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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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이자 에세이스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멘토이기도 한 저자가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바로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 정확히 말하면 의료계,에서 좀 더 예측가능하고 덜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다.  

책 속의 표현을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일는 세가지 종류이다. 단순한 일, 복잡한 일, 복합적인 일. 의료계가 겪고 있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 의료사고을 줄이고, 중환자실의 감염률을 낮추고, 수술후 합병증을 줄이는 일,은 복합적인 문제에 해당하는데, 중요한 것은 의료계만이 복합적인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4십층 짜리 건물을 짓거나, 최신형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투자관리를 하는 업종에서 일하는 이들도 의료계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3-4십층짜리, 아니면 그이상의 건물을 지을때는 얼마나 많은 분야의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얼마나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할까? 수십개의 버튼과 조종관, 계기판이 달린 비행기를 정상적인 상황에서 조종하는 것도 어려운데 비행기가 겪을 수 있는 난관,예를 들면 갑자기 화물칸의 문이 열린다든지, 엔진이 멎는다든지, 새가 엔진 속으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수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투자업계에서 꾸준히 흑자를 내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 속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을 의료계가 겪고 있는 문제에 적용시키는 과정,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처음과 끝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너무 단순하지만, 책의 제목인 체크리스트이다. 체크리스트의 존재는 확인하고 강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순화와 '의사소통'의 역할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좋은 체크리스트라는 것은 이미 그것을 시행할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인과 강요의 역할이 끝나기 때문이다.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험자들이 냈던 최선의 방법을 참고해서 해결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체크리스트가 갖는 의미이다.   

복잡한 문제라도 해결책은 단순한 곳에 있다. 이게 그의 철학이다. 예를들면, 그의 말처럼 로봇 수술이 모든 감염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손을 '제대로' 씻는 법을 교육하는게 훨씬 효과적이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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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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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다 읽어버리기 아까운 책이다. 다음에 읽게 되면 한편 한편 읽어야 겠다. 누구말마따다 이건 그냥 글이 아니라 전문가가 한편, 한편, 한글자, 한글자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을 몇가지 꼽으라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책의 내용만을 읽고 책에 조그만 흠이라도 생길까봐 전전긍긍해서 모든 책을 깨끗하게 보는 사람들은 책의 정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책과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는 이들, 그들의 집안에 책 속지에는 절대로 서명따윈없다.  

책의 본문에 줄을 치는 것을 꿈도 꿀 수 없는 얘기고, 반듯하게 선반에 수직인 채로, 휘거나 기울여서 놓여 있어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책을 섬기는 책의 시녀들이기 때문이란다. 시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책은 섬김의 대상이지만 책의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책으로 블록을 쌓고 기울어진 책상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도 이용할 수 있고, 요리책들은 찌개를 끓이다가 뜨거운 그릇을 받치는 용도로 사용할 수 도 있다. 아니, 아무리 책을 싫어해도 그렇지 신문지와 폐지와 잡지들도 많은 데 하필 신성한 '책'을 꼭 그 시시껄렁한 일에 사용해야 하냐고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책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다는 저자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아이들의 책들이 블록을 쌓다가 구겨지고, 심지어 어떤 아기들은 먹기도 할 것 같다, 먹어서 일부 페이지가 없어지고, 책상을 받치기 위해서 밑에 깔려 동그란 자국이 남고, 요리책 위로 찌개가 엎어져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은근히 난다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책'이 갖고 있는 사연이고, 책과 책을 읽은 사람이 함께 경험한 세월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책의 육체가 독자와 함께 늙는다는 것, 저자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싸하다.  

