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 논형학술총서 31
강상규 지음 / 논형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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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1세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9.11 테러로 불길하게 개막한 새로운 밀레니엄의 출발 이후 우리는 어떠한 ‘거대한 변환’의 소용돌이 위에 떠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21세기의 불확실성과 19세기의 불확실성이 같은 이유였다고 말한다. 19세기와 20세기말의 공통점은 세계화였다.

세계화라면 보통 경제를 떠올린다. 세계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가 하나의 문화로 묶인 것도 아니니 현실적으로 세계화는 경제현상이라 생각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세계는 평평하다’도 경제현상으로 세계화를 다룬다.

그러나 세계화를 단순하게 경제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세계화가 어떻게 가능하고 세계화가 어떤 역학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함께 가장 많이 말해진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일 것이다. 세계화를 경제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세계시장이란 실체가 있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세계시장이 가능하려면 그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래가 가능하다. 그 규칙을 글로벌 스탠다드라 불렀다. 국경을 넘어 적용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은 세계화가 단순히 경제현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느슨하더라도) 정치적 통합이 없다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을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세계가 하나의 문명표준으로 묶인다는 의미이다.

19세기가 그런 시대였다. 19세기 동북아 3국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세계화의 개념으로, 문명표준이란 시각으로 그 시대를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경험을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발전과정이라는 틀에서 단선적으러 이해해온 기존의 논의방식과는 달리 상이한 문명 간의 충돌과 패러다임 변환이라는 보다 복합적이고 상호구성적인 틀 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봐야만 일본은 제국이 되고 중국과 한국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흔히 서세동점으로 집약되는 거대한 변환의 과정이란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중화질서가 현실적으로 붕괴되고 서구의 국제질서로 재편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이 과정에서 이른바 ‘예의 관념’에 의거한 중화질서로부터 ‘부국강병’과 ‘국가평등 관념’에 입각한 근대 국제질서로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변동을 겪어야 했다.”

그 과정은 말그대로 ‘문명의 충돌’이었고 ‘문명의 표준’이 바뀌는 ‘거대한 변환’이었다. 그런 과정이 쉽게 될리가 없었다. 수천년을 이어온 질서가 표준이 쉽게 바뀔 리가 없었다. 당하는 입장에선 하늘(천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중화질서의 “’무대’가 예의 관계에 입각한 ‘천하질서’에서 상위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주권국가 간의 관계, 즉 ‘근대 국제질서’로 변화해 간 것을 지칭한다. 무정부적 속성을 지닌 새로운 무대 호나경에서는 덕치나 예치, 왕도정치, 사대자소와 같은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부국과 강병, 균세(세력균형)와 자강의 능력이 보다 중시되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배우들은 무대 밖ㅇ,로 밀려났다.” 중국과 조선은 그 무대에서 밀려났고 일본은 그 무대에 남았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문명의 표준이란 관점에서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19세기 문명의 표준으로 떠오른 ‘만국공법’을 중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만국공법이란 표준에 따라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즉 국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검토하면서 적응과 부적응의 이유를 설명한다.

중화질서의 붕괴 또는 문명의 충돌은 아편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아편전쟁은 심각한 사건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아편전쟁이 영국한테는 국가의 전쟁이었으나 청국에게는 회민기의나 백련교도의 난과 같은 지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이나 염군의 난 같은 내부문제가 아편전쟁 같은 외환을 압도했다.

청국 입장에서 불평등조약으로 양보하는 문제는 예전 중화질서에서처럼 오랑캐를 달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청은 서양의 여러 나라가 중국과의 조약을 통해 획득한 특권을 기본적으로 천자가 이적에게 베푼 은혜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어차피 일방적인 성격이 강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상국인 중국의 편벽되지 않은 공정한 은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거부감없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1860년 영불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고 황제가 도망가는 경신변란이 일어나면서 양이의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 되었고 중국 최초의 외교전담기구인 총리아문이 만들어진다. 예부 관할의 조공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천하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중국 자신이 일개 국가에 불과한 무질서의 국제질서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질서의 규칙인 ‘만국공법’에 주목한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만국공법은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양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지피지기의 전략적 차원에서 수용되엇고 참고문헌이요 실무지침서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선 “막말의 2대 베스트셀러는 뭐니뭐니해도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과 휘튼의 ‘만극공법’이었다.”

