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 기회를 낚아채는 충동의 힘
닉 태슬러 지음, 이영미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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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와 리스크 매니저(risk manager)에 관해 말한다. 당신은 리스크 테이커인가 리스크 매니저인가? 답을 알려면 다음 실험에 답을 해보자.

500달러를 받을 100% 확률과 1,000달러를 받을 50% 확률의 두가지 옵션이 있다고 하자,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대부분은 확실하게 500달러를 받을 것을 선택한다. 당신도 그렇다면 당신은 리스크 매니저이다. 위험할 것 같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보통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500달러라는 심심한 선택보다는 2배의 보상을 쫓는다면 당신은 리스크 테이커이다.

저자는 리스크 매니저가 더 보편적이라 말한다. 대개의 경우 3/4은 이에 속한다. 그러나 리스크 테이커도 그보다 작지만 1/4이나 되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나온다.

이러한 비율은 일정하다. 비율이 일정하게 나오는 이유는 저자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리스크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통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 유전자는 탐색추구 유전자라 불린다. 이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의 돌연변이이다.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는 두뇌에서 도파민의 적절한 수준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도파민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흥분이 지나치면 좋을 일이 없기 때문에 도파민의 수준은 일정해야 하며 도파민의 수준이 일정수준을 넘어가면 흥분이 공포와 불안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 이 유전자의 기능이다.

그러나 변종 유전자는 도파민의 수준을 조절하는 기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변종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항상 더 많은 도파민을 원하고 도파민을 찾아 새로운 자극을 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주의력 결핍으로 오해받지만 이들의 주의력은 정상이다. 단지 쉽게 지루해할 뿐이다.

새로운 자극을 쫓는 성향 때문에 이들은 나머지 3/4의 사람들과는 리스크를 다르게 평가한다. 리스크란 이익과 위험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란 확률이다. 이익과 위험이 반반이라면 3/4의 사람들은 위험에 가중치를 두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극을 쫓는 1/4의 사람들은 리스크의 위험보다는 이익에 더 끌린다. 위험이 반 이상이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리스크 테이커이다.

이런 성향은 조상들이 살던 아프리카 초원에서라면 딱 죽기 좋은 성격이다. 초원에서 위험이란 생사의 문제이다. 이익을 쫓는 것은 좋다. 그러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성향은 목숨이 간당간당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이런 성격을 갖게 하는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1/4이나 발현되는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득이 잇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 등장한 시기는 5만년전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로 유럽으로 떠나는 ‘모험’을 시작한 때이다. 새로운 것을 쫓고 새로움의 긍정적인 면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의 변종이 나온 덕에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서식처를 확장한 것만이 아니다. 예술도 이때 나왔고 농경도 이때 나왔다.

다시 말해 리스크 테이커들은 혁신자이다. 그들 덕에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를 피해 쫓기는 생활을 접고 짧은 시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리스크 테이커의 잇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맨땅에서 시작해 자신의 힘으로 거대한 부를 이룬 사람,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들은 거의 리스크 테이커들이다.

그러면 리스크 테이커는 언제나 승자이고 좋은 것만 주는가?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앞의 실험에서 1000달러를 선택했다면 확률은 반반이니 1000달러를 받거나 0달러를 받거나 둘중의 하나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 리스크 테이커의 전형적인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테이커와 리스크 매니저의 소득평균은 비슷하다. 단지 리스크 테이커의 소득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양극단에 치우쳐 잇다.

충동적인 그들의 성향은 너무 극단적이다. 그렇다면 항상 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사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빌 게이츠의 예를 든다.

빌 게이츠는 알다시피 잘 나가던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전망도 불확실한 IT 시장에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리스크 테이커의 충동적 행동이다. 그러나 그가 MS라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충동성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별명은 ‘바이너리 빌’이다. 이 말은 게이츠의 이원적 사고 체계를 가리킨다. 게이츠는 충동 그 자체이다. 그는 교통위반 딱지로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회의실을 도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과 관련해서 게이츠는 모험 충동을 자신의 비관주의로 억제한다. 대다수에게 비관주의는 장점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선천적으로 충동적이지 앙ㄶ다.