앞으로 좀 더 책들을 험하게 굴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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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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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로 부터 시작된 책의 역사가 아닌,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책꽂이의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또 뒤의 번역자의 해설을 보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책과 책꽂이 둘 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꽂이라는 것이 책 없이 독립적으로 혼자 존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책꽂이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곧 책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루마기 책에서 네모난 책으로, 사슬에 묶인 책에서 어디라도 이동이 가능한 책으로 변화하는 책의 역사는 책을 넣는 궤짝에서 사슬 달린 책꽂이, 회전식 독서대, 경사진 독서대, 선반이 있는 책꽂이로의 변화를 설명해준다. 책등, 앞마구리, 윗마구리, 아래마구리와 같은 책의 구조적 명칭을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덧붙여 책이 아니라 책꽂이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책'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는 장점도 갖게 된다. 사실 '책'의 내용만을 다룬다면 책등이니, 앞마구리니, 윗마구리니 하는 구조적 명칭이 뭐가 중요하랴?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책꽂이-아무 생각없이 보면 도저히 무슨 '공학'이라는 것이 절대로 작용했을 것 같지 않은 물건-에 관한, 또는 책 보관에 관한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책등을 앞으로 뒤로 꽂는 문제부터, 책을 옆으로 쌓는 방법, 선반의 끝에 맞추어 정렬시킬것인지, 아니면 뒤에 맞추어 정렬시킬 것인지 와 같은 문제도 다루고, 유명 도서관들의 책장 배치나 책장 공학(?)-책장이 어떤 방식으로 레일을 따라서 움직이게 할 것인가?-과 같은 지극히 공학적인 문제들도 함께 다룬다.  

하지만 처음에는 책과 책꽂이에 관한 '수다'인줄 알았던 이 책의 정체가 점점 책꽂이 '공학'에 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급격히 나의 집중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물건의 모양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님, 그냥 상상하기 싫은 건가? 

그럼에도 이 모든 장점과, 또 이 모든 지루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사소한 부록은 쓸만하다. 사실 부록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시시콜콜한 문제를 지나치게 진지하고 꼼꼼하게 다룬다. 그래서 쓸모있으면서 그래서 쓸데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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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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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이 작품 속에서 제시한 해결책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 볼까 합니다. 사실 체홉은 백년 전의 작가여서, 그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하더라도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별 도움이 안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체홉이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을 살펴볼까 합니다. 1938년에 태어나 1988년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레이몬드 카버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은 다양합니다. 그 수많은 수식어들 중의 하나가 바로 '체홉 정신을 계승한 작가'라는 수식어입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을 읽어보면, 왜 이 수식어를 그에게 붙였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이 보여주는 진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레이몬드 카버는 분명한 체홉 정신의 계승자입니다. 

그러니 체홉이 제시했던 문제의식을 레이몬드 카버의 해결책으로 풀어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가 의사도 아니고, 앞으로 소개할 그의 해결책이 의사의 삶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매너리즘과 매너리즘이 만들어 낸 비극을 해결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제이고, 비단 의사들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라는 것이 의사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성당>(문학동네)에 실려 있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은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논의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죠. 토요일 저녁 앤은 자신의 아이, 스코티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하고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빵집주인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월요일 아침 스코티는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되고 중환자실에 입원합니다. 남편인 하워드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전화를 받습니다. 가벼운 뇌진탕으로 입원한 스코티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며칠 후 결국 사망합니다. 스코티가 사망한 날 빵집으로부터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전화를 다시 받은 앤과 하워드는 분노하며 빵집이 있는 쇼핑센터로 자정이 되기 얼마 전에찾아갑니다. 부부는 빵집장수에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여기서 부터가 재밌는데요. 자신의 잘못, 사실 아이가 죽은 줄 전혀 몰랐으니 꼭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죠, 을 깨달은 빵집 주인은 부부에게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계피 롤빵과 커피를 부부에게 대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겪은 인생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찾아온 회한과 무력감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리고 새벽이 되고 햇살이 가게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작품 속에 나온 빵집 주인의 삶과, 안드레이 에피미치의 삶과, 그리고 대부분의 의사들의 삶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반복되는 일상, 회한과 무력감, 퉁명스러움과 무뚝뚝함. 이 작품 속의 빵집 주인도 분명히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소설의 첫장면에 나타난 빵집 주인에 대한 앤의 첫인상이 그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다르지만 그도 안드레이 에피미치처럼 위기를 겪었죠. 어쩌면 그가 앤과 하워드에게 자신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어디서 행패냐고 화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도 사실 삶에 지쳐 있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빵과 커피를 대접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이것이 체홉과 레이먼드 카버가 여느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사소하고 소박한, 하지만 최선의, 해결책의 의미가 살아있으면서 따뜻한 롤빵이 갖고 있는 훈훈한 감정과 검은 커피와 검은 초콜릿 케잌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검은 당밀빵의 검은 색이 담고 있는 애도의 의미가 조화롭게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몬드 카버의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과 매너리즘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주변에게 관심을 가질 것, 그것이 백년의 시간을 두고 태어난 두명의 작가가 저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매너리즘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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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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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도 어느 정도 언급되어 있지만,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는 의학사적으로 는 파스퇴르와 코흐의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죠.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곧 세상의 모든 병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희들의 눈으로 보면 19세기인들의 유토피아가 좀 위태로워 보이지만요. 하지만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얘기하는 '자선병원'의 현실은 합리주의와는 거리가 멀죠. 희곡 <갈매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이고, 제가 앞서 얘기한 용어를 빌어서 말한다면 사실과 진실이 다른 거죠. 

