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상어 중 하나가 '패션디자인'이란 단어다. 이 단어는 무수히 회자된다. 관련 책도 정말 셀 수 없이 나와 있고, 끊임 없이 출간되고 있다.

 

일단 '패션디자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 된 책들을 보자.

 

 

 

 

 

 

 

 

 

 

 

 

 

 

 

 

 

 

 

 

 

 

 

 

이런 책들은 딱 세 부류다. 패턴 메이킹 방법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는 책이거나 패션지 기자 출신이 쓴 스타일 이야기. 그리고 의상학 및 패션학과 교수가 자기 교과서로 쓴 책.

 

위와 같은 책을 보면, 한결같이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얘기는 없다. 오로지 '패션'과 디자인' 그리고 '스타일'을 디자이너들과 함께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도 쓰는 사람 마음대로다. 세부 전공자에 따라 다루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책의 내용은 대개가 비슷하다.

 

아무 책이나 열어보면, 주구장창 디자인 얘기하다가 갑자기 디자이너 예기로 넘어간다. 그도 아니면 스타일 얘기하다가 갑자기 브랜드와 패턴 얘기로 여백을 메우고 있다.(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전무하다.

 

예전에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마릴리 혼 & 루이스 구렐의 <의복>(까치,1988)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의복 ; 제2의 피부'였다. 그나마 이 책이 의복의 본질을 어느 정도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의복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의복이 문화로써 어떻게 자리매김했고, 어떤 상징을 얻었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해 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책에도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개념적 고찰은 거의 없다. (이상하게도 이 책에는 패션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패션'이 뭔가? 스타일인가 아니면 패턴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유행인가? '패션'이라는 단어는 이들 각각을 지칭하지만, 스타일, 패턴, 유행, 브랜드 그리고 디자인을 아주 가뿐하게 넘어 다닌다. 정말 꺼리길 것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아주 복합적(이중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패션 스타일'이란 게 바로 그런 거. 개념이 매우 넓은 단어임에도불구하고 이 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저자는 정말이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뭐, 전무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왼쪽의 책들은 그나마 '패션'에 대해서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긴 하다. (특히 패션 철학은 그나마 시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나열식이다. 이도저도 아닌 가장 좋지 않은 소개 방식이랄 수 있다. 역시나 이들 책에도 패션에 대한 개념적 고찰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의상과 패션디자인>은 정말 심하다. 옷과 패션을 그냥 동일선상에다 놓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해댄다. 엄연히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자기 얘기를 해 나가야하는데, 의상에서 그냥 브랜드로 넘어간다. 뭐, 다른 패션디자인에 관계된 책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인다.

 

 

'디자인'이라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종합대학치고 디자인과가 없는 학교는 별로 없다. 산업디자인 과나 실내디자인 과 등 여타 '디자인'이 붙은 학과가 설치돼 있고, 전문대학에서도 꽤 많은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디자인 학계나 업계에서 이 '디자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작업이 하나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달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서 저자가 밝힌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 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스테판 비알이라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을 소개해 보겠다.

 

디지인은 이미 백년 전에(독일에서) 탄생했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된 이론조차 없이 고아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다.  이 점에 대해 마리 오드 카라에스는 <디자인 연구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프랑스 디자인에 대한 참고 문헌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 어떤 명확한 자료도 없으며, '디자인의 영역과 목표를 상세히 밝혀주는'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디자인과 실제로 밀접하게 연결된 영역들(예를 들면 미술이나 공학)과 디자인 사이를 나눠주는 확실하고 절대적인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분야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침투성으로 인해 어느 시점에 한 분야가 멈추고 다른 분야가 시작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p 14)

 

패션과 디자인 선진국 중 하나라는 프랑스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말해서 뭘할까. 특히 패션과 아주 밀접하지만 패션의 따라지로 격하된(그런 인상이 짙은) '디자인'은 정말 난감한 분야다. (패션은 디자인의 변형만을 주어 다음 철 수입이 저절로 확보되는 신기한 분야다.)

 

계속 비알이 말하는 바를 따라가 보자. 그러면 위에 내가 언급했던 디자인 분야(학계와 출판물)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난다.