이 차이가 두 나라의 운명을 갈라놨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만국공법이 전제하는 ‘국가평등’에 근거한 주권국가의 개념은 받아들일 수 없엇다. 그것은 ‘제국으로서의 중화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적 세계질서의 해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중화문명권에서 문명의 정수를 구현하며 문명 기준을 제공하던 화(華)의 입장에서 새로운 문명 기준인 유럽문명에 의해 스스로를 재편해야하는 이(夷)의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천하질서의 논리는 화와 이의 구분에서 시작한다. “화와 이의 관계란 문명의 완전태와 결여태의 관계”였다. 서구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관계가 뒤집힌다는 의미엿고 화에서 이로 전락한다는 의미였으며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미엿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넘어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중화질서에서 주변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선 중국보다 적응이 쉬웠다. 주변에 있었기에 일본의 화이관에서 화는 실체가 불분명했고 이로서 서양에 대한 관점은 중국보다 유연할 수 있었다. 일본은 “중국의 천하 개념에서 드러난 자기완결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화이사상은 중국과 달리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경향성이 현저했다. 지배층이 사무라이 집단이었으며 화이사상을 지탱한 문화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이후 “양이(攘夷)로 대표되는 배외주의적 기운이 일본열도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갓다.” 그러나 그 기운의 뿌리는 “화이라는 명분보다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라는 긴박한 위기의식’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서양제국의 군사적 우월성”이었고 “그 저변에 놓인 서양의 과학기술을 섭취해서 국력을 충실히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전략적 인식이”었다.

일본에겐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생존의 문제였고 적응의 문제엿다. 그렇기에 만국공법을 읽는 것은 적응의 생존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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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심리학 -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알려주는 설득과 협상의 비밀
표창원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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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과거의 피의자 취조실은 공간과 환경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범인은 주로 차갑고 사무적인 느낌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마주앉아 있다. 조명은 어둡고 피의자를 향해 있다. 심문을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어둠은 경찰을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는 반면 표정은 감춰 피의자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낮은 실내온도와 외부소음 차단,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등을 활용해 불안과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범인 아니라 누구도 오랫동안 있고 싶지 않은 환경이다.”

은근한 고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그런 취조실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의 기제는 취조실에 활용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인터뷰 룸에 들어와 카메라 장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낟. 특히 일면경은 거울 뒤쪽에서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 없어 피의자의 물안을 가중한다. 거울 뒤에서 목격자나 피해자가 자신을 지목하고 있을 수도 잇다는 생각에 인터뷰 룸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두려움,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심리학은 면담자 선정에도 활용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면담자는 피의자의 연령이나 연고지역, 취미 등에서 유사성을 갖고 잇는 인물을 투입하는 것이 공감대 형성이 쉽고 상대방의 얘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그러나 때로 역으로 상대의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어린 수사관을 면담자로 들여보내는 전략을 활용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전략의 희생자가 작고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면담자와 상대하면서 ‘내가 대학 다닐 때 저 녀석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런 놈 앞에서 머리 굴려가며 거짓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곳이 아니라면 눈도 마주칠 일 없는 신참내기를 상대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전략은 자살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수치심을 자극해 취조실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리처럼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심리를 조장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 프로파일러인 저자는 자신이 경찰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나 경찰수사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경찰수사와 프로파일러들이 어떻게 심리학을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사례들 중에는 정몽준 회장처럼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도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이책의 재미는 위에서 소개한 취조실의 심리학처럼 실제 경찰현장의 구체성이 풍부한 사례들과 그 사례들로 설명하는 심리학의 연결에 있다.

이책이 설명하려는 것은 설득이다. 프로파일러의 목적은 피의자를 설득해 자백을 얻어내는 것이다. 설득의 프로인 프로파일러가 어떻게 심리학을 응용하는지 보여주고 거기서 비즈니스 협상에 유용한 팁을 전하려는 것이 이책의 목표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쏟아졋던 설득과 협상 서적들 위에 이책이 갖는 가치는 재미에 있다. 사실 저자가 비즈니스 협상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은 간략하고 그리 큰 참고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소개한 취조실의 심리학을 비즈니스 협상에 응용한 저자의 설명은 상대와 격이 맞게 하라. 불안을 느끼는 장소를 택하지 마라 정도에 그친다. 저자가 비즈니스 협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떠나서 구체적인 경찰업무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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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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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계속해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휴대전화를 들고 종종거리다 또다시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 모든 과정이 디지털 축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깊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과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물론 제품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달라는 고객의 이메일을 받고 제품 개선에 대한 간략한 밑그림이 떠올라 시장 전제를 뒤흔들 수 잇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꽃피울 만한 시간을 잠시도 허용하지 않고 또 다른 스크린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한다면 새로운 사람은 결코 없다.”

