머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이들입장에서는 어려웠다,

여자아이들 사이에 삐지는 일 토라지는 일 징징거리고 매달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도 여자면서,.. 저도 저렇게 느끼면서...

그걸 설명하기 힘들었다,

감정도 느낌도 .... 표현하고 배워야 하는 거였다,

 

나는 언제부터 감정을 눌렀는지 돌이켜 보았지만 기억나질 않는다,

기억을 해집어도 감정적인 내 모습은 별로 없다,

 

기노는 언제부터 이렇게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졌을까?

기노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내의 불륜장면 그 이전 운동을 그만 둔 장면에서 담담하게 행동했던 그가 쉽게 이해된 내가 두려웠다,

상처받고 있다고 아프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된 기노의 막막함

그건 비가 올듯 말듯한 불안하고 습한 날씨 처럼 불쾌하고  안정감이 없다,

처음 이 단편을 읽을 때 가장 편했다, 기노의 삶이 그리고 나중의 변화가 무리없이 이어지고 이런 삶이 부럽네 하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다시 읽으며 이렇게 무언가를 잃고 놓치고 살면서 모르고 산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기노에게는 가미타가 조언을 하고 뱀들이 암시를 한다

나에게 가미타와 뱀들은 무엇일까....

기노는 자기를 찾을까?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길은 자기를 찾아 들어가는 길이 아닐까.

기노의 건승을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이들과 꿈꾸는 북클럽이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어떤 숙제도 없고 어떤 의무도 없이 단 하나 책은 읽어야 한다.

단 한가지 조금 더 숨통을 튀어주자면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함께 읽는 것이고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참석은 꼭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고

읽지 않은 책이라도 휘리릭 넘겨보다가 마음이 닿는 곳 혹은 눈이 닿는 곳에 밑줄을 그어

모두 앞에서 읽어주는 것만 해줘도 좋은..

그런 북클럽을 해 보고 싶다.

 

함께 책을 읽고 책 이야기는 눈꼽만큼 나누고 자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더 좋겠다,

여기 모인 아이들처럼 참으로 모범적으로 잘 진행되진 않겠지만

각자 은밀하게 감춘 아픔을 조금씩 드러내주면 정말 고맙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여 경청하고 이해하진 못해도 받아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임이면 좋겠다,

별 건 아니지만 우리끼리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고

제대로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모임이 끝나면 내가 적어도 이런 책은 읽은 사람이고 이런 책을 아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마음을 열지는 못할 것이다,

무얼 먹든가 손을 움직여 단순한 동작으로 무얼 만들면서 무심코 수다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 속에 내가 있고 내 고민이 있고 내속에 숨은 어린 아이가 나오고 그리고 남들도 나만큼 아프구나 하고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정색해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시선을 묘하게 비껴가면서 그러면서 슬쩍 슬쩍 훔쳐보면서 내 속을 드러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때 책도 좋은 매개일것이다,

책이야기를 하면서 책 속의 인물을 흉보고 옹호하면서 슬며시 내가 나오는 것이다,

모임을 통해 책을 통해 무언가 결과물이 나오고  보람있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속이 시원하거나 나혼자 아니구나라거나 적어도 나정도면 괜찮구나 하는 정도를 얻고 가는 것이면 좋겠다,

 

몰락한 일진짱과 부상당한 축구 천재  외모콤플렉스 소심이 만년 전교이등의 무공감장이들이 모여 서로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모임이 몹시 부럽다,

학교에서 혹은 자기가 있는 어딘가 집단에서 혼자만 외톨이라고.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각각의 섬들이 서로 이어지는 건 책이고 책을 매개로 한 시간이다,

바로 이 수상한 수북클럽이다,

이런 수상하고도 수상한 북클럽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이전에 읽은 여고생 미지의빨간약처럼.... 그리고 이 수상한 북클럽처럼

책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쿄에서 연속살인이 벌어진다,

제각각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살인사건들이다,

그러나 현장에 남겨진 숫자가 쓰여진 쪽지로 인해 연속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다음 범행장소로 도쿄역 근처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라  추측된다,

사건을 막기 위해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들이 호텔속에 잠입한다,

 

모든 상황을 고객에 맞추고 고객이 룰이라고 여기는 호텔리어와

누구도 범인일 수 있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믿는 예리한 눈초리를 가진 형사가 함께 있다,

닛타 형사와 야마기시 나오미 콤비는 그렇게 탄생한다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을 쫓아가는 상황은 미스테리 추리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큰 흐름은 사건을 위해 흘러가지면 소소한 잔물결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다,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다른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나오미는 호텔에 오는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얼굴을 따로 가지고 있다. 호텔리어라면 그 가면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 아래 맨얼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아는 척 해서는 안된다. 또 그럴 필요가 없다,

