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당신의 강점에 주목하라 - 내성적인 당신에게 잘 맞는 자기 PR 시크릿
낸시 앤코위츠 지음, 신현정 옮김 / 갈매나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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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는 동안 저자는 근처의 호텔 레스토랑에 자주 갔다. 어느 날 우연히 저자는 빌 클린턴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이책을 스고 있다고 말했고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대통령께서는 확실히 외향적인 성격이시죠? 저의 내성적인 독자들이 자기의 존재를 좀더 부각히키는데 도움이 될 조언을 한마디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클린턴은 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에 있는 벽들이 모두 사라진 듯했다. '글세요, 실제로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가깝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지난 20년간 TV 속에서 보아온 그의 모습은 다 뭐란 말인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보면 그는 내성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내가 그 동안 안다고 생각한 것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계속에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당신 자신을 안으로부터 끄집어내라는 것입니다. 마치 벽에서 진흙을 꺼내는 것처럼 말이죠. 밖으로 나가에쇼. 그리고 시도해보세요. 안되면 될때까지 계속해보는 겁니다.' 나는 그 순간 얼어버린 채 딸 챌시가 자기 아빠의 손을 잡고 끌고 갈 때까지 마치 호박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 큰 나방처럼 서 있었다."

클린턴의 예에서 보듯이 겉보기에는 활달한 외향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실제 외향적인지 내성적인지 알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세상이 외향적 사람에게 유리한 곳이다 보니 내성적인 사람은 뭔가 부족한 사람,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이란 편견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까지도 외향적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그렇게 보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손잡이와 마찬가지로 내성적인 성격은 결핍이 아니다. 왼손잡이처럼 많은 내성적인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디자인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이책을 썼다. 이제는 자신의 독창성과 성과를 인식하고 직장생활에서도 더 인정받고 사회에서도 더 큰 기여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책은 내성적인 성격은 단점이 아니라 말한다. 오히려 내성적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당신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빌 클린턴처럼 말이다.

빌 클린턴은 경청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햇다. "당신은 귀만 열어놓아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귀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클린턴은 이를 완벽하게 터득했다. 그에게는 당신이 주지사이든 벨보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대화하는 동안만큼은 상대를 자신과 대화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대해줬다. 눈빛에서부터 몸짓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부분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자기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전달했다."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이것은 내성적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것은 외향적인 사람의 적성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것은 내향적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외향적일수록 오히려 자기중심적일 확률이 더 높다. 내향성과 외향성을 나누는 것은 뇌의 구조에서 어느 부분이 더 활성화되어 있는가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외부에서 자극을 찾는 반면에 내성적인 사람들은 주로 자기 내면으로부터 자극을 받습니다. 내향성은 학습, 기억, 계획, 언어능력을 책임지는 뇌부분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고, 외향성은 감각처리를 관할하는 영역과 관련이 있지요. 외향적인 사람들이 달근 사람이나 어떤 외부 상황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것은 내적으로는 그러한 자극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내면 세계에 더 집중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은 외적인 환경에 좀더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냥꾼처럼 만족을 찾아 밖을 떠도는 사람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혼자 있는 것을 외롭다고 말하고(내향적인 사람은 평화와 고요함을 즐기는 시간이라 말한다) 정신없이 바쁘지 않으면 지루하다고 말하며(내향적인 사람은 잡담하는 자리에 묶여 있는 것을 지루하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사람들을 찾아 떠돈다(내향적인 사람은 사람보다는 책과 함께 하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친구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고(내향적인 사람에게 친구는 촌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말하다 침묵이 흐르는 시간을 못 견뎌하고(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이 그러기를 원하듯이 남들도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말없이 있는 당신을 내버려두기를 원한다) 집이란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소를 말하고(내향적인 사람에게 집이란 밖의 어수선함에서 도피하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인터넷은 자신을 광고하는 수단이며(내성적인 사람에게 인터넷은 다른 내성적인 사람을 만나는 수단이다. 밖에 나갈 필요가 없으니 이상적이다)  사랑은 어떤 것도 혼자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말하고(내성적인 사람에게 사랑은 이해받고 제대로 인정받는것이다) 전화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생명선이며(내성적인 사람에게 전화는 필요악이다. 날 내버려둬!) 외출은 꼭 2명 이상과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다익선이다(내성적인 사람에게 외출은 혼자서도 가능하고 동행은 옵션이며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경멸하기 까지 한다. 그러니 외향적인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알려야 하고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맞지도 않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테크닉을 쫓아가려니 세상살기가 정말 피곤하다. 네트워킹에 관한 책들을 읽어도 도무지 할 자신이 서지 않는다. 입만 살은 떠벌이가 되어야 한다고? 없는 것을 있는 척 잘난 척을 해야 한다고?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다가가 친한척 별 쓸데도 없는 의미도 없는 잡담을 해야 한다고? 네트워킹에 관한 책은 외향적인 성격인 사람이 쓴 것들이라 그책의 말들을 쫓아가다가는 1주일도 안되어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릴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에게 맞는 자기홍보가 있고 네트워킹이 있다고 말한다.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잘난 척할 필요도 떠벌이가 될 필요도 괜히 친한척 할 필요도 없다고 치어리더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으로 있으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한가지만 고치면 된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습관말이다.

