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 글쓰기 - 제안서에서 논문과 프레젠테이션까지, 정확하게 명쾌하게 간결하게
신형기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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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은 많지만 과학 논문을 쓰는 것을 다룬 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인 글쓰기나 창작과 관련된 책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에 비해서 이 분야의 책이 많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이유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과학 이란 분야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전자 공학, 기계공학,생물학, 생화학, 의학 등. 의학만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등으로 다시 나뉜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우리가 막연하게 이름만 알고 있는 수많은 과학은 또다시 더 수많은 세부분야로 나눌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 모두를 한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논문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가르쳐 준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로 끝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들 역시 과학논문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국문학과와 물리학과가 만나서 책을 만들었지만 물리학과 저자들 역시 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논문을 실제로 쓰는 사람들은 아니며, 물리학이 모든, 게다가 셀 수 조차 없을 정도의 과학을 포괄한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그나마 과학글쓰기를 할 때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글쓰기의 원칙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가 이 책이 갖는 효용성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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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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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검은꽃> 이후에 나온 김영하의 소설들에 대해서 실망스럽다고 했다. <빛의제국>이나 <퀴즈쇼>가 <검은꽃>만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김영하의 골수 팬들이라면 <검은꽃>이라는 작품이 전혀 김영하답지 않다는 데에 어느정도 동의할 것이다. 물론 <검은꽃>이 김영하의 최고의 작품이라는데는 나도 동의한다. 물론 앞으로 더 훌륭한 소설을 쓰겠지만.

그의 책 제목처럼 김영하의 요즘 소설들은 '오빠가 돌아왔다'는 차원에서 읽으면 될 것이다. <빛의제국>에서 보여줬던 속도감도 여전하고, '맞아, 맞아, 진짜 그럴꺼 같애!'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게하는 신선함도 여전하다. 어디선가 본 것같고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구절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지만, 그런 의심을 하는 것도 잠시뿐이다.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는 한국 소설가들 중에서 단연 최고가 아닌가 한다.

<퀴즈쇼> 역시 속도감있고 신선한 발상들로 가득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근본적으로는 <침이고인다>, <달려라 애비>에서 김애란이 던지는 메시지와 비슷하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퀴즈쇼는 지식의 경연대회이고, 고학력 백수들이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지식을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다. 김애란이 보여주는 88만원세대의 모습이 '가난'과 '지지리 궁상'인 모습들이라면 김영하가 보여주는 것은 고학력 백수들이 꿈꾸는 환상적인 직장,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지식경연장이다. '퀴즈쇼'는 이런 환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사차원 관문에 불과한 것이다.

사차원 관문으로소의 퀴즈쇼, 스피디한 대결, 갈등......으로 이어지는 환타지는 현실로 복귀함으로써 끝을 맺지만 쇼, 스피드, 환타지 같은 용어들이 왠지 '김영하'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들도록한다. 정신없이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

오빠가 돌아온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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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 베토벤 프로젝트 : 피아노 초기 소나타 Vol. 1 (Piano Sonatas No.1,2,6,7,9,10,14,15)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백건우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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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함과 차분함이 돋보이는 연주! 하지만, 2%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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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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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그림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특징을 정리해본다면, 에릭 칼은 부드러운 면과 면에 유화로 채색된 듯한 두터운 색감이 인상적이고, 레오리오니는 경계없이 수채화같은 가벼운 색감과 투명함이 특징적이고, 앤서니 브라운은 우울한 색조와 반듯한 선이 특징적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볼때면 늘 반듯한 도시의 빌딩들이 생각난다). 그외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는? 뒤져 보면 더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더 생각나는 작가가 없다.

그리고 몇 안되는 작가중 한 명인 존 버닝햄은, 작년엔가 이 작가의 전시전을 서울 어딘가에서 했던 것 같다, 펜으로 그린듯한 날카로운 선과 수채화톤의 가벼운 색감이 특징적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그림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림이 너무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왠지 깍쟁이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글자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봤다'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근데 아이들에게도 이 책이 재미있을까?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왼쪽 면과 오른쪽 면(독자의 입장에서)의 내용을 연결하는 것이 어른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저자 설명과 같이 써있는 작품 해설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근데 놀라운 것은 큰애는 양쪽의 이야기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면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두면이 반드시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둘이 연결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해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엄마의 잔소리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모험하는 셜리의 경우와 똑같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면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집 애들만 그런 지도 모르지만, 큰애는 왼쪽 면에서 셜리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른쪽 면에서 펼쳐지는 셜리의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이 있다. 이건 무슨 그림인 것 같고 이건 뭘하는 장면인 것 같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정답, 그런게 있을까?,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른쪽 면에는 글자 하나 없이 완전히 그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큰애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어쩌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상상'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이건 마치 실제 집에서 일어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생활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고개만 끄덕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것. 그리고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또 잔소리를 하고. 결국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글이 써있는 왼쪽면을 읽지만 아이들은 오른쪽 면에 펼쳐진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왼쪽 면과 오른쪽 면, 엄마와 셜리의 세계, 목욕탕과 목욕탕 밖의 세상, 일상과 환상, 글의 세계와 그림의 세계. 이 두가지 대립되는 세계가 사실은 일상속에 존재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세계라는 것, 이것이 양쪽 면을 완전히 나누어 이야기를 따로 전개시킨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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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집을 나갔어요 소년한길 유년동화 1
호세 루이스 코르테스 지음, 아비 그림, 나송주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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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가 특이한 것은 내용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용은 평범한 편이다. 왜냐하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내용도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반대로 한국의 전래동화나 며칠 전 읽었던 이상의 동화 <황소와 도깨비> 같은 동화들의 내용은 너무 형이상학적이다. 근데 이게 맘에 드는 것은 왜일까? 

결국 이 동화의 교훈이란 엄마 말을 잘들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귀신에게도 잘 해줘야 한다는 이상의 동화<황소와 도깨비> 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귀신을 만날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동화의 메시지가 조금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좋다. 바꿔 말하면 , 이 동화가 주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조금 아쉽다.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어주면 좋아하는 것은 이 동화가 담고 있는 내용 '엉덩이가 나와 따로 놀 수 있다' 는 재밌는 발상이 아니라 그냥 '엉덩이'이라는 단어가 나와서인 것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방구, 똥 같은 말만 들으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참, 이 동화의 그림은 조금 특이하다. 워낙 한국이나 영미권 그림들만 봐서 그런지 이 동화의 그림은 동화용 그림, 이런게 따로 있었던가?, 이라기 보다는 만화에 가깝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도 동화용이라기 보다는 만화같은 느낌이 강하다. 내용보다는 그림이 기억에 남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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