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내 이글루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한달에 한 명정도가 댓글을 남기는 것 같다. 그나마 가끔씩 들어오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급격히 뜸해졌다. 내가 포스팅을 뜸하게 해선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작년이나 올해나 포스팅 수는 비슷하다. 원래 모든 것은 유행을 타는 법이다. 하물며 인터넷처럼 유행에 민감한 매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몇년 전만 해도 이메일 주소도 없었던 내가 이글루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포스팅을 정기적으로 하는 성실한 블로거가 된 것처럼, 없던 것들은 생기고 생긴 것들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것들은 시들해질 것이다. 이제 어쩌면 포스팅은 한물 간 유행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웹공간 속에도 '세월'이 흐르기 때문이다. 

포스팅을 시작한 2007년 부터 2011년 독서계획을 밝히는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더 이상 포스팅을 하지 않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스팅이 시들해진 순간에도 난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웃고 있을 것이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매체를 이용해서 글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내 생활과 도저히 뗄 수 없는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언젠가부터 시작된 이 지루한 반복이 나에게만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글을 써낸다. 내 경우를 말해보면 2002년 이후로 내가 알라딘 서점에 올렸던 서평은 270편이 조금 넘는다. 270권에 대한 독후감을 쓴 것이다. 하지만 270편이면 알라딘 서점에서 아주 평범한 블로거에 속한다, 적어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알라딘 서재의 블로거 중 '만두의 추리책방'을 운영하는 '물만두'(필명)는 1800편이 넘는 독후감과 1500편이 넘는 게시물을 올렸다. 물론 엄청난 수의 게시물이지만 이 블로거 또한 숫자 상으로는 가장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굳이 물만두의 블로거를 언급하는 것은 그의, 아니 그녀의 게시물이 앞으로 더이상 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2010년 12월 13일 지병이었던 봉입체근염(inclusion body myositis)을 앓던 중 사망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녀가 자신이 죽기 한달전인 11월 17일까지도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만두에게 책과 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세상의 '변화'와 웹공간의 '세월'을 얘기하다가 너무 멀리까지 왔다. 그녀의 얼굴을 알지 못했던 수많은 블로거들처럼 나또한 그녀의 블로그에 조의를 표했다. 그녀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그녀의 글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녀의 팬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녀가, 그러니까 '물만두의 추리책방'이라는 인터넷상의 공간이, 책읽기와 글쓰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과 글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그리고 그 둘을 끊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위안과 구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힘든 삶이든 평범한 일상이든 간에. 다시 말해서 세상의 변화와 웹공간의 유행이 아무리 거세게 요동친다 할 지라도, 그리고 그 요동치는 세상을 사는 우리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다 할 지라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구원이 필요하며, 그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물만두라는 블로거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비록 물만두 자신이 쓰는 포스팅은 끝났지만 그녀의 서재에 추모의 글들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명복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동안에 늘 위안과 구원이 함께 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올해의 책을 뽑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 이년 전 부터 였다. 우선 2008년에는 (책이 나온 해와 상관없이)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이 책을 뽑은 이유는 하나는 저자의 의견이 신선하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고, 무엇보다도 아주 쉽고 친절하게 잘 쓰여진 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는 것도 한몫했고, 장하준이 역사를 통한 증명을 택한 것도 한 몫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가 얘기한 것처럼, '경제'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한 하는 것은 흔한 방식이 아니다.  

 

 2009년에 뽑은 올해의 책은 트루만카포티의 <인콜드블러드>였다. 아마도 2009년은 이 책때문에도 그렇지만, 하드보일드 소설의 해로 기억될 것같다. 그해에는 유난히 하드보일드 소설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택한, 취재 후 재구성이라는 독특한 작업방식 때문에도 인상적이고, 일가족 살해라는 엄청난 재앙의 배후에 놓인 하찮은 살해동기 때문에도 인상적이다. 저자가 이 책의 주제는 이것이다라고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이 책이 전하는 세계관은 책 제목처럼 cold bloody 하다. 덧붙여 내가 읽은 박현주씨가 번역한 책 중에 최고다.    

 

2010년은 거의 소설만 읽은 해인 것 같다. 올해 가장 좋았던 작가라고 하면 스티븐킹을 뽑겠다. <캐리>처럼 황당한 소설 뿐아니라 <쇼생크감옥과 리타헤이우드>, <스탠바이미>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니! 그래서 올해의 책의 강력한 후보는 <스탠바이미>였다. 하지만 무릎 수술 때문에 병원에서 입원해 있던 중에 읽었던 <핑거스미스> 때문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상상을 뛰어 넘는 반전, 치밀하고 탄탄한 이야기 구성,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놀라운 디테일. <핑거스미스>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소설이다. 그래서 결국, 올해의 책은 <핑거스미스>로 정했다.  

 

축하해요. 세라워터스, 물론 내가 알아주는 것 말고는 어떤 상금도 어떤 권위도 없는 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축하의 박수, 짝짝짝! 

내 마음 속의 책장에 한권 더 추가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무도 - 왜 우리는 호러 문화에 열광하는가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SF 소설은 읽어도 호러 소설은 읽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추리영화나 SF영화는 즐겨보지만 공포영화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궁금하다. 왜 사람들은 돈내고 일부러 어두침침한 곳에서 피가 튀고 살이 뜯겨져 나가고, 비명소리와 어둠과, 괴물과 살인마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일까? 가뜩이나 무서운 일도 많고 언짢은 일도 많은데 굳이 돈까지 내가며 그런 걸 보는 이유가 대체 뭘까?  

이런 나의 질문에 가장 권위있는 대답을 해줄 사람이 바로 스티븐킹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비록 앞서서 얘기한 것처럼 공포라는, 또는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킹의 소설들을 대여섯권이나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읽은 책들중에는 <쇼생크탈출>이나 <스탠바이미>와 같은 공포와 아무 관련이 있는 책들이 껴있긴 하지만......  

