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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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햄릿은 범우사판 이태주 번역의 햄릿이었다. 감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이번에 읽은 김정환 번역의 햄릿이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읽기가 편한 것이 잘 된 번역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 대본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김정환 판이 더 나은 것 같다. 왜냐하면 김의 것이 글 속에 리듬이 잘 살아 있기 때문이다.  

<햄릿>은 그 유명세에 비해 가독성은 떨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햄릿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 의도된 '모호함'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유명세와 가독성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하다. 그러니까 <햄릿>을 읽기 위해서는 작가가 짜놓은 모호함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햄릿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버리면 햄릿은 너무 단순한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의도된 모호함을 즐길 수 없다는, 또는 모호한 의도를 생각해보는 즐거움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고 햄릿을 죽이려고 해서 결국 삼촌을 죽인다?   

이런 식의 서사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도 애매모호한 구석도 없다. 따라서 햄릿의 모호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햄릿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읽어가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복수극이 아닌 심리극으로 읽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도된 모호함의 중심에 있는 것이 '햄릿'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프로이드의 분석 역시 햄릿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이 작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햄릿 뿐아니라 '복수'라는 행위와 관련된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들을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형을 죽인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조카를 죽이는 음모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선왕 햄릿과 사이가 좋았던 거트루드는 선왕이 죽은 뒤 두 달도 되지 안아서 시동생인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한다. 완벽한 햄릿왕 암살은 유령으로부터 햄릿에게 누설되고, 클로디어스를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순간에 햄릿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복수를 뒤로 지연시킨다. 클로디어스를 향했어야 할 칼은 엉뚱하게도 커튼 뒤의 폴로니어스를 찌르고, 영국왕에 의해서 제거되었어야 할 햄릿은 죽지않고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죽게되며, 햄릿을 겨냥하고 있던 독배와 독이 묻은 칼은 거트루드와 레어트즈로 향한다.  

인물들의 계획은 조금씩 어그러지고 빗나간다. 빗나간 계획들은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결국 이 희곡이 보여주는 것은 어긋나는 계획들, 흔들리는 인물들, 모호한 동기들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상상하고 추측해봐야 하는 것 역시 왜 계획은 어긋나야 하고, 왜 인물들은 흔들리는가이다. 덧붙여 모호한 심리적인 동기들을 추측하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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