내성적인 사람의 강점은 생각이 깊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것은 자기를 알리는데 방해가 된다. 남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실수에도 실패에도 당신은 너무나 오래동안 매달려 자학을 하는 습관이 있다. 당신의 완벽주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보다 더 과소평가할 수 밖에 없고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우선 자신을 스스로 욕하는 내면의 욕쟁이 불평쟁이부터 잠재우라. 자신의 장점들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스스로를 인정하는데서 남의 인정이 시작된다.

자신감을 회복했으면 자신이 남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타인의 바램에 맞춰 자신을 알리면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떨까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의 강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맺어지는 인맥은 외향적인 사람들의 것보다 양적으로는 작지만 질적으로 더 강하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이책에서 말하는 내향성이 전적으로 맞지는 않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외향적인 면도 있고 내향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어느 면이 더 지배적이냐일 뿐 누구나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향적이기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이 내향적인 면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네트워킹에 관한 책들이 외향적인 사람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책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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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와 불교 - 선과 명상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와 접근
안도 오사무 지음, 인경.이필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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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당혹감에서 쓰인 것이다. 지난 한 세대가 좀 넘는 동안 서구에선 명상붐이 일었다. 명상붐이 일게 된 것은 68세대 또는 반전세대들에 의한 것이었다. 70년대 이후 40년동안 명상과 요가가 서구에서 뿌리를 내렸고 기독교가 퇴조하는 가운데 불교가 확산되었다.

명상, 요가, 불교. 모두 동양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렸거나 별 거 아닌 것으로 치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예를 들면 해방 이후 한국문화는 기독교가 만들어왔지 불교는 아무 발언권이 없었다. 이책의 저자가 사는 일본의 경우도 서구문화에 밀려 불교나 신도와 같은 전통문화는 화석이 된지 오래다. 그랬던 것인데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기를 쫓아가느라 바빴던 저들이 명상과 불교에 열광하면서 그들이 해석하고 받아들인 버전으로 역수입된 것이 다시 우리에게 퍼져나간다. 9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시작되었던 요가와 명상붐 그리고 불교의 부활이란 흐름은 결코 우리 스스로의 발견이 아니었다.

서구의 그러한 흐름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제도권으로까지 퍼져 심리학계에서도 명상을 진지하게 치료법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있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이책에서 왜 그런 흐름이 만들어졌는가란 질문을 심리학자로서 답한다.