빌 게이츠는 어떤 아이디어도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조차 특유의 회의주의와 강도 높은 정밀조사를 거치지 않고는 사무실을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충동적 사고가 효과적이려면 ‘방향이 맞아야 한다.’ 이들은 충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할 때만 긍정적이라 말한다.” 저자는 긍정적일 때 기능적 충동성, 부정적일 때 역기능적 충동성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혁신적인데다 자신을 제어할 방법까지 있고 좋은 것만 있으니 대다수 3/4은 그저 평범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 밖에 없는가?

저자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3/4은 역시 리스크 테이커들처럼 혁신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 못지 않게 자신의 충동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뭐라고? 충동성은 리스크 테이커들의 성향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저자는 리스크 메니저들도 충동성이 잇다고 말한다. 조건이 갖춰지면 그들도 충동적이 무모하게 충동적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실험을 뒤집어보자. 1000달러를 읽을 확률이 50%, 500달러를 잃을 확률이 100%인 두가지 옵션이 있다고 하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대다수는 첫번째의 도박을 택한다. 리스크의 이득일 활륙은 무시할 수 잇지만 그 조건이 손실의 문제가 되면 충동적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리스크 테이커들에게 모험은, 도박은 일상이지만 리스크 매니저들에게 모험은 낯선 것이고 경험이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모험을 해야 되는 상황을 만나면 안절부절하게 되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런 상황을 통제할 수 잇다면 충동성을 제어할 수 잇고 리스크 테이커들만큼 대담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저자는 모험에 대한, 리스크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한다면 리스크 매니저도 얼마든지 리스크 테이커만큼 혁신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짐은 지식의 양이 방대하며, 이를 활용해 결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내린다.” 짐이란 리스크 매니저 타입인 임원에 대한 평가이다. 저자는 이것이 열쇠라고 말한다. 지식은 충분한 준비를 말한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리스크를 과감하게 떠안을 수 있게 한다. 저자는 그 예로 통신판매업체였던 시어즈 로벅을 성공적인 백화점 체인으로 변신하게 한 우드의 예를 든다. 우드는 리스크 매니저엿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전직 장교 우드는 숫자에 미친 사람이었다.” 1920년대 미국은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자동차가ㅓ 널리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트렌드를 통계책에서 확인한 우드는 농촌을 상대하는 통신판매업은 저물 것이라는 것을 데이터로 예견할 수 있었다. 그는 숫자에 근거해 통신판매업에서 도시에 매장을 둔 소매업으로 전환할 때라는 것을 읽어냇다.

“로버트 우드의 혁명적 전략은 세심한 성향의 위험관리형이 혁신을 이뤄낼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저자는 리스크 테이커이건 리스크 매니저이건 관건은 현실에 발디뎌야 하며 어느 쪽이 상대와 같이 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리스크 테이커와 리스크 매니저는 자신의 천성을 타고난 것이다. 서로는 서로의 성격으로 바뀔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각 성격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 테이커는 흔히 비전형 리더라 불리는 타입이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무엇을 시작하는데 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키우고 관리하는데는 잼병이다. 그런 일은 리스크 매니저의 일이다. 회사의 경영에서 혁신과 관리는 모두 필요하다. 그러므로 두 성격의 사람이 모두 필요하며 둘의 균형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상당히 새로운 설명이다. 위의 요약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혁신과 관리에 능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은 이책이 처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유형이 유전적 근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성격의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향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이책이 처음이다.