가면을 쓴 가장 절박한 이유는 그것을 쓴 사람만 알고 있다,

우리는 그 가면조차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닛타는 다르다,

사람이 가면을 쓰는 것은 무언가 감추는 것이 있어서이고 그렇다면 그 원래의 얼굴을 알아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가면이란 거추장스럽고 불쾌한 것이다,

누구나 쓰고 있는 그 가면은 결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닛타와 나오미에게도 있다,

내마음이 드러나서는 안되는 상황이 생기고 내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보여주고 싶은 양가 감정도 있다,

 

나오미는 대상의 그 마음을 존중한다.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을 존중하고 가면을 모른 척 하고 그리고 그대로 만족하는 대상에 다시 만족한다,

닛타는 그것이 마땅치 않고 가면 자체가 의문스럽지만 그래서 자기조차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른다,

맨 낯이란 위험하다,

나 자신에게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 대상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누구나 사회적 얼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가면이 없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도리어 부담스럽고  곤란한 경우도 있다.

가면은 나의 보호막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대상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무엇일 수 있다,

햇살아래 드러나는 맨 얼굴이란 때로는 폭력이기도 하다,

예의라는 것 에티켓이라는 것 그리고 역할에 맞는 몸가짐이라거나 직업 또는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는

사건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닛타도 나오미도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고 서로의 가면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 사건이라는 건 머리를 쓴 것 치고는 내용은 허술하다,

누가 봐도 연관성을 이을 수 없는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범인은 너무 많은 트릭을 쓰며 동시에 그 트릭으로 누군가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을 야수성을 충동질 했다,

어리석고 부지런한 누군가가 사회를 망친다는 생각이 얼핏 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사건의 범이 누구냐는 긴장감보다는 호텔에서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의 상황하나하나는 꽤 매력있고 긴장감 있다,

갑자기 호텔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진다,

그곳에 나오미가 있다면 정말 근사할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소설은 그냥 무심코 읽기 시작한다,

대단한 사건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별 거 아닌 일들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그 사람의 마음이 큰 갈등 없이 그저 담담하게 흘러간다.

요즘 말로 이불 속의 하이킥 정도의 일을 꼼꼼히 되집어가며 이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감정의 결을 그려간다,

지루하기도 하고 별 걸 다 고민하고 결심하고 기운내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별 거 아니잖아... 하는 순간 점점 묘하게 빠져든다,

 

이 책도 그랬다,

남편은 죽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산 지가 8년이다,

보편적으로 이상하다.

어쩌면 책 속의 표현대로 삼각형의 한 축이 빠져버린  그래서 서로 남남으로 돌아서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관계인데 계속 삼각형인것처럼 관계를 이어나간다,

둘 사이에 어떤 벽도 어려움도 없다,

소설적인 장치인지 일본 특유의 문화인지 모르겠다,

그냥 보면 아버지와 딸같기도 하다. 그보다 더 편해보일 때도 있다,

죽은  사람인 아즈키를 둘러싼 여러사람들의 이야기가 짧게 이어지면서 연결된다,

그의 아내 데스코 그리고 아버지인 렌타로 이웃친구 아키라 그리고 데스코의 남자친구 이와이

아즈키의 사촌 도라오까지 각각 아즈키와 연결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라고까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아즈키와 연결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삶에 죽음이 함께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쓰러질때 까지 살아야겠다는 것

슬픔속에서도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

죽은 이를 잊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삶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등등

각각의 사람들은 제 몫의 삶 앞에서 죽음을 함께 생각한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데스코와 렌타로 그리고 그들 곁의 사람들 모두 밝다

바보 같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한 사람들이 정답다.

 

별 일도 없고 별다른 갈등도 없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괜히 히죽거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밋밋해서 일본소설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뭔가 소소한 것들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내 삶은... 그리고 내곁에 있는 죽음에 대해..

즐겁게 열심히 삶을 살다가도 문득 슬퍼지는 순간 또 그 슬픔에 깊이 빠져 울어버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소설은 말한다,

 

무엇보다 유코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치지 않은 울음뒤에 꼭 죽음이 있다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누군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울어주고 있다는 의미로 대치되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

누군가 나를 위해서도 울어줄 거라는 믿음이  좋았던 걸까...