하루 일과를 떠올려보자. 데스크톱에서 스마트폰으로 다시 데스크톱에서 스마트폰으로 하루중 스크린과 눈이 만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조금의 빈틈도 없이 스크린이 토해내는 정보를 탐할수록, “디지털 네트웤을 추구할수록 더 창의적이고 똑똑해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모두들 ‘하이퍼 커넥티드’된다면 가족과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더 강해질까? 더 나은 조직을 세우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디지털 스크린은 그런 목표들을 이루는데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좋은 것도 정도가 있다. 과하면 없느니만 못하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계가 없어 보이는 디지털 세상의 삶은 흥미지진진하지만 두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를 뒤흔들고 있다. 첫째 여러가지 업무를 동시에 다루다 보면 시간과 집중력을 끝없이 쪼갤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제나 새로운 자극과 일거리를 찾아 헤메면서 초조해 하고 결국 매 순간을 분주하게 살아간다. 심지어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초조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두번째 측면은 다소 철학적이다. 디지털 네트웤이 확장도리 수록 우리의 사고는 외부 지향적이 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돌아보며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는게 아니라 부산한 바깥 세상을 내다보면 ‘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의 주의력도 유한하다. 스크린이 토해내는 무한한 정보의 홍수는 그 유한한 자원을 쪼개고 쪼개며 더 많은 몫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보는 정보다. 정보를 소화해 의미를 만들 시간이 있을 때만 정보는 가치가 있다. 저자는 정보와 정보 사이에 공백, 정보를 소화할 시간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우리 삶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벼워지며 무의미해져간다고 말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친구가 인사를 하러 잠깐 들렀다고 하자. 친구와 막 대화를 나누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친구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받는데 웨이트리스가 와서 리필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커피가 담긴 주전자를 들고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카페의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의 경우 잠재적 관심의 대상은 3가지(책, 음악, 커피)였고 그중 한가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몇 분 만에 잠재적 관심의 대상이 7가지(책, 음악, 커피, 친구, 전화, 웨이트리스, 화재경보)로 늘었으며 그중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엇다. 만족스러웠던 몰입이 불만족스러운 혼란으로 대체된 것이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다 해도 몰입의 상태는 사라져버렸고 어쩌면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삶은 죽은 삶이다.

“창조성은 오직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만 발휘된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불필요한 요구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없는 상태. 즉 존재가 아닌 부재의 상태다. 설명하기 조차 힘든 그 부재의 상태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 것?” 이책의 물음이다.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과거에서 찾는다.

저자가 답을 찾아 떠나는 과거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는 본격적인 도시가 등장한 시대엿다. “고대의 대도시 역시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실로 무척 바쁜 곳이었다. 아테네에 산다는 것은 수천명의 사람들로 밤낮 구분 없이 둘러싸여 있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활동, 소음, 냄새, 타인의 관심을 요구하는 수많은 주장과 함께 한다는 뜻이었다.” 디지털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분주함과 산만함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대도시가 등장하기 이전 촌락단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량이 거리를 흘러다녓다.

“혼자 있을 때 우리의 사고와 감정은 내면을 향하며 이 경험은 다소 조용하고 느리다. 반대로 실제 군중이든 가상의 군중이든 구중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외부지향적이 된다.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도 많고 관심을 기울일 대상도 많기 때문이다. 군준 안에서의 삶은 보통 더 바쁘고 더 빠르다.” 아테네에 사는 사람은 스크린에 포위된 지금의 사람들과 마찬가지 문제에 부딫혔고 공백을 만들 필요를 느꼈다.

도시라는 공간은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와 밀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 속도와 밀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시절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문자매체에 의해 더 가속화되었고 더 촘촘해 졌다.

“군중 안에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어올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생각할 시간이 없는가? 떨쳐버리기 힘든 이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군중의 의견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의견인가? 이 도구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잇는가?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가?”