그럼 점에서 이책은 다른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잇다. 그러나 저자가 책의 끝에서 말하듯이 이책에서 제기하고 잇는 리스크 테이커/리스크 매니저의 분류는 시론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기존의 다른 유형분류들 가령 MBTI의 기본 범주인 외향성/내향성, 동조성과 같은 범주와 충동성에 대한 이책의 구분이 어떻게 접합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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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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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스즈키 선사에 관한 글에서 그를 ‘삶을 예술처럼 살았다’는 평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는 그 말이 왠지 좋게 들렸지만 그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삶을 어떻게 살면 예술이 되는가? 그 말이 나온 문맥은 깨달음과 삶을 즐기는 것이 같다는, 깨달음이란 삶을 즐길 수 있는 기술(art)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엇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입장에선 아직도 ‘삶의 예술’이란 말이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말의 의미를 이렇게 풀고 있다. “깨달아 버리면 ‘기분 좋아’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깨달음이 열리면 ‘기분 좋아’를 느껴도 욕망의 번뇌에너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분 좋아’를 보통보다 훨씬 깊고, 섬세하게, 있는 그대로 맛보게 됩니다.

깨달음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잡념에 묶이지 않고 그저 오직 ‘기분 좋아’를 남김없이 그대로 구석구석까지 맛보는 것입니다.

욕망이란 요컨데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육감에 들어오는 자극에 대하여 ‘더 갖고 싶어, 맛보고 싶어’라는 것입니다만 극히 쇼킹한 일은 욕망으로 물든 마음으로 무언가를 느낄 때 본래 그것이 지닌 자극을 오히려 대충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맛보고 싶어’라는 잡념 탓으로 도리어 맛을 다 못보고 맙니다.”

저자는 무엇을 바라는 것 자체는 건강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무엇을 바라는 자체가 아니라 바라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하는 번뇌 즉 잡념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잡념을 털어버리고 ‘무엇’을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예술처럼 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이책 역시 비슷한 시기에 번역된 저자의 다른 책인 ‘생각 버리기 연습’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라는 것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 되어버리는 ‘욕망’이 될 때가 문제이고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苦’가 된다는 것. 불교의 기본교리이며 ‘생각 버리기 연습’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책 역시 마찬가지 논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전 책보다 좀 더 불교의 논리로 확장되어 설명하고 잇다는 점이 다르다. 가령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이란 윤리적인 기준에 맞춰 기준에 맞으면 선이고 악인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악’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전 책에선 스트레스나 화와 같이 보통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를 불교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책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불교교리를 우리가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겪는 심리적 일상의 맥락에서 알기 쉽게 실감나게 그리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인 맥락으로 소개하는 면이 더 강하다.

다시 말하자면 ‘생각 버리기 연습’처럼 불교교리를 생활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같지만 이책은 좀더 불교교리를 더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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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하지 마라 - 내 인생을 이끌어줄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만나는 방법
키이스 페라지 지음, 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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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먹지 마라’로 유명한 저자의 학벌은 화려하다. 학부는 예일대에 대학원은 하버드라는, 미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엘리트 코스를 거쳐 MBA 출신들의 출세코스인 유명 컨설팅 업체를 들어갔고 컨설턴트들이 그렇게 하듯이 일반기업의 간부로 옮겨 경력을 쌓았다.

자랑할만한 경력이다. 그러나 저자의 문제는 자신이 그렇게 잘났다고 떠벌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그런 과시욕이 부른 참사로 이런 예를 든다.

“’혼자 밥먹지 마라’가 한창 인기를 끌던 즈음, 래리 킹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을 때였다. 킹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햇다.

“당신이 제2의 하비 맥케이군요.”
하비 맥케이는 ‘상어와 함께 수영하되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법’의 저자이자 명강사로, ‘래리 킹 쇼’의 단골 출연자였다.

“당신과 함께 일을 좀 벌여봐야겠군요.” 킹이 말햇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재앙이엇다. 저자는 래리 킹 쇼에 초대받으려는 욕심에 자신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나는 내 본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나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나는 식탁에 둘러안ㅂ은 여러 사람들과 래리에게 연신 질문을 퍼부엇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면서 분위기를 주도햇다. 킹이 우리의 새로운 관계를 그의 페이스 대로 음미하도록 한발 물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나는 줄곧 주도권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한마디로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엇다. 아, 내가 왜 그랫을까?