 

디자인은 이제 역사가 분명히 정립되고*1), 직업상의 실무가 확실히 파악되었으며, 전 세계 교육기관의 목록이 작성된 데다, 작업 방법 및 도구의 수준도 높아지고, 영햑력을 발휘하는 주요 인물들이 만인에게 알려진 분야다. 그렇기에 이런 분야가 오늘날 이토록 막연한 개념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히 놀랍고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pp 14-15)

 

바로 이거다. 역사가 분명하고 만인에게 알려진 분야이지만 합의된 개념없이 중구난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거다. 이와 같은 이상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 분야는 무엇이 있을까?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현재 '디자인'은, 그러니까 쓰는 사람 마음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비록 최근에 '디자인'의 개념이 '사고에 대한 기획'이라고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막연한 개념을 교통정리 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패션이라는 개념은 '디자인'의 하위 개념이 분명하지만 자기(패션)가 디자인을 좌지우지 한다. 여기에 현재 '패션 디자인'에 대한 문제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패션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으니, 디자이너들은 자기 마음대로 이 개념을 갖다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패턴으로, 어떤 사람은 브랜드로 또 어떤 사람은 스타일로.

 

패션이 무엇인지 성찰해 보지 않으니 디자이너들은 항상 소재를 바꾸고, 길이를 변화시키며 주된 색상을 해마다 정한다. 이게 유행을 타면 패션 디자이너들은 또 다음해를 위해 같은 일은 반복한다.

 

물론 소재가 중요하고, 패턴이 중요하며 디자인(시루엣)이 중요하다. 세련미와 완성도는 최고로 간주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패션을 평가하는 기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패션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위에서 패션은 디자인의 하위 영역이라 했다. 그 이유는 옷의 경우 무언가를 고안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별로 없기에 그렇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기 때문.

 

그래서 패션의 경우는 특이한 패턴의 경우도 특허를 받을 수 없다. 프라다의 어떤 옷 디자인(형태)을 누가 베꼈다 하더라도 프라다가 소송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기에 패션의 아주 기본적인 토대는 옷(옷의 형태)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행과 스타일과 패턴은 이 기본적인 옷(의복)으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원형적인 옷의 형태는 단순하다. 단순하게 두 개로 대별할 수 있다. 몸통, 팔, 다리를 각기 따로 감싸는 천을 이은 것. 이게 옷의 첫번째 형태이다. 두번 째는 원피스형이다. 조선시대 두루마기나 그리스 원로원에서 입던 옷도 모두 통으로 된 천으로 몸을 감싸는 것이다.

 

현대의 옷은 이 두 옷으로로부터 나왔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왜 남자는 기본적인 형태가 바지와 상의를 따로 입게 됐는지. 그리고 여자는 왜 치마를 기본으로 한 원피스형이 기본적인 형태가 됐는지.

 

또한 우임은 어째서 남자 옷이 됐고, 좌임은 여자 옷이 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언제 왜 그렇게 됐는지도 확실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좌임과 우임 그리고 단추 여밈의 방향은 근대 복식을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렇다.  

 

벗고 입음에 대한 고찰도 해 봐야 한다. 야생의 시절 인간은 벗고 있었다. 문명이 시작되자 옷을 입게 됐지만 현대에 들어서조차 사람들에게 옷이 필요없는 시간이 늘고 있다. 사람에게 옷이 필요하지 않을 때, 즉 벗고 있을 때 디자이너들은 옷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옷의 벗음과 입음을 통해 몸은 자신의 안과 밖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주절거려 봤지만, 결론은 하나다. 디자인처럼 패션도 자신의 기본 개념에 대한 막연함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입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면 '옷을 짓는 다'는 행위에(패션이 아니다!) 대해서도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세계적인 패션 명품 회사가 패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은 패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는 반복되는 주제, 기발한 아이디어, 현란한 디테일에 대한 그럴듯한 포장만이 넘쳐난다.