심리학계에서 실제 치료법으로 명상을 받아들인 것은 스트레스 요법으로서엿다. 명상의 이완효과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데 효과가 좋기 때문이엇다. 그러나 명상의 적용은 그 이상으로 진전된다. 명상이 이완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명상의 주목적도 아니고 명상은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잇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병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게 된 현대심리학의 목표는 자아실현에 있다. 저자는 자아실현이 심리학의 목표가 되었을 때부터 명상은 그리고 불교교리가 심리학에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엿다고 말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실현을 이해하려면 동일화(identification)을 이해해야 한다. 동일화란 정체성(identitiy)을 만드는 과정이다. 아기는 자신과 엄마 그리고 환경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젓꼭지는 물어도 아프지 않지만 내 손가락을 물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과 주변은 분리된다. 이 단계에서 ‘나’와 동일한 것은 몸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고 자아의식이 만들어지면서 ‘나’는 언어로 생각하는 의식과 동일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나로 생각했던 몸은 나에 속한 것이 되고 ‘나’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배제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란 말에는 다양한 역할이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착한 아이’란 말과 동일하게 되면 착하지 않은 ‘나’는 나와 동일하지 않은 것이 되고 학생, 직원, 남편, 아버지가 되면서 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과 그렇게 나와 동일화된 것과 합치하지 않는 나의 부분들은 배제된다. 중년까지 동일화의 과정은 배제의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식으로 배제된 것들이 나가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년 이후 동일화의 과정은 이전에 배제되었던 것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축소에서 확대로 바뀌게 된다. 나는 나의 가족으로 확대되고 내가 속한 조직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사회로 확대된다.

그러나 배제에서 확대로의 과정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배제의 과정에서 나가 아니라고 판정된 것들이 무의식에 숨어 문제를 일으킨다. 융은 동일화된 것을 가면, 배제된 것을 그림자라 말한다.

명상은 그리고 불교교리는 그림자에 숨은 나이지만 나가 아니라 부정된 것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수용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은 심리학에서 동일화와 동일한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교리의 무아론을 실제 체험하고 느끼고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명상이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자아실현의 방법으로 명상을 수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프로이트가 고안한 자유연상이라든가 융의 적극적 상상이란 기법도 그후 여러 학파에서 개발한 방법들도 명상과 비슷한 목적을 갖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책에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명상과 불교교리가 프로이트와 융에게 어떻게 해석되엇고 그후의 심리학자들에게 어떻게 해석되엇는가, 그리고 명상과 불교교리가 심리학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핵심적인 해석으로 보는 것은 위에서 요약한 동일화와 집착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잇다.

이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초심자를 위해 불교교리에 대해 간략하게 저자가 요약한 부분도 있고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모르더라도 읽는데 지장이 없도록 노력한 흔적이 다분하지만 불교도 심리학도 모르는 사람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특별히 심리학자들을 대상으로 국한한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염두에 두는 독자는 일본의 동료 심리학자 그것도 임상심리학자들이고 그들에게 서구 심리학계가 어떻게 불교를 이해하는가를 소개하는 것이 이책의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목적, 즉 서구 심리학계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잇는가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불교도 심리학도 초심자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노력을 들이면 잃히도록 쓰여졌다 하겠다. 그러면서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이 이론적 깊이도 갖춘 잘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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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포인트 - 선택과 결정의 힘
마이클 유심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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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대한 말들은 많지만 리더가 무엇인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리더란 결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책은 리더로서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결정하는가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 한사람의 일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책임도 내가 지고 결정의 결과도 내가 감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운명까지 내 결정에 달려있다면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조직의 리더로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결정을 내리는 자로서 리더는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책의 저자는 그 자격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리더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즉 조직 내에서 결정을 내리는 자로 인식되며 권위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러한 권위가 부여된다고 아무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맞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은 2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첫째는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분석력이다.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훈련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판단을 위한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근거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결정은 데이터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결정은 충분한 데이터 없이 내려지게 마련이다. 미 해병대의 경우 70%의 데이터가 모아졌으면 결정을 할 시간이 되었다고 본다.

둘째는 바로 결정할 순간 즉 이책의 제목인 고 포인트를 감지하고 결정을 할 수 있는 결단력이다. 거의 모든 결정은 아직 상황이 분명하지 않았을 때 내려질 수 밖에 없다. 즉 모든 결정에는 리스크가 있다. 그 리스크에 얼어버리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과 능력은 크게 보아 이 두가지가 전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달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첫째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에는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는가가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데이터는 사람을 통해 모아지고 사람을 통해 리더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리더가 내린 결정은 사람은 통해 집행된다. 그렇다면 조직의 결정권자로서 리더에게 주어진 최대의 자원은 그 조직의 사람이다. 그 사람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보를 모으는 네트웤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결정을 집행할 사람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정보의 네트웤은 조직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직 내에 도는 정보는 결국 비슷한 경험과 세계관 때문에 다양성이 부족하고 그런 다양하지 않은 정보만으로 결정을 할 경우 편향될 우려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자는 결정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건을 단다. 리더의 윤리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을 갖추고도 조직을 파멸로 이끈 사건이 2002년에 연이어 터졌다. 엔론과 타이코의 몰락이다. 두 경우 모두 결정권자로서 리더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들은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렸고 그래서 조직이 파멸했다.