래리 킹은 이미 나의 어리석은 공연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흥분하고 들떠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내 매력을 드러내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햇다. 그 후 그의 쇼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풍 떨기는 별 볼일 없는 집안에 태어난 저자의 나쁜 습관이엇다. “이런 성향은 내 어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난한 내 처지를 놀릴까봐, 나는 일부러 사실을 좀 부폈다. 아니 때로는 완전히 뻥을 치기도 햇다.

어른이 돼서 나는 사실을 부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열등한 사람으로 판단할 거라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내 업적을 떠벌리게 되엇다.”

저자는 자신의 습관이 나쁘다는 것을, 나쁠 뿐 아니라 자신을 가볍게 만들어 사람들의 존경심을 얻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저자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책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처음 ‘안전지대’란 것이 무엇인가를 느낀 것은 대학시절이엇다.

“가난한 동네 출신인 풋내기가 예일대학의 비밀결사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마지막 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비밀결사’라고 알려진 그룹 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간 비밀결사는 대학에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정신없이 바쁘고 두려운 시기에 서로를 지원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났다.

가장 흥미로웠던 때는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할 때엿다. 우리의 규칙은 엄격한 비밀보장이었다. 그 때문에 더 솔직할 수 있었고 회원들 사이에 깊은 친밀감이 생겨났다. 예일대학의 높은 스트레스와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비밀’ 모임들은 최고의 ‘안전지대’였다.

그 모임을 통해 내 삶이 바뀌엇다. 별 볼일 없는 노동자 계층 출신이라는 사실과 그 때문에 늘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처음 털어놓았다. 특히나 그룹에는 예일대 출신의 저명인사들의 자손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감내한 위험은 여러 방식으로 보답을 받았다. 집안 배경이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모두가 비슷한 일로 힘겨워하고 있으며 우리가 받는 수준 노ㅠ은 교육을 통ㅎ새 최고의 발자국을 남기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았다. 일단 털어놓고 나니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저자가 이책에서 소개하는 핵심개념인 안전지대 그리고 상호지원 또는 라이프라인 관계는 바로 저자가 경험한 비밀결사에서의 경험을 개념화한 것이다.

저자가 이름을 날리게 한 전작 ‘혼자 밥먹지 마라’는 인맥쌓기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잇더라도 인맥은 한계가 잇다.

“조언이 필요하면 네크웤 안에 있는 변호사나 은행가, 기업가, 이사회 임원 등에게 협조를 구하면 된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줄 수 잇는 도움이란 ‘여기에 전화해봐라’ 혹은 ‘저기서 누구를 만나봐라’ 정도에 불과했다. 내 삶과 내일에 대해 아무 때나 속을 탁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저자는 비밀결사에선 허풍을 떨지 않았다. 거기선 ‘안전’하다고,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햇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관계에서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잇는 관계를 라이프라인 관계라 말한다.

“나는 피터처럼 믿음직한 사람들의 지원과 조언이 더 많이 필요햇다.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을 수 잇고,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며, 설사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이라도 솔직하게 지적해줄 그런 사람들이 필요햇다.”

이책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얻는가, 어떻게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잇는가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라이프라인 관계라 말하는 그런 관계에 있을 때를 저자는 ‘안전지대’라 말한다. “안전지대는 물리적인 환경이 아니라 감정적인 환경이다. 안전지대 안에서 두 사람(홍느 그 이상은)은 마음 편하게 비판을 주고 받을 수 잇다. 상대방이 나에게 준 피드백은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기에 전혀 언짢게 느끼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고 믿으며 내가 잘되기를 바란단는 사실을 안다.”

이런 안전지대의 속성을 저자는 4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서로 아낌없이 주려는 관계이기에 그들의 관계는 관대함(generous) 위에 세워져 있다. 둘째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관계이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에 그들의 관계는 취약성(vulnerable)을 갖는다(개인적으로는 진정성(authentic)이란 말이 더 좋을 것같다). 그리고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잘 알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솔직하게 비판할 수 있는 관계이다.