 

이제 패션은 디자인의 하위 영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형태가 왜 기능을 따를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게 아니라면, 형태의 디자인으로 자신을 정의내리려 하지 말고,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시도는 패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1) 디자인은 역사가 분명한 분야가 됐다. 19세기 중반 디자인의 원형적인 개념은 영국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 온전히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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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1-29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 예술대학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의복의 역사` 강의가 생각나네요.
그 강의는 `디자인`이나 `패션`의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복식사를 다룬 강의였지만요.

yamoo 2014-11-29 15:0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잘 지내시죠~^^

저는 수업을 패션 디자인이란 과목을 들었는데....수업 내용은 패턴 메이킹이였어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복식 미학이란 강의는 입체 드로잉만 배우다 끝났습니다.ㅋㅋㅋ 젠장 이에요..ㅎ 수업 내용과 과목명이 따로 놀고 책도 따로놀고..ㅋㅋ 이 무쉰 난리인지요..ㅎ

온동건 2018-05-1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서핑하다가 너무나도 듣고싶었던 내용을 댓글로 보게되어 서재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위에 내용에 대한 자세한애기를 조금더 나눠보고 싶은데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onmimo90
카톡으로 연락주세요 꼭 애기를 나눠보고싶습니다. 선생님
 

 

1.

 

요즘 알라딘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서정가제 마지막날 아카넷 대우고전총서 50% 세일 도서들을 골라놓고 결제와 취소를 반복하다가 그냥 취소했다. 총 6권이었는데, 이번에 구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마지막날 구입 시도를 해봤지만, 포기했다. 그냥 후회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내 방의 상태 때문.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정도다. 1달 여 간을 그렇게 지내니, 다리가 저리고 잠도 대충 잔 느낌이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책 정리를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한다. 하지만 요즘 알라딘 신림점에는 절판된 도서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어찌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10월부터 알라딘회원에게 책을 팔고 있지만(한 20여 권) 판 만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재기를 하니 미칠노릇이다. 내 방의 책이 점점 줄어가야 정상인데 조금씩 쌓여간다. 2권 팔고 2.5권 사재니. 그도그럴것이 매일 들르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뢰즈나 푸코의 절판 도서가 나오거나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중 일부가 나오면 안 살수가 없는 거라. 리쾨르의 <악의 상징>(문지)을 어떻게 건너뛸 수 있으며, <들뢰즈의 푸코>를 어찌 안 살수 있으랴. 그렇게 산 책들이 매달 20여 권이 넘는다. 발에 쥐가 나도 이 책들을 포기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2.

 

알라딘에 서재에만 글을 올린지도 4년 정도 돼 간다. 익명성이 좋아서 여기를 적극 이용했는데, 알라딘이 사이트를 손보면서 서재 기능도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 같다. 도서정가제 마지막 날을 기점으로 여러가지가 변한 것 같다. 그 이전에 서재지수를 맘대로 조정한 건 전조였나보다. 내게 별 기능이 없어 보였던 페이스북 '좋아요' 기능. 사실 이건 왜 있어야하는지 몰랐다. 서재에 글을 올리면 어쩌다가 이 '좋아요'에 공감을 받는데 많이 받아야 4개다. 알라딘 스타 서재의 멋진 글들도 4-5개가 상한선인듯했다.

 

하지만 혼자 보기 아까워 지인의 '총균쇠 비판'글을 올렸는데, 그 글이 대박을 쳤다. 이 페이스북 공감이 무려 2900을 넘었으니 말이다. 근데, 근데....잰장맞을! 이 기능이 없어졌다! 대박을 쳤는데, 바로 없어져버려 그냥 허무하달까. 나중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가 알라딘에서 뭔가 플러스 요인을 얻으면 알라딘이 바로 없애버리는 듯해서.

이거에 더해서 울화가 치미는 게 한가지 더 있으니...공감 기능이 '좋아요'기능으로 바뀌고, 무슨 서재 팔로잉 팔로워 기능이 생겼다. 이게, 이게 젠장맞다. 네이버에서 이웃 추가하고 서로이웃 맺고...이게 싫어서 알라딘으로 넘어온건데, 지랄같이 알라딘이 따라하고 있다. 아....욕나올라한다!

