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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를 알면 죽은 영어도 살린다 2
최완규 지음 / 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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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 이면의 역사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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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를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혀 안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스, 헬레네, 아킬레스, 아가멤논, 헥토르 등등의 인물들을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일리아드가 고전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매체들을 통해서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제대로 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무감(?) 을 느낀다.  

이 책은 신들이 주관한 전쟁이라는 신화적인 차원에서 쓰여진 <일리아드>를 그리스와 트로이라는 실존했던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세밀하게 기술한다. 왜 호메로스는 전쟁에서 '신'의 개입을 주장했을까? 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헬레네를 납치했을까? 과연 두 나라간의 전투가 헬레네라는 여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일까?  

고대 전쟁사 전문가이면서, <살라미스해전>의 저자이기도한 배리스트라우스는 신화 속의 전쟁을 자신이 실제로 본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아킬레스의 갑옷, 창과 같은 전투 장비, 전차전이 불가능한 진흙판의 전투지의 모습으로 부터 전쟁을 신의 개입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당대의 가치관, 모든 복잡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성향들을 언급하면서 '트로이의 목마'로 단순해져 버린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좀더 입체적인 시각, 3D TV 보다 더, 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 보면 한국전쟁의 기원을 외적기원과 내적기원으로 나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대의 사가들이 말하는 외적기원, 세계체제론 재편에 의해서 한국전쟁이 발생했다,이 그리스인들이 이야기하는 신의 개입과 비슷한 차원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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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4 사계절 1318 문고 24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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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우선 토끼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맘에 걸린다. 사자, 호랑이, 독수리 그것도 아니라면 늑대나 곰과 같은 힘세고 멋진 맹수들도 많은데 왜 하필 토끼일까. 그리고 하나 더! 환타지라니! 근데 표지가 영...... 환타지 소설의 책표지라면 뭔가 의미심장하고 알쏭달쏭하고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횅한 풀밭과 아무 특징없는 토끼 한마리라니. 이 책에 대한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첫인상이 주는 불안감 때문에 1권만 샀다. 재미없으면 팔려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면서도 결국 읽기 시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토끼가 주인공인 환타지라는 것이 대체 어떤 걸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귀엽고 겁많고 소심할 것만 같은 토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환타지는 어떤 것일까. 우선 슈퍼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초인적, 아니 초묘(?) 적인 토끼의 신비한 탄생, 여우와 개와 고양이와 인간을 물리적으로 압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 토끼가 만들어어 내는 갖가지 영웅담! 근데 이건 너무 빤하잖아. 아마 애들도 이런 이야긴 시시해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마법에 걸린 토끼 공주와 왕자님과의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계모인 마녀의 마법에 걸려 토끼가 된, 물론 이것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같지만, 공주는 사랑하는 이의 눈물이 닿는 순간 마법에 풀리게 된다. 마녀가 풀어 놓은 늑대에게 쫓기던 토끼 공주는 우연이 왕자님에 의해서 구출된다. 그리고 여차저차 해서 이 둘은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또 여차저차해서 마녀를 물리치게 되고, 그리고? 뭐 그냥 둘이 잘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근데 이것도 영......  

1권을 읽고 나서 느낀 첫번째 생각은 이 소설 속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환타지'는 없다는 것이다. 표지 그림이 아주 잘(?) 보여주듯 이 소설이 보여주는 환타지 속에는 들판과 토끼 밖에 없다. 헤이즐, 파이버, 빅윅, 스트로베리, 댄더라이언 등등의 토끼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단지 풀을 뜯고, 엘릴(토끼어로 토끼들의 '적')을 피해서 도망다니고, 짝짓기를 위해서 암토끼를 찾아다니는 게 고작이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물리적 능력이래야 기껏해야 고양이를 혼내주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들포드 마을을 떠나 워터십 다운에 정착하는 토끼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아니, 풀뜯고(토끼어로 '실플레이'), 도망다니고, 굴파는 얘기가 어떻게 흥미진진한 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언뜻 생각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지극히 '토끼'스럽다는 점이다. 앞서 내가 얘기한 슈퍼 토끼와, 마법에 걸린 토끼들와, 왕자와 공주님 이야기는 토끼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힘센 악당들을 물리치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마법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인간들의 '환타지'라면, 엘릴들로부터 꾀를 내어 달아나고, 짝짓기를 할 암토끼를 찾아 목숨을 걸고, 힘센 토끼(운드워트)로 부터 자신의 마을을 지켜내는 이야기가 바로 토끼들의 소박한 '환타지'다.  

하지만 만약 토끼들의 소박한 환타지가 인간들의 것보다 좀 더 '현실적'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슈퍼맨과 공주님과 마녀가 사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나오는 토끼들처럼 미래를 불안해 하고, 수많은 적(경쟁자)들을 피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워터십 다운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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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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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삶을 다루었다는 설명만 보고 덜컥 주문해 버린 책이다. 그러니 페데리코 안다아시라는 작가의 이름은 당연히 처음 듣는 것이고, 작가의 나라인 아르헨티나- 메시? 참 보르헤스가 있었군- 역시 소설이라는 분야와 관련해서는 그리 익숙한 나라가 아닐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덜컥 사서, 후다닥 읽은 것은 '해부학'이라는 한 단어 때문이었다.   