금전적인 성공이 모든 것이라 말하는 풍조는 리더십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기심에 기초한 결정권자는 조직만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마저 파멸시켰다. 조직의 리더는 자신이 아니라 조직을 앞세워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권을 행사할 때 조직도 자신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위에 요약한 내용은 사실 별 것은 없다. 이책의 진짜 내용은 위에서 요약한 골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책의 저자가 위에서 요약한 내용을 말하기 위해 동원한 사례들에 있다. 저자는 위에서 요약한 내용들은 결국 책을 덮으면 잊혀질 것이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위에서 요약한 내용은 실제 경험을 통해 각인된 것이라야 실제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통해 경험을 전달할 수는 없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자신이 말하려는 포인트에 해당하는 사례를 자세히 분석해 보여주면서 간접경험을 통해 일종의 템플릿으로 즉 본보기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결정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그책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고 다를 이유도 없다. 오히려 다른 책들보다 더 적은 내용을 담고 있어 빈약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많은 내용을 담는 것보다 본보기로 실제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될 사례분석을 깊이있게 하여 핵심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는 완전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부분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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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피고아 - 어떤 조직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비책
장동인.이남훈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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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공자는 60에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게 되었다(耳順)고 했다. 살다보니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구나 알게 되고 허허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노인의 지혜란 그런 것을 말한다.

이책은 지혜로워 지라고 말한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고(攻彼顧我) 말한다.

직장은 스트레스의 장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스트레스 쌓일 일이 널려 있다. 퇴근하면 어깨가 뭉쳐있고 몸은 무겁다. 일의 피로보다는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큰 이유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해가 진다고 화를 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이책은 말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 그러나 무엇을 알아달라는 말인가? 내 능력은 남달라서? 내가 한 일을 몰라줘서?

이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분노하기 전에 내가 교만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라고 말한다. 당신은 능력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능력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조직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은 조직의 일은 한 사람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이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 알아달라고 하기 전에 당신은 자신을 정말로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었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했었는지 돌아보라고 이책은 말한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조직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직을 중심으로 나를 움직이면 당신은 정말로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고 당신을 알아줄 것이다고 이책은 말한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가? 남이 나를 배신했다고 분노하기 전에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이익을 주었는가를 생각하라고 이책은 말한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이다. 단 맛이 안나면 떠나게 되어 잇다. 너무 각박한 말이라고? 그렇지 않은 죽마고우도 있고 가족도 있다고? 그런 관계도 이해관계이다. 나와 함께 있으면 이익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같이 잇으면 편안하다 즐겁다도 이해관계이라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더 편해진다고 이책은 말한다.

아무리 전에 대단한 것을 해주었더라도 지금 별 볼일이 없거나 앞으로 별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멀어지게 되어있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의리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라고 이책은 말한다.

이책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뻔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뻔한 말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뻔한 말이 상황에 맞게 말해질 때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책은 바로 그렇게 직장이란 환경에서 그런 누구나 아는 뻔한 말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그러나 그런 책은 많지 않은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책은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아름다운 말로 가려버리는 책들과는 거리가 멀다.

위에서 언급한 겸손이나 배신과 의리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직장의 현실에 대한 분명한 전제가 있다. 직장은 민주주의가 왕정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잇지만 직장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보다는 예전에 사라진 왕조국가와 더 가깝다.

회사가 민주주의라면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동료나 부하에게 아무리 인기가 많아보았자이다. 물론 유능한 관리자로 여겨져 인사고과에 반영될 수는 있지만 정말 중요한 관계는 당신의 윗선이다. 윗선으로 올라갈 수록 더 많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책이 전제로 하는 것은 그런 조직의 현실이다. 이책이 말하는 덕목들은 윗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이지 만인을 전제로 한 도덕론이 아니다. 이책이 말하는 것은 윗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윗사람인 상황에서 아랫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와 같이 상하관계에서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논하는 것이고 그 방법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에선 왕조시대의 고사들이 예로 사용된다. 오히려 평등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이 분명한 시대의 사례가 조직이란 사회의 생리를 더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책은 적나라하다. 위에서 겸손하라고 하는 것은 전략으로서이지 사람이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논리에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책은 실용주의자의 책이다. 어떤 도덕이든 도덕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효과로서 논해야 가치가 있는 자의 책이다.