 

 

3.

 

정말 몰랐는데, 이곳에서 내 글에 꽂혀 내 팬이 됐다고....오프 모임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그 분은 알라딘 서재 유저도 아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놈이 아닌데, 어째서 그런 이상한 반응을 보일 수 있냐고 하니, 그 분 왈, 비판적 정신(그리고 계속 논리적이라고..)이 돋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아....정말 의도하지 않는 효과다. 이런 글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뿐이거니와, 내가 쓴 글들이 정말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글들인지 의심이 들게 했다. 다시 봐도 쓰잘데기 없는 문제제기만 한거 같은데...

 

어쨌든 사람들이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인 것 같다. 뭐, 나도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꽂힌 글들이 많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리도 멋진 글을 쓰는지 만나보고 싶은 적도 있었다. 급기야는 실행으로도 옮겨 만나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블로그 글에 꽂힌다는 거가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바는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내 글은 그리 좋은 글이 아니기에 공개적인 칭찬이 좀 민망하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4.

 

지난 14일. 유니클로가 개장 10주년 기념 세일을 했다. 버스 환승 정류장 광고뿐만 아니라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유니클로 종이 가방을 보니, 유니클로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2004년, 롯데가 처음으로 명동점을 오픈할 당시 야나기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유니클로 옷을 입힐 수 있다고 호언했었다. 당시, '회장 허세가 쎄다', '우리나라 옷 시장을 장 모르는 회장의 일갈'..정도로 치부했었다. 당시 언론의 논조가 이 비슷했다. 

 

그런데....요즘, 유니클로 매장을 보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다. 3년전보다 가격이 30% 정도 올랐는데, 매출은 꺽일 줄 모르는 기세다. 유니클로 타도를 외치며 론칭한 SPAO나 에잇세컨드 매출은 정말 처참할 정도다.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하는 듯하다. 근데, 정말 이들이 유니클로 타도를 목표로 하고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 품질도 그렇지만 가격 정책이 유니클로에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니클로는 거의 비슷한 옷을 계절별로 재탕한다. 아주 조금의 디자인만 변형할 뿐이다. 3년 전 골덴 바지나 현재 나온 골덴 바지나 똑같다. 3년 전 울 니트 카디건이나 현재 나오는 거나 그게 그거다. 현 시점에서 2-3개월 후에 4만원 짜리 바지는 1만원으로 떨어진다. SPAO나 에잇세컨드는? 절대 그럴일이 없다.

 

2주마다 계속 옷이 갈리는 건 좋다. 하지만 기본 디자인을 정하고 베이직한 옷들은 세일 폭을 크게해서 재고를 처리해야 어느 정도 가격 우위가 있을 거 같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 우리나라 업체들은 30% 할인을 고수하는 것 같다. 기본 가격도 비싸거니와 세일 낙폭이 크지 않으니 계속 유니클로 옷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 지오다노 면바지 5만원씩 쳐받지 말아라. SPAO 기본 아이템 유니클로 따라하려면 원단 좋은 거 쓰고 가격 세일도 본받아라. 얍삽하게 흉내만 내지 말고!

유니클로 욕하지 말고 자정노력을 통해 제발 유니클로에 맞서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라. 빈폴과 헤지스처럼 과대망상에 빠져 옷에 허세를 쳐바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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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4-11-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알라딘 서재의 변화가 많이 어색하네요. 마음에 안들어요;;

yamoo 2014-11-25 13:3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가넷님!! 어색하고 마음에 안들고, 막 신경질이 납니다..^^;;
 

살림지식총서가 드디어 500권을 냈다. 정말 놀라운 속도다. 거기다가 이 지식 총서의 컨셉처럼 스펙트럼도 넓다. 인문, 사회, 문화,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 취미, 실용까지 교양 지식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200권대 중반이후로 가격이 한 차례 껑충 뛰기는 했지만 이 시리즈의 역사, 철학, 문화 분야는 정말 탁월한 책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도그럴것이 해당 분야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전공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고 알차다. 시리즈 초반에 출간된 책들은 매우 저렴해서(3300원) 미친듯이 사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나도 100권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본은 총 110권이 좀 넘는다. 주제별로 그리고 시기별로 읽었기에 책꽂이에 꽂아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읽었던 살림문고 중에서 최고의 책들을 꼽아보면 정말 30권이 훌쩍 넘는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책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특히 푸코와 후설이 대박이다~!)

