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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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다. 더군다나 최근에 읽은 추리소설들은 주로 하드보일드 계열이어서 순수하게 추리를 하는 추리소설을 읽은 진짜 진짜 오랜만 인 것 같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책장을 펼 때 부터 덮을 때까지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범인이 궁금하지 않으니 끝이 궁금하지 않고 끝이 궁금하지 않으니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자꾸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주인공들도 슬슬 짜증이 났다.

 

후루룩 책장을 넘기고 나니 여전히 진행은 그대로이다. 워낙에 이런 류의 소설들의 묘미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모든 용의자를 한자리에 모으는 순간 긴장감이 최고조여야 하는데, 하긴 몇년전 만해도 그런걸 느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어서 범인을 말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읽었다.

 

아니,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일일줄이야. 물론 앨러리 퀸의 초기작인 탓에 구성이 느슨하고 중복된 추리가 많은 것도 원인이긴 하지만 비단 이 소설이 특별히 더 재미없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이제는 추리소설을 더이상 읽지 말아야 할 나이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추리소설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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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 그리고 과학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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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헤이즈의 책들이 피를 흘리고, 잠을 못이루는 일들에 대한 개인사와 과학적인 사실들을 연관시켜서 쓰고 있다면,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 구체적인 통증,과 통증을 관리해온 의학의 역사를 연관시키면서 써내려 간다. 알고보면, 굳이 푸코가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언급한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의학은 아픈 부위를 안 아프게 해주는 학문이고, 이것은 육체와 정신(정신과는 정신의 고통을 해결하니까), 그리고 은유(간이 아프다는 표현은 간염에 대한 은유다)와 비은유(두통은 머리가 아프다에 대한 은유가 아니다, 그러니까 비은유?)에 대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의학이 통증을 다루는 곳이고, 의사의 일이 안프게 해야 하는 일 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여전히 통증을 다루는데 서투르다. 사실 잘 모르는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통증의 원인이 뭐냐는 질문에는 흥미가 있지만 통증 자체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작가가 본문 곳곳에 쓴 자신의 경험처럼, 원인없는 통증을 앓는 환자는 의학의 대상인 동시에 의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혹시 마약 때문에?  

 

내 꿈은 언젠가 책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된다? 작가가 되면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야 할까? <글쓰기 생각쓰기>의 저자 윌리엄진서는 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픽션,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 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점을 가보면, 또는 인터넷 서점을 한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의 책들의 팔할은 논픽션이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팔할은, 만약 작가가 된다면, 논픽션 작가가 될 것이다. 비약인가?

 

이 책의 스타일은 이전에 읽었던 빌 헤이즈의 것과 비슷하다. 과학, 특히 의학,과 개인사를 엮어서 서술하는 방식은 언젠가 내가 써보고 싶은 책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순전히 우연인 것 같긴 하지만 왜 이런 '개인사'들은 하필 매번 물리학이나 화학 보다는 의학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물리학이나 화학 보다는 의학이 개인사로 부터 출발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물리학이나 화학이 설명하는 세계보다는 의학이 설명하는 세계 속에서 '개인'이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쉬운 예로 질량 보존의 법칙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빅뱅의 법칙이나 불확정성의 원리가 우리 삶에 영향을 줄 가능성 보다는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일들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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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호러소설들을 읽는 것이었다. 스티븐 킹의 <스탠드>에서 시작해서, <죽음의 무도>를 읽었고, <죽음의 무도>에서 극찬했던 피터 스트라우브의 <고스트 스토리>를 읽었다. 만약 이 책을 올해 후반에 읽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되었을 것같다. 비단 공포 소설로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책의 완성도와 긴장감은 최고 수준이다. 오늘하루가 어제와 같고, 그래서 지겹고, 뻔한 내일이 올 것이라고 믿는 (아마도 방학 중인 학생들이 그 대상일 듯 싶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고 한 동안 지방 파견을 나가게 되었고, KTX를 자주 타게 되면서 고전 소설들, 예를들면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안톤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을 읽으려 시도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고전을 읽는 것은 항상 힘든 일이다. 왜 그럴까? 지방 파견동안에는 몇번의 특강과 가을에 진행된 14시간짜리 강의 준비를 위한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사랑이 문학의, 아니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한가운데로 온 것은 언제 부터일까? 그리고 사랑이 차지하고 있는 이 위치는 영원한 것일까? 집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2011년 여름 동안에 내가 가장 그리워 했던 것은 '집'이 었던 것 같다. 집과 아내와 아이들과 등등등.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이 더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다. 2011년 올해의 책은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책 속에서는 삶과 사랑과 글과 글쟁이에 대한 명문들로 가득하다. 언젠가 '집'과 포근한 '삶'이 그리울 때 다시 한 번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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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미래 - 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월터 카우프만 지음, 이은정 옮김 / 동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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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전공자들이 인문학을 어떤 식으로 공부하는 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전에 읽었던 <인문학 매뉴얼>의 서문에 역자가 쓴 글을 참고하면,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식은 크게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햐 하는 걸까? 전자의 문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문제 역시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것에 대한 정보는 사실 풍부한 편이다. 아니, 너무 정보가 많아서 문제이다. 하지만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곧바로 생각하는 문제와 연결이 된다. 어쩌면 많이 이들이 고전을 읽기 힘들어 하는 이유가 바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같다.

 

비록 책의 앞부분에서 나눈 여러가지 인문학자들의 유형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던 것은 이 책이 책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강점은 우리가, 아니 내가, 책을 읽는 행위를 구조화시키고, 어떤 점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책을 꼼꼼히 읽을 것, 저자와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확인할 것, 그리고 당대의 작품이 놓인 문맥을 파악할 것. 책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발견하려 하지말고,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추신: 이 책의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불만인 점 중의 하나는 용서가 되지 않는 황당한 오타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용서가 되지 않는 오타란게 뭔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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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인의 방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 예니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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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것은 2002년이나 3년 일 것 같다. 대충이나마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희곡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와 이 책을 산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책을 산 장소는 대전이었고, 대전 시내의 어느 대형백화점 안의 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연을 하거나 수업교재로 선택한 특별한 몇몇 작품은 제외하고, 희곡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한 번 읽고, 그 자리에 주욱 꽂혀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것은 후배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이다. 무대에 작품을 올린다고, 그래서 조언을 구한다고, 그러니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안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서평을 남기지 않아서 전에는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장점은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읽으면서, 무대화하면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많다는 점이다. 무대, 분장, 연기, 조명, 음향 모두가 만드는 사람, 특히 연출,에게 달려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작품의 해설을 참조하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그렇고, 한국에서 만든 연극도 그렇고, 모두 이 작품의 멜로드라마에 무게를 많이 실어줬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카프카의 <성>을 성을 찾아가는 K의 여행기로 파악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부인의 방문>은 뒤렌마트가 노부인의 방문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둔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감동'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문'이 가져다 준 '변화'를 해석하라고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따뜻한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작품의 단점이다. 감동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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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 2022-07-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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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 2022-07-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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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 2022-07-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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