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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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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계속해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휴대전화를 들고 종종거리다 또다시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 모든 과정이 디지털 축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깊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과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물론 제품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달라는 고객의 이메일을 받고 제품 개선에 대한 간략한 밑그림이 떠올라 시장 전제를 뒤흔들 수 잇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꽃피울 만한 시간을 잠시도 허용하지 않고 또 다른 스크린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한다면 새로운 사람은 결코 없다.”
하루 일과를 떠올려보자. 데스크톱에서 스마트폰으로 다시 데스크톱에서 스마트폰으로 하루중 스크린과 눈이 만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조금의 빈틈도 없이 스크린이 토해내는 정보를 탐할수록, “디지털 네트웤을 추구할수록 더 창의적이고 똑똑해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모두들 ‘하이퍼 커넥티드’된다면 가족과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더 강해질까? 더 나은 조직을 세우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디지털 스크린은 그런 목표들을 이루는데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좋은 것도 정도가 있다. 과하면 없느니만 못하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계가 없어 보이는 디지털 세상의 삶은 흥미지진진하지만 두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를 뒤흔들고 있다. 첫째 여러가지 업무를 동시에 다루다 보면 시간과 집중력을 끝없이 쪼갤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제나 새로운 자극과 일거리를 찾아 헤메면서 초조해 하고 결국 매 순간을 분주하게 살아간다. 심지어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초조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두번째 측면은 다소 철학적이다. 디지털 네트웤이 확장도리 수록 우리의 사고는 외부 지향적이 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돌아보며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는게 아니라 부산한 바깥 세상을 내다보면 ‘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의 주의력도 유한하다. 스크린이 토해내는 무한한 정보의 홍수는 그 유한한 자원을 쪼개고 쪼개며 더 많은 몫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보는 정보다. 정보를 소화해 의미를 만들 시간이 있을 때만 정보는 가치가 있다. 저자는 정보와 정보 사이에 공백, 정보를 소화할 시간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우리 삶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벼워지며 무의미해져간다고 말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친구가 인사를 하러 잠깐 들렀다고 하자. 친구와 막 대화를 나누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친구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받는데 웨이트리스가 와서 리필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커피가 담긴 주전자를 들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카페의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의 경우 잠재적 관심의 대상은 3가지(책, 음악, 커피)였고 그중 한가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몇 분 만에 잠재적 관심의 대상이 7가지(책, 음악, 커피, 친구, 전화, 웨이트리스, 화재경보)로 늘었으며 그중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엇다. 만족스러웠던 몰입이 불만족스러운 혼란으로 대체된 것이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다 해도 몰입의 상태는 사라져버렸고 어쩌면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삶은 죽은 삶이다.
“창조성은 오직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만 발휘된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불필요한 요구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없는 상태. 즉 존재가 아닌 부재의 상태다. 설명하기 조차 힘든 그 부재의 상태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 것?” 이책의 물음이다.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과거에서 찾는다.
저자가 답을 찾아 떠나는 과거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는 본격적인 도시가 등장한 시대엿다. “고대의 대도시 역시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실로 무척 바쁜 곳이었다. 아테네에 산다는 것은 수천명의 사람들로 밤낮 구분 없이 둘러싸여 있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활동, 소음, 냄새, 타인의 관심을 요구하는 수많은 주장과 함께 한다는 뜻이었다.” 디지털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분주함과 산만함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대도시가 등장하기 이전 촌락단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량이 거리를 흘러다녓다.
“혼자 있을 때 우리의 사고와 감정은 내면을 향하며 이 경험은 다소 조용하고 느리다. 반대로 실제 군중이든 가상의 군중이든 구중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외부지향적이 된다.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도 많고 관심을 기울일 대상도 많기 때문이다. 군준 안에서의 삶은 보통 더 바쁘고 더 빠르다.” 아테네에 사는 사람은 스크린에 포위된 지금의 사람들과 마찬가지 문제에 부딫혔고 공백을 만들 필요를 느꼈다.
도시라는 공간은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와 밀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 속도와 밀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시절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문자매체에 의해 더 가속화되었고 더 촘촘해 졌다.
“군중 안에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생각할 시간이 없는가? 떨쳐버리기 힘든 이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군중의 의견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의견인가? 이 도구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잇는가?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가?”
로마제국은 “ㄱ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길을 포장했고 잘 훈련된 군대를 파견했으며 행정제도를 마련하고 우편제도를 정착시켰다. 로마 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네트웤을 대변했는데 그 새로운 네트웟은 특히 상류층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의 대가도 치러야 햇고 그중 일부는 꽤 까다로웠다. 세상을 더 가깝게 만들면서 제국의 일상은 매우 분주했고 개인의 의무 또한 무거워졋다. 어디를 가든 그곳이 제국의 영토라면 쭉쭉 뻗은 도로, 수로, 요새, 용병, 우편배달부와 같은 같은 다양한 수단이 여전히 로마 ‘안에’ 있음을 일깨워주었고 개인에게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자율성을 요구햇다. 문자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때문이었다. 우편물은 오늘날의 이메일처럼 급히 확인해야 할 대상이엇다. 세네카는 이집트에서 막 도착한 우편선을 맞이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이웃에 대해 묘사한 적이 잇다. 로마 사회의 유력자들은 세네카가 언급한 ‘언제나 쫓기는 듯한 분주한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문자언어의 폭발적인 증가로 로마제국은 읽어야 할 자료로 넘쳐 났다. 수십만원을 넘어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장서를 읽기 위해 이집트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읽을 거리가 많아질수록 진정으로 지식을 쌓기가 어려워졌다. 수많은 책을 정독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했다.”
19세기, 전보와 철도는 그런 분주함과 정신없음을 새로운 단계로 올렸다. “힘든 하루를 마친 무역강들은 늦은 저녁을 먹을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의 품에 안겨 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고 싶지만 런던에서 온 전보 때문에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밀 2만 포대를 사들이라는 급전을 받은 가련한 남자는 허겁지겁 저녁을 먹어 치우고 캘리포니아로 전보를 보내기 위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사업가는 쉴 틈 없이 바쁘게 뛰어나녀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기술 때문에 정신없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가 동일했기에 그에 대한 답도 비슷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먼저 플라톤은 가끔씩 도시의 군중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두어 내적 자유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파이드로스’에서 하고 있으며 플라톤의 물리적 거리두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세네카는 군중 속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후퇴하여 내적 거리를 만드는 기술에 대해 언급한다. 구텐베르크는 세네카의 내적 거리두기의 수단으로서 책을 손쉽고 싸게 구할 수 있도록 인쇄술을 발명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쏟아진 인쇄물의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넘쳐나는 정보를 통제하는 도구로서 손으로 언제든 썼다 지웠다 할 수 잇는 ‘테이블’이란 도구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러한 거리두기와 내적 자유를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해냈는지 플라톤부터 프랭클린, 소로, 맥루한 등 7명의 시대와 그들의 대응을 검토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