이런 류의 직장이란 사회에서 생존술에 관한 책이 올해는 특별하게 쏟아진다.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생존을 구체적으로 논하는 책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 리뷰한 랜덤에서 나온 '이 회사에서 나만 제정신이야?'도 그런 류의 책이다. 올해 나온 직장 생존술에 관한 책 중에서 이책은 그 책과 어깨를 겨룰 수준의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책은 랜덤의 책과는 다른 책이다. 랜덤의 책은 직장 생존술 전반에 대한 것이라면 이책은 상하관계에서의 생존술에 특화된 책이다. 그리고 부사장 직책까지 오른 사람의 시야에서 상하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현실감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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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정신의 지도 -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발칙한 정신분석학
만프레드 뤼츠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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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30년이 넘게 정신과의사로 살아온 저자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병원 밖의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정신과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을 제대로 알려면 이 정도의 얄팍한 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저자의 말로는 그런 교재들은 '1미터 높이에서 떨어트리면 발등이 깨질 정도로 무겁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무거운 만큼 많기도 하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책들과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이책은 정상인 사람들에게 비정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고 쓰여졌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미치도록 정상인' 사람들의 '독재'를 그만두도록 하고 싶어한다.

저자는 무엇이 정상인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20년전까지만 해도 독일과 미국의 정신병동에서 다루는 병리현상의 목록은 같지 않았다. 저자는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진단이 먼저였지 정신병이 먼저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백년이 약간 넘는 정신의학의 역사는 논쟁과 학파간의 패권전쟁의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정신의학계 밖에선 고전의 대우를 받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의학계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전쟁을 해왔고 그런 전쟁을 벌이면서 교조적인 이념성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성적으로, 유아기의 상처로 해석하는 오만함을 키웠다.

그러나 정신의학계 내에서 가장 효과가 낮은 것이 정신분석학적 접근이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정신병리가 성적인 것도 아니고 유아기가 원인인 것도 아니다. 관점을 바꿀 능력이 없는 것을 광기라고 할 때 교조적인 결정론은 광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육체적 병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정신과의사의 목표도 가능한 빨리 환자를 병원에서 내보내는 것이지 긴의자에 앉혀놓고 길고긴 의존관계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정신과에선 어떤 이념에 휘둘리는 방법은 쓰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정신과에서 치료방법의 선택은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느냐이지 자신이 어느 학파에 속하는가는 아니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전까지 정신의학은 병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정신병을 진단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고 혹평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바람직한 치료법의 예로 해결중심치료의 예를 든다. 이 치료법은 '문제와 해결책은 별개다'고 전제한다. 문제는어떤 식으로든 외부에서 온 삶의 사건이다. '불운은 그냥 생긴다.' 이미 일어난 불운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든 해결책은 환자 자신의 내부의 능력에서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이 접근법의 창시자인 스티브 드 세이저에게 한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는 한데 너무 창피해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세이저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환자'도 받아들였다.

그는 문제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어떻게 도울지를 발견해내는 것은 환자의 몫이 아니라 치료사의 과제라고 세이저는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0은 너무 심각해서 그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10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태예요. 현재 당신은 어느 지점에 있나요?" 환자는 2라고 말했다.

"어떻게 0에서 2까지 올 수 있었죠? 0이 아니라 2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이저는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을 상상으로 떠올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과거에 아주 짧게 3이나 4였던 적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환자가 생각하도록 시간을 주고 세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3주 후까지 당신의 삶에서 그리고 당신의 행동에서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상상해 보세요."

세이저는 환자가 지금을 바꾸는 것보다 유용한 것에 관심을 두게 했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면담에서 세이저는 '기적의 질문'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세요. 갑자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요. 기적이 일어났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될까요?"
"좋아졌으니까요."
"좋아졌는지 어떻게 아세요?"