여기까지라면 저자가 말하는 관계는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관계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목적이 잇는 관계이다. 바로 더 많은 발전을 위한 사적인 고문단 즉 저자가 학교 시절 경험햇던 비밀결사 모임과 같은 상호 지원을 해주는 관계인 것이다.

저자는 그런 관계의 예를 술을 끊으려는 알코올중독자들의 모임이나 다이어트를 위한 모임인 웨이트워처스와 같은 경우라 말한다.

“웨이트워처스의 회원들은 감량 목표를 정하고 매주 만나 체중을 잰다. 체중 검사는 은밀히 이뤄지며 그 결과를 다른 회원들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는 회원들이 유튜브에 자신의 체중 검사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게시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전 세계 25만명이 당신의 체중 검사 결과를 지켜볼 텐데 여전히 케이크 조각에 입맛을 다시겠는가? 웨이트워처스는 상호 지원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네번째 마인드인 ‘책임성’을 실천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성공을 달성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마인드는 바로 책임성이다. 나는 책임성을 ‘엉덩이를 걷어자 줄 권’라고도 한다. 책임성은 우리가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독촉할 의미를 지우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라이프라인 관계란 이런 관계를 말한다. 이책의 후반은 그런 관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고나한 것이다.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은 기본적으로 목표가 잇다. 이런 것들이다: 당신의 어떤 영역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지식과 경험, 훈련과 인간관계가 필요한가? 당신의 부족한 면중에서 지금 당장 개선하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그런 목표를 위해 당신의 자문단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책은 그런 자문단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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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 - 죽고 싶도록 힘들 때 반드시 해야 할 10가지
대프니 로즈 킹마 지음, 이수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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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의 대사이다. 남부 문명의 황혼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처럼 말이다.

“6년 동안 사귄 애인이 최근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선언했다고 했다. 3년간 유럽에 가 있던 아들이 귀국해 이제부터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녀에게 한 달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햇다. 그녀는 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학교 측 예산 삭감의 여파로 곧 해고당할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열네 살짜리 딸아이가 마약을 하는 걸 목격했고, 여든 세살인 친정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머리를 보랏핵으로 염색한 천방지축 딸아이를, 당분간 할머니 집으로 보내 착실한 생활태도를 배우게 할 계획이었는데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이책의 주제이다. 난 왜 이리 지지리도 운이 없나, 이 모든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나야 하는가? 그런 말이 생각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이책의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실컷 울라고 말한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해야할 첫번째 일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불운을 겪게 된 상황에서 울고 나면 쌓이고 쌓여 분출되기만 기다린 감정이 털어지면서 한결 가벼워진다.

울고 났으면 이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제대로 볼 준비가 될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디폴트라 말한다. 저자는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의 시련은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자문해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금이 그것을 고칠 기회라고 받아들여라.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과 결별하는 것일 수 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련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련의 의미는 당신 자신을 바로 보고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이 정말로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기회일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대략 이런 정도이다. 그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깨달아라. 나아가 인간에 대한 세계에 대한 사랑에 눈 떠라. 영적인 자신을 깨달아라와 같이 저자와 종교가 다르다면 쉽게 납득하기 힘든 내용도 나오지만 전체적으로는 앞에서 요약한 것과 같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실 지금의 시련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저자가 말하는 ‘내일의 태양’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저자와 같이 종교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신념이 잇다.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종교인들에게 존경할 점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위에서 요약한 것이 와닿는다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잇을 것이다. 그리고 이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말을 자신이 상담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저자가 말해주는 사람들의 삶을 듣다보면 시련을 겪는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런 시련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했었는가를 그리고 그 시련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냈는가를 보면서 저자가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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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이책은 어리석음, 불교용어론 無明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다.

