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의 탄생 -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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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일때문에 삿뽀로에 갔다. 여행이 뭐 별거냐?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화낼 사람도 있겠지만,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자는 것. 그러니까 낯선 것을 먹고, 낯선 것을 마시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고, 낯선 곳에서 자는 것, 이것이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  덧붙여 말이 된다면 낯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일본사람들도 한국과 비슷한 것을 먹고, 마신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건가? 굳이 기억해내기 어려운 음식들을 끄집어 낼 필요도 없다. 경양식집-어렸을 적에는 이런 간판이 붙은 음식점들이 많았는데, 대체 경영식이라는 것이 뭘까? 그럼 중양식도 있나?-에서 먹었던 카레라이스, 돈까스가 실제로는 일본음식이라는 것이다, 양식이 아니라!  그리고 추정이긴 하지만 경양식이라는 용어가 아마도 일본식 용어일 가능성이 많다.   

좀 다르게 얘기하자면, 카레라이스가 인도의 카레스와는 다른 음식이고, 돈까스가 서양의 포크커틀렛과는 다른 음식이라는 것이다. 비록 서양에 기원을 둔 요리(?)들이지만 과거 어느 시점엔가부터는 일본화되어버린, 그래서 지금은 인도음식점이나 양식당에서 보다는 일식집에서 훨씬 더 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화된 대표적인 서양음식, 카레라이스, 고로케, 돈가스,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도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에 육식에 대한 금기를 깨면서 개발한 돈가스의 탄생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음식과 역사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조리법 대한 내용도 꽤 자세하게 나온다. 요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사족처럼 느껴지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꽤 흥미있는 내용이다. 일본 밀과 서양 밀의 차이, 왜 소고기나 닭고기 아니라 돼지고기여야 했나? 라는 의문이 생긴다면 더더욱 흥미로운 읽을 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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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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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작가들의 신간을 받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하일지, 김영하, 폴오스터, 그리고 김애란! 앞서 세명과 분명히 나이나 연륜면에서 차이가 나지만 최근에 김애란도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 목록에 올려놓았다. 두 권의 단편집 이후에 나온 첫 장편이라...... '첫'이라는 말은 뭔가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 수식어다.  

김애란의 장점은 많다. 어조는 유쾌하고 문장은 발랄하며 이야기들은 신선하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김애란이라는 작가의 성격이 유쾌하고 발랄하고 신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뛰어난 점은 구질구질하고 빤한 현실 속에서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문장들을 찾아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그녀의 재능이다. 어떻게 저 문장이 저 허름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 지 알았을까?  

이 소설이 세간에 화제인가 보다. 물론 나 역시도 거의 쉬지 않고 죽 읽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녀의 장점, 아니 그녀의 성격과 혼동했던 '유쾌', '발랄', '신선'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조로증에 걸린 열일곱살의 소년이 갖고 있는 유쾌함, 소년의 부모들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발랄함. 이소설을 읽고나서,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느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이 소설을 받치고 있는 리얼리티의 근거들이 좀 위태롭기 때문이다. 80세의 몸을 지녔지만 열일곱 살의 주인공이 갖는 지나친 어른스러움, 조로증을 둔 부모들과 동네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철없음. 덧붙여 이 소설의 인물들은, 특히 어른들의 성격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옆집 할아버지가 아버지고 아버지가 어머니고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같다, 단지 이름만 다를뿐. 이렇게 보니 이 소설의 장점들은 고스란히 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위태롭게 만드는 단점들이다. 더욱 문제는 이 위태로움이 이 소설의 뛰어난 가독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이서 위태로운데,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니 원......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작가가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장편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리얼리티고, 이 단어 속에는 현실감있는 인물들의 성격, 이야기의 개연성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엄마와 아빠와 언니와 나'의 공간, 그러니까 집과 방과 사무실로 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그녀의 다음 장편이 기다려진다.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추신: 작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도, <캐리>의 주인공 캐리도, <에쿠우스>의 알런 스트랑도 모두 열일곱살이다. 아름이와 나이가 같다, 물론 만나이로 따지면 그들이 두 살정도 많겠지만. 왜 모두 열일곱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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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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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문학, 질병을 엮어서 글을 쓸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사게 된 책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관심이 있는 시기는 1960년대이다. 아마도 대학생때 선배들이 권해준 책들이, 그러니까 새내기때 읽기 시작했던 책들이, 대부분 이 시기의 작가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승옥, 최인훈, 이청준, 서정인, 등등등.  

굳이 문학이 아니더라도 한국전쟁, 그러니까 6.25사변,은 한국사회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8 15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있었던 사건 중에서 한국전쟁보다도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한국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굉장히 편협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니 내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의 관한 모든 지식은 국정교과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한문장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남침인가? 북침인가? 남침유도인가? 저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의도를 분석하고, 남한과 북한이 놓여있는 컨텍스트를 파악한다. 아니면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다. 왜 1949년이나 1951년이 아닌 왜 1950년인가? 왜 5월이나 7월이 아닌 6월인가?  