이 소설은 두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가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실과 진실의 관계가 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 지를 보는 겁니다. 두번째는 안드레이 에피미치의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체홉이 안드레이 에피미치, 지성과 정직을 사랑하고, 다른 이에게 명령하고 금지하고 주장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부정축재를 하지도 못하는, 재산이 겨우 86루블밖에 남지 않은 무고하고 검소하고 청렴한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선병원 외부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의 '사실' 입니다. 1퍼센트에 불과한 개복수술 사망률, 파스퇴르와 코흐의 발견, 유전이론, 최면술, 정신의학, 통계위생학까지.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죠. '진실'은 자선병원 내부에서 볼 수 있죠. 병원은 20년전과 마찬가지로 절도와 다툼과 험담으로 가득하고 의사들은 노골적으로 엉터리 진료를 하고 있죠. 이게 바로 안드레이 에피미치를 둘러싸고 있는 사실과 진실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 옷을 입고 차를 마신다. 그리고 서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병원에 출근한다. 병원의 어둡고 좁은 복도에 진료를 기다리는 외래 환자를 본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병원의 환경이 환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알고 있지만 개선을 위한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년이상 계속되는 똑같은 질문과 일상이 지겨워졌기 때문입니다. 무해하지만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모피어스가 나타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반드미뜨리치죠. 불멸과 형이상학을 얘기하는 안드레이 에피미치에게 병원의 폭력과 삶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에게 진실을 보는 빨간 알약을 먹으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피파니를 경험하게 되죠. 그 부분을 읽어보죠. 

어떻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그는 고통을 몰랐고, 또 고통에 대한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니끼따와 호보또프와 사무장과 보조의사를 죽이고 자살하고 싶었다.(125쪽)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20년 동안 몰랐던 사실을, 병원안의 진실을, 이반 드미뜨리치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드디어 모피어스를 통해서 빨간알약을 먹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네오가 아니었습니다.니끼따의 폭력으로 그의 저항은 좌절됩니다. 그리고 결말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다음날 저녁 그는 뇌일혈로 사망합니다. 아마도 외상성 뇌출혈이었겠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사망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뇌일혈이지만, 체홉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안드레이 에피미치의 사망원인은 매너리즘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무런 변화를 꿈꾸지 않은 것이 그의 사망원인이라는 거죠.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또는 의사라면 빠질 수 밖에 없는 매너리즘 때문에 죽어야 하다니, 작가가 좀 너무 하죠? 작가에 대한 비난은 제쳐두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는데요. 해답은 피해망상 환자인 이반 드미뜨리치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이상학과, 과학이론들과, 불멸에 대한 고민과, 스토아 철학 속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곳에 있습니다.  

삶에 대한 갈망, 또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죠. 병원 안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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