보지 않은 책이나 영화를 해설한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특히나 자신이 거의 보지 않는 장르의 책과 영화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을 읽는 일이 좀 산만하고 힘든일이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영화들 중에는 그나마 아는 게 몇 편있었지만, 킹이 열심히 해설하고 있는 <고스트스토리>, <로즈메리의 아기>, <힐하우스의 유령>(이건 한국어 번역이 없는 것 같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때로는 대충대충 책장을 넘기면서 다 볼 수 있었던 것은 킹의 설명이 이론이나 배경에 치우치지 않고, 작가로서의 또는 독자로서의 킹의 입장에서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호러 장르의 팬이 아니어서, 덧붙여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다소 산만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제부터 호러소설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내게 준 가르침이 호러 영화와 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것에 끝나지는 않는다. 그런 걸 제공하는 책들은 엄청나게 많다, 아니 많을 것 같다. 스티븐 킹이라는 대가에게서 듣고 싶은 것은 그런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호러' 또는 '공포'라는 장르에 대한 대가의 통찰이다.  

킹의 말에 따르면(내가 이해한 바로는), 무섭고, 비정상적이고, 괴상한 세계와 인물들로 이루어진 호러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미쳤으니 너도 한 번 미쳐봐라' 라든가, '이런 식으로 죽이면 좀 더 무섭지 않을까' 와 같은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그런 끔찍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었는데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속에 살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좀 설교 같네. 달리 말하면, 판도라와 선악과처럼 '금기'란 누구나 무서워하지만 열어보거나 먹어보고 싶은 법이고, 호러라는 장르는 이런 '금기'가 깨졌을 때 펼쳐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줌을로써 금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것.  

야호,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호러'를 읽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비극에 대한 것을 강의할 일이 있어서, 그리스 비극들의 역사적인 배경도 알아볼 겸 사게 된 책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그리스 3대비극 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구입한 책이다. 이전에 읽었던 살라미스 해전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사실의 많은 부분을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의지하고 있다.  

다른 시대는 읽어보질 않아서, 또는 다른 시대는 남아있는 자료가 변변치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기원전 5세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라톤 전쟁 부터 아테네의 몰락까지의 시기는 고대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문학사적으로 봐도 그렇고, 연극사적으로 봐도 그렇고, 역사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세계대전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지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 모든 중요성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투기디데스의 책을 번역한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막상 이 책을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 책의 분량이 600쪽 가까운 분량인데, 투기디데스의 책은 이 책의 두배 이상이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이 책또한 집중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우선 30년동안 진행된 전쟁의 기록이라는 것이 아무리 극적으로 기술해도 지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 책 속에 나온 지명과 인물의 이름을 따라가는데는 그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보다 몇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초반의 페리클레스와 마지막의 알키비아데스를 제외하곤 나머지 인물들은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고, 아테네 스파르타와 테베 정도를 제외하곤 나머지 지명역시 잘 기억나질 않는다.  특히 에게해의 섬들의 이름은 특히나 더! 

하지만 이 두터운(?) 요약본 전쟁사가 후대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몇가지 교훈은 그 지루함을 어느정도 상쇄시켜 준다. 첫번째 교훈은 전투의 승자는 있어도, 전쟁의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전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서 엄청난 소모전을 치른 그리스는 이후에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두번째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이나 영원한 동지는 없다는 것이다. 한때는 동맹국이었던 아테네는 적국이 되고 적국이었던 페르시아는 승리를 위해서 동맹국이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전쟁동안 뿐. 최종 승자였던 스파르타는 승리 후에 페르시아와 동맹적 경쟁자였던 테베에게 이권의 상당수를 빼앗겼다. 세번째는 전쟁은 문학, 질병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5세기의 페스트로 아테네는 시민의 3분의 1을 잃고, 이것은 페리클레스가 실각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덧붙여 이 무서운 '역병'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이야기'꾼 들의 좋은 소재인 가 보다.  

그리스 사를 읽는 것을 좀 쉬어야 겠다. 다음에는 '중세'나 로마사를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란 무엇인가
E.H.카아 지음, 박성수 옮김 / 민지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OO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입문서에 적당한 것 같다. 또한 고전이 되기 좋은 제목이다. 이런 제목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이다. 물론 원제는 한국판 제목과는 다르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한국사람들에게 '고전, 입문서'라는 의미를 전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제목이 바로 'OO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라는 사실이다.  

레너드 코페트의 책과 달리 <역사란 무엇인가>의 원제는 'What is history'이다. 제목만봐서는 굉장히 방대한 분량의 책일 것 같은데 의외로 얇다. 책의 제목과 명성을 오래전 부터 들어왔고, 역사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지금껏 고전이자 입문서인 이 책을 안 읽었던 것은 이 질문 자체가 별로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과연 야구나 축구보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과학이나 철학보다 신선하지 않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야구나 축구보다는 흥미있지 않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보다는 직접적이지 않고, 과학이나 철학보다는 심오할 것 같지는 않은 단어이다. 물론 내 생각에!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오래된 책임에도 저자의 의견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고,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대화라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과연 우리가 알고자 하는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실일까를 늘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역사가의 관점이 중요하고 역사철학이 있어야 하며, 단순히 과거의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 만으로는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역사 속의 발전이 존재하는가, 역사 속에 선과 악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늘 궁금했지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 저자는 정답이 아닌 역사가의 성찰을 보여준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역사는 특히나 더 쉽게 내린 답일수록 진실로 부터 멀어지기 쉬운 법이며,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일수록 진실에 가깝다. 아마도 이것이 저자의 성찰이 보여주는 교훈이 아닐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1-08-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