 

 

 

 

 

 

 

 

 

 

 

 

 

 

 

 

 

대부분의 문화, 역사, 철학 분야의 책들이 정말 좋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이 시리즈 중에서 제일 허접한 책을 선별해서 그 책들만 피하는게 상책이다. 내가 소장한 살림문고를 모두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한 70% 정도는 완독했다. 대개가 옹골찬 책들이었지만 역시 함량 미달인 책도 속해 있었다. 이런 건 역시 총서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듯. 일단 두 권만 피하자.

 

먼저, 최악의 책은 <고객을 사로잡는 디자인 혁신>이다. 저자인 신언모는 삼성에서 매우 많은 뒷돈을 받아 챙긴 모양이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삼성 제품 예찬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사람은 교수 중에서도 원로 교수급에 속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이 교수는 디자인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제품의 외형적 이미지가 디자인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읽으면서 '지랄같다'는 생각을 수십 번 되네였다.

 

<흡결귀가 지배하는 세상, 대학>을 읽고 보니, 퀄러티가 떨어지는 책을 내놓는 교수들은 거의가 실력없는 놈팽이쯤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을 후려 학부모의 돈만 빼먹는 흡혈귀같은 존재들. 이들은 대개 신 모교수처럼 한심한 책을 줄기차게 내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안주하는 모양이다. 살림문고 최악의 책은 바로 신언모의 책이다.

 

 

두 번째 책은 <이란의 역사>다. 이 책 저자도 교수다. 유흥태란 사람인데, 역사서가 참으로 '창세기'초반부같다. 누가 누굴낳고, 또 누가 누굴낳고...하면서 끝임없이 이어지는, 뭐 그런 내용. 이전 페이퍼에서도 내가 이 부분에 내해서 불평해 놓았었다. 정말 지루한 책이다. 아랍 사람들 이름들이 모두 압둘, 모하메드, 하산...이런 이름들인데, 성과 이름들의 조합이 끝임없이 나열되면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어느 나라를 세웠고, 또 간신히 살아남은 조카 아무개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언넘을 죽이고 새로운 왕조를 열고...계속 된다. 빌어먹을 책이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른 최악의 책이니, 읽지 않은 책 중에서도 있을 것 같긴하다. 어쨌건 위 두 책만 피하면 살림문고 본은 양질의 책을 만날 확률이 높은 시리즈다.  

 

살림문고가 처음 100권 돌파했다고 알라딘에서 세일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0권이라니....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총서 시리즈 중 가장 많은 권수 발행을 목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이건 우리나라 출판문화에 한 획을 긋는 대단한 업적인데, 이에 대해서 일언반구가 없는게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총서에 관심이 많아 총서들을 쭉~ 모아오고 있는데, 100권이 넘은 총서 시리즈는 정말 드물다. 아마도 단일 시리즈로 '한길사상신서'와 문지의 '현대의 지성' 시리즈 그리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대우학술총서 정도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총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총서는 모두 100권 이상을 돌파했다.)

 

헌데 살림지식총서는 단기간에 500권을 돌파하여 이 부분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위 100권을 돌파한 총서들은 80년대부터 또는 90년대부터 쭉~ 출간되어 오고 있는 총서 시리즈다.) 분명히 축하받아 마땅할 업적이지 않을까.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건 괴씸하지만^^;;)

 

서점에서 500권을 본게 어느 덧 한참 전이다. 그때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500권 제목이 <결혼>이라서. 난 아직까지 관심이 없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근데 결정적인 것은 이 책의 저자가 '결혼' 전문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했거나 그 대표가 썼다면 전문성에 의심이 가지 않았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이 <결혼>이라는 책을 쓴게 좀 거시기 해서 패쓰했다. 슬쩍 보니, 자게서 모양새에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 앞으로 소장할 생각은 없다. 500권이라는 상징치고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책인 듯하다. 뭐, 결혼예찬론자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서 봐도 무방할 듯.