로마제국은 “ㄱ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길을 포장했고 잘 훈련된 군대를 파견했으며 행정제도를 마련하고 우편제도를 정착시켰다. 로마 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네트웤을 대변했는데 그 새로운 네트웟은 특히 상류층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의 대가도 치러야 햇고 그중 일부는 꽤 까다로웠다. 세상을 더 가깝게 만들면서 제국의 일상은 매우 분주했고 개인의 의무 또한 무거워졋다. 어디를 가든 그곳이 제국의 영토라면 쭉쭉 뻗은 도로, 수로, 요새, 용병, 우편배달부와 같은 같은 다양한 수단이 여전히 로마 ‘안에’ 있음을 일깨워주었고 개인에게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자율성을 요구햇다. 문자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때문이었다. 우편물은 오늘날의 이메일처럼 급히 확인해야 할 대상이엇다. 세네카는 이집트에서 막 도착한 우편선을 맞이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이웃에 대해 묘사한 적이 잇다. 로마 사회의 유력자들은 세네카가 언급한 ‘언제나 쫓기는 듯한 분주한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문자언어의 폭발적인 증가로 로마제국은 읽어야 할 자료로 넘쳐 났다. 수십만원을 넘어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장서를 읽기 위해 이집트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읽을 거리가 많아질수록 진정으로 지식을 쌓기가 어려워졌다. 수많은 책을 정독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했다.”

19세기, 전보와 철도는 그런 분주함과 정신없음을 새로운 단계로 올렸다. “힘든 하루를 마친 무역강들은 늦은 저녁을 먹을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의 품에 안겨 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고 싶지만 런던에서 온 전보 때문에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밀 2만 포대를 사들이라는 급전을 받은 가련한 남자는 허겁지겁 저녁을 먹어 치우고 캘리포니아로 전보를 보내기 위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사업가는 쉴 틈 없이 바쁘게 뛰어나녀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기술 때문에 정신없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가 동일했기에 그에 대한 답도 비슷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먼저 플라톤은 가끔씩 도시의 군중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두어 내적 자유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파이드로스’에서 하고 있으며 플라톤의 물리적 거리두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세네카는 군중 속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후퇴하여 내적 거리를 만드는 기술에 대해 언급한다. 구텐베르크는 세네카의 내적 거리두기의 수단으로서 책을 손쉽고 싸게 구할 수 있도록 인쇄술을 발명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쏟아진 인쇄물의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넘쳐나는 정보를 통제하는 도구로서 손으로 언제든 썼다 지웠다 할 수 잇는 ‘테이블’이란 도구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러한 거리두기와 내적 자유를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해냈는지 플라톤부터 프랭클린, 소로, 맥루한 등 7명의 시대와 그들의 대응을 검토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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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 -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댄 애리얼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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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주제는 특별할 것이 없다. 요 몇 년간 쏟아진 행동경제학 서적을 몇권 보았다면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이 친숙할 것이다.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은 이렇다. 인센티브의 적정수준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람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사결정에서 감정의 영향은? 등등. 이런 주제들은 다른 책에서도 널리 다루어지는 것으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책은 특별하다. 주제가 아니라 주제가 다루어지는 방식에서 특별하다.

다른 책들과 이책을 비교하자면 다른 책들은 결론만 다루어진다면 이책은 서론, 본론, 결론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른 책들도 주제를 말해주는 심리실험들이 소개되고 그 실험결과가 경제현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기술한다. 그러나 왜 그런 주제를 연구하게 되었는가라는 연구자 개인은 빠져있다. 독자가 원하는 결론만 전달하는데 집중하고 되도록 많은 사실을 알려주는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런가보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연구의 의미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책은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도 기억에 잘 남는다. 단지 한 주제를 다루는 분량이 많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연구자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그 주제를 다루게 되었는가부터 시작하는 이책의 서술방식 때문일 것이다.

가령 저자는 이케아 매장에서 산 가구를 왜 다른 완제품 가구보다 자신이 더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실험을 고안하게 된 이야기부터 자신이 만든 것을 남이 만든 것보다 더 좋게 평가하는 심리과정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을 시작한다.