막상 책을 사서 표지와 속지에 쓰인 설명을 보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가 발견한 것이 그 뭐냐... 음... 그러니까... 흠흠...작년 광고계 최대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참, 뭐라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여성 질 속의 해부학적 구조인 클리토리스였다는 사실이다. 클리토리스가 뭐냐고? 아마도 인터넷으로 클리토리스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으리라. 우선 이 단어를 검색창에 치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에서는 검색하지 말자, 검색자가 19세 이상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심상치 않은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를 검색해서 나오는 것은 형이상학과 아주 거리가 먼, 주로 허리하학(?)에 관한 것들이다.   

여성 질 속의 구조물이면서 여성의 성감대 중의 하나인 클리토리스. 이것을 발견한 해부학자의 삶이, 이 소설이 사실이든 허구든 간에, 결코 마테오 콜롬보의 스승이면서 실제 시체를 최초로 해부한 베살리우스나, 폐순환을 발견한 윌리엄 하비의 삶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베살리우스는 산사람을 해부했다가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성지순례를 하던 중에 죽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 속엔 성스런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마테오 콜롬보가 발견한 것은 클리토리스다. 그러니 그의 삶이 해부실과, 강단과, 아카데미와, 연구실, 그러니까 연구와 진료와 교육을 오가면서 전개될 것이라는 우아하지만 속보이는 상상을 하지는 말자, 그건 저자와 독자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클리토리스는 그런 삶 속에 들어가 있을 만한 단어가, 아니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다.   

저자가 고른 독특한 신대륙, 동명의 탐험가 콜롬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처럼,은 여성의 '그곳'과, 남자의 '그곳'과, '그곳'의 유곽과, 변태와, 유아성애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바다 위에 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이 소설은 속된 욕망의 배설과 금기를 꿈꾸는 지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랫동네와 매음굴을 전전하던 이 작품은 콜롬보의 재판과정으로 넘어와 그의 논문의 각장을 상세하게 공개하면서, 단지 야한, 또는 관능적인 소설의 차원을 넘어선다.  

콜롬보가 논문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이라는 욕망이 클리토리스라는 구체적인 구조물과 어떤 '카이네틱스'로 연결되는 것이냐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영혼과 신앙의 문제가 관능과 쾌감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구원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좀 더 단순화 시키면,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 성과 속 이라는 중세적 이분법들을 '클리토리스'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의 중심에 있는 단어는 바로 '사랑'이다.  

그는 자신의 신대륙에서 무얼 보았을까?  

그래, 모나 소피아! 하지만 '사랑'의 바다위에 떠있는 신대륙을 발견한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매독으로 썩어가는 연인의 몸뚱이였다. 유곽의 마돈나, 속됨과 육체적 욕망의 결정체! '사랑'이라는 단어는 늘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그것을  비추는 육체는 언젠가 썩어 없어진다. 비록 그것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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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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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마음이 있어도 손에 잘 안잡히기 마련이다. 안나카레니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만 하고 읽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대전에 내려가게 되면서 읽기 시작했다. 다 읽는데 무려 세달이 걸렸다.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한 것은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에서 R이 책에 대한 언급을 해서 읽은 것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김영하의 어느 책에선가 현대문학을 이끄는 동력을 얘기하면서 이 작품을 인용한 글을 읽어서이기도하고,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어느 밀란 쿤데라의 문학에세이 <커튼>에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어서 일 수도 있다.  

R은 '안나카레니나'라는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인습의 굴레'라고 지적했고, 김영하는 현대 소설을 이끄는 동력 중의 하나인 '연애'를 언급하면서, 자유연애가 성행하고 이혼이 자유로워지는 어느 날엔가는 안나의 갈등이 별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쿤데라는 절정 부분을 언급하면서 안나가 기차에 뛰어 들어 사망하는 부분이 안나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미학적 균형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이들이 지적한 부분들은 기억나지만 정작 내가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아마도 무려 도합 15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세달이 넘도록 읽어서 인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복잡한 내용이랄 것이 없는 것이 제목, 그러니까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안나카레니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특별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안나는 결혼한 여인지만 자신의 남편이 아닌 애인, 그러니까 정부,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써놓으면 마치 이 소설이 안나의 이중생활이나 불륜에 대한 작품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다른 부부들의 연애와 사랑이 비춰지면서 사랑이나 연애가 이 작품의 키워드이긴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은 안나를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산만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내가 이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안나'라는 개인의 내면인데,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외연(정치, 사회, 제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이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연결고리는 인습과, 결혼과, 연애와, 죽음의 미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하나의 키워드가 더 생각났다.  

안나?  

체홉의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주인공 이름도 '안나'다. 안나와 로모프. 생각해보니 둘이 왠지 닮은 것 같다. 불륜의 주인공이고, 사랑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로모프와 브론스키라는 바람끼 있는 애인과 사귀고 있고..... 체홉과 톨스토이가 생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너무 오랫동안 읽어서 작품의 줄거리고 주제고 별 생각이 안 나지만 체홉의 소설의 주인공 '안나'가 톨스토이 소설의 주인공 처럼 죽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후반에 체홉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그건 '진정한 사랑'을 어렴풋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가 죽은 것은 바로 그게 없었기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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