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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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인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아내인 도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살아있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도 이 편지의 정체는 러브레터인 것이다. 채팅과 벙개의 시대에 러브레터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좀 구식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그(그녀)의 답(답장)을 기다리는 일만큼 아름답고 설레는 일이 있을까? 

사랑에 관한 편지, 또는 사랑에 관한 소설, 아니면 사랑을 다룬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국문학과 수업 시간에 들은 바로는 그건 바로 기다림, 또는 일정기간의 포즈(pause)이다. 편지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이 듯이, 어쩌면 채팅과 벙개가 없던 몇 십년 전에는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였을 지도 모를일이다. 고백하고 기다리고, 답을 듣고, 사랑에 빠진 이들이 겪는 과정이 고스란히 러브레터를 쓰는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83세의 저자는 죽어가는 자신의 부인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했던 과거나,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러니 이 편지는 러브레터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언장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고르의 희망은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이자 애인이자 동지인 자신의 아내와 같은 날에 죽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수많은 허구 속의 연인들 보다 더 허구같은 죽음을 택한 고르의 편지가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름답게 살 권리와 함께 아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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