자신의 체험에서부터 시작해 그 체험에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 실험결과가 경제현상이나 일상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로 한 챕터를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한가지 주제에 대해 상당한 양이 할애된다. 다른 책에서라면 비경제적이라고 피할법도 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서술방식은 저자가 설명하는 현상이 어떤 의미인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려는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쉽게 이해되기 때문에 쉽게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책이 다루는 주제는 그런 서술방식 때문에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10가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가지 주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 주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저자같이 다루는 방식 때문에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잇다는 점에서 이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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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탄생 -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곽미경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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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유전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은 평균 45%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개성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 45%이고 나머지 차이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그 환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 환경을 가정환경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환경이 가정환경이라면 쌍둥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쌍둥이는 유전자도 동일하고 가정환경도 공유한다. 그러나 어떤 쌍둥이도 같지 않다. 게다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의 차이는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의 차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가정환경과 개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가정환경과 개성을 연결하는 사고방식이 19세기 상류계층의 특수한 여건 때문이었다고 추정한다. “부모의 힘에 대한 감정은 우리 문화의 특색이다. 이 개념이 유럽과 미국 문화의 일부로 뿌리를 내린 것은 프로이트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는 프로이트의 개념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비엔나에 살던 자신의 이웃이나 동료의 자녀들에 대해 아는 사실에 기반을 두었을 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은 취학 전의 어린아이들이었으며 어쩌면 오늘날의 아이들보다 또래들과의 접촉이 적었을 수도 잇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맏이나 외동이었던 것처럼 보여 형제도 별로 없었다. 아이는 주변의 누구라도 모방하기 마련이지만 이 아이들은 모델 선택이 매우 한정적이엇다.”

저자는 어린 침팬지의 손에 자라면서 그 침팬지를 모방한 이야기를 예로 든다. “형제자매도 없고 부모는 어린아이한테 침팬지를 선물할 정도로 방치하는 지경이니 아이는 달리 대체할 어른을 찾아 모방한다. 아동발달 교과서에 면도하는 흉내를 내는 어린 사내아이와 요리하는 체를 하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심지어 집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가상의 놀이에서는 어른인 체할지도 모르지만 일찍부터 현실과 놀이의 차이를 인식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흉내내는 어른은 부모가 아니다. 그 대상은 자기 부모가 되엇든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되었든 사회화 체계의 핵심 경향 계산기가 산출해 낸 원형이다.”

‘성격의 탄생’ 리뷰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격 패턴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그러나 쌍둥이처럼 유전자의 성격패턴이 동일하더라도 개성이 다른 사람으로 자란다. 그 이유는 환경이지만 그 환경은 가정환경이 아니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개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개성은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려는 과정이며 그 과정은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성향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과 관습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는 성향, 그리고 사회의 다른 성원들과 경쟁하려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앞지르려는 성향, 세가지가 있다.” 저자는 3가지 성향을 관계체계, 사회화체계, 지위체계라 부른다.

관계체계는 사람을 구분하는 시스템이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 누구는 어떤 사람이라는 정보를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신세는 갚아야 하고 표리부동은 기억해야 하고 뜻이 맞는 동료는 찾되 미운 놈은 피해야 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예를 갖춰야 한다.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스템이 관계체계이다. 사람을 구분하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며 그 정보에 따라 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인물사전을 작성하고 관리한다.

‘관계의 관리는 아기의 제1임무다. 관계체계는 출발선에 서는 순간 가동할 준비를 갖추고 잇다. 인간 유아는 첫 숨을 들이키자마자 인물사전을 만들 태세인 것이다.” 인물사전을 만들어 누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규칙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을 사회화라 한다.

“인간의 집단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에 소속되는 데 필요한 행동을 모두 타고날 수는 없었다. 상당부분은 학습되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기의 제2의 임무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른 성원들에게 용납되는 행동방식을 터득하는 것이다.”

사회화는 성격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환경변수이다. “미국 사람들과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 비해 외향적이며 경험에 열려 있지만 상냥함이나 순응성이 떨어진다.” 문화권에 따라 유전자 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잇다. 그러나 “홍콩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온 중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시아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검사를 햇다.” 결과는 “최근에 캐나다로 건너온 피험자의 성격이 여전히 홍콩에 사는 대학생 또래 사람들의 성격과 평균적으로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태어난 피험자의 성격은 캐나다 대학생과 거의 비슷했다. 어릴 적에 캐나다로 건너온 피험자들은 홍콩 기준과 캐나다 기준의 중간이었다.” 이런 차이는 유전적일 수 없다. 그리고 부모에 의한 양육의 효과라 볼 수도 없다.

