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흰죽 가게 - 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스제천 스님의 유쾌발랄한 영혼 치유서
스제천 지음, 이경민 옮김 / 모벤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스님이 썼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야기들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아마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을까 기대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서화를 기리는 글을 贊이라 하는데 일본문화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다음 일화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한 젊은이가 한 폭의 그림을 가지고 다쿠앙 소호 선사를 찾아왔다. 두 눈이 번쩍 뜨일 아리따운 한 창녀가 그려져 있었다. 젊은이는 다쿠앙 선사에게 그 그림에 대한 찬을 부탁햇다. 화려하고 요염한 여인의 그림으로 선사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이미 불이 꺼진 재인지 아니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인지를.

다쿠앙 선사는 그림을 보고 “야 이거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로군. 이런 미인과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을 했다. 그리고 찬을 술술 써 내려갔다.

부처는 진리를 팔고
조사는 부처를 팔고
말세의 중들은 조사를 팔아 사는데
그대는 다섯 자의 몸을 팔아
중생의 번뇌를 편안케 하는구나
색즉시공 공즉시색.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달은 밤마다 물 위를 지나가건만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젊은이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 말도 못한 채 자세를 바르게 했다.”

일본 선승들의 일화를 모든 ‘다섯 줌의 쌀’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달리 별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짧은 이야기에서 그 선사의 인간적 깊이를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한 선종이 자리잡았던 동북아엔 이런 이야기들이 특히 많다. 그러면 이책도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이책은 스님이 썼다는 것 이외엔 불교와 딱히 상관이 없다. 제목을 가리고 책의 내용만 골라 보여준다면 그냥 우화집이라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다. 그는 궁 밖을 나가 미행하기를 좋아해 정기적으로 백성이 사는 성에 가 민심을 듣곤 했다. 그날도 왕은 거리를 돌아다니다 눈에 띈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왕은 가게 문간에 앉아 제화공이 신발을 수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두 마디 주고받던 왕이 뜬금없이 물었다. ‘주인장 이 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겠소?’ 제화공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국왕 같습니다. 부족할 것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으니까요.”

왕은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 생활이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왕은 제화공을 근처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제화공은 권하는 술을 한 잔 두잔 마시다 완전히 취하고 말앗다.

한참이 지난 뒤 제화공이 눈을 뜨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크고 널찍한 방에는 화려하고 고운 비단 주렴과 귀한 등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제화공은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수많은 궁녀들이 자신을 에워싸며 외쳤다. ‘대왕마마, 어제는 몹시 취하셨습니다.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처리하실 일이 산더미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내가 환생이라도 한건가?’ 거울을 찾았다. 매일 보던 그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했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이 재미있기도 햇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왕이라니 좀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 왕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햇다. 며칠은 정말 즐거웠다. 먹어보지도 못한 맛있고 귀한 음식을 먹을 수있고 보지도 못한 것을 가지고 놀 수 잇었다. 아리따운 궁녀들은 보고만 있기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슬슬 지겨워졌다. 매일 아침 조회를 하는 것도 괴로웠다. 듣는 것이라고는 무슨 말인지 알수도 없는 얘기들 뿐이었다. 호화로운 음식과 놀이도 싫증이 났다. 가장 끔찍한 일은 설핏 잠이 좀 들만 하면 대신들이 찾아와 끝도 없이 보고를 하는 것이엇다. 불면증에 걸렸고 예전이 그리워졋다.

어느 말 오후, 제화공은 방문을 잠그고 혼자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화공은 뽀개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안으며 일어나 모든 것이 되돌려진 것을 보았다.

며칠 뒤 왕이 다시 제화공을 찾아왔다.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겠소?’ ‘제가 보기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저 자신같습니다.’”

별 설명이 필요없는 그 자체로 분명한 우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솝우화책이 편집될 때처럼 이책에는 이야기가 있고 짧은 코멘트가 따라오는 것이 전부인 편집이다.

그러면 이책의 제목에 스님이란 말이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유는 있다. 이책의 이야기들은 저자의 창작이 아니다. 위에 인용한 이야기는 육도집경이란 불경이 출처이다. 저자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불가에선 널리 읽히는 책들에서 이야기들을 모아 다시 편집해 이책을 썼다. 시간의 검증을 거친 이야기들이란 말이다.

저자가 한 일이라면 그런 이야기들을 뽑아 요즘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다시 쓴 일이 전부라 할 수잇다. 예를 들어 “옛날에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사내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아내를 어찌나 엄하게 대하는지,” “사람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 헐떡이는 나귀에게 응급치료를 하며 심장 마사지를 해주었다. 젊은이는 나귀에게 인공호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 모양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이다.

시간의 검증을 거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고른 것만으로도 읽을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요즘의 감각에도 재미있게 고치는 저자의 솜씨가 재미있다. 위에서 인용한 제화공의 행복 이야기는 사실 원 분량의 1/3 정도이다. 인용을 위해 가지를 쳐냈지만 원문은 앞의 나귀 인공호흡 같은 잔가지들이 많다. 사실 불경의 이야기들은 늘어지지 않는다.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한다고 보면 된다. 예수가 말했던 우화들과 문체가 비슷하다. 물론 그런 간결체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만들고 핵심을 명료하게 한다는 장점이 잇지만 집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잇다. 요즘같이 마음이 바쁜 세상엔 인기있기 어려운 문체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간결체의 문체를 바꿔 읽는 재미를 더하는 솜씨가 좋다. 그것이 이책이 중국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며 이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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