((500권 기념으로 후설 책이 나왔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니면 <이야기 서양철학사> 정도. 특히 후자는 그 두깨가 압도적이니..ㅎㅎ))

 

 

어쨌거나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살림지식총서다. 앞으로 몇 권까지 출간될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 지금까지 모아온 살림문고 기념샷이나 올려야 것다. 살림문고,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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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4-11-2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별히 야무 님 향해 드리는 말은 아니랍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더불어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이 매개 돼야 할까요. 근방에 블로그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물길에 잠길 듯 말듯한 징검다리를 마주할 때 마냥 망설임이 앞섭니다.

yamoo 2014-11-25 13:4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리고 책 이야기를 건넬 때는 무엇을 매개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저도 정말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안다는 건 무엇이고 아는 것 같은 걸 말했을 때 반응들, 그게 담론이라면 그게 참 거시기 한 거 같아 저도 망설이게 됩니다. 네..그렇습니다..^^;;
 

 

이 번에 소개해 드릴 총서는 해냄출판사의 대표적인 교양 시리즈 중 하나인 [클라시커 50]이다. 이 시리즈의 모토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이다. 책의 편집이 매우 훌륭하여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매 꼭지인 메인 에세이는 분량상 깊이가 없는 게 흠이다.

 

물론 중학교 교과서 수준의 평이이한 문체와 문화사별로 꼭 알아야할 내용을 선별해 소개한 건 분명한 강점이다. 문학, 음악, 미술, 역사, 인물 등 교양인으로 꼭 알아야할 명작, 명인 50선을 한 권에 담는 다는 것은 웬만한 편집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이걸 아주 멋진 편집으로 해냈다.

 

그래서 현대 교양의 결정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깊이가 아쉽다는 것은 '교양'이라는 말에서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이 시리즈의 4권을 읽어 보니 해당 분야의 무식을 충분히 타계할 수 있어, 참으로 괜찮은 교양 총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잠깐 밝혔다시피,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편집이다. 모든 책이 공통된 편집틀로 이루어져 있다. 컬러 도판이 시원시원한데, 여기에는 희귀한 사진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시리즈가 그렇게도 자랑하는 편집틀을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자랑할만하다고 생각한다.ㅎ)

 

 * 글의 메인을 이루는 에세이 : 현대적인 감막 필치로 풀어낸 수준 높은 에세이

 * 링크 박스 : 인용문, 일기, 인터뷰를 비롯, 타분야와 연계된 흥미로운 정보

 * 그림과 사진 : 300컷에 이르는 컬러 화보

 * 캡션 : 그림과 사진에 대한 깔끔한 설명

 * 별도 자료 : 각 주제의 신속한 개관을 위한 다양한 압축 정보

 * 세부 정보 : 생애, 업적, 줄거리, 전승 과정 등 세부 정보

 * 추천 정보 : 각 주제와 관련된 책, 영화, 음악, 탐방지 소개

 * 요약 평가 : 각 주제의 특징과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별점 평가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체제의 입체 교양서'라는 광고 카피에 적절한 편집틀이라 하겠다. 컬러 화보 때문에 최고급 코팅지를 사용하고 가로 크기가 좀 큰 책이라 보기에는 좋지만 이게 이 시리즈의 결정적인 단점 역할도 한다. 갖고 다니면서 보기가 좀 불편하다. 무게감 때문에.

 

한 가지 밝혀 둘 건, 이 시리즈도 역시 퀄러티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꼭지 읽고 소장한 책은 4권이다.

 

 이 중에서 <재판>과 <건축>이 제일 만족하며 본 책이다. <철학가>의 경우 번역이 매우 저열했고, <디자인>의 경우 다른 디자인 책에서 많이 다뤘던 내용을 재탕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중복이 심하더라도 내용이 새로우면 괜찮은데, 이도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다. 이 점에서 <건축>이 그만큼 돋보인다.