저자는 아이들이 어릴 때 언어를 배우는 모듈이 활성화되듯이 사회화 역시 특정 연령에 활동하는 뇌의 모듈이라 말한다. 그 모듈의 목적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아이가 직면한 도전을 생각해 보자. 아이는 사회에 적합한 행동을 익혀야 한다. 남에게 비웃음이나 비난을 사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 행동방식을 익혀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에 몸담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현저한 개인차는 차치하더라도 각기 다른 사회적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조직적 차이도 존재한다.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남자는 여자와 아이는 어른과 다르게 행동한다.

사회 범주별 행동의 차이는 아이가 단순히 엄마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행동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는 아이이고 엄마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답게,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답게 남자아이는 남자아이답게 행동하는 법을 아이는 어떻게 배울까? 분화된 마음의 장비를 요한 ㄴ 인지과정을 통해서라는 것이 그 대답이다.” 아이는 먼저 관계체계를 통해 인물사전을 만들었다. 그 과정은 차별화의 인지과정이다. 그러나 사회화의 과정은 그 “자료를 통합하고 그에 대한 통계를 내어 평균을 계산”해 범주를 추출하는 일반화의 인지과정이다.

사회화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저자는 자신의 예를 든다. “나는 맏이였지만 꽤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냇다. 나는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따돌림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원인이었다고 본다. 나는 동갑내기 아이들이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앙ㄶ는지를 알지 못햇을 뿐 아니라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 반의 어떤 여자이이가 몰래 나를 불러서는 아이들과 어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교를 늘어놓앗다. 그 여자아이는 엄마끼리 친한 친구여서 우리 집을 드나들던 아이였다. 여저아이가 말해 준 지침에는 내가 늘 따분하다고 여겼던 주제인 옷을 제대로 입는 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 아이의 강의는 지루하고 당혹스러웠던 터라 대수럽지 않게 흘려듣고 말앗다. 그것이 친절이엇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엿다. 그 친구는 나를 도우려고 햇던 것이다.”

저자는 사회화체계가 프로이트의 초자아를 제대로 해석하는 개념일 수 있다 말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이론은 거의 전적으로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관계체계는 대부분 드러난 상태로 작용한다. 그의 이론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것은 무의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가장 큰 아군은 의식이엇다. 프로이트가 그렇게나 몰두했던 성과 공격성의 동기는 관계체계의 메커니즘에 의해 제공되며 의식의 접근이 용이하다. 그가 피험자들로부터 이끌어낸 대화는 모두 관계에 대한 것이ㅏㄷ.

그러나 관계체계와는 대조적으로 사회화체계는 대부분 의식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느 차원에서 은밀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화되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잇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화체계는 프로이트의 초자아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기능도 비슷하다. 그러나 같은 성별의 부모와의 동일시에서 초자아가 형성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가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행동을 배운다는 생각은 분석 가능한 예측을 프로이트 이론의 측면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남자아이도 양쪽 부모 밑에서 자란 남자아이 못지않게 남자답다. 양쪽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도에서 동성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를 조사한 발달심리학자는 “남자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행동만큼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의 행동을 닮는다.”는 증거가 있다고 햇다.”

저자는 사회화의 기관은 가정이 아니라 말한다. “전통 사회에서 아이는 실제로 부모에게 별로 배우지 않는다. 주로 아이들의 놀이집단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놀이집단은 아이의 놀이를 전수하듯 언어와 관습을 전수한다. 나이 어린 아이는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서 어휘와 규칙을 익힌다. 놀이와 언어 그리고 관습은 수 세대의 아이들이 이 놀이집단에 들어가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서 규칙을 배우고 그 집단에서 나오기 전에 이를 다시 더 어린 아이에게 전수해가는 식으로 수백년 동안 그대로 간직되기도 한다. 아이의 문화는 부모의 문화와 일치한다. 아이와 부모는 동일한 집단에 의해 동일한 방식으로 사회화되겅끼 때문이다. 놀이집단은 세월이 가면서 구성원은 바꿔도 놀이와 문화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옳았다.

그러나 사회화가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집단에 속하고 싶어하지만 그 집단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사회화는 행동을 비슷하게 만들지만 지위를 차지하려는 동기, 즉 지위체계는 경쟁하도록 만들며 개인을 차별화한다.

일단 사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지위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위체계 즉 경쟁이 성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보자. “평균적으로 기가 큰 남성이 작은 남성에 비해 급여수준이 높다. 이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다. 인치 당 약 800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고용주들이 키 자체에 다시 말해 성인이 되어서의 큰 키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엇다. 임금에서 중요한 사항은 성인기의 키가 아니라 청소년기의 키다. 경제학자들은 ‘십대의 키 프리미엄’을 설명할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십대의 키 프리미엄의 1/3 가량은 고등학교에서의 과외활동, 특히 스포츠 활동의 참여엿다. 덩치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선수들은 대개 또래들 사이에서 지위가 높다.