나도 누군가를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편에서 모든 이야기는 단 한가지 정말 전하고 싶은 단 한가지를 위해 앞의 모든 글자들을 채워나간다,

어마무시한 플롯이나 파란만장한 스토리 사연깊은 인물의 갈등이 아니라 단 하나의 하고 싶은 말을 숨겨놓기 위해 글자들을, 단어들을, 문장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사실 김중혁의 소설은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다. 나쁘다의 평가가 아니다. 그저 취향 문제일 뿐이다,

그의 어눌하고 어색어색하면서 수줍은 말투는 좋아했다,

그 속에 진정성 있는 말은 유려하진 않아도 늘 잘 전해졌고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그는 작가답게 문장으로 잘 만들어  전해주었다. 그러나 두서없고 주저하면서 감정을 드러내길 쑥스러워하는 그의 표현이 문장으로 글로 읽기는 조금 안 맞았다,

같은 의미라도 말은 좋았으나 글은 힘들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읽을수록 점점 좋았다.

첫 인상은.. 이게 뭐야.. 하는 거였는데 읽어나가면서 어어... 하기 시작했고 결국 울컥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감정의 충돌이다, 작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 짧은 작품 속에 잘 숨겨저 있어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그 숨은 문장을 찾는 일이 행복했다,

그렇다고 누구도 찾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둔 건 아니었다. 그냥 쓱 지나면 모를 수 있고 그 의미가 내게 와 닿지 않으면 그저 그런 문장일 뿐이지만 나의 감정과 기억과 충돌하면서 그것은 숨어있는 의미있는 문장이 되었고 그 문장이 내게 왔다,

그래서 짧은 소설 속의 많은 문장들은 단어들은 글자들은 그 하나의 문장을 내게 보여주기 위한 위장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말을 해주려고 이 수줍은 사내는 많이 많이 돌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아주 큰 착각이지만 나를 위해 이 한마디를 해주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 했다,

그 문장은 나를 찾아보라고 ... 자꾸자꾸 눈에 쉽게 밟히도록 숨어 있었다.

독자마다 찾는 문장이 다를 수 있고 작가가 숨겨놓은 문장은 제각각의 독자들 만큼 다른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제각각 자기의 문장을 찾을 것이다,

책은 읽는 순간 그건 독자의 몫이므로

 

 

"요요" 에서 보여준 시간의 흐름은.. 울컥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나는 '스토너"를 떠올렸고 묵묵하고 시간을 견디고 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동시에 그 흐름을 읽어내려는 주인공에서 자꾸 스토너를 떠울린다,

견딘다는 것..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 드러내지 않은 속내들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이 작품은 올해 최고의 단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쌓여 있는 말이 많아서 그걸 꺼내 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지 못한 말이 더 쌓이고 말았다. 높이 쌓아 올린 책더미에서 밑바닥과 가운데 책을 꺼내기 힘들 듯 오래전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 애기들을 꺼내려면 한 줄로 쌓인 모든 이야기를 허물거나 위에 쌓인 이야기를 전부 걷어내야 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 이야기를 꺼낼 만한 시간이 다시 올까

 

그래 나쁘지 않아......

 

"힘과 가속도'는 뭉클했다,

 

현수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을 모조리 분리시키고 싶었다. 나사들을 하나씩 풀어서 모든 부품을 늘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짜맞추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다시 짜맞출 수 없대도 일단 해체하고 싶었다, 삐걱거리는 육체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진 심장을 부쉬버리고 싶었다. 고통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아마 어마어마한 고통이 폭설처럼 다가와 누추한 모든 마음을 덮어줄 것 같았다. 모든 게 텅 비길 원했다. 현수는 끔찍한 고통을 바랐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이길 바랐다. 현수에게 자동차가 다가왔다.

 

'보트가 가는 곳'은 쨍한 각성을 준다

 

카메라가  얼음 아래에서 얼음 위를 올려다 보는데 사람들이 다 보여요.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들도 먹먹하게 들려요. 다 보이고 다 들리는데 그 사이를 엄청나게 두꺼운 얼음이 가로막고 있는 거 예요 끔찍하죠

끔찍하다기 보다 슬픈데요?

끔찍한 거예요. 슬픈게 아니예요. 

 

 

'종이위의 욕조'는 내가 받은 위로와 공감이었고

 

뭐가 없어졌기에 가방이 가벼워졌을까?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방 안은 그대로일 것이다. 용철은 가방을 들고 손목을 까딱거려 보았다. 가방속에 뭐가 들어 이썻는지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가방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뱀들이 있어'는  내 기억과 맞닿고 있고 위로 받는 것이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은 커녕 위로의 단어 하나조차도 찾아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아 본 적이 없어서 위로에 서툴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김우재를 위로할 만한 말을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애당초 찾을 생각이 없었다는 걸 정민철은 몇 달 후에야 깨달았다. 김우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위로할 마음이 없는 자신을 들키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

'상황과 비율'  '픽포켓'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이게 뭐야 했다가  다시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 진다.

여름에...... 잘 읽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8-15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