 

사실 다른 주제는 별 관심이 동하지 않아 4권만 소장했다. 하지만 <커플>이나 <발명>, <오페라> 등은 흥미로운 얘기가 많아 일독할 만한 가치는 충분한 듯하다.

 

어쨌든, 이 교양 시리즈는 눈이 호강하면서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총서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그나마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시리즈이니, 착한 가격에 읽어보면 언론들의 찬사(이 시리즈 출간 당시 언론들의 격찬이 이어졌었다)가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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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고 기괴한 영화. 하지만 그 속에 의미있는 알맹이가 꽉 들어차 있다. 이런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영화의 쇼킹한 면이 한껏 부각된, 그리고 이게 연출가가 의도한 비판적 의식의 구현이라면 영화의 차원은 더 높아진다. 매끄러운 플롯 속에 이런 내용을 담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연출가가 영화에서 이런 작업을 해 낼 때 우리는 그 연출가를 대가라 칭한다. 해다마 세계적으로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산업에서, 대가의 아우라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한 해 한편 만나면 운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며, 두 편 정도 만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여러말 주절거렸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대가 연출가의 아우라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다. 헌데, 단돈 10원에 아주 빼어난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자주 가는 모 사이트의 모바일 서비스 덕분이다. 모바일로 보면 pc상에서보다 10배 정도가 싸니, 정말 우습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바일용 영화들은 대부분 그저그런 영화들 뿐이거나, 오래된 명작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주 간혹, 선댄스영화제나,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부산, 전주)에서 초빙됐던 영화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만난 작품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영화다. 우리나라 타이틀은 <은밀한 가족>으로 돼 있는데, 원제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 원제는 <Miss. Violence>다. 아마도 우리 영화에서 '~가족'타이틀로 대박난 영화가 많아서 이 타이틀을 뽑은 거 같은데, 원제의 강렬함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어쨌든, 공포영화를 감상하듯이 봤다. 분명히 유럽의 한 가족을 그린 영화였지만 일반적인 유럽 가족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독한 가부장적 가족 사회를 모델로 한 듯보였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렇게도 많이 보아온 '가족 소재'의 영화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드코어 영화로 유명세를 탄 <살인마 가족>은 여기에다 대면 전혀 기괴하거나 공포스럽지 않다. 살인마 가족일지라도 그들은 끈끈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가족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기괴하다. 영화의 첫 시작부터가 충격적이다. 이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어머니-손자&손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가족이다.  영화는 11세 손녀의 생일 축하로 시작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는 딸들. 그런 와중에 생일을 맞은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베란다로 내려선 다음(너두도 자연스럽게) 평온한 표정으로 땅으로 떨어진다. 카메라는 피흘리며 사망한 딸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의 프롤로그를 장식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 가족의 모습은 시종일관 공포스럽고 기괴하다. 가족 구성원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소리내서 울지 않는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아버지 역시 울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자신의 딸(죽은 손녀의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게 전부다. 죽은 딸의 엄마도 그냥 흐느끼는 정도. 어색한 고요함과 평온함의 실체는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이 가족은 어느 누구도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할아버지만 임시직 일을 할 뿐이다. 그것도 가족들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임시직일을 다니다가 그만둔다. 이 할아저지의 주요 일과는 '돌본다'는 사랑하에 가족 구성원 모두를 간섭하고 참견하는 거다. 이 외에 하는 일이라곤 쳐먹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딸이건 손녀건 모두 일정 시간을 굶긴다. 그도 그럴것이 이 가족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그렇다.