청소년기의 체구와 힘, 운동능력의 두드러진 차이는 성격과 사회행동의 차이를 수반했다. 성장이 빠른 아이들은 침착하고 느긋하고 현실적이다. 반대로 성장이 느린 아이들은 열심이고 수다스럽고 긴장이 팽배하며 ‘영향받기 쉽고’ 남의 ‘관심을 좇는다’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은 소년들은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십상이다.

청소년기의 높은 지위는 성격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하며 지배적이고 경쟁적이며 리더의 자질을 보인다. 이러한 성격상의 특성이 고용주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흔히 키가 큰쪽이 당선된다.”

이에 비해 여성의 지위는 미모로 결정된다. “잘생긴 자기주장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어느 실험에서는 참가한 여성 피험자에게 무례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이고 가짜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연구원이 방을 나가버리기까지 햇다. 매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다가 평균 9분이 지나서야 불만을 제기했다. 반면에 매력적인 여성들은 3분 20초 만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강한 자기주장을 초래한 것은 잘 생긴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가 갖는 사회적 영향이다.”

“인간이 경쟁하는 분야는 숱하다. 오로지 힘의 우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지위는 힘이나 외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령 우등생은 비리비리하더라도 학교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한두가지만이 아니다. “힘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본다. 제일 웃기거나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니면 식물을 귀신같이 알아본다거나 골프 공 하나는 제일 잘 칠수도 잇다. 내가 제일 예쁠 수는 없다고? 그럼 제일 착한 사람이 될수는 있다. 이도저도 안 통하면 차라리 제일 비열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아는가? “내가 제안하는 장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를파악하고 각기 다른 수많은 출처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통합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장치다. 지위체계가 늦게 가동되는 이유도 정보의 상당부분이 남의 의중을 읽는 메커니즘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은 네 살 무렵이 되어야 어느 정도 인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정도가 된다.”

이 장치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작성된 인물사전을 읽는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인물사전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이득이므로 숨기려 한다. 그러므로 장치가 그리는 그림은 모호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남의 사전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타인이 자기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면서 그들이 무엇을 평가하는 가를 알게 되며 자신의 지위를 알게 되고 사회적 피드백을 통해 성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쌍둥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쌍둥이라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남자아이들 집단에서 강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여자아이들 집단에서 제일 예쁜 아이도 오직 한명이다. 만약 어떤 집단에 일란성 쌍둥이가 속해 있다면 설사 두 아이가 모두 힘이나 미모가 특출하더라도 둘 중의 하나는 어절 수 없이 두번째가 되고 하나는 주목구조으ㅢ 상위를 차지한다. 사람들로부터 응시의 눈길을 더 많이 받는 쌍둥이가 집단 내에서의 목소리도 커지고 그 결과 더욱더 많은 눈길을 끌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차이는 출발은 사소했지만 갈수록 벌어진다.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서 받는 질문이나 평가도 둘 가운데 상대적으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쪽이 쌍둥이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저자는 사회화체계와 지위체계의 변증법이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 말한다. 두 체계 때문에 노동분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미와 달리 전적으로 가까운 혈연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닌 집단에서 갈기 때문에 이기심이 동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 종이 대박 신화를 일궈 낸 비결 가운데 하나도 반드시 혈연에 기반한 것은 아닌 대규모 집단을 ㅅ형성할 수 있었던 능력때문이다. 모든 집단의 딜레마는 구성원이 집단 동료를 희생하여 자신의 성공을 극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집단을 지원하고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인지 어려운 선택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집단을 위해 일하거나 죽을 때 그러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사회화 체계였다. 집단의 성원들이 가까운 혈연으로 구성되어 잇던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체계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위체계가 제공하는 동기는 전적으로 이기적이다. 인간 집단에서 분산을 초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기심이다. 지위체계는 노력하면 승산이 있는 분야하면 직접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그 밖의 분야는 가능하면 경쟁을 피하고 보는 장기적인 전략을 꾀한다. 그리하여 개개인은 임자가 없는 틈새분야를 찾게 된다. 각기 다른 분야를 전문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노동분업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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