저자의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 내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실들이 극히 지엽적이고 파편화된 것 조각들에 불과하고, 심지어 그 조각들 조차도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믿음의 근거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후반부의 전쟁으로 인한 비극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인용된 박완서의 소설은 부적절했다. 왜냐하면 소설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듬어지고 짜여진 픽션보다는 좀 거칠더라도 논픽션이 자료로서는 더 나았을 것 같다. 두번째는 이 책이 전체적으로 주려는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의도했던 것이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쟁으로서의 한국전쟁이라는 '담론'이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느낀 것은 뭔가 확실한 증거들이 부족한 한국전쟁이라는 '풍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나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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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 이면의 역사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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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를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혀 안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스, 헬레네, 아킬레스, 아가멤논, 헥토르 등등의 인물들을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일리아드가 고전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매체들을 통해서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제대로 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무감(?) 을 느낀다.  

이 책은 신들이 주관한 전쟁이라는 신화적인 차원에서 쓰여진 <일리아드>를 그리스와 트로이라는 실존했던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세밀하게 기술한다. 왜 호메로스는 전쟁에서 '신'의 개입을 주장했을까? 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헬레네를 납치했을까? 과연 두 나라간의 전투가 헬레네라는 여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일까?  

고대 전쟁사 전문가이면서, <살라미스해전>의 저자이기도한 배리스트라우스는 신화 속의 전쟁을 자신이 실제로 본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아킬레스의 갑옷, 창과 같은 전투 장비, 전차전이 불가능한 진흙판의 전투지의 모습으로 부터 전쟁을 신의 개입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당대의 가치관, 모든 복잡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성향들을 언급하면서 '트로이의 목마'로 단순해져 버린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좀더 입체적인 시각, 3D TV 보다 더, 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 보면 한국전쟁의 기원을 외적기원과 내적기원으로 나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대의 사가들이 말하는 외적기원, 세계체제론 재편에 의해서 한국전쟁이 발생했다,이 그리스인들이 이야기하는 신의 개입과 비슷한 차원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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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4 사계절 1318 문고 24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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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우선 토끼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맘에 걸린다. 사자, 호랑이, 독수리 그것도 아니라면 늑대나 곰과 같은 힘세고 멋진 맹수들도 많은데 왜 하필 토끼일까. 그리고 하나 더! 환타지라니! 근데 표지가 영...... 환타지 소설의 책표지라면 뭔가 의미심장하고 알쏭달쏭하고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횅한 풀밭과 아무 특징없는 토끼 한마리라니. 이 책에 대한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첫인상이 주는 불안감 때문에 1권만 샀다. 재미없으면 팔려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면서도 결국 읽기 시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토끼가 주인공인 환타지라는 것이 대체 어떤 걸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귀엽고 겁많고 소심할 것만 같은 토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환타지는 어떤 것일까. 우선 슈퍼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초인적, 아니 초묘(?) 적인 토끼의 신비한 탄생, 여우와 개와 고양이와 인간을 물리적으로 압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 토끼가 만들어어 내는 갖가지 영웅담! 근데 이건 너무 빤하잖아. 아마 애들도 이런 이야긴 시시해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마법에 걸린 토끼 공주와 왕자님과의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계모인 마녀의 마법에 걸려 토끼가 된, 물론 이것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같지만, 공주는 사랑하는 이의 눈물이 닿는 순간 마법에 풀리게 된다. 마녀가 풀어 놓은 늑대에게 쫓기던 토끼 공주는 우연이 왕자님에 의해서 구출된다. 그리고 여차저차 해서 이 둘은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또 여차저차해서 마녀를 물리치게 되고, 그리고? 뭐 그냥 둘이 잘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근데 이것도 영......  

1권을 읽고 나서 느낀 첫번째 생각은 이 소설 속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환타지'는 없다는 것이다. 표지 그림이 아주 잘(?) 보여주듯 이 소설이 보여주는 환타지 속에는 들판과 토끼 밖에 없다. 헤이즐, 파이버, 빅윅, 스트로베리, 댄더라이언 등등의 토끼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단지 풀을 뜯고, 엘릴(토끼어로 토끼들의 '적')을 피해서 도망다니고, 짝짓기를 위해서 암토끼를 찾아다니는 게 고작이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물리적 능력이래야 기껏해야 고양이를 혼내주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들포드 마을을 떠나 워터십 다운에 정착하는 토끼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아니, 풀뜯고(토끼어로 '실플레이'), 도망다니고, 굴파는 얘기가 어떻게 흥미진진한 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언뜻 생각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지극히 '토끼'스럽다는 점이다. 앞서 내가 얘기한 슈퍼 토끼와, 마법에 걸린 토끼들와, 왕자와 공주님 이야기는 토끼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힘센 악당들을 물리치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마법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인간들의 '환타지'라면, 엘릴들로부터 꾀를 내어 달아나고, 짝짓기를 할 암토끼를 찾아 목숨을 걸고, 힘센 토끼(운드워트)로 부터 자신의 마을을 지켜내는 이야기가 바로 토끼들의 소박한 '환타지'다.  

하지만 만약 토끼들의 소박한 환타지가 인간들의 것보다 좀 더 '현실적'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슈퍼맨과 공주님과 마녀가 사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나오는 토끼들처럼 미래를 불안해 하고, 수많은 적(경쟁자)들을 피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워터십 다운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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