 

영화 초반부터 먹는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가족의 식탁은 언제나 메인화면으로 설정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먹는 분위기는 무척 강조되는 듯하다. 집에서 가족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청소하고 TV를 본는 것 외에는 항상 멍청하게 앉아 있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실 일하는 사람이 없기에 먹는 것이 중요해서 자꾸 먹는 걸 비춰주는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러닝 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대에 가서야 이 장면들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이 가족의 돈벌이 실체가 드러난다. 가족의 분위기상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실체가 막상 드러나니, 좀 역겨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의 손녀들을 매춘 도구로 사용하여 끼니를 때우는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해외 토픽에도 가끔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그리 놀라운 건 없다. 자기 딸을 수년간 강간해온 짐승같은 아비들도 뉴스에 곧잘 소개되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는 이 모티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러닝 타임이 끝나갈수록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요인은 바로 여기에 기인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감독은 이 모티프를 자신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지점이 플롯의 윤리적인 면(인륜)을 완벽히 넘어서면서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이 영화를 한 차원 높게 평가하는 동인이 되게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백미 중 하나는 이 가족의 상황을 온전히 연기해 내고 있는 배우들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곤한다. 배우들은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말하지 않을 때에는 같은 장소(항상 집이다)에서 항상 뭔가를 행한다. 식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에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다. 카메라라를 보고 배우가 연기하는게 아니라 카메라가 이들을 따라가서 그 행위의 의미를 담는 듯한 인상이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카메라로 담았다는 게 정확할 표현일 듯싶다.

 

그렇기에 가족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을 나타내는 데 이보다 더 끝내주는 효과는 없었을 듯싶다. '가족의 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혈실의 공포' 그 자체였다고 느꼈으니까. 감독이 영화의 배역을 모두 연극 배우들로 캐스팅한 이유도 관객들이게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이 영화는 매우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앞에서도 <살인마 가족>보다 더 공포스럽다고 했는데, 어째서 '가족 영화'가 이런 느낌을 들게할까? <Miss. Violence>가 <살인마 가족>보다 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유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전원이 절망감과 치욕감 그리고 불합리함을 가족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을 시종일관 관통하는 침묵에 고스란히 들어난다.

 

이 은밀한 가족은 남(사찰나온 복지위원들)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며 위장된 평온함과 침묵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덮기에 급급하다. 이들 각자의 자아는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불합리하게 억압을 당하지만 끊임없이 참고 또 참는다.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런 공생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할아버지의 행동을 참아 낸다.

 

그도그럴 것이 영화 내에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곧 가족의 생존과 동일시된다. 아마도 어렸을때부터 가족의 무의식속에 이런 생활패턴이 습관적으로 자리잡아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가족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그 어떤 윤리적인 잣대도 쉽게 들이댈 수 없다.

 

 

 

 

현대 윤리학으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노림수가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감독이 '그리스 사태(디폴트)'를 보고, 그리스 국민에게 경각심을 울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는 일사천리로 썼지만, 가족과 국가가 잘 유비되겠끔 다듬는 작업을 6개월에 걸쳐 행했단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의식의 극대화를 위해 배우들을 연극배우들로만 캐스팅했다. 그만큼 영화를 통해 어떤 충격적 장치를 만들려고 애쓴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독은 '은밀한 가족'의 기괴한 행위를 통해 그리스에 커다란 주먹감자를 날린다. 할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억압과 폭력은 그리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고, 할아버지가 가족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아주 분명히 보여진다. 복지 위원들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여 사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IMF로 대변되는 외부 감사를 빗댄 것이다. 할아버지가 했던 방식으로 그리스는 IMF를 속였다는 거다. (여기에는 그리스 국민들이 사찰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그 비판의 최고점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매춘시키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니네들(그리스 위정자들)이 그리스 국민을 치욕스럽게 욕보이며 그리스 국정을 운영했다는 거다. 감독이 그리스에게 커다락 빅엿을 날리는 이 대목. 웰메이드 비판 영화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덧]

1. 나중에 알긴 했지만 역시 이 작품을 연출한 안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는 제7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역시 대가 작품은 영화제에서도 간과할 수 없나부다. 거기다 남우주연상까지 탔으니 작품의 퀄리티는 더 말하면 입아프다.

2. 영화 마지막에 할아버지에 가한 폭력.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방식으로 끝맺음 한 것이 조금 아쉽다.

3. 이 영화와 그나마 같이 볼 수 있는 책이 책세상에서 나온 <폭력>이지 않을까 한다. 바로 아래 내용 때문에..

폭력엾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남이 겪는 폭력을 마치 내가 겪는 폭력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단련하고..

 

그래도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윤리적 차원보다는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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