'기적의 질문'은 환자 자신이 치료목료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환자는 문제보다 치료의 원동력인 해결책을 더 많이 얘기하게 된다. 몇달 후 세이저는 "저는 지금 12에 있어요!"란 엽서를 받았다.

정신과의사 역시 다른 의사들처럼 환자를 도와줄 뿐이고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정신과의사의 의무라고 말한다. 다른 병들 처럼 정신병 역시 고칠 수 있다.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해결이 중요하다. 저자는 정신의 병리현상 역시 병리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냥 아픈 사람이다. 그 아픈 것이 정신일 뿐이다.

그러나 미치도록 정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기에 공포를 느끼고 따돌리고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볼 뿐이다.

정상인 사람들에게 정신병자는 막연한 공포이다. 어쩌다 정신병자가 사건을 내면 사람들은 들끊는다. 관심도 없던 정신병원에 보도차량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신병자가 정상인에게 위험한 것보다 정상인이 정신병자에게 더 위험하다.

사건사고 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은 정상인이 정상인에게 하는 범죄이고 정신병자가 관련된 사건의 경우는 정상인이 정신병자를 강간하거나 어리숙함을 이용해 착취하는 내용이 거의 다이다. 그러나 정신병자가 정상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온 세상이 들끊는다.

정신병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을 보아온 정신과의사들은 대개 사회에 대해 정상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분노를 터트린다.

정신병자들의 고통은 그들에게 닥친 이상한 현상 때문만이 아니다. 정신병자들은 대개 자신만의 세계에 꽁꽁 숨는다. 그들은 아무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것라 확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진짜 고통은 정상적인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장애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과 같은 흔한 정신병의 경우는 신체적 질병과 다를 것이 없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가 원인이기에 약리치료로 쉽게 회복되는 '질병'이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병도 많고 유체적 병들 이상으로 병자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분명한 병리현상이다. 알츠하이머 병 또는 치매가 그런 경우이다.

치매는 초기단계에서 진행을 늦추는 정도이지 진행을 막을 수 없는 불치병이다. 치매는 단기기억력이 사라지고 계산이나 추리력,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쇠퇴하는 증상을 보인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정상이 아니라고 그들이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가 되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오늘 날짜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도움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인간의 특징말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삶을 살아야만 인간다운 것인가? 치매환자는 돌봐 주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들을 돌보는데는 돈이 많이 든다. 아주 많이 든다.

그러나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재화생산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사람이 아닌가? 저자는 묻는다.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지는 않겠다'고 들 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 사회가 치매 환자와 어떻게 지내느냐 이것이 그 사회의 휴머니즘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신병자들 그리고 더 흔한 치매환자에 대한 정상인들의 폭력에 저자는 분노한다. 도대체 '미치도록 정상'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휘두르는 정상이란 잣대는 얼마나 정상인가 라고 저자는 묻는다.

저자는 중독자들의 예를 든다. 대부분의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처럼 알콜 중독자들도 다정다감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삶의 중압감과 상처에 힘겨워하다 술에 자유를 뺐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볼 때 중독은 약자의 병이다. 그런 중독이 극단이 된 경우가 마약중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돈이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소위 정상인들의 믿음이 극단에 이르면 인생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약중독자는 짜릿함을 자기 힘과 돈으로 마약으로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마약은 기껏해야 불안을 피하려는 일시적인 대답이며 점차 허무하게 사라지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회의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정상인들은 자신들이 내린 정상에 대한 정의를 추종했던 중독자들을 간단하게 선을 그어 사회에서 배제하려 한다고 저자는 분노한다. 중독은 정상인들이 만든 유토피아적 행복을 쫓은데 대한 대가일 뿐이며 '미치도록 정상'인 기준에 모두를 맞추려 한데 대한 부작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정신이 아닌 혹은 심지어 반사회적인 사람, 유난히 짜증나는 사람, 그리고 괴짜 같은 기인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또 이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되면 분명 다른 시각으로 이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단지 다양한 많은 사람들 중 그 독특함이 도를 넘은 경우일 뿐이다. 너무 독특해서 본인도 주변 사람도 괴롭다. 치료와 진단은 이런 실제적인 고통이 닥쳤을 때 해야 한다. 고통의 원인과 치료의 목적 없이 진단을 남용할 경우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이상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단정한 정상 사회의 유니폼을 입히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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