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 그리고 과학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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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헤이즈의 책들이 피를 흘리고, 잠을 못이루는 일들에 대한 개인사와 과학적인 사실들을 연관시켜서 쓰고 있다면,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 구체적인 통증,과 통증을 관리해온 의학의 역사를 연관시키면서 써내려 간다. 알고보면, 굳이 푸코가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언급한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의학은 아픈 부위를 안 아프게 해주는 학문이고, 이것은 육체와 정신(정신과는 정신의 고통을 해결하니까), 그리고 은유(간이 아프다는 표현은 간염에 대한 은유다)와 비은유(두통은 머리가 아프다에 대한 은유가 아니다, 그러니까 비은유?)에 대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의학이 통증을 다루는 곳이고, 의사의 일이 안프게 해야 하는 일 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여전히 통증을 다루는데 서투르다. 사실 잘 모르는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통증의 원인이 뭐냐는 질문에는 흥미가 있지만 통증 자체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작가가 본문 곳곳에 쓴 자신의 경험처럼, 원인없는 통증을 앓는 환자는 의학의 대상인 동시에 의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혹시 마약 때문에?  

 

내 꿈은 언젠가 책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된다? 작가가 되면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야 할까? <글쓰기 생각쓰기>의 저자 윌리엄진서는 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픽션,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 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점을 가보면, 또는 인터넷 서점을 한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의 책들의 팔할은 논픽션이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팔할은, 만약 작가가 된다면, 논픽션 작가가 될 것이다. 비약인가?

 

이 책의 스타일은 이전에 읽었던 빌 헤이즈의 것과 비슷하다. 과학, 특히 의학,과 개인사를 엮어서 서술하는 방식은 언젠가 내가 써보고 싶은 책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순전히 우연인 것 같긴 하지만 왜 이런 '개인사'들은 하필 매번 물리학이나 화학 보다는 의학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물리학이나 화학 보다는 의학이 개인사로 부터 출발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물리학이나 화학이 설명하는 세계보다는 의학이 설명하는 세계 속에서 '개인'이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쉬운 예로 질량 보존의 법칙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빅뱅의 법칙이나 불확정성의 원리가 우리 삶에 영향을 줄 가능성 보다는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일들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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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미래 - 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월터 카우프만 지음, 이은정 옮김 / 동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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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전공자들이 인문학을 어떤 식으로 공부하는 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전에 읽었던 <인문학 매뉴얼>의 서문에 역자가 쓴 글을 참고하면,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식은 크게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햐 하는 걸까? 전자의 문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문제 역시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것에 대한 정보는 사실 풍부한 편이다. 아니, 너무 정보가 많아서 문제이다. 하지만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곧바로 생각하는 문제와 연결이 된다. 어쩌면 많이 이들이 고전을 읽기 힘들어 하는 이유가 바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같다.

 

비록 책의 앞부분에서 나눈 여러가지 인문학자들의 유형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던 것은 이 책이 책을 고르는 일만큼이나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강점은 우리가, 아니 내가, 책을 읽는 행위를 구조화시키고, 어떤 점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책을 꼼꼼히 읽을 것, 저자와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확인할 것, 그리고 당대의 작품이 놓인 문맥을 파악할 것. 책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발견하려 하지말고,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추신: 이 책의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불만인 점 중의 하나는 용서가 되지 않는 황당한 오타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용서가 되지 않는 오타란게 뭔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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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인의 방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 예니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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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것은 2002년이나 3년 일 것 같다. 대충이나마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희곡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와 이 책을 산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책을 산 장소는 대전이었고, 대전 시내의 어느 대형백화점 안의 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연을 하거나 수업교재로 선택한 특별한 몇몇 작품은 제외하고, 희곡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한 번 읽고, 그 자리에 주욱 꽂혀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것은 후배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이다. 무대에 작품을 올린다고, 그래서 조언을 구한다고, 그러니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안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서평을 남기지 않아서 전에는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장점은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읽으면서, 무대화하면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많다는 점이다. 무대, 분장, 연기, 조명, 음향 모두가 만드는 사람, 특히 연출,에게 달려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작품의 해설을 참조하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그렇고, 한국에서 만든 연극도 그렇고, 모두 이 작품의 멜로드라마에 무게를 많이 실어줬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카프카의 <성>을 성을 찾아가는 K의 여행기로 파악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부인의 방문>은 뒤렌마트가 노부인의 방문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둔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감동'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문'이 가져다 준 '변화'를 해석하라고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따뜻한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작품의 단점이다. 감동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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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 2022-07-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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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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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무지하게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이다. <성>, <소송>과 장편 뿐 아니라 <변신>이나 <시골의사>와 같은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무지하게 어렵고 한없이 지루하다, 장편의 경우에는 더더욱! 두번째는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불안'이다. 카프카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불안은 때로는 어떤 걱정이나 근심이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가는 존재에 대한 무력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불안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어보면 그의 예민함과 불안의 기원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편지는 아버지에 대한 카프카의 생각과 아버지가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에 관한 내용을 가득하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또 카프카가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가 여러 면에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아버지로서의 '나' 자신과 카프카의 아버지가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느 사회에서나, 그것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이든 간에, 아래사람들이 보기에 윗사람들은 모순으로 가득해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프카가 발견한 것은 모순된 아버지라기 보다는 모순으로 가득찬 현대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 모순적이고 난해한 소설들을 쓰지 않았겠는가! 의사 역시 마찬가지로 모순으로 가득찬 존재이다. 환자를 고칠 수록 돈을 벌지만, 그래서 질병과 싸우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병을 통해서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통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의사들의 목표가 왠지 진실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의사들 중에 여기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아마도 산부인과 의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기가 많을 수록, 물론 적당한 수준까지만, 의사나 환자나 모두 행복하니 말이다. 산모는 환자가 아니니까.

꼼꼼하고 세심하게, 그가 소설에서 보여준 것처럼, 조목조목 써내려간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여준 불안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아버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카프카가 묘사한 아버지의 모습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난해함과 불안함의 원인을 알고자 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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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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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인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아내인 도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살아있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도 이 편지의 정체는 러브레터인 것이다. 채팅과 벙개의 시대에 러브레터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좀 구식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그(그녀)의 답(답장)을 기다리는 일만큼 아름답고 설레는 일이 있을까? 

사랑에 관한 편지, 또는 사랑에 관한 소설, 아니면 사랑을 다룬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국문학과 수업 시간에 들은 바로는 그건 바로 기다림, 또는 일정기간의 포즈(pause)이다. 편지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이 듯이, 어쩌면 채팅과 벙개가 없던 몇 십년 전에는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였을 지도 모를일이다. 고백하고 기다리고, 답을 듣고, 사랑에 빠진 이들이 겪는 과정이 고스란히 러브레터를 쓰는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83세의 저자는 죽어가는 자신의 부인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했던 과거나,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러니 이 편지는 러브레터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언장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고르의 희망은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이자 애인이자 동지인 자신의 아내와 같은 날에 죽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수많은 허구 속의 연인들 보다 더 허구같은 죽음을 택한 고르의 편지가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름답게 살 권리와 함께 아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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