"무지는 교양이 없다든가 머리가 나쁘다는 듯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사고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혹사하며 생각을 많이 할수록 신체와 마음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알기 어려워지고, 무지해진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같은 얼굴이군, 지루해...'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개념과 망상만 쌓이게 되고, 현실과 의식의 실제 흐름에 무지하게 된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인가? 무지는 번뇌의 원인이고 번뇌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무슨말인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오랜 친구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스트레스 두가지가 있다. 금속이 자주 구부러지고 휘면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부러지듯이 육체도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스트레스는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욕심(탐)과 분노(치) 때문이다.

무엇이 갖고 싶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교에서 욕심과 분노를 무지와 함께 3독이라 하는 이유는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며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도 갖지 못해도 번뇌가 일어난다. 욕심 나는 것을 가져도 더 갖고 싶고 못 가지게 되면 분노가 일어난다. 그러나 욕심내는 마음 자체가 어리석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고 괴롭지 않아도 되는데 괴롭게 되니 문제인 것이다. 인생은 괴롭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지면 '이런 말은 듣기 싫다'라는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분노의 어두운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화낼 일에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대부분 분노할 것이 아닌 것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원인은 우리 자신의 망상 때문이다.

'이 일을 실패하면 어쩌지?'라든가 '실패해서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어쩌지?'하는 잡념이 연쇄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며 마음속에 들끓게 되고 마음의 메인 메모리는 헛된 잡념으로 가득찬다. 1초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가 자신을 희생향 삼아 쾌락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대의 말소리라는 정보에 의식을 집중하면 상대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이 고통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망상을 멈추고 자비심에 가까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반사적으로 분노를 품게 된다. 그러나 무시당했다고 부당한 이유라고 괴롭힐려 그런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상대가 왜 분노하는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같은 불평을 도대체 몇번이나 되풀이하는 거야. 이 사람 나한테 스트레스를 풀고 있군!'하고 화를 내며 스스로의 고통을 더한다. 그러나 사실 불평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풀기는 커녕 호릅이 얕아지고 표정이 굳고 목소리가 불쾌하게 올라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상대의 고통을 본다면 화를 내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이며 거창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스트레스는 대개 이런 식이다. 스스로의 생각에 잡념에 휘둘려 분노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는 여유가 있다면 분노를 터트릴 이유가 없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간단하다. 우리를 휘두르려 하는 잡념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잡념을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만일 화가 치민다고 생각되면, 이 '화가 치민다'를 따옴표로 묶어버린다. 그 다음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치님다'고 행각다...'라고 되풀이 하며 마음속으로 외우타시피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화가 치민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책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불교 명상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짐작하겠지만 이상의 내용은 '알아차림(mindfulness)'를 일상생활의 맥락에 적용한 내용이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음의 인용을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집중이 잘 안된다면 촉감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보통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럴 때쯤 의자 바닥과 접하고 있는 엉덩이의 감각, 등에서 배에 이르는 감각, 신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감각에 지긋이 의식을 집중해 본다. 의식이 그런 촉감을 향하도록 하면 떨어진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알아차림은 불교수행의 가장 기초이며 끝이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眞如)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인가? 이책처럼 말한다면 잡념으로 염색되기 전, 현상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위에서 상대가 화낸다고 같이 따라 화내기 전에, 상대의 분노라는 입력에 나의 분노를 염색하기 전에 그 입력을 그대로 본다면 있는 그대로 상대의 고통이 보일 것이고 분노를 터트릴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처럼 말이다.

이책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잡념, 즉 번뇌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위에서 든 예처럼 구체적인 맥락에서 여러가지를 말한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쓰는 것, 맛보는 것, 등 우리의 오감에서 들어오는 자극은 언제나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야만 의식될 수 있다(현상학의 지향성 개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부여된 의미에 의해 우리가 부여한 의미에 의해 번뇌에 시달리고 번뇌는 괴로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감각자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불수는 없다) 반성할 수 있다. 그것이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 의미를 넘어 있는 그대로를,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事象 자체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일상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책은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히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와닿게 아하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행복은 멀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지극히 일상적인 실천에서 작은 실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책의 매력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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